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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3229]
· 설교 일자 : 2009년 07월 05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3장 16-21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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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요한복음 3장 16-21절)

요즘 핸드폰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중, 운전하는 사람 중에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혼자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젊은 세대인지 아닌지 구별이 된다고 합니다. 10, 20대 젊은 세대는 작고 깜찍한 디자인. 최신형만 고집한다고 합니다. 색상도 10,20대는 다양합니다. 금색, 은색은 기본이고 핑크색, 노란색도 있습니다. 그런데 40대 이상 쉰세대는 그냥 쓸만 하면 되고, 크기도 모양도 적당하면 된다고 합니다. 최신형을 가지고 있는 쉰세대가 가끔 있기는 한데 사용법을 잘 모르고, 전화 걸고 받는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핸드폰 색상은 검은 거 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리고 검은 게 때 안타서 좋아 합니다. 가지고 다니는 곳은, 10, 20대 젊은 세대는 가방이나 청바지 뒷주머니, 30대는 가방이나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데, 쉰세대는 허리에 터~억하니 무전기처럼 차고 다닙니다. 경찰관을 연상시킵니다. 자, 여러분, 오늘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휴대폰 다 껐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벼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벼룩은 본능적으로 앞에 있는 벼룩을 따라가는데, 앞서 가던 벼룩이 원을 돌면 뒤에 있는 벼룩도 그대로 따라 한답니다. 그 뒤의 벼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벼룩이 죽는 순간까지 앞의 벼룩이 원을 돌면 그대로 따라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죽더랍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이 학교 가니까 학교 가고, 남들이 졸업하니까 나도 졸업하고, 취직하니까 취직하고, 장가가니까 장가가고, 애 낳으니까 애 낳고, 애 학교 보내니까 학교 보내고, 늙으니까 나도 늙고, 죽으니까 나도 죽고.... 왜 해야 하는 지 생각도 안 합니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는 열심히 산다고 살지만 다른 사람들을 그냥 따라서 살다가 죽음을 맞는 벼룩 수준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저희 집에서는 돼지를 길렀습니다. 6남매가 학교를 다니려면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 가지고는 분기마다 찾아오는 학비를 댈 수가 없어서 어머니가 돼지를 기르셨습니다. 돼지를 기를 때 보면, 어떤 날은 돼지들을 우리에서 끌어내어 마당에 외출을 시킵니다. 마당으로 나온 돼지들은 꿀꿀 거리며 다니다가 결국 마당 한 구석을 주둥이로 팝니다. 그리고 흙속에 무엇이 있는 지 흙속에서 무엇을 찾아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갇혀 있던 돼지가 마당에 나와서 하는 짓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거나 산책을 하지는 않더군요. 그저 마당에 나와서도 뭐 먹을 것이 없나..하고 찾습니다. 닭만 하더라도 마당을 다니면서 모이를 주어 먹긴 하지만 그래도 고개를 좌우로 돌아보며, 또 하늘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목뼈가 아래쪽으로 굽어 있어서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수평 이상은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신체구조상 돼지는 평생 땅바닥만 바라보며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돼지 수준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바닥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평생 땅위에 일들만을 쳐다보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갑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도록 땀 흘리며 일합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돈 벌려고 그러지요. 돈 벌어서 뭐 하려고 그럽니까? 돈 벌어서 밥도 먹고 살아야 하고, 돈 벌어서 자식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돈 벌어서 집도 장만하고, 돈 벌어서 차도 사고, 돈 벌어서 집에 큰 텔레비전도 들여 놓고, 돈 벌어서 어디 어디에 땅도 사놓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행복이 손에 쥐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돼지 수준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땅의 일만을 생각하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인간만이 영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결과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살면서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보셨습니까? 영원한 삶을 살고 싶으시지요?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땅의 삶의 원리를 뛰어넘는 세상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땅만 보고 사는 게 인생의 전부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이 없을까를 꿈꿉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온 우주 만물을 둘러보게 되고, 우주 만물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의 탐구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나? 이 온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나? 하는 질문을 가지고 묻다가 결국 이 우주 속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물었습니다. 다른 생물들과 비교하였습니다. 한번 비교해 볼까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이 월등히 뛰어난가요? 몸을 봅시다. 인간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좋은 동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계기록보유자인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100m를 9초대에 달리는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표범은 100m를 3.2초에 달립니다. 치타는 표범보다 더 빠른데, 달리기 시작하여 2초 후에는 시속 72km로 속도가 빨라집니다. 최고 시속은 113km입니다. 다른 것을 비교해 볼까요? 몰골 사람들의 평균 시력이 4랍니다. 200m 떨어진 거리에서 구슬만한 크기의 물건을 정확히 무엇인지 보고 알 수 있는 시력입니다. 독수리의 시력은 보통 인간의 3, 4배 정도 더 좋다고 합니다. 특별히 홍채를 조절해서 멀리 볼 것인지, 가까이 볼 것인지를 조절하여 정확하게 물체를 봅니다. 또한 인간의 눈은 태양을 똑바로 오래 동안 보면 시력을 잃을 수 있지만 독수리를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귀가 아무리 밝아도, 토끼의 청력과 비교하면 약하기 그지없고, 사람의 코로 냄새 맡는 후각도 개와 비교하면 약하고, 하늘을 나는 새와 비교하면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없고, 물속의 물고기처럼 오랫동안 물속에서 수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 한 가지씩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까? 인간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과 영혼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은 생각하는 기능이 발달하지 않았고,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본능에 의해서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냥 흙속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인간만이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영혼이 본래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마치 먼지 잔뜩 낀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영원한 세계를 선명하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다시금 살아나지 않으면, 영혼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 1장에 있는 말씀처럼,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우상을 만들고 절하고 섬기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거짓 신을 섬긴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는 싶은 데 잘못 찾은 것이지요. 하나님 아닌 헛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사람이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정리하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연약한 존재라는 것은 단지 힘이 없고 육체적인 강함이 적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연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짓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인생을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습니다. 인생을 그냥 대충 살다가 대충 그까짓 것 하면서 죽으면 죽는 거지 하는 사람은 인간을 바르게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게 가치 있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나 그 무엇으로도 잘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에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가를 깨닫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꾸만 실수하고, 실패하고, 죄를 짓고, 불행해 지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여 말씀드리면,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중요한 신앙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연약함을 인정하고, 미련함을 인정하고, 죄인됨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감추고 덮고 꾸미려고 하니까 피곤한 인생이 됩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가 없다는 말은 평안과 행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끝없는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나이를 물으면 나이를 대답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나이를 속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자신의 인생을 위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는 또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라고 말하는 데 왜 그게 실례냐고 반문을 합니다. 