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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위에 임하신 성령님  [4220]
· 설교 일자 : 2013년 05월 19일
· 본문 말씀 : 사도행전 2장 1-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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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위에 임하신 성령님 (사도행전 2장 1-4절)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주택가 골목 3층짜리 빌라 2층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은 시각은 13일 오후 5시 57분쯤이었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세입자와 말다툼을 벌이던 집주인이 세입자 집에 불을 질러 2명이 숨지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한 건물에 살던 이들은 수년 동안 층간소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을 낸 범인은 다름 아닌 집주인 임모(71)씨입니다. 이 빌라 3층에 거주하고 있는 임 씨는 2층 세입자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집주인 임씨는 불을 내기 전, 조 씨 집을 찾아가 도끼를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즘 층간 소음문제로 폭행,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지난 목요일 아침 방송에는 버스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사람들의 장면들이 방영되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승객이 괜한 시비를 걸고, 묻지마 식 폭행을 했습니다. 같이 대응하면 쌍방폭행이 되니까 얼굴을 감싸고 계속 맞기만 하는 버스기사들이 불쌍한 정도가 아니라 처참하게 보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건을 접하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윤 창중 사건이 매일 뉴스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허리를 툭 치며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해서 성공해’”라고 말했다던 그의 기자회견을 보며 도대체 저런 인간이 어떻게 나라를 대표하는 대변인이 될 수 있었는지, 온 국민이 이 사건을 통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요즘 윤창중 사건 때문에 가려졌지만, 윤중천 회장의 고위층 별장 성 접대 사건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사건 속의 한 인물인 법무차관은 사임을 했습니다. 그가 맡은 일이 법을 다루는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지난달 30일에는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에 들어가 자신의 불당에 놓을 불상을 훔친 불교신자들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삼불미륵부처상 3점 중 2점을 훔쳤는데, 그들 가운데는 중도 끼어있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중이 남의 절의 불상을 훔친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요지경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건을 바라보며 누구 누구가 그런 사건을 벌였느냐? 하는 관점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삶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한 발자욱만 더 나가면 우리도 그런 모습이 됩니다.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홍수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메시지 번역본에는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악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음을 보셨다. 사람들은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온통 악한 것만 생각하고 악한 것만 꾀했다.” 노아 시대와 오늘의 우리 시대를 비교해 보면 우리 시대의 죄악이 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어떻게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거슬러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죄악이 만연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후 40일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하신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때로부터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들과 함께한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한 사람이 약 백 이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약속을 믿고 간구하는 사람에게 성령 하나님은 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성령 강림 사건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건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약속을 지키어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한 사람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약속하신 약속을 믿고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모인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역사하시는 형태는 세 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 말씀을 보면,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파라’와 ‘클레토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조력자, 변호사, 상담자,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하면서 돕고 보호하는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신자와 함께 하십니다. 둘째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17절 끝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지요?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것을 한자어로 ‘내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성령님은 신자 위에 임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오순절 날에 성령 하나님께서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 마가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 각 사람 위에 임하신 것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성령님은 신자들 ‘위에’ 임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의 헬라어 원문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 위에 임하시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계시고, 신자들 안에 거하시고, 신자들 위에 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찾아오시며, 각 사람 위에 임하시지만, 성령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을 마치 내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내가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고, 나에게 매여 있는 존재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은 인위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함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함께 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함께 운행하십니다. 그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셔서 각 사람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이것 또한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저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우리에게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의 몸종과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며 보잘 것 없고 연약하기 그지없고 형편없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임하시어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여러분 각자에게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각 사람 위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셨다고 하는데 각 사람, 즉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람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동안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실패했던 사람들입니다.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 가운데 빠졌었던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침체를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로이 헤이슨은 “성령 충만은 우리의 신실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 충만의 은혜는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데 성공한 제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히 실패한 제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맡기신 일을 엄청나게 잘 하고 있을 때, 더 잘하라고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무 일도 아직 하지 못하고 있고,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을 때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벽한 의인이기 때문에 임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는 범죄하고 타락하여 영적으로 황폐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메마를 데로 메마르고, 어두울 데로 어둡고, 낙심과 절망의 상태에 있을 때에 성령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영적인 침체와 실패와 좌절이 있는 곳에 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지 않고는 그 어떤 회복과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죽은 것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시작과 변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시며, 도우시는 영이시며, 보호하시는 영이십니다.
