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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2837]
· 설교 일자 : 2010년 07월 04일
· 본문 말씀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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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옛날 옛날에, 한 임금님과 왕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행복했지만 자식이 없어서 자식이 태어나기를 무척이나 많이 기다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예쁜 공주가 태어났고, 임금님과 왕비는 너무나 기뻐서 공주의 생일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임금님께로부터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그 사실을 알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주에게 저주를 걸어서, 결국 공주가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내용 중 앞부분 줄거리입니다. 초대에 자기만 빠졌다는 것에 화가 난 마녀는 자기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고, 그 감정이 공주에게 저주를 거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마녀의 감정을 거절감이라고 말합니다.
  거절감이란, 소위 ‘권위의 인물’ 즉 윗사람, 부모, 선생님, 목사님, 남편, 아내, 직장 상사에게 부당하게 거절당하거나 버림받은 경험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그와 유사한 상황이나 전혀 반대의 상황에서 부적절하게 표출되는 감정을 거절감이라고 합니다. 진짜 버림받은 경우도 있지만, 다른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아주 심한 말을 듣게 되어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등등, 거절당했다고 느낀 이런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그 후에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 다른 상황에서 부적절하게 튀어 나옵니다. 거절당한 것도 아닌 데, 거절당했다고 느낍니다. 정당한 거절인데도 거절당한 것을 유난히 못 견딥니다. 이것이 바로 거절감의 상처입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의 첫 아들 가인이 심한 거절감 때문에 동생을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가인과 동생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이 양으로 드린 제사는열납하시고, 가인의 곡식으로 드린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가인은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셨는가를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를 드리려고 해야 하는데,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화를 냈고, 후에 동생을 들판으로 끌고 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거절감이 결국 살인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사건의 범인, 끔찍한 방법으로 할머니를 살해하고 도망간 10대 범인, 부모를 살해한 교수의 아들, 형보다 훨씬 더 좋은 명문대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편애에 시달리다가 부모를 살해한 아들, 존속살해범, 엽기살인범 등, 이렇게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자라나면서 반사회적인 인간이 되어 평생을 거절감의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거절감의 상처가 남아 그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 거절감은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건 보도를 보면,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 뿌리에 부모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았던 상처가, 사회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는 것으로 인한 거절감이 충동적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인간 깊은 내면속에 거절감의 상처가 원죄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당연한 추방이지만, 인간 속에는 자기가 한 것은 생각지 않고 쫓겨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거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잠간 자기 곁을 떠나 안 보이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버림받을 것에 대한 불안, 거절당하여 소외당할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때 엄청난 거절감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원죄적인 거절감 때문입니다.
  그렇게 원죄적인 거절감을 갖고 태어나 살아가면서 부모에게로부터 거절감의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모의 잘못 때문이거나, 또는 부모의 본의 아닌 것에 상처를 받습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나 태아의 남녀 차별로 인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가장 큰 거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태어났는데 환영받지 못한 출생이 될 때, 갓난아이가 모르는 것 같아도 엄청난 거절감을 느낍니다. 부모의 폭력적인 행동이나, 편애, 다른 형제나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비교,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부모에게서, 무관심한 부모에게서 거절감을 경험합니다. 부모와의 이별, 사별, 부모 이혼으로 인한 헤어짐,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 부모가 자신을 무책임하게 버려서 다른 사람의 손에 자라게 될 경우 등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경우에 거절감을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거절감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습니다. 쉽게 좌절합니다. 또다시 쉽게 거절감을 느낍니다. 누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심한 거절감을 느껴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과격하게 반응합니다. 쉽게 화를 잘 냅니다.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폭력적으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집니다. 자신에게 거절감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 대해 태도가 돌변하여, 서서히 주위 사람들을 내 편과 반대편으로 편 나누기를 합니다. 이렇게 거절감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하고, 무정하게 하고, 분쟁하게 하고, 서로 편을 나누도록 유도하여 악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다른 사람들이 멀리하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거절당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되고, 거절감의 상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가중이 됩니다.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절감이라는 상처는 이렇게 우리의 내면세계를 바꿔놓습니다. 열등의식을 갖게 하고, 실패 의식에 사로잡히게 하고, 죄의식도 갖게 합니다. 또한 영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생깁니다. 마음이 늘 가라앉고 어두워집니다. 스스로 무능력자처럼 생각되고 쉽게 낙심하고 쉽게 실망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거절감을 준 사람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복수심에 불타게 되어 우리 삶이 죄악을 얼룩지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내면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거절감의 상처를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리다가 결국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절감의 상처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을 방해합니다. 거절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도 나를 거절하시고 버리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보다는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거절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삶이 불행해집니다. 신앙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위대한 경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려 고생을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부도덕했습니다. 아마도 창녀이었지 않나 추측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며 버림받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그 동네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그 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천국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 오셨을 때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헌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목격했고,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고, 자신의 거절당하고 버림받은 인생을 구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삭개오라는 사람도 세리장으로써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족의 혈세를 거둬가는 매국노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처럼 취급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다가 오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만나주셨습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이 자기를 다 거절하고 손가락질하여도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자기를 받아주신 사실로 인해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눠주고, 자기가 욕심을 부려 빼앗은 재산을 네 배로 다 갚겠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변화 아닙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버림받고 저주아래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독생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거절당한 인생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푸셔서 받아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받습니다.