오히려 나이를 숨기려고 하고, 나이를 속이는 그 속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을 하더군요. 일리가 있습니다. 또 여성에게 몸무게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고 하는 데, 왜 그러냐고 반문을 합니다. 그것이 무슨 하늘의 비밀이라도 되느냐고 말합니다. 체중을 대답하지 않아도 딱 보면 60kg이상이 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부피로 이미 보여주고 있는데, 몸의 무게를 수치로 말하는 것이 무엇이 비밀이고, 실례고, 이상한 일이냐는 얘깁니다. 이 이야기들은 단지 나이와 몸무게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젊게 보이는 경우입니다. 남들이 젊게 봐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이를 속이거나 위장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자신을 피곤하게 합니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게 잘 안 될 때에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왜 자유가 없고,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는 지 아십니까? 늘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나, 나에 대해 뭐라고 말 하나, 늘 신경 곤두세우고 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사니까 스트레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다 그렇고 그런 인생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인정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지고,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진실된 마음으로 나아가면 여러분 삶에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 성경 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으셨다는 것도, 하나님의 파트너로 이 세상을 돌보는 책임을 주셨는데, 인간이 그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사랑이시며,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없는 곳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사랑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되고, 영원한 진노와 멸망과 저주에 떨어질 인간을 긍휼히 여기셔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대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 대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 받아야 할 대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부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16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엄청난 업적을 세우고, 어마어마한 노력을 하고, 내 인격이 천사 같아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라면 저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이 사실이 너무도 좋습니다. 이 진리가 저를 너무나도 기쁘게 합니다. 이 복음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때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곧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평안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우리도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에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인격도, 자신의 체면도, 자신의 양심도,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돈을 위해 다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돈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오고가지 않으니까 만족이 없었습니다. 불행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 인격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인격적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동안 돈! 돈! 돈! 하면서 살아오던 삶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동안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돈을 불의한 방법으로 갚기로 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첫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구원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백성이 된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천국에 가기까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셋째는 이 세상의 수많은 죄와 불행스러운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영생의 삶, 구원의 삶, 진정한 행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복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지금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지만 정말 새로운 삶을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모습, 살아가는 방법, 만나는 사람들과 겪게 되는 것이 그게 그냥 인생이고, 그게 사는 것이고, 그게 전부인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고, 살아가는 내용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바쁘게 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보냈지만 마음은 늘 허전하고 허무하고 뭔가 부족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성경에 있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허전한 것이 점점 없어지고, 허무한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작은 것에도 뿌듯하고, 마음과 영혼이 만족을 얻는 것 같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신감도 생기고, 인생이 가야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바른 길,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으니 평안하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도 행복해 보입니다. 얼굴에 져있던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변화되어가는 모습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변화와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어 여러분의 인생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즘 금연에 관한 많은 의학보고와 홍보를 합니다. 금연 운동도 많이 펼치고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아내가 담배를 못 끊는 남편에게 아침 신문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이 신문 좀 봐요. 당신, 담배를 끊어야겠어요. 담배는 많은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래요. 어제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던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당장 끊을게” “정말이요?” 아내는 너무도 반가워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담배 말구, 그 신문을 오늘 당장 끊는다구.”
  여러분,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지 마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외면하지 마십시오. 거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찾아 온 선택의 기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러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 태양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태양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인정하든 안 하든, 믿든 믿지 않든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오늘도 온 우주를 운행하고 계십니다. 이 땅의 모든 일을 주관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의식하며 살든 그렇지 않든 우리 인생은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히브리서 9장 27절에 말씀합니다. 그 심판의 결과로 천국으로, 지옥으로 갑니다. 여러분,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옥에는 영원한 형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고통스런 형벌이 영원히 계속되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여 모두 다 멸망시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죽어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슬픔과 고통의 바다 같은 이 땅의 삶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우리의 삶이 불행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처음 저희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여러분들과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들과 함께 천국에 다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헛된 인생,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값진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07월 0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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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찾아내기까지
· 일시  2009년 06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 일시  2009년 06월 14일
· 말씀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수의 강
· 일시  2009년 06월 07일
· 말씀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님 임재하소서 !
· 일시  2009년 05월 31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 일시  2009년 05월 24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항상 기도 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
· 일시  2009년 05월 10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03일
· 말씀  잠언 22장 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의 검 - 하나님의 전신갑주(VI)
· 일시  2009년 04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복음의 신 - 하나님의 전신갑주 (V)
· 일시  2009년 04월 1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