여러분,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고쳐주시기 위해 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영적인 거지들에게 임하십니다. 밥이나 돈을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걸하는 영적인 거지들을 말합니다. 구걸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사람을 거지라고 하듯,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 받지 않으면 지금 처한 상황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영적인 거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영적인 거지, 즉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여러분, 죄를 범하셨습니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여 죄에 대해 애통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악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여러분, 절망에 빠지졌습니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마냥 절망 가운데 탄식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여러분, 실패하셨습니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마냥 실패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여러분, 상처 받고 배신당하고 실망했습니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고 배신당하고 세상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상처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내가 배신당하고 세상에 실망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배신하고 복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가 치유받기를 원하고, 배신과 실망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여러분, 영적 침체에 빠져있습니까?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영적으로 바닥이 난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바닥 난 지도 모르는 사람이나 바닥 난 채로 메마르고 강퍅한 마음으로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과 내 마음과 영적인 상태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영적으로 목마른 사람,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 영적으로 끊임없이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성령 하나님은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누가복음 11장 11-13절에 예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집니다. 절대로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원리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큰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인데 뭐가 부족하여 은혜를 구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보다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여 살 수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아야만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은혜가 흘러들어오도록,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도록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선행되어야 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고통이나 실패나 시련이나 환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이나 실패나 시련이나 환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주시는 것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고통이나 실패나 시련이나 환난을 당할 때, 우리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자만과 교만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등을 지고 있거나 세상을 더 사랑하다가 고통이나 실패나 시련이나 환난을 통하여 그것이 잘못 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붙잡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장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시련과 환난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릇에 새롭고 신령한 복을 담아 주시려고 하시는데, 그 그릇에 썩어질 것, 더러운 것, 가치 없는 것을 잔뜩 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과 환난이라는 방법으로 그릇을 엎으시는 것입니다. 그릇이 엎어져야 그릇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 전, 내 안의 것을 비우고 쏟아낼 것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워진 내면에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하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셨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고, 성경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계속 성령 충만하라고 하셨을까요?
  안드리안 로저스(Andrian Rogers)는 “성령 충만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반역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불순종은 연약함이 아니라 사악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은 엄히 징계해야 할 죄악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어떤 교회의 장로로부터 술 취한 채 예배에 참석한 교인을 제명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채 예배드리러 온 교인들은 어떻게 징계했나요?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는데, ‘술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이를 제명했다면, 그 다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성령충만하지 않은 이도 마땅히 징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우리의 전 존재와 삶이 성령의 임재와 영향력에 의해 성령님께 충만히 지배되고 인도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것이면서 성령 충만을 구하면 절대로 성령님께서 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성령 충만은 곧 소멸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거룩함으로 인도하고, 예수님 닮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행하고,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는 대로 일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도하심을 거절한다면, 순종하지 않는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묻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 충만 하라고 하실까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죄의 세력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얽어맵니다. 우리의 영혼을 약화시키고 죽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그런데 이 죄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죄의 권세가 정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낼 수도 없고, 우리 안에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낼 수도 없고, 부정적인 태도와 자세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에 더 빨리 더 쉽게 반응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부정적인 것에 더욱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태도와 자세는 부정적인 태도와 자세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 안에 어두움을 몰아내고, 부정적인 것을 몰아내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태도를 충만히 지배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근심 걱정 염려하며 살고, 그 결과 불안하고,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영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데는 그냥 살면 됩니다. 감정 따라 살려면, 정욕 따라 살려면, 세상의 풍조 따라 살려면, 그냥 그렇게 되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생활, 온전한 신앙생활, 경건한 삶을 살아가려면 그냥 살아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편한 것, 정욕적인 것, 세상적인 것, 마귀적인 것을 더 좋아합니다. 오직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그리스도 안의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세상 속에 빛을 발하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성령 충만해야 합니까? 죄를 이기길 원하십니까? 마음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싶습니까?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몰아내고 싶습니까? 영적 승리를 이루시길 원하십니까?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 이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을 믿고 성령 충만을 구하여 여러분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 05월 19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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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복과 말씀을 주신 교회
· 일시  2013년 06월 16일
· 말씀  창세기 35장 9~15절
· 설교  정연원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 일시  2013년 06월 09일
· 말씀  시편 51편 16~1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 일시  2013년 06월 02일
· 말씀  잠언 27장 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거짓이 없는 믿음
· 일시  2013년 05월 26일
· 말씀  디모데후서 1장 3~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각 사람위에 임하신 성령님
· 일시  2013년 05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2장 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님이 계신 가정
· 일시  2013년 05월 12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어린 아이와 같이
· 일시  2013년 05월 05일
· 말씀  마태복음 18장 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