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검 - 하나님의 전신갑주(VI) (에베소서 6장 13~17절) |
여러분은 누구 편입니까? 어느 정당의 편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사탄의 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 사탄과 반대편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사탄과 반대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편입니다. 다시 말해 사탄은 우리의 대적자이고, 우리는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그 공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발악하는 마귀의 공격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지금 사탄과 마귀의 활동은 전세가 기울어진 패전 전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딱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마귀와 영적 전투의 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는 우리가 심각하게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공격에 대항하여 싸울 때, 우리는 단지 영적 전투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 전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있고, 하나님께 더욱 신실해 지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또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월 둘째 주 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한 설교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믿음의 방패,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 구원의 투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전신갑주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공격 무기인 검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의 전신갑주의 무기가 방어용이라면 이 여섯 번째 무기는 공격용 무기입니다. 여기서 검은 말을 탄 기병이 휘두르는 무겁고 긴 칼이 아니라 일대 일 전투에서 사용되는 단검을 말합니다. 로마 군인들의 짧고 날카로운 검은 양날로 베고 찌르는 전술을 구사하는 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리 방어용 갑옷을 잘 차려 입었다고 할지라도 적군을 무찌르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갑옷도 효과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영적 싸움에 임하여 싸울 무기,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칼(도, 刀)과 검(劍)의 차이를 아십니까?
유명한 요리사가 주방에 강도가 들어왔을 때, 식칼이 곁에 있었지만 맨몸으로 육탄전을 벌여 강도를 잡았던 일이 있었답니다. 그때 한 신문기자가 요리사에게 “왜 손에 있던 식칼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물어봤답니다. 그랬더니 그 요리사가 대답하는 말이 “식칼은 검이 아닙니다. 식칼로는 사람을 베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주방장으로서의 장인정신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대체로 칼은 주로 의식주에 사용되는 일상적인 물건을 가리킵니다. 주로 검은 무예나 군사무기로 사용합니다. 칼은 한쪽에만 날이 있는 것이고, 검은 양쪽에 다 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검과 같습니다. 검에는 양날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도 양날의 칼처럼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 입에서도 단물과 쓴물, 즉 유익한 말과 무익한 말,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정욕적인 말과 신령한 말, 세상적인 말과 천국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인데도 그 내용이 다르고, 그 결과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마귀의 영향을 받느냐? 성령님의 영향을 받느냐? 마귀의 지배 아래 말하느냐? 성령님의 다스리심 아래 말하느냐? 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말이 마귀에게 영향을 받으면 유혹의 칼날이 됩니다. 우리의 말이 마귀에게 영향을 받고 지배받으면 다른 사람을 상처주고 찌르고 쓰러뜨리는 칼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조정하고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면 우리의 입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말을 하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자기 말을 다른 사람을 찌르는 검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까? 우리 교회가 고쳐야 할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언어습관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을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을 마귀가 사용하는 것처럼 그냥 내뱉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이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말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활동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본문 말씀 17절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냥 성령의 검이라고 말씀하시지, 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성령은 빼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가지라고 하시면 안 될까요? 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을까요?
먼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를 이해하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 생명의 양식, 진리, 등불, 빛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 말씀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성령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사용할 때 성령님께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은 성령님이 제공하시는 검으로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만 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은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검과 같아서 그 말씀의 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4장 12,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은 수술하는 칼처럼 정확하게 역사합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우리를 치유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회개할 마음을 갖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확신이 생깁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을 사랑할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담대함으로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 앞에 헌신을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감격하고 감사드립니다. 치유를 받게 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나 전할 때, 그 말씀이 효력을 발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꿰뚫는 힘과 예리한 날을 말씀에 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받을 때에, 그 말씀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관통하는 말씀, 여러분을 치유하는 말씀, 여러분을 새롭게 하는 살았고 능력 있는 예리한 검과 같은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까?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많은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철기방의 야철 대장 모팔모가 왕자 주몽을 위해 검을 만듭니다. 한나라 군의 강철검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검을 만들지만 한나라의 강철검과 부딪히면 부러지고 맙니다. 그렇게 거듭 실패하자 모팔모는 “주몽 왕자님, 송구하옵니다!” 그러면서 탤런트 이계인 씨의 얼굴표정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나라 현토성에서 강철검의 제작 비밀을 알아냅니다. 드디어 모팔모가 초강법 비밀인 황토흙을 넣어서 강철검을 만들냈습니다. 드라마이지만 그 장면에서 마치 한나라를 이긴 것 같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 강철검만 가지면 세상을 다 정복할 것 같은 그런 벅차오르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특수한 검을 만드는 데는 특별한 비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검은 성령의 검입니다. 한나라 강철검과 맞부딪혀서 부러지지 않는 초강철검을 만들기 위해 황토흙을 넣은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불어넣으십니다. 성령님께서 마귀가 휘두르는 공격 무기와 맞서서 부러지지 않도록 강한 힘을 부여하십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영향력과 파괴력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말씀이 살아있고 능력 있는 말씀이 되고, 강력한 파괴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책이 덮여져 그냥 있으면 이 책은 다른 소설책이나 일반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덮어져 있는 하나님 말씀은 파괴력있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책을 열어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암송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살아있는 말씀, 능력있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은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이며 무기입니다.
