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라는 지뢰 (시편 42편 1-5절) |
“사람은 나무 잎과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또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는 싯구는, 어느 수필가의 인용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서사시 [일리아드] 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인 그리스의 시인 호머의 싯구입니다. 호머는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자살 동기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그를 연구하며 그의 자살 동기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을 했습니다. 그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어느 날 호머는 낚시를 다녀오는 서너 명의 소년에 물었답니다. “고기를 얼마나 잡았느냐?” 한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잡은 것은 버렸고 잡지 않은 고기는 바구니에 넣어왔습니다.” 시인 호머는 밤새도록 소년의 말뜻을 생각해봤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우둔함에 실망해 자살했답니다. 그러나 소년의 말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뜻의 농담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호머는 소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여 자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살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수능시험일이 다가옵니다. 수능 시험을 치고 난 후에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이 뉴스에 보도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자살하는 학생들을 보면, 공부를 평소에 잘 못하는 학생들은 성적 때문에 자살을 안 합니다. 성적이 잘 안 나오는 것이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공부를 잘 했는데,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거나, 시험에 실수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끝났고, 그래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극심한 좌절감으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험생을 둔 부모는 자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합니다.
실망이라는 말은 기대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실망감은 기대감이나 욕구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삶에 성취감과 목적을 주는 거룩한 동기와 욕구를 잃었을 때 실망감이 찾아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실망스러운 일을 겪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존경하고 기대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실망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나머지 때로는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실망감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실망은 단순한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무너뜨리고 때로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뢰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지뢰를 아시지요? 적군이 땅 속에 지뢰를 묻어 두면 그 곳을 지나가는 병사들이 지뢰를 묻은 곳에 잘못 발을 디디거나 건드려서 압력이 가해지면 여지없이 폭발하는 지뢰 말입니다. 어떤 지뢰는 밟았다가 발을 떼는 순간 폭발하여 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뢰도 있고, 어떤 지뢰는 지뢰를 밟은 발의 발목만 자르는 지뢰도 있습니다. 실망이라는 지뢰는 우리의 일부분을 집중으로 공격하여 상처를 내거나 치명적인 장애를 입히는 지뢰와도 같습니다.
심리학자 팀 라헤이는 실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조사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실망하면 실의에 빠지고 낙심하면 웃음은 사라지고, 비관적인 생각과 마음을 갖습니다. 우울해집니다. 실망하면 좋은 일이 있어도 좋다고 느끼지 못하고 실망의 감정에 빠져 에너지를 소모해 버립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해 버립니다. 좌절하는 것이지요. 실망하여 낙심하면 조급하여 화를 잘 냅니다. 조그만 자극을 가해도 쉽게 발끈하고 화를 잘 냅니다. 신경이 예민해 진 것입니다. 이렇게 실망하면 점점 자신의 몸과 마음이 힘을 잃고 병을 얻고 좌절하고, 체념하고 절망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습니다.
