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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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법칙 II  [6083]
· 설교 일자 : 2013년 09월 15일
· 본문 말씀 : 요나 2장 1~4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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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법칙 II (요나 2장 1~4절)

여러분, 요즘 여중생들도 립스틱을 바르고 다닌다는 사실은 아시지요? 루즈 말입니다. 금년 봄 월요일에 경주에 가서 안압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어느 여중학교인지 수학여행을 왔더군요. 그런데 안압지로 들어오는 여중학생의 입술이 모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들어오더군요. 안압지는 원래 립스틱을 발라야 입장 할 수 있는 곳인가요? 요즘 세태가 그렇습니다.

어느 여중학교 화장실에 한 여학생이 거울에 입술 자국을 내자 너도 나도 입술 자욱이 남겼습니다. 그것도 그냥 입술 자욱이 아니라 립스틱을 바른 입술 자국이었습니다. 매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거울을 닦는데도 그 다음 날이 되면 또 있고, 청소하면 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보니 화장실 거울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거울 전체에 여중생들의 립스틱 입술 자국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학생들이 장난이 심해진 것이지요.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립스틱을 바른 여학생들을 모두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방과 후에 화장실로 모이도록 해.”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화장실로 모이자 교장 선생님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화장실 거울에다가 입술 자국을 남기면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지우시는 지를 한 번 보거라!” 그러자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대걸레를 들더니 변기에 있는 물을 적셔서 거울을 빡빡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거울에 입술 자국을 남기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화장실 거울을 어떻게 닦는지를 몰랐을 때는 여중생들은 거울을 바라보고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것입니다. 거울에 입술 자국을 내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장실 거울을 어떻게 닦는지를 자세히 본 여중생들은 그 거울을 볼 때마다 변기 물로 청소하는 모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립스틱 입술 자국을 내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싫었을 것입니다.

 

보는 것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거림직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보는 것과 연상되는 그 무엇, 관련된 그 무엇이 함께 보여 집니다. 단순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 보고 무엇을 선택하느냐? 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며칠 전, 기독교방송에 이 지선씨가 출연하여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지선씨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는 13년 전 23세의 나이에 음주운전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3도 화상을 입어 예쁘던 얼굴과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담당 의사가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사고를 당한 이 지선씨는 도저히 이기기 힘들 정도의 깊은 절망 속으로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 지선씨는 끝내 이겨내고 자신이 그 절망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지선씨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어머니는 한 번도 딸 앞에서 우신 적이 없답니다. “우리 딸 어떻게 하니?” “우리 딸 앞으로 어떻게 사니?”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답니다. 늘 긍정적인 말을 해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을 해 주었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지선씨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상처나 아픈 곳이나 고통스러운 곳을 바라보지 않고 소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지선씨도 대단하지만 어머니도 대단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 선한목자교회 장로님이시더군요.

내가 이 지선씨 처지가 되면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이 지선씨 부모의 입장이 되면 그렇게 자식 앞에서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고 딸이 상처를 바라보지 않게, 아픈 곳을 바라보지 않게, 고통스러운 것을 바라보지 않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도록, 소망을 바라보도록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가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그 기대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바라봅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누가복음 72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사람들이 간 후에 무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에 왜 나갔느냐?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느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던 것이 아니지 않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가면 볼 수 있지 않느냐? 너희들이 선지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려고 나갔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라는 곳이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나간 것은 기대하는 것을 보고자 나간 것이 아니냐? 세례 요한을 보러 간 것이 아니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 바라봅니다. 배고픈 사람은 음식만 바라볼 것입니다. 돈이필요한 사람은 신사임당 그림이 있는 노란색 지폐만 바라볼 것입니다. 엉큼한 남자는 아가씨의 섹시한 몸매를 기대하며 곁눈질로 바라볼 것입니다.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바라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바라보는 것에 관한 신앙을, 바라봄의 법칙을 더욱 깨닫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요나서 21-4절 말씀은 선지자 요나의 기도 중 한 부분입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 성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니느웨 성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요나가 생각할 때, 이방민족에게 무슨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심판하시면 되지... 요나는 이방 민족에 대해 거만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타고 가던 배가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결국 선원들이 폭풍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를 알고자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제비를 뽑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뽑혔습니다. 자신이 폭풍 재앙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요나가 선원들에게 자신을 바다에다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져졌을 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갇힌 채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물고기 뱃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설령 빠져나간다 할지라도 큰 물고기가 깊은 물속을 다닐 텐데 어떻게 물 밖으로 살아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절망 중에 드린 기도였습니다. 그런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4절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는 왜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했을까요? 지금 당장 그가 바라보고 싶은 것은 캄캄하고 답답한 고기 뱃속에서 나와 육지를 보고 싶고. 하늘을 보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보고 싶고. 가족을 보고 싶을 텐데 말입니다. 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합니까?