성령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검이 사용될 때 비로소 악한 권세들을 찔러 쓰러뜨리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검을 들고 휘두르면 마귀가 물러갑니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유혹과 시험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리고 마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면 너무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들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을 뽑아 찔렀을 때, 그 말씀들은 능력 있고, 파워풀한 검이 되어 마귀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패배하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그 일은 우리도 사탄에게 대항할 때에 말씀을 사용하도록 격려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사탄의 유혹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끊임없이 떠올려 그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길 힘을 주고, 무찌를 힘을 주십니다. 종교 개혁자 존 낙스는 임종 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종종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사탄은 나의 죄들을 들먹이며 나를 유혹하였는데, 그 때마다 나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탄은 교활하게 나를 공격합니다. 내가 목회활동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복을 받을 만하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는 고린도전서 4장 7절 말씀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 말씀이 생각나서 묵상하는 동안 사탄은 나를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공격을 방어하는 무기이며 또한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혹받고 죄를 지을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 이러하니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마귀를 내어 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강하고 날카롭도록 갈고 또 닦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겠다고 아버지 무덤 앞에서 맹세를 하고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드디어 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수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그는 원수에게 “잘 만났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그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또 갈며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자 내 칼을 받아라!” 하며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칼을 너무 오래 동안 갈았던 나머지 칼이 다 닳아서 조그만 칼이 되어 버렸습니다.”
철로 된 검은 갈면 갈수록 닳아서 작아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은 갈면 갈수록 더욱 예리하고 강해집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말씀을 믿는 자의 믿음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그 능력의 결과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체험되고, 더욱 내 것이 되었을 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내 안에 말씀이 뿌리를 내릴 때 성령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갈고 닦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전하게 믿어야 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세상의 상식이나, 세상의 풍속이나, 세상의 유행이나, 사람의 생각이나 욕심이나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붙여서 마치 칼이 녹이 슨 것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져 무디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의 원수 대적 마귀를 무찌르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갈고 또 갈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암송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별히 구원의 확신을 위한 관련 성경구절을 암송하든지, 부분적으로라도 확실히 알고 있든지 할 때에 우리를 공격하거나 우리의 신앙을 흔드는 세력에 대해 맞설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사탄, 마귀도 함부로 어쩌지 못합니다.
대장장이가 철을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을 하고 칼날을 갈면 더 강하고 날카로운 진검, 보검이 되는 것처럼, 성경 말씀은 연마하면 할수록 더욱 예리하고 능력 있는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더욱 선명히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 깊이 체험하여 그 진리에 붙들린바 될 때, 그 말씀이 검으로서 사용됩니다. 그 영적인 체험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이 체험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어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짓을 분별하고, 악을 물리치고, 마귀를 무찌르게 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배울 때, 묵상할 때, 언제나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고 더욱 깊이 경험하지 않은 채, 기도만 열심히 한다든지, 봉사만 열심히 한다든지, 교회만 열심히 나온다든지 한다면, 우리가 상처를 받거나,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공격이 있을 때에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실족하고 말 것입니다. 물론 그런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 믿음의 방패를 들어 막으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방패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바로 믿을 때에 믿음의 방패도 사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유혹과 의심과 불신과 자기 욕망과 교만을 부추기는 화살을 쏘아댈 때, 먼저 믿음의 방패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의 방패로 마귀의 유혹과 공격을 방어하지 않고, 막음의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음의 방패가 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하지 않고 막는 방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거절하고 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막음의 방패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막으면 성령의 검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믿지 않으면 성령의 검을 들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성령의 검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 속에서 살면서 즉 영적 전쟁터에서 살아가면서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악한 세력을 찌르고 대적할 예리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여러분에게 들려져 있습니까? 마귀의 유혹과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그 칼을 뽑았는데 막상 뽑고 보니 그 칼이 칼 같지 않고, 녹이 슬고, 날이 무디어져서 도무지 무조차도, 고구마조차도 자를 수 없는 그런 검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 즉 성령의 검은 여러분을 보호해 주는 무기입니다. 여러분을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영적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으로 들고 마귀의 유혹에 맞서야 이길 수 있습니다. 넘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진리의 허리띠를 띠십시오, 의의 호심경을 붙이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드십시오.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을 신으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마귀의 유혹을 멀리 쫓아 버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성령의 검을 사용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적 전투에서 쓰러지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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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26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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