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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임재하소서 !  [3637]
· 설교 일자 : 2009년 05월 31일
· 본문 말씀 :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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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임재하소서 ! (에베소서 5장 15~18절)
  ‘자동차의 아버지’ 포드와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은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포드는 에디슨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남달랐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도 그런 우정관계입니다. 추측컨대 자신의 실패를 당당하게 수용하는 두 사람의 성격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포드는 실패에 대해 “보다 지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고,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기 위해 1000번을 실패했을 때에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식으로 하면 전구를 만들 수 없다는 1000가지 방법들을 배웠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포드는 에디슨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T형 모델, 최고 A형 모델, 최초의 8기통(V-8), 최초의 링컨 모델 등 신차가 나올 때마다 첫 차를 에디슨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1931년 10월 8일 에디슨의 임종을 앞두고 포드는 에디슨의 아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습니다. 에디슨이 임종할 때 그의 마지막 숨을 컵에 담아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디슨 아들 찰스는 두 사람의 우정을 생각해 에디슨의 마지막 숨을 컵에 담고 밀봉하여 포드에게 전했습니다. 1950년 포드 부인이 사망했을 때, 포드의 모자와 신발 옆에 에디슨의 숨을 담아 둔 병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이 유리병은 미국 미시간 주 디어본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며 미래교회신학자인 레너드 스위트는 포드와 에디슨의 실화를 소개하면서, 포드는 왜 에디슨의 마지막 숨결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자신이 아끼는 소지품 옆에 간직해 뒀을까를 물으면서, 포드는 에디슨이 마지막으로 내 쉬었던 숨을 갖게 되면 에디슨의 영(spirit)을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에디슨의 숨결을 통해 매일매일 영감과 상상력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즉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 숨결, 호흡은 영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숨결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숨결, 호흡,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 같고,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닌가 하고 믿음이 흔들립니까? 신앙생활을 잘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되지요? 뭔가 믿음의 확신을 갖고 분명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싶은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요? 은혜를 받고 영적인 만족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데 잘 안 됩니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적, 영적인 고민을 어떻게 하면 해결 될 것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 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후, 제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닥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심과 불안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고 성령님을 보내시는 것이 오히려 우리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유익이 있길 래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을까요? 왜 고난 받으시기 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장례를 치룬 후, 두려움 속에서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신 말씀은 “평안할찌어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부활하셔서 40일간 지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승천하셔서 성부 하나님께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최종적인 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리라는 약속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부활절 이후 50일에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베드로는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입을 떼어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던 베드로가 드디어 성령님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순교할 정도로 바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도 바울이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으로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가 180도 돌아서서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고 이방 나라로 다니면서 예수님을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런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을까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세월을 아끼고자 한다면,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서 살기를 원한다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님은,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는 원어의 뜻은 중개자, 위로자, 상담자를 의미했습니다. 친구처럼, 부모처럼, 스폰서처럼,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로, 우리를 가르치고 교훈하는 스승으로, 우리를 훈련하는 훈련자로, 때론 응원자로, 격려자로 우리를 돕기 위해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우리 안에 있는 영을 살려 영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도록, 교제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영에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예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빛을 비쳐 주시고, 우리의 안에 더러운 것을 청소해 주시고, 우리 안에 바뀌어야 할 것, 치유되어야 할 것, 회복되어야 할 것, 강하게 되어야 할 것들을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의 영이 다른 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들의 예배의 삶이 바뀌게 됩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예전과 다른 마음과 자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가사를 따라 입으로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주님은 살아 계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속사람이 압니다. 그러기에 손을 들어 찬양하며,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며, 손바닥을 치며, 무릎을 꿇거나 심지어는 춤을 추는 등 온 몸과 마음과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성령님이 임하시면,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어지니까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하고 싶어집니다. 기도를 더 잘 할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합니다. 기도도 그전에는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기도를 드렸지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의 지경이 넓혀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경책을 열어 보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일주일에 한번 주일날 교회 올 때 먼지를 털어서 들고 와서 성경봉독 시간에 찾아서 겨우 보던 성경책을, 그것도 요즘에는 스크린에 다 찾아서 비추어 주니까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경책을 열어서 읽고 싶어집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경 한번 제대로 읽지 않던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며, 그 말씀을 갈망하게 됩니다. 