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투구 - 하나님의 전신갑주 (IV) (에베소서 6장 13~17절) |
아가씨와 아줌마 구별하는 법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대중목욕탕에서 수건을 몸에 두르면 아가씨, 수건을 머리에 두르면 아줌마랍니다. 모임에서 같이 온 다른 여자에게 “언니, 언니”라고 하면 아가씨, “형님~, 형님~”하면 아줌마랍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빈자리가 생기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앉으면 아가씨, 누가 보거나 말거나 파죽지세로 엉덩이부터 돌격하면 아줌마랍니다. 파마할 때, “예쁘게 해 주세요~”하면 아가씨, “오래 가게 해 주세요~”하면 아줌마랍니다. 맞습니까?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구별법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구분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입니다. 즉 이 땅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면,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과 허무 속에서 살다가 죽어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 비그리스도인과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런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신갑주를 취하여 이 땅을 살아가면서 죄와 악과 그것들을 지배하는 사탄과 마귀와 악한 영들과 맞서 싸우라고 말씀합니다. 17절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말씀합니다.
군인의 투구는 머리에 쓰는 군사장비입니다. 가죽이나, 놋쇠, 청동이나 철로 만들어 그 속에 스펀지 비슷한 것을 넣어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좋은 투구는 무거운 도끼나 길이가 큰 칼로 내려치기 전에는 머리, 뺨, 턱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전쟁 중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신체 부분은 가슴, 심장부분과 머리 부분입니다. 머리는 신체가운데 모든 명령기관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머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머리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명령하고, 지휘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머리에 문제가 생기면 신체가 건강하더라도 심각해집니다. 뇌사상태라는 말을 아시지요? 전쟁에서 머리를 보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자기 투구를 쓰지 않고서는 절대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전쟁에 나가는 우리들에게 구원의 투구를 주셨고 그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의 투구라고 할 때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목숨, 생명이 죽음에서 구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공연되는 [버스]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있습니다. 그 뮤지컬을 보지 못했지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끄러운 시골 동네 사람들을 싣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던 길에서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킵니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낭떠러지인 내리막길을 간신히 잘 피해 내려왔나 싶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으니 버스는 점점 더 빨라집니다. 이 버스를 세워 승객을 구하려면 충돌완충을 위해 건초더미로 가서 부딪혀 서야 합니다. 그런데 건초더미로 돌진 하던 버스 기사는 건초더미 앞에 선 한 아이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피해가려면 버스 안 7명의 승객의 목숨을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기사는 승객 7명을 살리기 위해, 건초더미 앞에 서서 버스를 향해 손을 들고 있던 아이를 희생시키기로 작정하고, 아이를 넘어가 건초더미 속에 버스를 세우게 됩니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살아 나온 후 서로 얼싸안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버스에 아이가 치어 죽은 사실을 알고 승객들은 운전기사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꼭 이 방법밖에 없었느냐고 버스 기사를 공격합니다. 그 때 버스에 타고 있던 여고생이 살아남은 다른 승객들에게 외칩니다. “그만들 하세요. 버스에 쳐 죽은 아이는 운전기사 아저씨 아들이란 말이에요!” 평소 아빠를 좋아한 아이가 운전하며 오는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서 있다가, 아빠가 비키라는 손짓을 보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의외의 구원을 경험한 이들 모두는 충격 속에 새 인생의 길을 찾아 버스를 떠나게 됩니다. 이 뮤지컬은 이런 노래로 막을 내립니다. “누군가가 사랑했기에, 누군가가 희생했기에 이제 우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희생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구원에 대해 구약성경 이사야 53장 5, 6절에 예언하였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업적이나 노력이나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우리는 믿고 받아 누리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단절현상이 일어납니다. 전기가 정전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가 지속되는 데 아주 중요한 근거는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았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믿음과 확신입니다. 이 믿음과 확신이 흔들리면 사탄의 공격에 쉽게 넘어집니다. 쉽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의 손을 놓아 떨어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먼저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어렸을 때에, “너는 아빠, 엄마의 아들, 딸이 아니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들어 보신 분이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서, 혼자서 부모와 자기와의 관계를 의심하여 고민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자기 부모에게 분명한 자녀인데도 그 말 때문에 정말 아닌가하고 고민을 합니다. 어떤 중학생은 혈액형 때문에 자살한 사례가 있습니다. 자신의 혈액형을 검사해 보았는데, 자기 혈액형은 아버지 혈액형과 어머니 혈액형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부모에게 털어놓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서 끙끙거리고 별의 별 상상과 고민을 하다가 자신은 자기 부모의 아들이 아니라고 혼자서 단정 짓고 자살을 택한 것입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옛날에 혈액형 검사가 잘못되어서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데 말입니다.
