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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1)  [3903]
· 설교 일자 : 2009년 03월 15일
· 본문 말씀 :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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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1) (에베소서 6장 13-17절)
  3일 동안 굶은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어설프게 쭈그리고 있는 토끼를 보고 한발에 낚아챘습니다. 그런데 이 토끼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호랑이를 째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놔! 임마!” 생각지 못한 토끼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호랑이는 얼떨결에 토끼를 놓아주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어제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방황하던 호랑이 앞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간단하게 한발로 토끼를 낚아챘습니다. 그러자 토끼가 얼굴을 들이대며 이러는 겁니다. “나야 임마!” 어제 바로 그 토끼였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호랑이는 얼른 놓아주었습니다. 호랑이는 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다시는 저 막가파 토끼를 못 알아보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굴로 들어가 쉬었습니다. 다음날, 또 토끼를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그 토끼가 아닌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그 토끼가 한말에 쇼크를 받아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그 토끼가 호랑이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요? “이거 안 놔! 너 소문 다 났어, 임마~!”
  유우머지만,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까? 다름 아닌 무기력해진 그리스도인 모습아닙니까? 이빨 빠지고, 발톱 빠지고, 다리 후들거리고 심장까지 조그만 해진 그리스도인 말입니다. 마치 무장해제를 당한 패전병처럼, 악의 세력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영적인 용맹함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탄,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21세기에 사도 바울이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말씀한다면, 이 영적인 전쟁을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표현보다 게릴라전에 맞는 특수 장비와 무기를 장착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탄과 대적하여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은 그 특성이나 양상이 특수 게릴라전보다는 일대일 싸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사탄과의 싸움을 “우리의 씨름” 이라고 표현한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오늘날의 전쟁처럼 컴퓨터나 무슨 최첨단 시스템 앞에 앉아서 미사일로 목표물을 쏘고, 망원경이 달린 소총이나 기관단총으로 쏘는 전쟁이 아니라, 일대일 백병전과 같은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무장이 안 된 그리스도인이든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사용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토끼에게 당하는 호랑이처럼 되어 무기력한 그리스도인, 사탄이 우습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때에도 그랬고, 성령강림 후 사도들이 사역하는 현장에도 그랬고, 신자들이 사탄의 능력을 두려워하며 떠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쉽게 무기력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사용하지 않아서 그 영적 무기와 장비가 다 녹슬어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전신갑주를 갖추지 않아서 힘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적에게 전신갑주를 다 빼앗겨 버려 무장해제를 당한 것일까요?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사용하지 않아 무기력하다면 왜 그럴까요? 다시 말하면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왜 사용하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영적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적의 힘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무기들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배운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일까요? 또는 전신갑주의 사용법을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이 준비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안전지대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안전지대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 품 안에 있는 안전지대라는 말이 아니라 아마도 영적 전투 근처에 가지 않거나, 적과 타협을 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이 전쟁과 같고, 신앙생활이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퀴즈를 낼 테니까 맞춰보시겠습니까? “어떤 배가 있습니다. 그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배에 탄 사람들이 한 사람도 물에 빠져 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답은, 그 배가 잠수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잠수함은 물에 빠져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안전장비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사에게 있어서 싸움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사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장수는 싸움 전 군사들을 모아놓고 사기를 충천시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긴만으로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에 임하는 군사가 실제로 강하냐 강하지 않느냐 입니다. 핵심을 말하면, 군사가 무장했느냐 무장하지 않았느냐 입니다. 만일 비무장상태라면 그 군사는 실전에서 쉽게 목숨을 잃을 것이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싸움은 쓰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기 위해서입니다. 패배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서 싸웁니다. 우리의 적인 사탄, 마귀, 악영과의 싸움은 최후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반드시 입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 승리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입니다. (1 전신갑주 그림)
  전신갑주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빈틈없이 보호할 수 있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장비와 무기를 말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군사가 그 장비들을 착용하는 순서에 따라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 제일 먼저 14절 상반절에,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전신갑주중 허리띠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나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었는가?”하고 자신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서 영적 싸움에 나서는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허리띠란 허리를 동여서 바지나 치마를 고정시키는 띠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허리띠를 맨다는 것은 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딘가로 출발하거나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나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하기 전날 저녁,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리에 띠를 동이고 식사를 했습니다. 전쟁에 나서는 군사들은 허리를 동이고 칼을 찼습니다.(삼하28:8) 그렇기 때문에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힘을 쓰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전쟁에 나서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허리띠를 푸는 것은 게으름과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2 허리띠 )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이 당시 로마군인의 전투복장을 염두 해 두고 말씀한 내용입니다. 당시 로마군인의 허리띠는 보통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로마군인은 적어도 세 개의 띠를 찼는데, 동그란 앞치마 모양의 가죽 띠로 아랫배를 보호했고, 칼을 차는 띠와 고급 군인인 경우 계급을 나타내는 띠가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무장하는 것을 보면, 맨 먼저 허리띠를 질끈 졸라맵니다. 군사들의 옷을 단단히 조여 주고, 칼을 붙들어 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무장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허리띠는 허리를 눌러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역도선수나, 세계의 장사들이 아웃도어 경기선수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넓은 가죽 허리띠를 매고 나와서 경기를 합니다. 세계 제일의 여자역도선수 장미란 선수도 경기 때에 허리띠를 매고 나와서 했습니다. 힘을 쓸 때 허리를 다치지 않게 하거나 힘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성경에서도 허리는 육체적 힘의 근원이자, 열정이나 감정의 중심으로도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힘을 잃지 않고, 힘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진실함으로 허리띠를 띠라는 뜻입니다.
