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자랑하라 (시편 105편 1~3절) |
동물 울음소리 성대모사를 잘 하는 세 사람이 각자 자기 재주를 자랑하며 뽐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큰 소리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면 쥐들이 꼼짝 못해!” 하고 자랑을 해댔습니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늑대소리를 내면 마을에 있는 가축들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른다네.”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닭 울음소리를 내면 해가 뜨기 시작 한다구!” / 동네 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여 놀다가 자기 아빠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 아빠는 얼마나 빠른지 화살로 사과를 쏘고 나서 화살보다도 사과에 먼저 도착하셔.” 다른 아이는 “말도 마, 우리 아빠는 더 빨라, 멀리 나무를 향해 총을 쏘고서 총알보다 먼저 나무에 도착하셔서 날라오는 총알을 보고 계신다.~ ” 그랬더니 세 번째 아이가 하는 말이 “너희들 아빠는 우리 아빠에 비하면 빠르지 않은 거야. 우리 아빠는 공무원인데, 원래 5시에 퇴근인데 3시 30분만 되면 벌써 퇴근하셔. 얼마나 빠른 지 알아. 1시간 30분이나 더 빠르다구!” 앞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아이들처럼, 자랑은 자랑을 하면서 자랑이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허풍과 거짓, 그리고 되지도 않는 말로 자랑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자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식 자랑하십니까? 자식이 잘 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 인생의 낙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집이 크고 좋은 것을 자랑합니까? 좋은 차를 자랑합니까? 학벌을 자랑합니까? 돈 많은 것을 자랑합니까? 어떤 사람은 새 옷 산 걸 자랑하고, 새 반지 낀 것을 자랑합니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을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자랑하느라 입에서 침 튑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자랑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하는 것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는 들어주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군대에 안 갔다 왔으니까 들어주는 고생이라도 해야 합니다.
팔불출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 잘났다고 뽐내는 자, 마누라 자랑이 심한 자, 자식 자랑 하는 자 등을 비꼬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자랑해야 하는 것을 자랑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면 팔불출이 따로 없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지 못하면 그것이야 말로 팔불출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정말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질그릇으로 비유하면서 질그릇 안에 보배를 담았는데 그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사도 바울 자신은 질그릇이니 자랑할 것은 없고, 질그릇 안에 담긴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빌립보서 3장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 그동안 유익하던 것, 자랑할 만 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야 말로, 혈통으로나 가문으로나 학벌로나 열심 면에서나 그 어떤 면에서도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많던 자랑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고린도후서 10장 17절에, “오직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랑하라는 말입니까? 어떤 자랑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오늘 본문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약속을 지키신 신실하심과 베푸신 은총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3절에 하나님을 자랑하라고 명령합니다.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알게 할지어다” “말할지어다” “자랑하라” 1절, 2절, 3절 모두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말하고,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깨달아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9장 23, 24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자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자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랑과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능력을 자랑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집을 나간 아들이 재산을 다 날리고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올 때에 아버지가 그를 부둥켜안으면서 다 용서해 주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기쁨으로 잔치하며 아들로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느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긍휼하심과 사랑을 느꼈습니까? 여러분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허물을 들추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죄악을 십자가의 피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씻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십시오.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십시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죄의 문제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오게 된 것,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죄책감과 죄로 말미암은 영혼의 고통과 최후에 받을 멸망과 저주와 형벌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용서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으면서 거기에 인생의 참 진리가 있고, 참 생명의 길이 있고,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있음을 깨달았습니까? 그렇다면 진리의 말씀을 자랑하십시오. 구원의 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심을 믿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어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을 만져주심을 경험했습니까? 성령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은사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 자랑입니다. 나에게 사랑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자랑입니다. 나를 자녀 삼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주신 것은 음식을 먹을 때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품 할 때,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도 입을 열고, 노래 할 때도 입을 열고, 그리고 하나님을 자랑할 때도 입을 열라고 입을 주셨습니다. 입은 수다를 떠는 데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일 때 사용하라고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높여 하나님께 입을 여는 것을 찬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입을 여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입을 열어 하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절, 2절 말씀,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목격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명령입니다. 간증하라는 말씀입니다. 목격을 증거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텔레비전 유선방송을 돌리다 홈쇼핑 채널을 보면, 여자들 코르셋 즉 보정속옷 광고를 합니다. 허리가 두껍고 배가 많이 나와서 옷매무새가 나지 않는 여성에게 before 와 after로, 즉 착용 이전과 착용 이후를 보여줍니다. 착용 이전에는 배가 마구 흘러내리는 옆모습이, 착용 이후에는 그 있던 배를 어떤 서랍에다가 넣었는지 미스코리아처럼 날씬하지 않아도 대단한 마술을 부린 것처럼 배와 허리 라인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이렇게 내게 달라진 것, 변한 것, 바뀐 것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이전과 이후를 고백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간증이란 삶의 BC와 AD를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BC와 AD는 이 세상의 역사를 기원전과 서기로 구별하는 데, 그것은 예수님 탄생 이전이냐, 예수님 탄생 이후냐 로 나눈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삶의 BC와 AD란, 내 삶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오신 후,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말버릇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습관이 어떻게 변하고, 삶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한 후에 불행이 어떻게 행복으로 바뀌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또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때마다 베푸시는 은혜로 인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예수님을 믿기 전과 비교하여 고백하면 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BC와 AD, 예수님 믿기 이전과 이후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어느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간증이 있습니까?