요나가 성전을 바라본다는 뜻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전이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벌을 받아 비록 물고기 뱃속에 있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신앙적 결심이 단단합니다. 간절합니다.

또한 요나는 자신이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 있는 것에 대해 본문 3절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다 가운데 던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며, 믿음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을 너머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며, 육적인 것을 너머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어떻게 하다 보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관심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막연한 기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과 바라봄은 연관이 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믿음의 법칙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우리를 잘 압니다. 10명은 가나안 땅을 어떻게 정탐했느냐 하면, 그냥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바라보고 왔습니다. 그 두 부류의 정탐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 사람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와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사람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의 먹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고 왔어도 분석이 달랐고, 해석이 달랐고, 반응이 달랐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전장에서 마주했습니다. 다른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을 보이는 데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아무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키와 덩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사람 블레셋 사람일 뿐으로 보았습니다. 그를 전쟁에 능한 장수로 보지 않고, 자신이 목동으로 지내며 겨루었던 곰이나 사자 정도로 바라보았고, 새와 들짐승에게 던져 줄 밥 정도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칼과 창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냥 환경을 바라보고, 그냥 세상을 바라보고, 그냥 보이는 데로 바라보고, 그냥 겪고 있는 고난과 환난만을 바라보면, 보이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면 다릅니다.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믿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절망가운데서 요나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고백은 자신이 주님의 눈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어디에 가겠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라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자신의 고백과 감사와 간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쫓겨나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외면당해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벌을 주셔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줄을 놓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고백입니다.

이 말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절규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의 네 번째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여섯 번째 말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들을 버리셨지만, 아버지에게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시는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고백이요,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기대하는 것, 내가 간구한 것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쉽게 흔들리는 우리들의 신앙과는 다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될까요?

여러분, 내 맘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내가 기대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고 해서 태양이 태양이 아닌 것이 아니고, 태양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등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요나가 성전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다시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이 희망이 있고, 오직 하나님께만이 구원이 있고, 오직 하나님께만이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의 심판에 자리에 나아가야 할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성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언약적인 사랑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만 하시면 그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돌아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해 주시며, 낙심한 자를 다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앙인들이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합니다. 주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기대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까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도움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까요?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바르게 알지 못해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기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기대합니까?

시편 1211,2에 시인은 내가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옵니까? 나의 도움은 여호와로부터 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분으로부터 옵니다.”(쉬운성경)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121편 시인은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그늘이 되어 주시고, 밤에도 지켜주시며 모든 환난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231,2,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그렇습니다. 종은 음식과 쉴 곳과 옷과 보호를 받기 위해 그 주인을 의지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주인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종들의 눈은 늘 기대하며 의지하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주인의 손을 바라봅니다. 123편 시인은 그런 종의 눈과 종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기에, 도우심을 기다리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기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은 히브리서 416 말씀처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지자 요나는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 절망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기 위해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믿음을 고백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바라봄의 법칙은 그냥 한 번 바라보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칙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를 바라보며 사시겠습니까? 하나님만,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고, 하나님만, 예수님만 기대하며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대하며 기도하여 용서와 회복의 은혜, 도우심의 은혜를 풍성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3년 09월 15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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