어떤 작가가 “절망은 악마에게로부터 온다.”고 말했습니다. 실망하고 낙심하여 절망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부정적이고 불행한 길로 끌고 가려고 공격합니다. 어느 날 사탄이 지금까지의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동안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연장들과 무기를 모아 경매에 붙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사탄은 인간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했던 그리고 망하게 하며, 약하게 만들고 타락시켰던 연장과 무기들을 진열 하였습니다. 시기심, 고집, 욕심, 복수심, 미움, 교만, 혈기, 열등의식 등 실로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연장들이 놓여있는 맨 끝에 아주 비싼 가격에 나와 있는 잘 포장된 것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비쌌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무기인데, 바로 실망이라는 무기이다. 가장 강건한 영혼을 쓰러뜨리고자 할 때 내가 사용하는 무기이다. 이것이 효력만 발생하면 나는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 그러면서 대단히 훌륭히 일하던 사람도 이 실망으로 공격하면 하나님의 일을 멈추었으며, 교사도, 집사도, 임원도, 권사도, 장로도, 목사도 이 무기 앞에서 꼼짝 못하고 무기력한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더라고 입에 거품을 물며 신나게 설명했습니다. 실망은 사탄의 공격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누구나 실망스러운 일을 겪지만 실망감을 빨리 떨쳐 내지 않으면 낙심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좌절하고 절망하다가 치명적인 불행의 길로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실망에 대한 말씀 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실망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시편 42편을 쓴 시인은 낙심되는 어떤 일을 겪었습니다. 아마도 큰 실패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마음이 몹시 상하였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원수들이 비방하고 조롱합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 하나님이 너를 잊으셨나보다.” 그들이 말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께도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용기와 소망을 잃어버리고 낙심하였습니다. 그래서 5절과 10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해하는 가”하고 두 번이나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 하는 것처럼, 시인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을 마시면 목마름이 사라지듯,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소망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상한 마음과 낙심하고 불안한 마음이 평안과 만족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문제를 만나거나 실수하고 실패하고,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에 우리는 두 종류의 응답 방법 중 하나의 응답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실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은 반응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할 것인가? 부정적인 감정에 반응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선조들은 실망감을 이겨낸 분들입니다. 그 중에 요셉은 억울함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요셉이 얼마나 성실하고 충성스러웠던지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자기 집의 일을 총괄하는 총무로 맡깁니다. 자기 부인 빼놓고는 요셉이 다 관리하도록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집 여주인이 청년 요셉, 연하 요셉, 꽃미남 요셉에게 흑심을 품고 거시기를 하려고 했다가 요셉이 강하게 뿌리치자, 괴씸죄를 걸어 요셉이 자기를 성폭행하려고 했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왕의 감옥에 가둡니다. 이 때, 요셉은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니, 보디발 장군도 별 수 없군. 내가 그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를 보면 알텐데... 결국 바람기 있는 마누라 말만 듣고 나를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밖에 안 보다니. 실망이야!”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많이 겪으면 분노가 생기고 증오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서도 또 성실을 다해 인정을 받아 옥의 책임자가 요셉을 신뢰합니다. 그러던 중, 감옥에 갇힌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꿈 해석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술맡은 관원이 복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기억하고 왕에게 아뢰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요셉은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약속한 술 맡은 관원이 왕에게 내 사정을 말씀드리기만 하면 이제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입니다.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이 까마득하게 잊은 것입니다. 요셉은 2년 동안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요셉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술 맡은 관원 그 사람, 나하고 그렇게 꼭꼭 약속해 놓고서는 나를 잊어버렸구만. 사람들이란 못 믿을 존재야.” 요셉은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온통 마음에 상처를 입고, 낙심하고 인생에 대해 좌절할 수 있었습니다. 일이 자꾸만 꼬이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준 꿈은 이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뭘 하고 계신가’하고 하나님께 실망하고 낙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실망과 낙심과 좌절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다 없애고 오직 하나님만 붙드는 인생이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요셉은 수십 년의 세월을 억울함과 실망과 낙심과 좌절을 겪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를 다 버렸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다 버렸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대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소망을 두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기로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만 붙잡기로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기다리며 인내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묵묵히 살았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실망감을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리하여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브리서 10장 36절 말씀처럼, 요셉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성취해 가신 것을 받아 누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시편 42편의 시인처럼, 요셉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실망스러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주된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께 실망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서 떠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 삶을 파괴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하여 우리를 자기 지배아래 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실망이라는 지뢰를 설치해 놓고 우리가 실망이라는 지뢰를 밟으면 우리의 영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것을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 끈을 놓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실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낙심하게 되어 많은 경우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 생활을 멈춥니다. 기도라는 끈을 놓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순식간에 변해갑니다. “정말로 하나님이시라면 이런 일을 막아주셨어야지.”