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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니  [4109]
· 설교 일자 : 2008년 12월 14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8장 12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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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니 (요한복음 8장 12절)
  1981년도 대학 4학년 때 졸업여행을 설악산으로 산행을 갔습니다. 40명 안 되는 과학생들이 조를 편성해서 내설악에서 시작하여 산장에서 1박을 하고 대청봉을 올라 외설악으로 내려가는 코스였습니다. 각조별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장에 도착하여야 할 한 조가 밤늦은 시간까지 도착이 안 되어서 걱정걱정을 하였습니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이 있던지, 무슨 비상연락 방법이 있었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뽀족한 방법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다들 산장에서 걱정하며 잠을 못자고 있는데, 뒤늦게 그 조가 도착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등산을 잘 못하는 여학생이 뒤로 처지니까 조 전체가 늦어져서 밤이 되어 길은 어두워지고, 도착해야 할 산장에는 가야 되겠고 해서 작은 후레쉬를 켜서 앞에서 남학생이 인도를 했는데, 후레쉬를 켜고 간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밤에 산에서 움직일 때에는 후레쉬를 켜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속에 나 있는 길을 달빛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가야지, 후레쉬를 비취면 길이 보이지 않고 다 길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 조도 그렇게 하다가 길에서 벗어나 한참이나 헤매다가 다행히 길을 찾아 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어둠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어렵게 만들고, 안전을 위협하고, 마침내 목숨을 잃게 하기도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우리를 인도할 빛이 필요합니다.

  밤에만 빛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낮에 내리쬐는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1982년 할 할맨(Hal Hallman)은 빛과 건강에 관계에 대한 발견을 [Psychology Today]에 발표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모든 부분의 건강, 즉 정신과 감정적인 것뿐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도 우리가 노출되는 빛의 강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빛은 혈액, 피부, 그리고 몸의 각종 질병을 치료한다. 또한 특정 우울증, 비행기 시차로 인한 피로, 그리고 불면증을 완화시킨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쬐는 것이 작은 과민증에 시달리고, 감기에 자주 걸리고, 불면증으로 고통 받고, 무기력함,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은 빛이 필요합니다. 빛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그 결과는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은 세상의 빛이라고, 그리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어두움의 세상 속에 오셨습니다.

  빛은 생명을, 어두움은 죽음을 가져옵니다. 성경은 어두움을 주관하는 권세를 흑암의 권세라고 말합니다. 빛을 주관하는 권세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며,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성자 하나님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영국의 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테니슨에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시인이었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아름다운 꽃 앞에 서서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 꽃과 태양과의 관계와 같다네. 이 꽃은 태양 빛이 없으면 시들시들 죽고 말 것이네. 태양 빛이 없다면 이 꽃은 살수도 없고, 꽃을 피울 수도 없는 것처럼, 나도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없으면 영원히 죽고 말 것일세.” 그렇습니다. 여러분, 빛이 없으면 생명은 제대로 자랄 수가 없습니다. 빛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무엇입니까? 빛이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빛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 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에서 빛을 만드심으로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왜 빛부터 만드셨을까요? 빛은 생명을 시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빛이 생명을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모든 생물들은 빛을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빛이 없으면 미생물이나 식물, 동물들은 모든 활동이 중단됩니다. 생명활동은 빛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빛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줍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빛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식물이나 물고기, 동물들을 창조하셨다면, 어둠 속에서 혼란이 오고 모두가 영양실조에 걸려 죽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빛은 모든 생물이 자라는데 필수요소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햇빛은 우리 삶의 훌륭한 의사입니다. 햇빛은 강장제가 되고, 살균제, 치료제, 긴장 완화제가 됩니다. 이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적인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흑암 속에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라고 이사야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를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하면 마음속의 죄와 사망의 흑암은 사라집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마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멉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그 질문을 받고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깜깜한 방에 불을 켜 보십시오.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둠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다시 불을 끄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빛과 어둠 간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마귀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있으면 마귀는 그 즉시 사라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마귀는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마귀는 어두움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밝고 환한 생명의 삶,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스위치만 켜기만 하면 전등이 켜져 환한 빛이 방안에 가득하여 어둠이 사라지듯,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우리의 마음은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의 빛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교우 여러분,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어두움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어두움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우리는 영생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빛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 표준새번역으로 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진리로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일컬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 말을 더 설명하기 위해 어두움과 빛을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 활동하는 도중 정전이 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정전이 되어 어두움 속에 있을 때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우리는 앞이 안 보입니다.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걸어가다가 부딪힙니다. 그래서 부딪히지 않으려고 손으로 더듬더듬 하면서 갑니다. 발도 힘차게 내딛지 못하고 조심조심 디뎌야 합니다. 그렇게 앞으로 향해 가긴 가는데 나중에 보면 삐뚤삐둘 걸었습니다. 가려던 방향으로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걸어 지나간 자리마다 물건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고 어지럽혀 있습니다. 그때 전기가 들어오면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무엇이 흩으러 졌는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무엇이 무질서하게 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십니다. 무질서를 질서로, 혼돈을 안정으로, 불확실을 확신으로, 거짓을 진실로, 진리 아닌 것으로 갈팡질팡하고, 온갖 욕심으로 깜깜해진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5절 말씀에,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이라도 빛이 켜지고 빛이 비춰지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진리의 빛은 거짓과 무질서와 혼돈과 불확실을 몰아내고, 우리를 진리로 인도합니다.