자녀라는 확신이 없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확신이 없으면 쉽게 의심이 생깁니다. 의심이 생기면 확신이 흔들립니다. 확신이 흔들릴 때 그 결과 그동안 유지된 믿음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거짓말쟁이입니다. 비난하고 고발하는 자입니다. 사탄, 마귀의 주요 공격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게하고, 내가 구원받은 것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의심하게 하고, 내가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우리가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쉽게 믿음이 흔들리고 치명적인 결과를 겪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전쟁에서 구원의 투구를 머리에 쓰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머리는 생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를 쓰는 목적은 원수의 공격, 사탄과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쓸 때, 구원의 투구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신앙 상태를 말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확신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통계로 보면, 오늘날 많은 교인들 가운데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그저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종교 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천국에 들여 보내주시겠지,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살면서 좋은 일도 좀 하면 하나님께서 정상을 참작하여 지옥에 안 보내시고 천국에 들여 보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모태 신앙이니까, 부모가 믿어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니 당연히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지만 구원 받고 안 받고는 본인의 믿음이 어떠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 봐야 알지, 죽기도 전에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정론’에 입각하여 말하기도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있고, 누가 구원받을지, 받지 못할지는 예정되어 있으니, 하나님께서 미리 결정해 놓으셨으니 알 수 없고, 그러니 우리는 그냥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지만 누가 자기에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두렵답니다. 혹시 구원을 받지도 못했으면서 구원받았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구원을 못 받을 것 같고, 천국에 갈 자신이 없답니다. 예수를 믿은 뒤에 지은 죄가 많아서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을 때, 마귀는 여러분을 이렇게 공격합니다. “너의 죄는 너무 커서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없어.” “네가 죄를 그렇게 짓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귀는 이런 생각을 우리에게 넣어줍니다. 이때 이 생각을 물리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의심하고 확신이 흔들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실 것이며 자신의 죄를 다시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에 말한 사람처럼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먼저 가져야 할 확신이 있습니다. 죄 사함의 확신입니다. 죄사함의 확신이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주님을 믿으면 나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는다는 확신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또 다시 짓는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들먹이며 비난하고 참소하는 마귀의 공격에 대해 죄사함의 확신과 함께 구원의 확신으로 대항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죄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믿음과 구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미신적인 신앙 모습, 감정에 치우친 변덕스런 신앙형태, 의지적인 결단이 결여된 신앙형태가 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는 생각을 갖도록 미혹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와 구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마귀가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뿐만 아니라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구원 받은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씨앗과도 같습니다. 몸으로 말하면 척추와도 같습니다. 전기 에너지와도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영적 전원이 끊어집니다.
구원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여러분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될 때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의 질문은 궁극적으로 같은 질문입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 질문은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라는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요한복음 3장 3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 하반절 말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당신은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확신하십니까? 로마서 8장 1, 2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당신은 영생을 얻었습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을 얻었을 뿐아니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묻겠습니다. 당신은 멸망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을 확신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계십니까? 요한일서 5장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그렇다면 오늘 밤에 당신이 죽게 된다면 천국에 가리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천국 문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천국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당신에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에베소서 2장 8,9절,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당신의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새생명을 받은 사람,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당연히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받은 신앙의 확증은 여러분의 감정이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여러분의 감정이 좋을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우울하고 어두울 때는 구원을 못 받은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분에 따라, 느낌이 어떠냐에 따라 구원받았다, 구원을 못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확증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구원받은 근거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은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됩니다. 아직 받아서 맛보고 누리지만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의 소망’이라고 할 때, 소망은 확신이기에,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는 뜻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잃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소망이 흔들려 구원받을 것이라는 소망이 사라지면, 최후 승리가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이 없어지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흔들립니다. 영적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소망을 갖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미래에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장에 투입되어 전쟁 중인 군사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지고 말거야!”라고 생각하고 말한다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군사가 이길 소망을 잃어버리고 사기가 떨어지면 전쟁에서 지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전세가 불리하고 힘들 때 후방 지원부대가 지원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군사들의 필승의지는 어떻게 될까요? 구원의 소망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확신과도 같습니다. 참된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고, 반드시 날 구원하여 주셔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면 살 것이라는 확신이 흔들림이 없는 확신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바꾸어서 구원에 대해 우리를 속이고, 우리에게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고, 구원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여 낙심케 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천국에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구원의 투구를 분명히 쓰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2절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소망의 투구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의 투구,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우리를 공격하는 대적자를 맞서 싸워야 우리의 믿음이 끝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실 때, 무리들이 예수님을 구원의 왕이라고 환호하던 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고, 그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소중하고 엄청난 구원의 은혜를 구원의 확신으로 투구를 쓰고 천국을 향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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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5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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