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지켜야 할 것 (에베소서 4장 1-6절) |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들만 둘 있는 부모는 나중에 객사할지 모르니 조심하랍니다. 무슨 소리냐고 그랬더니, 죽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런데 딸 하나 있는 집, 아들 하나 있는 집 이야기가 있는 데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나질 않아 그런 이야기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요즘 어르신들 모임에서 유행하는 유머랍니다.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에 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매달.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이고,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랍니다.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자기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가 비정상이랍니다. 노후생활에 대하여, 딸 둘 가진 엄마는 해외여행하고, 딸 하나 가진 엄마는 딸집에서 손주 업고 설거지하다가 싱크대 앞에서 사망하고,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양로원에서 사망하고, 아들 둘 둔 엄마는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이집 저집 다니다가 길에서 사망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유머지만 세태를 반영한 것 같아서 씁쓸하지요? 우리는 너무도 많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고, 효, 부모공경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너무도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니 우리가 내팽개쳤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돈 때문에,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특별히 가정 안에 꼭 있어야 할 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면 그 다음 찾아오는 결과는 불행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동안 힘써 지킬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신성한 공동체, 거룩한 기관이 딱 두 개 가정과 교회인데, 이 가정과 교회에 꼭 힘써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힘써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나 사람들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그래 맞아!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있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1, 2, 3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베푸신 일을 설명하면서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4장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맞는 삶,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어떤 삶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명령받은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됨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꼭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안에서 하나됨을 지켜서 소중하고 값진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태초의 가정은 온전한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결혼시키시면서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은 하나됨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됨이 깨어졌을까요?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의 주례로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여 최고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서,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물으시니, 아담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똑같이 물으니,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책임전가를 합니다. 이렇게 둘이 한 몸인 아담과 하와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불순종의 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니까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어지고, 그 결과 아담과 하와 둘 사이도 멀어지고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고, 불행의 구름이 끼고, 고통과 갈등과 싸움의 폭풍우가 부는 것은 하나됨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됨이 지켜지지 않으니까 가정 안에 있던 풍성함이 사라졌습니다. 풍성한 사랑이 사라지고 겨우 겨우 사랑합니다. 평화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사라지고, 조화가 사라지고, 행복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 될 생각보다 깨어지고 나눠질 생각을 더 쉽게 하게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이 한창인 어느 집에서 5살 난 아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매일 이렇게 싸우면 나 집 나갈거야!” 엄마가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다! 이 엄마가 나갈테니 넌 아빠하고 살아봐라.” 그 말을 들은 아빠도 뒤질세라“아니야! 내가 나갈테니 엄마하고 살아라.” 부부가 여전히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가 골똘히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식구 다 같이 나가 살아요.” 하나됨이 깨지면 가정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건설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지면 은혜가 떠나고 풍성함을 잃어버리고 상처 받고, 고통스럽습니다.
왜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하냐 하면,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에 하나됨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계시는 것인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 내용의 연속선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 때문에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고별 설교를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 중,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될 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근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힘써 지킬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세상에 알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하나됨을 힘써 지킬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하는 근거와 이유는 영적으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4-6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 하나됨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며- 여기서 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한 성령도 한 분이시고, 소망도 한 소망이고,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우리의 믿음이 같은 믿음이며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 믿음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세례도 하나이고- 이것이 물세례이든 성령세례이든, 세례의 형태가 장로교에서 베푸는 세례이든, 침례교에서 베푸는 온 몸이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세례이든 하나의 세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한 분이시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하나됨이 실제 다를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근거로 하나의 교회를 말합니다. 이단 교회를 제외한 기독교 정통교단의 모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커다란 하나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같은 시대의 교회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망라한 교회들을 다 포함합니다. 이 커다란 하나의 교회를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하기도 하고, 무형의 교회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교단의 교회를 볼 때 남 보듯이 보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다 함께 만날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성경에 따른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서 다 함께 만나 하나님의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함께 영원한 즐거움의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까?
