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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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3223]
· 설교 일자 : 2009년 09월 06일
· 본문 말씀 : 창세기 35장 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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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창세기 35장 1-7절)
  금년인지 작년인지 지하 노래방에서 화재가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상구 문이 열리지 않아 인명피해가 더 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비상구문을 폐쇄시켰기 때문입니다. 화재와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 비상구가 없다든지, 비상구가 제구실을 못한다든지, 비상구를 찾지 못해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기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비상구,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 위기를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과 그 가족들입니다. 야곱의 생애에 중요한 위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야곱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비상구를 찾아 나갔는지를 깨달아 배우고자 합니다.
  400명의 부하를 데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는 형 이삭 때문에 위기 앞에서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끈질긴 기도와 깨어지는 은혜를 경험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야곱은 드디어 창세기 33장에서 형을 만납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나자 몸을 일곱 번 굽혀 절을 하니 에서가 달려와 야곱을 맞이하여 끌어안고 서로 웁니다. 20년 동안 헤어져 있던 형제, 에서와 야곱은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와 화해의 한마당을 이루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남북이산가족 상봉하는 광경처럼, 6.25 전쟁 통에 헤어졌다가 방송을 통해 만난 가족처럼,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20년 전 자신을 속인 야곱을 죽일 듯이 분노했던 형 에서도, 형이 무서워 도망친 동생 야곱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서로 당기는 핏줄과 하나님의 은혜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혹시 형제간에, 자매간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간에 풀지 못한 감정이 있습니까? 물론 서로 등을 돌리게 된 이유가 있겠지요. 화해하기 힘든 사정이 있겠지요. 상대가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용서하기가 죽기보다 싫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았고, 십자가의 용서를 받았다면, 여러분의 태도와 뉘우치는 모습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고 있다면 여러분들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야곱은 형을 만나 화해한 뒤에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비극적인 위기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의 여자들은 어떻게 지내나 하고 구경을 하러 갔다가 세겜성 추장 하몰의 아들이 디나를 유혹하여 강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나를 자기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디나를 아내로 주면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을 닮았는지 속임수를 썼습니다. 할례를 받으면 누이 디나를 줄 것 같이 말했습니다. 이 말을 좋게 여긴 추장 하몰과 아들 세겜은 곧 바로 성으로 돌아가서 성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할례를 행한지 3일째 날, 그 성의 남자들이 거동이 불편할 때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성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들을 다 죽였고, 재물들을 빼앗고, 그들의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노략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디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일이 세겜성을 벌집 쑤셔놓듯 들쑤셔 놓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인근 성들끼리, 부족끼리 동맹을 맺어 함께 안전과 생명을 지켰기 때문에 야곱의 가정은, 그 지역에 있는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로부터, 사방으로 공격을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세겜에서의 위기는 야곱의 인생을 뒤흔들 위기였습니다. 무겁고 어두운 전운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시 위기를 맞은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1절에, 야곱이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에게로 가던 길에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여러분, 위기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시지요? 야곱은 위기를 기회로 맞았습니다. 야곱과 그의 가정에 닥친 위기는 야곱과 그의 가족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어 파멸을 가져오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야곱과 그의 자녀들이 전쟁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구해주러 에서가 군사를 데리고 왔기 때문도 아닙니다. 야곱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야곱을 찾아오셔서 야곱에게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출구를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자, 그들이 그곳을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인근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렵게 하여 야곱과 그 자녀들을 감히 건드리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까요?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로 올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주신 은혜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말씀은, 처음 나를 만난 곳에 올라가서 첫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당연히 정결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정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결케 되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야곱은 자기 가족과 종들 모두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이방신상을 다 버려라! 자신을 정결케 하라! 너희들의 옷을 새롭게 갈아입어라! 그리고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에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한다!” 본문 2, 3절 내용입니다. 그랬더니 가족들과 종들 모두 한 마디도 군소리를 하지 않고 이방 신상들을 꺼내고, 우상 형상으로 된 귀고리까지 빼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 거짓된 것, 잘못된 것, 비 신앙적인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 하나님과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고 모든 문제와 위기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나아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기 위해 우상을 버리고, 과거의 죄악들을 회개하고 정결케 되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우상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라는 것을 야곱은 깨달았습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야곱은 문제를 만나고 위기를 만났을 때, 오직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을 다시 붙잡았습니다. 