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오후 텔레비전을 보다가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70이 넘고 80 가까운 유명 원로 남자 탤런트들이 여행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1탄은 유럽 여행을 이순재씨, 신구씨, 박근형씨, 백일섭씨가 했고, 아마도 그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아 2탄으로 대만으로 황혼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을 방영했습니다. 1탄에서는 이서진이라는 영어를 잘 하는 젊은 탤런트가 할배 탤런트들을 모시고 다녔는데, 대만 여행에서는 이서진씨가 늦게 합류하기 때문에 신구씨, 박근형씨, 백일섭씨 셋이서 대만에 예약되어 있는 숙소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 역에서 내려서 주소만 달랑 들고 숙소를 찾아가는데, 대만 사람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물어보면 정말로 친절하고 확신에 찬 말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렇게 가라 저렇게 가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가보면 아닙니다. 길을 잘 모르거나 잘 못 찾는 사람을 길치라고 합니다. 할배 탤런트들이 또 다시 친절과 확신으로 길을 가르쳐 주는 대만 길치들에 의해 숙소를 불과 몇 백 미터 곁에 두고 또 다시 엉뚱한 곳으로, 그렇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다른 길로 갔다 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떼쟁이 백일섭씨는 어느 에어콘 나오는 실내로 들어가서 더 이상 못 찾겠다고 신구, 박근형 형님들께 찾으라고 하고 떼를 씁니다. 마침내 그들은 숙소를 찾아 갔습니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길을 물었더니 바로 저기라고 해서 가보면 한참 가야 했던 적, 잘못 가르쳐 주어서 엉뚱한 곳에서 뱅뱅 돌았던 경험 말입니다. 짜증나고 답답하고 찾고 난 다음에는 그렇게 쉬운 길을 헤맸던 자신에 대해 어처구니없어 하는 경험 말입니다.
여러분, [꽃보다 할배]프로그램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을 잘 몰라서 다른 사람에게 안내를 받을 때, 안내하는 사람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고 다 맞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럴 듯하게 가르쳐 준다고 다 맞는 길이 아닙니다. 쉽게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고 해서 그 길이 맞는 길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인생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인생길에 멈추어야 할 때 멈추라는, 여러분의 인생길에 직진해야 할 때 직진하라고 하시고, 인생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 방향을 바꾸라고 안내해주는 표지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길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예배 때 선포되는 설교 말씀이 그와 같습니다. 구원의 길, 영생의 길,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주지 못하는 평안과 기쁨과 사랑의 길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인생길을 안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꼭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내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3인 3색 말씀 부흥회는 세 분의 강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길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잘못 가고 있지 않은지, 멈추어야 할 순간에 멈추도록, 방향을 바꾸어야 할 순간에 방향을 바꾸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강사를 초빙한 고넬료에 대한 말씀입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인 백부장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의인이라고 일컬어졌고, 기도도 많이 하고 가난한 유대인들을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주위로부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위대한 메시지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고넬료로 하여금 베드로를 초청하도록 지시하셨고, 베드로에게도 하나님의 사자가 이미 환상을 보게 하고 지시하셔서, 이방인의 초청에 응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30-35절 말씀은 고넬료가 자신의 가족과 그 가정에서 일하는 모든 식솔들,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까지 다 불러 모아 놓고 초청 강사인 사도 베드로에게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이든 주시면 다 듣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그들에게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가정 말씀 부흥회가 벌어졌습니다. 고넬료와 그 가족, 친척, 친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이 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말을 강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는 것은 말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잔치를 배설하여도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잔치에 참석한 손님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절경의 관광지에 데리고 갔더라도 본인이 눈을 활짝 떠서 사방으로 바라보고 감상을 하지 않으면 천하의 절경도 소용없습니다. 국가가 정한 연령에 의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본인이 공부하지 않고, 본인이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학교는 지겨운 곳이고, 한글도 못 깨우치고, 덧셈뺄셈도 못 하게 됩니다.