사탄은 분열의 씨를 뿌립니다. 사탄은 갈등이 일어나게 하고, 그 갈등을 더 부추키어 화를 내게 하고, 그 다음은 싸움이 일어나게 하고, 마침내 분열하게 만듭니다. 부부에게는 이혼을, 가정은 파탄을, 교회에는 분열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서로 이해하게 하고, 서로 용서하게 하고, 서로 용납하게 하고, 서로 사랑하게 하고, 서로 화해하게 하고, 서로 화목하게 하고, 서로 연합하게 하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교인이 성령의 사람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보려면, 그 교인이 공동체 안에서, 그것이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화평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피스메이커인가 아닌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다고 하면서 갈등과 대립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그는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니라 성질충만한 사람일뿐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의 표현대로 말하면,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유다서 1장 19절에, 육에 속한 자는 성령이 없는 자이고, 그는 분열을 일으키는 자라고 했습니다. 파당을 지어 연합을 깨고, 하나됨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줄로 매어 주셔야 합니다. 평안의 줄로, 사랑의 줄로, 하나됨의 줄로 매주셔야 합니다. 화해의 영이신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께서 하나됨을 지키도록 도와주시는 사랑과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필요하고, 우리 가정에도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필요합니다. 이 나라에도 필요합니다. 거룩한 영이시고 평화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를 지도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오래 전에 지구상에 제일 큰 동물이 흰긴수염고래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코끼리 25 마리를 합쳐 놓은 것보다 큰 바다동물입니다. 이 고래는 말은 못하지만 노래를 부른답니다. 그런데 전세계 모든 흰긴수염고래가 동시에 똑같은 노래를 부른답니다. 폴 하비라는 사람이 1989년 5우러 27일 기사에 이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 고래가 노래할 때 나는 소리는 188데시벨로 엔진보다 그 소리가 크답니다. 이 놀라운 포유동물은 똑같은 노래를 부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연합으로 곡을 바꾸기도 합니다. 태평양의 흰긴수염고래들이 노래를 바꾸면, 대서양의 흰긴수염고래들도 노래가 바뀐다는 것이 시험결과 밝혀졌습니다. 마치 지휘자가 있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온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고, 각 지역에서 지역교회를 이루고 있지만 성령님께서 지휘자가 되셔서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를 성령 하나님께서 평안의 매는 줄로 묶어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지휘하십니다. 그 지휘에 따라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절 이하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그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모든 악기가 같은 음을 내려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을 내려고 연주하는 것입니다. 동음이 아니라 화음을 내기 위해서 연주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악기들이 똑같은 음정, 똑같은 음색, 똑같은 박자, 똑같은 소리 크기로 연주한다면 단조로움에 지겨워서 금방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고, 비싼 돈을 주고 입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악기들의 제멋대로 내는 소리를 들으려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양한 악기의 다양한 음색과 다양한 음정과 다양한 박자, 다양한 소리 크기로 함께 연주할 때, 그 모든 연주가 화음이 되어 아름다운 소리가 연주됩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감상하게 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푹 빠지게 합니다. 그 연주에는 지휘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매주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우리교회 찬양대에도 지휘자가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의 하나됨을 지휘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서로 똑같지 않아도 성령님의 지휘에 순종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똑같아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됨은 획일이 아닙니다.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초점은 같아야 합니다. 서로 똑같아지려고 하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서로 연합하는 것이 하나됨입니다.
지난번 여러분들이 내신 동아리 신청 현황을 보면, 참으로 다양합니다. 각기 관심 있는 것이 다양합니다. 그리고 신청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또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그룹들이 모두 같은 지휘자를 바라보고 활동해야 합니다. 다양하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동아리 활동은 교회의 하나됨을 더욱 이루기 위해서 그룹 활동을 통해 성도의 교제를 하려고 하는 것이지, 교회를 작게 나누기 위해서 하려는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동아리 활동의 방향과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2절 말씀, 모든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에서 온유가 나옵니다. 온유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습니다. 오래 참음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게 됩니다. 서로 용납한다는 것은 서로 기꺼이 용서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서로 차이가 있고, 불일치가 생기고, 갈등이 생길 때에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용납입니다.
