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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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른 사람  [5335]
· 설교 일자 : 2010년 10월 31일
· 본문 말씀 : 눅6:6~11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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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른 사람 (눅6:6~11)
  ‘옆집 의사’라는 말을 아십니까? 우리나라에는 옆집의사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옆집 의사의 말을 너무도 잘 듣는다고 합니다. 옆집 의사란 옆집에 사는 이웃이 의사라는 말이 아닙니다. 병이 났을 때 정확한 진료를 하지 않고 옆집에 사는 사람과 대화 끝에 병을 진단하고 자기들 식으로 처방을 내리거나 치료를 하여 병을 키우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병이 있는 사람이 병을 키우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문제를 키우고, 고통이 있는 사람이 고통을 키우기만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종류는 자신들의 문제를 모르고 상태가 더 심각해진 사람과 또 한 사람은 심각한 상태가 해결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실 때, 거기에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그냥 한쪽 손 마른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오른 손 마른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손이 말랐다는 말은 손이 오그라든 것을 말합니다. 원어의 뜻은 완전히 말라버린 손을 가리킵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었거나 혹은 사고나 질병으로 이렇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그의 손은 사용할 수 없는 손이 되었습니다. 현재 손은 있지만 쓸모없는 오른 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전에는 어린 자녀가 왼손을 사용하면 오른 손을 사용하도록 바꿔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용되는 물건들이 오른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기 때문에 왼손잡이는 불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도 오른 손 중심의 사회였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오른 손으로, 오른 팔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을 보면 오른 손을 힘이 있는 손으로, 능력의 손으로 표현하고 있고, 마태복음 25장에 심판의 때에 양을 오른 편에, 염소를 왼편에 둔다는 비유를 보면 오른 편을 좋은 편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오른손 중심의 사회에서 오른 손이 말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두 손으로 해야 할 일을 한 손으로, 그것도 왼손만으로 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양손을 사용할 수 있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한 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의 생업은 무엇이었을까? 왼손만으로 생활을 잘 하고 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 불편하고 불완전하고 제한이 있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 질병이나 몸의 장애에 대한 편만했던 생각들은 죄 때문에 몸에 장애가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죄 때문에 모든 질병과 장애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는 질병과 장애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오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그냥 자기 생각대로 쉽게 말하고, 자기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쉽게 평가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 마른 사람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은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대했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오른 손이 말랐을 것이라고, 뭔가 죄지은 것이 있어서 오른 손에 장애가 왔을 것이라고 정죄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오른손 마른 사람은 단순히 손 장애만이 아니라 거기에 덫 붙여진 유대사람들의 종교적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심리적, 영적인 상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장애를 입은 손은 그에게 있어서 자신을 더욱 위축시키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학 동기 중에 오른 손을 어렸을 때 다쳐서 손가락이 두 개만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여 서로 인사하려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데 그 친구는 왼손을 내밀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오른 손으로 악수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순간 고민을 했습니다. 오른 손으로 그 친구의 왼손을 잡아 악수를 해야 하나, 아니면 내밀었던 오른 손을 거두고 왼손을 뻗어 악수를 해야 하나... 나중에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그는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악수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우리는 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없는 사람이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장애가 있는 사람의 처지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른손 마른 사람은 회당에서 예수님을 만나 손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곳에 있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회당에 온 이유는 치유를 받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에 나온 사람들 가운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는 것보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마가복음 3장에도 이 일을 기록하였는데, 5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내면은 더욱 완악해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요? 손 마른 사람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어떤 차이가 있어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께 바로 서지 못하도록 위선이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 위선이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치유가 임할 수 없었습니다. 위선이란 무엇입니까? 본심에서가 아닌 겉으로만 착한 척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 같았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위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위선이 그들의 치유와 회복을 방해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습니까? 어떤 은혜를 받습니까? 어떤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십니까?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면서 어떤 마음의 변화를 느낍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더욱 새로워지고 강건해지는 것을 느낍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이 깨달음과 은혜를 받는 것, 치유 받는 것, 새로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일까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눈은 다른 사람의 흠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온 마음으로 섬기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고발할 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 흠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은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나와서 다른 사람의 흠이나 찾고,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실수가 눈에 먼저 띄고, 다른 사람의 약점과 단점 이야기를 즐겨 말 하고 다니거나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눈과 귀와 입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지는 않느냐 그 말입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의 찬양 소리에 열려있고, 우리의 입은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과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바라보고 비웃느라, 쓸데없는 소문이나 세상적인 이야기, 중상모략에 귀를 활짝 열고, 비방하는 말이나 수군거리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는 데 입을 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 눈과 귀와 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릇이 하늘을 향해 열려있어야 빗물이 떨어질 때 빗물이 그릇 안에 고입니다. 그릇 안이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은혜의 단비가 내릴 때 은혜가 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다른 방향으로 어퍼져 있거나, 그릇 안에 다른 것이 잔뜩 담겨있으면 그 그릇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기는 받겠지만 담을 수 없습니다. 쏟아버린다는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눈과 귀와 입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손 마른 사람이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서에 나오는 다른 환자들처럼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찾아오거나,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그 가르침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들으려고 왔는지, 아니면 회당에 나왔는데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는지 그 사람의 입장과 동기는 잘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하고 엿보며 예수님을 고소할 증거를 찾으려고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오른손 마른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시고 오른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고 하시니 그가 일어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람들 가운데 일어서게 해 놓으시고는 안식일의 법으로 예수님의 책을 잡으려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신 그 시간 동안 손 마른 사람은 무리들 한 가운데 서서 얼마나 어색하고 긴장되고 부끄러웠을 까요? 