날마다 음식을 먹음같이 말씀을 갈급해 합니다. 가까이 합니다. 묵상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죄에 대해서 민감해 집니다. 이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던 것들을 죄로 여기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죄를 밝히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나도 모르게 달라집니다. 과거에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과거에 즐기던 것이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과거에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과거에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이 쓸데없고 허탄하고 왜 그랬을까 하고 뉘우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성령님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 자기 의지와 노력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사도인 바울도 그게 잘 안되어서 로마서 7장에 고민 중의 고민을 고백하며 절규하지 않았습니까? 내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 싶은데 자꾸만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악을 행하게 된다고.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내 지체 속에는 죄의 법이 자신을 사로잡는다고. 그래서 자신은 너무나도 곤고한 사람이라고 절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영의 생각을 하게 되고, 생명과 평안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도 없고, 고백할 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는 이도 없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 수도 없고,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소망도 가질 수 없고, 우리의 신앙은 쉽게 지치고, 넘어집니다. 우리의 영은 메마르고 탈진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자신에게 임재하시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구하는 것처럼, 마음이 공허한 사람이 그 마음에 좋은 생각을 채우기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은 거룩한 영으로 가득차기를 갈구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만약 그런 영적 갈망이 없다면 여러분은 지금 육신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 갈망이 없다면 여러분의 영이 성령이 아닌 다른 영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신앙, 종교적인 차원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확실히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거룩한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어디든지, 언제든지, 어떻게든지 믿는 자들에게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신자들에게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형태는 세 가지입니다. 성경 말씀 속에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를 가지고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파라(para); 함께, 둘째는 엔(en); 안에, 셋째는 에피(epi) 위에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신자들 가운데 내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신자의 마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에서 ‘너희에게 임하시면’은 ‘너희 위에 임하시면’의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들 위에 임하시어 권능이 넘쳐흐르는 것을 가르킵니다. 요약하면,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 ‘위에’ 임재하시어 권능을 주십니다. 이 중에 우리 위에 임하시는 성령님은 임재하심의 최고의 단계입니다. 위에 임하시는 성령은 초자연적인 힘과 권세를 주시는 임재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합니다.
  성령님은 갈망하는 이들에게 임하십니다. 사모하는 이들에게 임하십니다.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임하십니다. 믿음으로 간구하는 이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는 성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지혜롭게 사는 비결입니다. 세월을 아끼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사는 신앙의 길을 말씀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라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뜻은 성령님을 통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지속적으로 자아를 그분께 순종시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성령님과 교제하며, 내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영의 생각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내 방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갈망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구해야 합니다.

  반대로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기철 장로님은 [고맙습니다. 성령님]에서 벽난로와 불의 관계로 성령충만을 설명하였습니다. 어느 집에 벽난로만 있고, 그 안에 불이 없다면 아무리 멋진 벽난로라 할지라도 집을 따뜻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벽난로는 성경말씀이고, 불은 성령님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이신 성령님이 없는 성경말씀인 벽난로는 냉랭하고 차가운 벽난로와 같습니다. 벽난로인 성경말씀만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반대로 불은 있는데 벽난로가 없다면 불을 담을 틀이 없어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불똥이 어디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벽난로인 성경말씀 없이 불이신 성령님의 능력만 좇다가는 자기 자신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모든 성령의 역사는 말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떠나서 성령 충만할 수 없습니다. 말씀 없이 성령 충만 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없고,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교만한 사람은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고, 성령의 능력을 갈망하지도 않는데 어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숨겨진 죄, 회개치 않은 죄 때문에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합니다. 죄는 비우십시오.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육신의 정욕과 세상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 또한 성령충만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나에게 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성령님의 임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믿음을 통해서 받은 것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도 믿음을 통해서 받습니다. 행위나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요, 믿음으로 받습니다.

  교우 여러분, 혼자서 신앙생활하려고 하십니까? 우리를 돕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이 죄 많고, 거칠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려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믿음과 기쁨과 평안을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위에 임하셔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고, 권능과 은사를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셔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삶이 얼마나 필요한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성령님 내 안에 오시옵소서. 나에게 임재 하옵소서!”라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살고, 하늘의 에너지를 공급받고, 기쁨과 평안과 용기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05월 31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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