이렇게 야곱을 도우시는 하나님은 우리들도 도우십니다. 환난알에 응답하십니다. 시편 146편 3- 5절 말씀처럼,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은 우상을 버리고, 죄를 뉘우쳐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사무엘서와 역대기에 사울 왕과 다윗 왕이 등장합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잘 시작했지만 왜 패망했을까요?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될 때는 정말 하나님도, 백성들도 기대가 컸습니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비참하게 죽었고, 그의 집안이 패망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패망하게 된 것은 그가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전쟁에서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울 왕의 죽음과 패망에 대해, 그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울 왕이 패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신접한 자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하고, 자기감정대로 행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그 때 그 때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점점 메마르고 거칠어지고 황폐해지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셨고, 사울 왕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다윗 왕과 사울 왕의 차이는, 사울 왕은 자신이 지은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 왕은 자신이 범한 죄를 지적받았을 때 곧 바로 인정하고 회개한 점입니다. 이점을 하나님께서 다윗을 좋게 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한 점 부끄러움도 없고, 생각 한 가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틀림없고,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시지만,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고 정결케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정결해지기 위해 신앙생활하고 정결해짐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결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죄를 뉘우치고 정결해지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를 교회외벽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 문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읽을 수 있도록 커다란 글씨와 예쁜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교회 안의 문제들로 인해 주변에 신경을 쏟을 여력이 차츰 없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담쟁이덩쿨이 벽을 타고 올라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의 ‘당’자를 덮어서 문구는 “하나님은 신을 사랑하십니다!”로 보였습니다. 아무도 문구가 그렇게 된 것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또 흐르자 담쟁이덩쿨은 ‘하나님은’의 문구의 ‘님은’ 글자를 덮어버려 문구는 “하나 신을 사랑하십니다!”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내부 문제가 더 심각해져 담쟁이덩쿨을 정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는 ‘하나님은’과 ‘사랑’ 글자까지 덮어버려 “.... 신을 ..하십니다!”가 되어버리더니 나중에는 그 외벽에 무슨 문구가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다 덮어버렸습니다. 담쟁이덩쿨을 정리하지 못해 모든 글자가 다 없어졌습니다.
  마음에 죄의 담쟁이덩쿨이 자라나 덮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라나는 죄악을 내버려 두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잔디밭을 잘 관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돌을 골라버리고, 쓸모없는 잡초와 엉겅퀴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때 그때 관리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고, 아름다운 잔디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출발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좋은 것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을 관리하고 성결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잡초가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해결되지 않은 죄는 없습니까? 죄를 뉘우치고 용서받아 깨끗케 되지 않은 죄는 없습니까? 모르고 지은 죄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크고 놀라운 은혜, 신비하고 거룩한 은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얼룩이 집니다. 먼지가 앉습니다. 허물이 드러납니다. 실수합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벧엘로 올라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회개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케 되고, 버릴 것을 버리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여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말씀에는 벧엘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야곱이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야곱은 과거 형을 피해 도망 나오는 길에서 벧엘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와 천사들,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서 그곳에 베게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면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이름 짓고 하나님께 세 가지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벧엘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 즉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습니다.”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세월과 함께 잊었는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하나님께 했던 약속 이행, 서원 이행이 몇십 년간 지연되었습니다. 자꾸만 환경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니 기억이 흐려졌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새 이름을 받고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야곱은 결심이 흐려졌습니다.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위기 중에는 하나님께 부르짖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곧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급할 때에는 하나님께 약속하고, 다짐하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바칠 것처럼 하다가도 상황이 바뀌는 것 같으면 마음도 같이 바뀝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울부짖으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주시기만 하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것처럼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그렇게 약속을 지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안정이 되면 조금씩 조금씩 약속한 내용이 흐려지고, 약속한 마음이 흔들립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배가 난파되어 뱃조각을 두 사람이 타고 바다를 표류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지나가는 배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나게만 해 주시면 전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그 때 다른 한 사람이 “이봐 친구! 눈 떠 봐! 그 기도 멈춰! 저기 배가 온다구!” 그러자 기도하던 사람이 “하나님, 잠깐만요! 기도 다시 할께요.” 그러더랍니다. 배가 나타나니까 전재산 드리겠다던 마음이 바뀐 것이지요.