빛은 걸음을 인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어두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우리를 인도해주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0절 말씀,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없으면 실족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사리분별을 바로 할 수 없고, 방향을 바로 찾을 수 없고, 상황 파악을 할 수 없고, 거짓과 불확실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눈이 멉니다.
요한일서 2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 마음속에 많은 어두움들이 찾아옵니다.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두려움, 미움, 증오, 시기, 질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슬픔, 고통, 정욕, 탐욕, 명예욕, 각종 욕심들이 그것입니다. 이런 어두움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인생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합니다. 헤매게 합니다. 실족하게 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게 하고, 죄인의 길에 서게 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합니다. 점점 더 빛과 멀어지고, 어둠은 깊어갑니다. 그 종착점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2장 35, 36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활에는 빛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빛이 필요합니다.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진리의 말씀, 성경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서 어둠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진리의 빛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비추어져 어둠에 붙잡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두움으로 눈이 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둠 속에서 실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빛은 긍정입니다. 빛은 밝은 것이고, 긍정적입니다. 어둠은 부정적입니다.
여러분, 유럽에는 일 년 중 맑은 날이 많지 않습니다. 안개가 많다든지,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 많다든지 하여 햇빛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다보면, 사람들이 운동경기를 관전하다가도 햇빛이 좋으면 남자는 웃옷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으로 햇빛을 쬐이면서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트롬소 지방은 북극 끝 쪽인데, 그 도시에 사는 4만 명의 주민은 태양을 일 년에 두 달밖에 보지 못하고 산답니다. 이렇게 어두운 나날을 사는 그들은 대개 신경이 예민하고 화를 잘 내고, 도시 전체의 움직임이 느리고 권태로움에 빠져 불평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불안하고 우울하고 공포심을 갖고 살아가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 마음이 어둡게 되어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절망적이며, 그리고 죽음으로 향합니다. 빛은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합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갑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소망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를 갖게 합니다.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빛을 비추어 주시면서 우리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빛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3가지 특징은 이렇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것만 본다.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한다.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 세 가지입니다.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둠에 둘러싸여 소망적인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두움으로 짖 눌려 부정적인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안 되겠다, 될 리 없다. 절대로 안 돼!’라는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면 정말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 것일까요?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님을 믿는데도, 기쁘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있고, 슬프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쁘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언제나 평화롭고 밝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슬프게 예수를 믿는 사람은 늘 근심하고 탄식하고 비관하며 끝만을 생각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예수님을 믿습니까?
   똑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과 부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의 삶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빛은 긍정이요. 어두움은 부정입니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을, 단점보다는 장점을, 잃은 것보다는 남은 것, 비난할 것보다는 칭찬할 것을, 어두움보다는 빛을 먼저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관점이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세상의 빛이 되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둡게만 보여주는 부정의 색안경은 이제 벗어던지고 밝은 면을 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은 우리의 삶을 어둡게 만듭니다. 거짓, 사고, 질병, 문제와 장애물, 슬픔, 고통, 이런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만 갖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어둠을 뚫고 나올 수도 없고, 어둠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시지 않고서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어둠속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어두움 속에 버려진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세상의 빛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어두움 속에서 끌어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기 위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건지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교우 여러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전투기가 추락했습니다. 훈련비행 중에 추락을 한 것입니다. 추락기는 아내와 생후 3개월, 15개월 된 두 딸과 장모가 있는 집을 덮쳤습니다. 집에 있는 가족 모두가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교포 가정이 참사를 당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한 37세 윤 동윤씨만 혼자 살아남고 온 가족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고 원망스럽고 분노할 일입니까? 그러나 윤 동윤씨는 사고 후 누구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가족들이 너무도 보고 싶다고,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무엇이 이를 이렇게 할 수 있게 했을까요? 그는 누가 보아도 슬픔과 고통과 원망과 분노의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크리스천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그렇게 오래 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소망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서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빛을 비춰주시고, 긍정과 소망으로 빛을 비춰주시기에 슬픔과 고통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슬픔을 슬픔으로, 분노를 복수로, 어둠을 비극으로 끝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혼돈을 질서로, 분노를 용서로, 거짓을 진리로, 부정을 긍정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꿔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의 빛이 늘 비추어주시길 축복합니다.
2008년 12월 14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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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8년 11월 23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43~5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 일시  2008년 11월 16일
· 말씀  시편 105편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