예수님께서 무리를 한 바퀴 둘러보셨습니다. 그만큼 시간은 또 흘렀습니다.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아마도 빨리 자리에 앉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명령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시니 그가 오르라든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러분, 무리들 한 가운데 일으켜 세운 것도 참으로 부담되는 것인데, 이제는 그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부분, 가장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을 내 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말라 오그라든 손을 뻗어서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오그라들어 사용하지 않는 손, 핏기도 없고 힘도 없고 장애가 있는 그 손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 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예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손이 오그라든 오른 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쑥 내 밀었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손에 물을 많이 대서, 혹은 농사일이나 거친 일을 많이 해서 손이 보기가 그렇다고 손 내미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이 거친 것도 아닌 데 단지 스스로 손이 못 생겼다고 생각하여 남들 앞에 손을 내미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톱 소제가 잘 안 되었다고 손을 내미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손에 장애가 있다면,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손을 많은 사람들 앞으로 한 번 내 밀어보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감정과 마음과 얼굴을 어떨 것 같습니까?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할 것 같습니까? 얼굴에 울그락불그락 단풍이 들 것 같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말한 사람을 쏘아보며 머리에서 연기가 날 것 같습니까?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 한 판 붙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 같습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자신의 아픈 부분을,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가리고 싶은 부분을, 자신의 덮어버리고 싶은 부분을 남들 앞에 꺼내어 내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꺼림없이 자신있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입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 장애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손 마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치유의 은혜가 임할 수 있었던 것은 ‘드러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드러냄으로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숨기지 않았습니다.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주저하지 않고 내 밀매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상처는 내놓아야 치유가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내 놓아야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께 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처, 우리의 아픔, 우리의 문제, 우리의 고통, 우리의 위기를 하나님께 드러내야 합니다. 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솔직하게 내놓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못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무엇을 위해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워서 하나님께 내놓고 기도하고 간구할 수 없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이 변하길 원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부끄러움이 우리의 문제 해결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내밀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께 쏟아 놓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숫자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속마음 속 그 속에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드러낼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그래야 진정한 믿음을 갖는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를 하나님께 드러낼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내놓아야 치료가 됩니다. 자신의 상처를 모르거나, 자신의 상처를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면 그 상처는 치료될 수 없습니다. 치료 되지 않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는 더욱 곪습니다. 상처는 더욱 커지고, 병은 더욱 깊어집니다. 여러분, 병을 키운다는 말을 아시지요? 조금 더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으면 고통도 심하지 않고, 고생도 덜 하고 빨리 나았을 텐데, 병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면 병은 더 커지고 치료는 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병은 빨리 치료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병, 내면의 상처, 영혼의 질병은 빨리 치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육체의 질병이나 장애보다 내면의 질병, 내면의 상처, 내면의 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신체의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마음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문제입니다. 신체의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정신의 장애를 가진 것을 알지 못한 사람이 불행입니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정신이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신이 완벽하게 문제가 없고 상처가 없고 강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문제나 상처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감추려 들지 않고 치유받고 회복되기를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신앙인이란 뭔가 자꾸 숨거나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아닙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건강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교회사에 기록된 훌륭한 신앙인들이 훌륭한 것은 그들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자신의 상처를 주님 앞에 드러내고 치유와 회복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리고 재고 덮고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 있다고 해서 다 은혜 받고 치유되고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 있다고 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 있다고 해서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고, 시련과 위기가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미십시오. 하나님께 꺼내십시오. 쏟아 놓으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부르짖으십시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위장하지 마십시오. 별일 있으면서 별일 없는 듯하지 마십시오. 목회자들이나 다른 교우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하면 부탁하십시오. 혼자 끙끙거리고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더 커지기 전에, 더 곪기 전에,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른 손을 내밀라! 네 상처를 내밀라! 네 장애를 내밀라! 네 연약함을 내밀라! 네 문제를 내밀라!

  내일부터 한 주간동안 가을특별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주님께서 네 마른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문제, 여러분의 고통, 여러분의 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새벽을 깨워 상처를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쳐주시겠다고, 회복시켜주시겠다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짐을 내려놓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명령, 이 부르심에 순종하여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을 주창하며 기독교의 본질 회복운동을 벌인지 493년 되는 주일입니다. 개혁정신, 개혁신앙을 재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가 개혁되고 새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까? 바뀌어야 할 부분을 언제든지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함께 회개하고 변화되어가는 교회, 언제든지 성도들의 아프고 상처 난 부분을 함께 품고 치유하는 교회, 다른 성도들의 상처와 아픔을 품고 함께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치유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은혜로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무슨 한마디만 들으면 소문내고, 떠벌리고, 흉보고, 수군거리고 비웃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 자신의 아픔과 장애와 고통을 드러내어도 그것을 품고 덮고 위해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종교개혁은 병든 신앙을 건강한 신앙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양심을 회복하게 하고, 복음의 진리와 은혜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병든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와 국가의 소망이 되고, 등불이 되고, 구원의 구조선이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변화되고, 치유되고, 회복되고, 새롭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10월 3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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