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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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리 바꾸겠습니다  [3311]
· 설교 일자 : 2010년 09월 05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4장 25-33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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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리 바꾸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5-33절)
  지난 9월 2일 오전에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 목사님께서 72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별세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교계에 큰 별이셨습니다. 젊은 목회자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 첫 번째 해당하는 분이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제자 훈련’과 ‘교회 갱신’을 위해 목회하셨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많은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훈련하도록 좋은 목회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 훈련은 평신도를 깨우는 훈련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를 닮은 평신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제자로 훈련 되지 않으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신앙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욕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으로 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할 직분자들이 오히려 물의를 일으키고 손가락질 받을 짓을 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오늘날, 목사도 이상한 목사가 있고, 장로도 이상한 장로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안수집사, 이상한 권사, 이상한 서리집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저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계신가?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기는 하는가? 하고 의심이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분을 받을 때는 안 그랬겠지요. 직분을 받은 후 제자의 삶을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는 교인도 있고, 신자가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이 된 사람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의 신자들 중에는 그냥 신자가 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있습니다. 신자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제자의 삶을 살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으려고 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냥 교인입니까? 그냥 신자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제자가 되는 것은 곧 흙으로 말하면 토양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전병욱 목사의 글에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일본 아오모리 현에 기적의 사과를 재배하는 기무라 아키노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재배한 사과로 만든 사과 스프를 먹으려면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재배한 사과가 왜 그렇게 유명한가 하면, 사과 반쪽을 잘라서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다가 2년 만에 발견했는데, 2년 만에 발견된 사과가 조금 마르긴 했어도 달콤한 향을 내며 썩지 않고 있었답니다. 이것이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농약으로 사과를 재배했는데 농약이 얼마나 사람에게도 해로운가를 철저히 깨닫게 되어, 농약 없이 사과를 재배하려고 하다가 결국 파산하였습니다. 파산 후, 죽으려고 산에 오르다 커다란 도토리나무를 보았습니다. 해충의 피해도 없고, 병의 공격에도 건강하게 서 있는 강한 도토리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 그때 그에게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흙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무 밑의 흙을 파 보니 좋은 냄새의 온갖 미생물이 분해시킨 부드러운 흙이었습니다. 나무 밑에는 엄청난 생태계가 존재했습니다. 지렁이, 두더지 굴, 미생물의 분해에 의한 각종 생물의 낙원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도토리나무의 비밀은 흙에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기무라는 사과밭을 몇 년 동안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잡초 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생태계가 살아나도록 만들었습니다. 3년이 지나니 지렁이, 메뚜기, 개구리, 뱀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9년 만에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농약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는 사과나무가 나온 것입니다. 1991년에 큰 태풍이 왔을 때, 다른 과수원의 사과는 다 떨어지고, 사과나무가 뿌리 채 뽑혔는데, 기무라의 사과는 떨어지지 않았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과 꼭지가 2배 정도 강해서 사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무라의 사과나무 뿌리를 파보았습니다. 20미터 정도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런 뿌리의 힘이 태풍에도 사과나무를 쓰러지지 않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자가 되는 것, 제자 훈련을 받고 제자도를 따라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곧 토양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병충해에도, 어떤 태풍에도, 어떤 재해에도 쓰러지지 않고 열매도 쉽게 낙과되지 않는 사과를 자라게 하는 토양처럼, 우리의 신앙의 자세와 삶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토양이 바뀌어야 합니다. 제자 훈련이란 믿음의 토양을 바꾸는 훈련입니다.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의 토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의 토양을 바꾸고, 신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도’를 가르쳐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3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시면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보여시고, 가르치시고, 함께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시는 과정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6절에, 예수님은 가족과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여러분,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부모와 가족을 공경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부모와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라니 정말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교회에 나올 때, 가족이 반대하고 핍박하면 가족과 관계를 끊고 가출하라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나 사이비가 됩니다.  