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예수님만 나를 버리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면, 십자가의 사랑이 나에게 가득하면, 어떤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31장 6절,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약속의 말씀입니다. 복음성가 중 ‘오 신실하신 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중략)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도 영원토록 날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할지라도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한 번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버리지 않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않네” 찬송가 394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고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여러분을 향해 참고 기다리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계획과 뜻이 있으셔서 여러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또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무가치한 사람을 만드시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한 존재로 지으셨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교회란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을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건물은 예배당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카할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교회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부름 받은 사람들, 회중 총회, 하나님의 백성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소집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약성서에서의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는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즉 에클레시아는 구약의 카할의 번역된 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중심하여 모으신 회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심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 왜 부르셨겠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요한복음 15장 16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각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십니다.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기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에 합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거절감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거절감의 상처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인생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하는 공동체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고 결심하도록 돕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신앙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였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사람이 되었음을 전합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이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믿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신 분의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언제나 주님의 명령에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호주의 시드니의 한 레스토랑은 교회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한 식당이랍니다. 교인이 없어 문을 닫게 된 교회 건물을 한 주류업자가 사들여 술을 파는 식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식당에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앉는 자리에 따라 음식 값이 다르다고 합니다. 회중석에 차려진 식탁이 가장 싸고, 성가대석은 그것보다 조금 비싸고, 강단에 차려진 식탁은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그곳에 들어갔던 한 목사님은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그냥 뒤돌아 나와 버렸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조상들이 지극한 헌신으로 지어 놓은 예배당이 아무에게나 팔리는 현실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주에 있는 교회도 주님의 교회인데,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 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답니다. 영국교회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크게 지은 교회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칸을 막아 빌려주거나 팔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문적으로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슬렘 선교사들입니다. 그래서 영국 교회 건물이 모슬렘 사원으로 바뀐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이어야 교회가 건강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죽어가면 교회도 죽어갑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신앙이어야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 건물이 술집에 팔려가고 모슬렘에 팔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57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인데, 앞으로 60주년, 70주년, 100주년이 될 때 우리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기대해 봅니다. 더욱 성장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모처럼 서울 방문을 한 노인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기에 이 노인을 모시고 나들이 나갈 친척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이들이 하루는, “심심하실 텐데 극장 구경이라도 하고 오세요.” 하면서 돈을 드렸습니다. 처음으로 극장 구경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노인은 30분이 채 안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니, 벌써 돌아오십니까?” 그러자 시골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좋아했습니다. “똑똑한 서울 사람들도 어리숙한대가 있더구먼. 아니 글쎄, 내가 30분씩이나 여기 저기 극장구경을 했는데 그 바보 같은 사람들이 돈도 안 받지 뭐야. 극장 구경 공짜로 잘 했어.” 극장에 갔다 왔더라도 영화를 보지 않으면 극장에 간 의미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다녀오긴 했지만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건물의 출입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를 드릴 때, 구경만 하다가는 교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갈망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토저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녔지만, 영적 성장에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들은 초보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학교에 비유하자면 마치 한 개의 학년만 있는 학교와 같다. 그 한 학년은 1학년이다. 교인들은 2학년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을 2학년으로 진급시키려고 한다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목회자가 그들을 2학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숙제를 내주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목회자를 다른 교회로 보내시기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 ‘여보게, 자네는 1학년에 몇 년 동안 있었나?’ ‘난 12년 있었네.’ ‘난 20년 있었네’ ‘난 몇 년 있었네’ 어린 아이들은 재미있게 해주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도 재미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한다. 이것이 1학년에 머물러 있는 증거이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신앙인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차원의 인생을 삽니다. 겉모양은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삶의 내용이 다릅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보다 큰 차이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고 살아가느냐, 모른 채 살아가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냐, 자기만을 위한 삶이냐?, 자신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확신하며 사느냐, 그냥 이 땅에 버려지듯 던져지듯 살게 된 허무한 인간으로 사느냐? 상처를 치유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사느냐, 깨어지고 일그러진 채로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느냐?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내면에 있는 상처를 치유받아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있습니다. 여러분,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성령 강림 사건 후 교회가 시작되었고, 지금도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따라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을 세우는 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 사람을 고치는 일,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존귀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고 이루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언제나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여러분을 거절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받아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 갈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07월 0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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