진실함으로 허리띠를 띠어서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힘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영적 전쟁에 나아가서 악의 세력과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일먼저 진실함을 챙겨야 합니다. 또한 진실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진실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덕목이요, 힘입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며 미혹하고 속이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속성상, 진실을 잃어버리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으로 부려먹습니다.
  어느 집에 형제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에 두 형제가 놀라다 동생이 잘못하여 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던 도자기를 깼습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날 것을 두려워한 동생이 형에게 제발 자기가 깼다고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외출에서 돌아오셨는데 도자기가 깨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그날 밤을 지냈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갔다 온 형이 동생을 부릅니다. 그러면서 심부름을 시킵니다. 동생은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형이 “너! 그러면 도자기 깬 거 아빠한테 이른다!”하고 협박을 합니다. 그게 두려워 동생은 심부름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형이 툭 하면 동생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 어깨를 주무르라고 그러고, 학교 갈 때에는 자기 가방을 들으라고 그러고, 온갖 궂은일을 시킵니다. 그때마다 동생이 싫은 표정을 지으면 형이 협박을 합니다. “너! 그러면 아빠한테 도자기 깬 거...”그러면 동생은 꼼짝 못하고 “알았어! 알았어! 내가 하면 될 것 아니야.” 형이 “너! 도!”까지만 말해도 동생은 꼼짝없이 형의 종처럼 움직입니다. 여러분,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진실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사실대로 말씀드렸다면, 한 번 혼나든지, 아니면 용서받고 그냥 끝날 수 있었는데,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유지하려니까 더 고통스런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실함으로 허리띠를 띠고 있으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에 진실함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죄를 지었더라도 곧 하나님께 솔직하게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진리로 띠를 띠게 됩니다. 회개하고 대가를 치르고 진실을 회복하면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사실에 관한 진실을 말하고, 진실함을 유지하면 됩니다.
  진실은 언제나 우리를 당당하게 하고,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고 진실함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꿈에서 거짓말을 하였거든 깨어서라도 뉘우치라.”고 가르쳤습니다. 진실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진실은 악마를 쓸어내는 빗자루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악마를 불러들이는 초인종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정직한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감추려고 하고, 무엇인가 꾸미려고 하고, 진실을 외면하려고 할 때에 올무에 걸리고, 사탄의 손에 잡히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말하거나 거짓행할 때 피식 웃습니다. 사탄에게 걸려들었다는 것이지요. 미끼를 물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그것을 빌미로 해서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을 은폐하고, 거짓을 진실인양 꾸미며 양심을 팔아버릴 때 사탄은 쾌재를 부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거짓되게 살면서 세상을 이긴다, 마귀를 대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정직한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잠언 12장 19절에,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정직한 자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정직한 자가 망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거짓을 행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께 벌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로 허리띠를 띠고 있으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용기가 생기고, 담대함이 생깁니다. 우리가 진실할 때에 말과 행동에 힘이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띤다는 뜻은 바로 진실한 삶으로 사탄과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라는 뜻입니다. 교우 여러분, 허리띠를 띠셨습니까? 진실함이 여러분의 허리띠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진리가 아닌 다른 것으로 영적 전쟁에서 허리띠를 띠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허리띠를 꽉 조였는데, 허리띠 바클이 터져버렸거나 또는 허리띠의 구멍을 끼고 있는 고리가 약하여 허리띠가 망가진 적은 없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허리띠가 약하거나 불량품이라서 바지나 치마가 내려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신당하는 것은 그래도 견디면 됩니다. 전쟁에서 허리띠가 끊어져 싸우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진리 아닌 것으로 허리띠를 띱니다. 허망한 것으로 허리띠를 띱니다. 거짓으로 허리띠를 띱니다. 어떤 사람은 고집으로 허리띠를 띠고, 어떤 사람은 아집으로, 어떤 사람은 자존심으로, 어떤 사람은 교만으로 허리띠를 띱니다.  그런 허리띠는 정작 힘을 써야할 때 허리를 받쳐주어야 하는 힘이 감당이 안 되어 허리띠가 끊어지거나, 바클 부분이 터져버립니다.