  ‘미워하다’로 표현된 본문의 헬라어 ‘미세오’는 ‘덜 사랑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보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게 강하여 주님 사랑을 뒤로 돌리는 사람은 제자로서 합당치 않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 고난 받고 심문을 받으실 때,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에게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펄쩍 뛰면서 모른다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이 회복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스승을 사랑하지 않는 제자가 어찌 스승에게 배울 수 있으며, 스승을 사랑하지 않는 제자가 어찌 스승을 닮을 수가 있으며, 스승의 뜻을 따라 살아가겠습니까? 여러분, 그동안 여러분이 봐 왔던 만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어떤 스승에게 두 명의 수제자가 있는데 그 제자 중에 하나가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의 뜻대로 살지 않는 제자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의 뜻과 다른 길을 가는 제자는 백이면 백, 스승을 사랑하지 않는 제자입니다. 아니 제자라고 부를 수 없는 경우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어떤 사람을 위하여 봉사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봉사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명예나 업적이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봉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다 받쳐 봉사할 때 그것이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봉사도 아니고 헌신도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닮겠다, 주님을 따르겠다, 주님을 섬기겠다, 주님께 헌신하겠다는 말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을까요? 사랑하지 않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주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여 여러분의 신앙이 더 풍성해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제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십자가를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앙인이 제자인지 아닌지는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느냐, 십자가를 타고 가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신앙, 다른 사람을 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타고 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갓난아기, 어린 아이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어른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젖병 목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주는 목회를 말합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아원, 탁아원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설명을 하면, 주일을 지키지 못한 교우들을 찾아서 심방하고 달래서 교회에 나오게 하는 목회를 말합니다. 교회생활을 하다가 삐껴 가지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교인들을 찾아가 달래고 달래서 다시 교회생활을 하도록 하는 데 목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목회를 젖병 목회를 말합니다. 갓난아이 신앙의 교인을 관리하느라 시간을 다 사용하는 목회를 말합니다. 교인이 성장하여 어린아이가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갓난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는 교인들이 많으니까 젖병목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갓난 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는 신앙인의 관심은 교회가 나를 알아주나 안 알아주나?, 내가 결석하면 나를 찾나 안 찾나?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나 안 주나? 교회가 나에게 뭘 안 해주나? 교회가 나를 섭섭하게 안 하나? 이런 것에 온통 예민해져 있습니다.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는 교인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증상은 칭얼거림과 울음입니다. 갓난아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져달라고 보챕니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자기가 듣고 싶은 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만족하고 싶은 것만을 요구합니다. 물론 새교우 경우 그런 과정을 안 거치고 성장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갓난아이단계가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언제까지 젖병이나 물고 있는 갓난아이 신앙에 머물겠습니까? 새신자, 초신자들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또 이해합니다. 그런데 오래된 신자, 오래 되어서 헌신자가 된 신자, 벌써 하나님께 헌신하는 헌신자가 되었어야 할 신자들이 헐어버리고 낡은 헌~신자가 되어 새로운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하는 낡은 가죽 부대같은 신앙으로 겨우 겨우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주님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우리 서로 서로를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정신과 십자가의 도를 알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란 십자가의 사랑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삶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붙들고 삽니다. 갓난아이 신앙으로는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십자가의 삶은 고통과 수치를 겪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 때문에 기꺼이 고통과 수치를 감당하는 삶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웃으면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짊어지고 가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존심이 솟구쳐 오를 때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려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심한 모욕을 당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을 때,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을 때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십자가의 보혈과 사랑을 구합니다.
교우 여러분, 십자가 신앙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갓난아이 신앙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제자는 기꺼이 자기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자기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기꺼이 소유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소유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소유 중심의 가치관과 소유 중심의 인생관을 버리고, 사용 중심의 가치관과 청지기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많이 움켜쥐려고 하는 신앙인은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청지기인 우리들에게 맡기신 재물과 다양한 소유들을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기꺼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하여 주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는 “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 자라지 않는 아이에 대해 말합니다. 그 목사님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너는 네 교회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다.” 여러분, 충격적인 말씀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자라고 있는지, 아니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자라지는 않고 살만 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다시 세심히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니까 똑같은 기도만 되풀이 되고 있었고, 받는 것에 온통 관심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길 바라고,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시고, 또 무엇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행복을 주시고, 재물을 주시고, 승진과 합격을 주시고 ... 그치지 않고 달라고만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받을 생각만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오르티즈 목사님은 제자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 소유를 늘리기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자기만을 위해서 신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과 재능과 은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즘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가 인기있다고 합니다. 하도 김탁구, 김탁구해서 근간에 몇 편을 보았습니다. 빵을 만드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밤늦게 빵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인 팔봉 선생님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 김탁구에게 빵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 줍니다.  
그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스승 팔봉이 김탁구에게 묻습니다. “탁구야 너는 왜 빵이 좋으냐” “빵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가 좋습니다” “그렇구나~” 탁구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스승님은 왜 빵이 좋으십니까?” “그야 사람이 먹는 것이니 좋지~” 스승의 말에 탁구가 말합니다. “그럼 저도 그리 바꾸겠습니다.” 팔봉선생의 마지막 가르침이었습니다.  
  김탁구에게서 배울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스승님을 닮으려 하고, 배우려고 한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따뜻한 냄새를 자기가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생각을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스승의 깊은 정신으로 자기의 생각을 바꾸겠다고 한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나에게 배우라, 내가 가르친 것을 지켜라! 제자가 되어라! 김탁구가 스승에게 한 말처럼, 우리는 예수님께 “예, 주님, 그럼 그리 바꾸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나만을 위해서, 내 문제, 내 기도제목, 내 앞가림만을 위해서, 내 가족만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힘들고 외롭고 괴롭고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를 붙잡고서 이겨내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건강한 신앙인,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토양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마음, 예수님의 제자의 자세, 예수님의 제자의 삶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09월 0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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