갈대로 바구니를 만들 때 갈대가 잘 휘어지도록 물에 담가 부드럽게 합니다. 그러면 다른 갈대와 서로 잘 꼬여 쉽게 엮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에 젖은 갈대를 엮어 바구니를 만든 후에 잘 말리면 힘을 받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에 흠뻑 잠겨 뻗뻗 하고 고집 세고 거친 것을 죽이면,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서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됨이 지켜질 수 있습니다. 흩어지면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하나된 상태에서 힘이 나옵니다. 폭발적인 힘이 나옵니다. 기도할 때도 온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기도할 때 놀라운 영적 에너지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됩니다. 가정이 하나됨을 힘써 지킬 때 가정은 화목하고 가정 안에서 서로에게 놀라운 힘이 됩니다.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놀라운 힘을 얻는 가정이 됩니다. 서로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참을 줄도 알고, 이해하려고 하고, 서로 용납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회사에서 사장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아내에게 “사랑해”라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고 어떠한 응답이 오는가를 보자고 제안했답니다. 신혼인 사원은 아내에게서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답니다.“자기야, 나두 사랑해. 나 지금 샤워 중. 일찍 오세요.” 30대 과장에게는 “자기 오늘 공돈 생겼지? 새지 말고 빨리 들어와.” 40대 부장에게는 “또 늦는 다구?” 50대 이사에게는 친절한 문장이 간단하게 왔답니다. “면도나 하고 출근해.” 그런데 사장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아 다시 “여보,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속하게 메시지 도착음이 울렸습니다. 답신으로 온 문자 내용은 “너, 또 바람피우는 거야?” 의심부터 하지 말고, 남편을 믿어주고 이해하십시오.
지난 수요일 오전, KBS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 시간에 남, 여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결혼 전과 후에 배우자에 대한 마음이 변했느냐 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여성 출연자들은 남편이 결혼 전에는 매일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결혼 후에는 집에 들어와도 별로 말을 안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정신과 의사인 남자 출연자가 그 말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사냥꾼과 같아서 목표지향적이라고 말하면서,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고 나서 거기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성우 안 지환씨가 이어서 하는 말이, 남자가 사냥꾼인 것이 맞고, 사냥꾼이 토끼인줄 알고 잡아 왔더니 늑대더라고 말하면서, 토끼 귀처럼 귀를 세우고 있었던 늑대였는지, 남자들 보고 변했다고 하지 말고, 여자들이 변한 것이다. 남자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변한 것이 없고 그대로인데 여자들이 변한 것이 아니냐고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다 변합니다. 그런데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변해야 합니다. 자꾸 멀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자꾸 서로 어긋나면 어떻게 합니까?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할 부부가 따로국밥처럼 되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서로 이해가 안 되면 가정 평화를 위해서, 가정이 하나 되기를 위해서 넘어가십시오. 뭐 다 이해되어야 됩니까? 이해 안 되는 일도 있지요. 내가 나를 다 이해 못하는 데, 다른 사람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서로 다른 것만 찾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죽고 못 살 것 같아 결혼한 부부도 살다 보면 서로 다른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남남이 모여 이룬 공동체 교회에서 어찌 나랑 똑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피차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서로 불완전한 존재이며, 하나님 나라 들어갈 때까지 공사 중인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 서로 다르게 만들어 놓으셨으니 서로 다른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됨을 힘써 지킬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고, 부모와 자녀사이에도 마찬가지이고, 교회 안에 성도와 성도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우 여러분, 먼저 우리의 가정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연합되어야 합니다.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 안에서 하나된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 친구들, 혹은 직장, 혹은 활동하는 어떤 단체가 하나 되도록 노력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됨을 힘써 지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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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1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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