  여러분 가운데 신앙생활을 자기 방법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자기 힘이나, 자기 능력으로, 자기 열심으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지식으로, 자기 계획대로, 자기 성질대로 하려고 합니까? 그렇게 하면 신앙생활이 잘 됩니까? 내 뜻이나 내 생각이나 내 감정이나 내 신념이나 내 의지는 환경과 상황과 대상에 따라 변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진리로 띠를 두르지 않으면 흔들립니다.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담대함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진리로 선택하고, 진리에 입각하여 결정할 때 힘이 솟습니다. 진리로 허리를 동여맬 때, 확신이 서고, 담대함이 생기고, 용기가 생깁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아주 중요합니다.

  진리로 띠를 띤다고 할 때,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진실하지 못하여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고백하면 긍휼을 베풀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 그 어떤 존재보다 크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능력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허리를 매고 싸우는 우리들에게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자체가 진리이고, 이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진리요, 믿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짓이 없고,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짓과 죄와 악을 이기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이 진리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입니다. 심판주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 사탄과 모든 악의 세력은 저주와 멸망의 자리에 던져버리실 것입니다. 이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띠를 띨 때 우리의 영적인 허리가 힘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허리를 동이고, 예수님으로 인해 힘을 얻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고, 내 의지나 내 능력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리를 받쳐주는 것입니다

  허리띠는 허리에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옷을 입을 때 복장을 정돈해 줌으로써 활동을 기민하게 만들어줍니다. 특별히 고대의 옷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의 갑옷에는 허리띠가 상체에 있는 옷과 하체에 있는 옷을 몸에 꼭 붙들어 매어 줍니다.
  당시에 사치스럽고 방만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허리띠를 매지 않았습니다.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그 옷에 사치스런 보석이나 장신구를 달고, 옷이 질질 끌려 한 손으로는 그 옷을 걷어들고, 옷자락은 바닥을 쓸고 다녔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부의 상징이고, 지위가 높은 것으로 보였고, 권세를 나타낸다고 여겼습니다. 게으른 삶을 즐기는 데는 그렇게 하고 다녀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몸놀림이 민첩하고 싸우기에 자유로우려면 허리가 속박 받는 것 같아도 허리띠를 동여매야 합니다. 허리띠를 안 하는 것보다 허리띠를 띠면, 허리띠가 몸을 속박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허리띠를 동여매면 삶을 늘어지게 살 수 없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진리에 따라 정리 정돈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가다듬고, 흐트러지지 않게, 늘어지지 않게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방해가 되는 어떤 생각이나 마음이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진리는 우리 삶을 단정하게 해줍니다. 가다듬어 줍니다. 늘어진 옷과 여러 개의 옷을 단단히 모아 전투에 적합한 복장이 되게 하는 것이 허리띠이듯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게으르고 사치스럽고, 향락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절제하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 따라 살겠다는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겠다는 것입니다.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동이게 하고, 진리의 말씀이 자신을 속박하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진리의 말씀 따라 근신하고, 절제하며 그래서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진정으로 깨달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진리가 여러분을 붙들어주고 가다듬어 주기를 바랍니다.
  반대로 진리로 속박 받고, 진리로 제한 받고, 진리로 힘을 얻는 삶보다 거짓으로 자유롭고, 무절제로 먹고 마시고 즐기며, 무엇이든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면, 잠간 즐거움과 쾌락과 방만한 자유를 누릴 수는 있겠지만 자기를 지킬 수 없습니다. 사탄의 공격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없습니다. 그 끝은 불행과 멸망와 지옥입니다.

  교우 여러분, 진실함으로 여러분의 허리띠를 띠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힘을 얻고 삶을 가다듬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03월 15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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