더 나은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깨닫고 배우려고 합니다. 현재에 그저 만족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삶을 포기한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울 필요가 없지요. 현재에 그저 만족하니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뭔가를 깨달아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배움이란 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같은 정규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배우고, 사건 속에서 배우고, 책을 통해서 배우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맛있게 하는 식당에 가서 먼저 반찬이 나오면 반찬을 보고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이 나물을 이렇게도 무쳐 먹네! 이렇게 요리하는 법도 있네! 한수 배웠네!!!” 어떤 사람은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어떤 자리에 가서도 늘 새로운 것 하나라도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도 한 가지 배웠네!” 깨닫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깨달았을 때 그 기쁨을 아는 사람, 깨달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귓등으로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울 수 있는 자리임에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그냥 구경꾼인 사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영이 건강한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배고파합니다. 목말라 합니다. 갈급해 합니다. 말씀 듣기를 사모합니다. 지금의 나의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합니다. 지금의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담대해지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들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배우고 확신하게 하고 성장, 성숙하게 하며 온전한 사람을 이루게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각종 학교에 입학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고, 인생살이를 배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억지로 우리를 하나님의 특별학교에 입학시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광야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하신 것처럼, 우리들을 아무것도 없는 광야와 같은 상황 속으로 이끌고 가셔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살도록 훈련받게 하십니다. 그것이 광야학교입니다. 그 광야가 병원일 수도 있고, 사업이 부도나는 일이나 실패일 수도 있고, 모든 계획이 무너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 광야 같은 상황 속에서 인생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면서 배우게 됩니다. 겸손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의 어떤 중요한 사건을 통해서 교만이 깨지고, 오만이 꺾이고, 거만이 부러지도록 하셔서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인생 학교입니다. 순종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는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물질이나 직분이나 일을 맡겨도 되는 지를 훈련하는 신앙학교입니다. 아주 중요한 학교인데 많은 경우 이 학교를 중도 자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학교가 있습니다.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는 돈을 사랑하여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돈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나눔과 베품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과정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학교에 입학시키시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학교에 입학시키시겠습니까? 왜 우리에게 과외학습이 필요하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인 지도할 사람과 사건을 붙이시겠습니까? 억지로라도 그렇게라도 해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바른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런 특별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미리 미리 알아서 예습 복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면 특별학교, 과외 학습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은혜 받기를 멈춘 사람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지 않아 깨달으려고 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고, 훈련받으려고 하지 않아 성장이 멈춘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과 사건이 점점 줄어드는 사람,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않고 살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신앙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배우기를 멈추면 안 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멈추면 신앙 성장이 멈추고, 신앙성장이 멈추면 히브리서 5장 12절, 13절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신앙인이 됩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영적인 젖을 먹는 어린아이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교회생활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는 새신자들이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려고 하면 헌~신자들이 부른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너무 튀게 교회생활하면 힘들어진다고, 그러다 상처 받는다고 한 수 가르쳐 준 답니다. 교회 생활에 대해 빠꼼이들입니다. 이런 헌~신자 교인은 교회에서 어떤 행사나 프로그램이나 전도운동을 시작하면, 척하면 삼천리고, 딱하면 부러지는 소리고, 뽕하면 방구소리인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적당히 얹혀가는 법을 잘 압니다. 저 행사는 하루만 나가서 얼굴 비추면 되고, 저 봉사는 끝날 때쯤 나가서 적당히 하면 되고, 저 전도운동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구호나 같이 외치고, 그냥 잘 버티면 또 넘어간다고 잘 압니다. 부흥회도 적당히 하루 저녁 나가 담임목사에게 얼굴 도장 한 번 찍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우 여러분, 이렇게 교회 생활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일까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적으로 갈망하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혜택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방편, 은혜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은혜를 받게 하는 은혜의 방법입니다. 은혜의 도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성경을 많이 아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고, 말씀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더욱 견고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둠을 버리고 진리의 빛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것을 버리고 진리의 것으로, 부정적인 것을 버리고 긍정적인 것으로,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거룩한 것으로, 현세적인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으로, 탐욕적인 것을 버리고 신령한 것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의 자리에 나아와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호의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내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받기에 좋은 것,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는, 가시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에 치유되지 않는 질병이 자신을 교만하지 않도록 만들고, 자신이 연약하기에 더욱 주님의 능력을 붙잡게 되는 은혜가 가시 같은 은혜입니다. 요셉의 감옥의 은혜도 있습니다. 억울하기 그지없지만 그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나고, 그의 꿈을 해석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나중에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억울하지만 그 일이 큰 은혜를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의 은혜도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심으로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 도리어 사자 굴에 던져져 죽게 되는 은혜입니다. 바울의 절망의 은혜도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바울 자신이 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맞지 않아 자꾸만 악을 행하는 자신이 얼마나 곤고한 사람인지를 철저히 깨닫고, 그리고 자신이 사망의 몸에 매여 있어 누가 자신을 건져 줄 수 있겠느냐고 철저히 절망한 후에 얻은 은혜가 있습니다. 절망의 은혜, 깨어짐의 은혜, 포기의 은혜 등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의 은혜도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압송될 때, 배를 타고 갔습니다. 바울은 지금 항해를 하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배의 선주도, 선장도, 선원도, 백부장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항해를 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이 불어 배에 실었던 짐들도 다 버려야 했고, 심지어 배의 기구까지 다 버려야 했습니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말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용기를 줍니다. 살길을 알려줍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바울은 더 이상 죄수의 위치가 아니라 그 배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일들이 나중에 로마에 도착해서도 바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는 일들이 되었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의 은혜입니다. 당할 때는 광풍이지만 신앙으로 겪고 이겨낸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어떤 말씀이든, 어떤 은혜든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겸손하게, 간절하게, 열심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의 생수를 원하십니까?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말씀을 원하십니까?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에 정오에 물을 길러 나왔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인생의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우물가에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초청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의 우물로 나오십시오. 은혜를 가득 채울 여러분의 잔을 높이 들고 나오십시오. 은혜의 강가로 나아오십시오. 은혜의 바다로 향하십시오. 은혜의 바다에 마음껏 저어가십시오. 말씀의 은혜의 바다에 푹 잠기십시오. 은혜가 우리를 온전히 뒤덮을 때,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감사할 일이 넘치고,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임하고, 말씀부흥회를 통하여 특별하신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