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주셨어야지.”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어?” 사탄은 이런 우리의 생각이 옳은 생각이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낙심과 좌절로 끌고 갈 뿐입니다. 그 때, 기도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실망스러운 일을 당하면 기도를 멈출 것이 아니라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실망했든지, 다른 사람에게 실망했든지, 하나님께 실망했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실망감은 사람 안에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실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본문 8절에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9절에는, 실망하고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내용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드리겠다고 합니다. 시인은 기도로 실망과 낙심을 극복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실망하는 경우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끝까지 믿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시고, 문제나 장애물이나 슬픔이나 억울함이나 고통이나 시련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하시고, 변화시키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고, 정금처럼 나오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서 지금 당장의 환경과 상황만 보고 실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망스러울 때에 찰스 스탠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주님, 제가 이 모든 일을 이해하게 도와주세요. 마음이 아픕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상황과 제 심정을 아실 줄 믿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헤쳐 나갈 길을 보여주십시오.” 실망과 낙심을 정직하게 아뢸 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자신이 실망스럽습니까?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학하지 마십시오. 열등의식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대로 들고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망한 마음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감정적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준비되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싶지 않으니까 기도해야 하고, 기도 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하고, 기도해야 하니까 기도하고, 기도하기 힘드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안에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몰아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자꾸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하도록 자꾸만 속삭입니다. 우리 자신이 실수를 하고 난 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지가 드러난 뒤, 어떤 일을 실패하였을 때, 사탄은 어김없이 우리의 귀에다 대고 속삭입니다. “너는 그런 존재야!”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너한테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 “다음번에도 또 그렇게 될 걸!” 사탄은 우리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갑니다. 나쁜 측면만 바라보게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 거기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사탄은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사람에 대해 실망하셨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모든 사람은 실수한다는 것, 여러분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다 실수한다는 것, 그러므로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십시오. 야구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야구 한국시리즈의 열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기아와 SK가 7차전까지 갔습니다. 여러분, 야구선수들을 보면, 타율이라고 하지요. 몇 타석 몇 안타, 타율 3할 몇푼 몇리, 4할대 타자 등등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공을 잘 치는 타자라고 할지라도 타율이 5할 대 이상 타자는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타자가 10번 타석에 들어서면 다섯 번 이상 안타를 치거나 홈런을 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두 가지 일을 시도하여 한 가지는 실패하고 한 가지는 성공했다면 5할 대 타자입니다. 이 세상에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안타치고, 홈런만 치는 타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실수 없고, 실패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 실망스러운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망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봐라! 너희들과 신앙의 영웅들도 똑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이라고 해서 실수하지 않은 줄 아느냐? 그들이라고 실패가 없었었는 줄 아느냐? 그들이라고 해서 문제도 없고, 장애물도 없고, 시련과 고난을 안 겪은 줄 아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의 영웅으로, 내게 복 받은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이다. 그들이 슬픔과 고통과 상처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나에게 실망하지 않고 나를 믿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믿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인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채울 때 실망스러운 지뢰를 밟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고백을 하면, 제가 실수하고 능력이 없다든지, 목사로써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서 제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낙심합니다. “나 같은 것이 무슨 목사라구? 나 같은 것이 무슨 목회를 한다구....” 이런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면 나는 좌절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에 나의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룁니다. 내가 아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나를 좀 어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나는 한 순간도 제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더욱 붙잡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믿고 의지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조금씩 바꿔 주십니다. 새롭게 용기를 주십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의를 이룰 수 없음에 실망하여 얼마나 낙심하고 괴로워했는지 모릅니다. 우울증세까지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에 대해 처절하게 실망하고, 좌절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자신에게 생명과 구원의 길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이 복음의 원리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와 은혜와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할 때 소망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낙심이요. 가장 권고할 만한 것이 자신감이라 했습니다. 실망이라는 지뢰를 밟지 마십시오. 그래서 실망하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실수투성이고, 연약할 때로 연약하여 쉽게 실망하고 쉽게 넘어져도 또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실망감을 이겨내고 새롭게 회복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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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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