  세겜 사건의 위기로 벧엘에 다시 올라가는 야곱은 하나님께 한 약속을 기억해 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고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 성경을 많이 읽는 것, 다 의미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는 것 또한 우리 신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약속을 믿고 약속을 지켜 나갈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견고해지고, 신앙은 성숙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 5장 4절 이하에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습니까?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안수 받으며 임직할 때에 서약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결혼할 때에 하나님 앞에 부부간에 서약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2009년을 시작하며 년 초에 서리집사로, 교사, 찬양대, 각 사역자로 서약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 서약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은 약속하고 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 한 약속, 하나님 앞에 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서원한 약속을 지키기를 3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한 약속, 서원을 언제 지킬 것인가 하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켜나가는 진실하고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말씀은 그의 신앙과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우상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은 다시 벧엘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믿음이 회복이 되고, 하나님께서 야곱과 가족을 공격당할 위기로부터 지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회복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우리 인간은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고, 몸과 마음과 영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잃은 것을 찾는 것이 회복입니다.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회복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것을 고쳐 다시 쓰는 것이 회복입니다. 약해지고 병들고 상처받고 생명력을 잃은 것을 치유 받는 것이 회복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회복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전 여정은 회복으로 가는 길이며, 신앙의 순례 여정은 회복으로 가는 훈련입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시작하게 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말씀하셨고, 명령하셨습니다.
  야곱이 위기 속에서 다시 벧엘로 올라가 정결함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신앙이 회복되고, 안전과 평안이 회복 된 것처럼, 우리들도 세상에서 지치고, 고통당하고, 죄짓고, 삐뚤어지고, 오염되고, 상하고, 병들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시 벧엘로,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다시 회복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야곱이 다시 올라가야 할 곳은 벧엘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벧엘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입니다. 십자가라는 나무 앞이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 앞입니다. 십자가위에서 죽음으로 이루신 용서와 사랑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지나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십자가 앞에 서지 않으면,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날마다 죽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신앙은 갖가지 세상의 죄악들로 더럽혀지고, 변질되고, 무디어지고, 황폐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에 화재 속에서 비상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세상의 것들에 질식되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야곱이 다시 벧엘로 올라간 일은 삶의 전환점을 이루는 일이 되었습니다. 야곱뿐만 아니라 야곱의 가족 공동체의 신앙에 새로운 변화와 영적 각성, 부흥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을 끝까지 붙들고 계시고, 문제와 위기를 해결해 주시며 야곱이라는 연약한 인생을 다듬고 훈련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비상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위기 속의 비상구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십자가를 붙잡고 회개와 영적 각성과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009년 09월 06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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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찾아내기까지
· 일시  2009년 06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 일시  2009년 06월 14일
· 말씀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수의 강
· 일시  2009년 06월 07일
· 말씀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님 임재하소서 !
· 일시  2009년 05월 31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 일시  2009년 05월 24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항상 기도 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
· 일시  2009년 05월 10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03일
· 말씀  잠언 22장 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의 검 - 하나님의 전신갑주(VI)
· 일시  2009년 04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복음의 신 - 하나님의 전신갑주 (V)
· 일시  2009년 04월 1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