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이런 간증으로 하나님을,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이 항상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신 후, 예수님께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을 다 맡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화도 잘 내고,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받고 그랬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살면서 화도 덜 내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 전처럼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죽은 후의 삶에 대해 불안하고, 작은 위험에도 죽음을 두려워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나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나서부터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 안에 있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부터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어 내 마음이 참으로 평안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삶의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고, 기쁨도 없어 인생을 허무하게 느끼고,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하나님을 알고 믿고 난 후에는 내 인생의 목적과 의미와 보람을 발견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는, 나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 욕심, 내 만족, 내 목표와 성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얼마나 고귀한 삶인가를 깨닫고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저 무능력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내게 능력을 주시고, 내 삶을 인도하셔서 나는 주님 안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는 내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고 나서 주님께서 나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이사하는 날, 뭐 할 때마다 날 본다고, 있지도 않은 우상에게 쩔쩔매고, 귀신에 꼬임에 빠지고, 점쟁이에게 넘어가서 부적 써 가지고 다니고, 정말 웃지 못 할 짓 많이 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상과 사신과 쓸데없는 짓 다 끊고, 자유를 누리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주의 삶에서 축복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 엄마, 그전에 내 모습을 알지? 그런데 지금은 어떤 것 같아? 변한 것 같지 않아?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마음과 영혼이 변했어. 그전과 다른 삶을 살아!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이 좋아,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것이 간증전도입니다. 나의 믿음, 분명한 경험, 분명한 목격, 주님께서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를 고백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거창하고 기적같은 것을 체험한 것만이 간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작은 변화, 작은 깨달음을 간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3절의 말씀에,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구하는 자란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그 지속적인 변화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누구를 닮아가고 있느냐?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느냐? 예수님 쪽으로 변화의 방향이 잡혀 있느냐? 아니면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마귀적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느냐? 변화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변화란 겉모양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변화란 내 의지로 변해 갈 수 없습니다. 한 번 두 번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단번에 일회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변화의 속도는 늦더라도, 변화의 양이 많지 않더라도, 변화의 목표가 금방 달성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느냐?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고 있느냐 가 중요합니다. 좀 더디더라고 계속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삶의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분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인격도 굉장히 성숙해지고, 성경 지식도 많아지고, 특별한 체험을 하고 난 후에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뭔지도 설명해 줄 수 있고 전도도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완벽하게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잘 모르는 것 같고, 더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더 죄인 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지금 예수님을 믿고, 지금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것이 좋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소망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이고, 인도하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말재주가 아니고, 내 성경지식으로도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에게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고, 그에게도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물론 잘 못하지요. 물론 어색하지요. 물론 아직 신앙이 부족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고 있고, 어제와는 오늘이 조금 더 달라져 가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지속적인 삶의 변화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격과 신앙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 충만으로 지속적인 신앙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과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면서 여러분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시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닮게 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조금씩 지속적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영벌, 멸망하게 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일입니다.
히틀러가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그들은 소련으로 도망쳤습니다. 소련에는 영주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유대인이 많았습니다. 히틀러는 도망간 유대인을 잡아 넘기면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소련 경찰들은 소련에 있는 유대인들만 보면 영주권 검사를 해서 없으면 히틀러에게 넘기고 돈을 챙겼습니다. 마침 유대인 두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경찰은 영주권 조사를 하려고 따라갔습니다. 한 명은 영주권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영주권이 없었습니다. 영주권 없는 유대인이 하나님께 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영주권 있는 유대인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습니다. “네가 도망쳐라!” 그 유대인은 이유도 모르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저 놈이 영주권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한참을 뛰었습니다. 뛰면서 생각을 하니 이만하면 영주권 없는 유대인 친구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곳에 멈추어 섰습니다. 마침내 경찰이 그를 잡으며 “너 영주권 없지?” “있습니다.” “어디 봐!” 그는 영주권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경찰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도망쳤어?”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의사가 나에게 약 먹고 난 뒤에 뛰라고 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따라가는 것을 보았으면 서야지?” 그랬더니 유대인이 하는 말, “나는 당신에게도 의사 선생님이 약 먹고 난 후 뛰라고 그런 줄 알았지요.”
두 유대인의 지혜가 번득입니다. 영주권 있는 유대인이 친구를 위해 뛴 것이 친구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뛰어서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뛸 수 있어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뭔들 못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랑하고,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간증을 고백하여서, 우리의 지속적인 신앙생활의 변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면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입으로 찬양과 기도만 하고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좁고 얕으며 이기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하고만 잘 먹고 잘 살려고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영적 비만이나 무기력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유언과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사도 바울이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정말로 하나님 앞에 자랑스러운 일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복음을 전해 받은 그들이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더욱 굳건해져서 사랑의 수고를 하고, 소망을 잃지 않고 다른 지역의 교회와 사람들에게 좋은 소문이 나고, 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요,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가슴 뿌듯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자랑이요, 영광이요, 기쁨의 면류관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땅에서 해야 할 자랑은 하나님 자랑입니다. 천국에서 할 수 있는 자랑은 내가 전도한 사람, 나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된 사람들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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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6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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