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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  [3197]
· 설교 일자 : 2009년 06월 07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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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 (요한복음 7장 37-39절)
  2003년 8월 18일 오후 4시 경 KBS 방송에서, 남태평양 피지 섬에서 사업을 하는 한신목재 사장 조 남복 씨에 관한 취재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 방송 중에 나무를 벌목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무가 크게 잘 자란 것으로 보였는데 그 나무를 자르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왜 벌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나무는 위쪽 가지 위에서 부러진 것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오랜 세월 부러진 쪽으로 빗물이 들어가 썩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나무는 가지가 부러지지도 않고 잘 자라서 벌목을 했는데 자른 나무 밑 둥을 보니 가운데가 크게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벌레 먹고 썩어서 구멍이 생긴 것입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나무가 겉모양을 봐서는  잘 자란 것 같아도 나무를 잘라보면 목재로 쓸 만큼 잘 자란 나무인지 아니면 그저 땔감으로밖에 쓸 수 없는지가 다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피지 섬 수출국 세관직원에게 한신목재 조 남복 사장이 피지 섬에서 어떤 평을 받고 있는지를 KBS 방송 취재기자가 물었더니, 그 직원 말이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해 낼 것입니다.”라고 평했습니다. 조 남복 사장이야말로 목재를 다루는 사업자로써 벌레 먹지 않고, 가지가 부러지지 않은 나무가 아닌가, 겉과 속이 같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모든 나무에는 나이테라는 것이 있습니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나무를 절단해 보면 나이테 안에 그 나무가 성장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자료로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나이테를 보면,  아주 가물었을 때 나타난 나이테, 번개를 맞았을 때 나타난 나이테, 아주 비가 많이 왔을 때 나타난 나이테, 병충해가 심할 때 나타난 나이테, 불이 났을 때 나타난 나이테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한 나무의 상처의 질곡들은 대부분 나무의 껍질 즉 외형에 나타나 있지 않고, 나무의 가장 깊은 심층부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온갖 위선과 포장으로 가면 쓴 배우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굵직한 상처와 단단한 응어리들이 나이테처럼 자신의 인생의 이력서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버림받고 거절당한 나이테로, 어떤 것은 억울하게 오해당한 나이테로, 어떤 것은 병 되도록 참아야 했던 억누른 감정의 나이테로, 어떤 것은 극심한 외로움과 열등감의 나이테로, 어떤 것은 무시당함과 외면당함의 나이테로, 어떤 것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한과 부러움의 나이테로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때로는 무성한 잎과 탐스런 열매가 있으면 내 인생의 나이테에 새겨진 상처는 덮어질 것이라고, 감추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깊게 후벼 패인 상처의 나이테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면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몸에 난 상처든, 마음에 난 상처든 작고 큰 상처들을 입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상처가 쉽게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상처에 흐르는 피가 빨리 지혈되지도 않습니다. 상처가 쉽게 염증을 일으켜 쉽게 가라앉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상처로 인해 온 몸에 오한이 나거나 몸을 움직이는 데 고통스런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웬만한 상처는 상처 축에도 끼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상처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쉽게 아물고, 딱정이도 쉽게 앉아 빨리 회복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피가 철철 나서 병원에서 수십 바늘을 꿰매는 일이 아니면 상처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피가 나도 얼마나 빨리 지혈이 되는지 모릅니다. 상처가 덧나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 몸의 상처도 사람마다 다르듯이 우리의 감정과 마음의 상처 또한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몸의 상처가 잘 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음의 상처도 잘 받는 사람은 아닙니다.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몸의 상처는 잘 안 나는데, 마음은 얼마나 상처를 잘 받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처를 잘 받느냐 안 받느냐 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아가느냐 그냥 살아가느냐 입니다. 왜냐하면 나무의 내부 속에 있는 구멍이나 썩은 부분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받은 상처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세월이 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 줄 알고, 세월이 흘렀으니 해결되고 처리된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잊혀진 것이었습니다. 가라앉은 것뿐이었습니다. 누가 다시 건드리면 가라앉은 것이 다시 솟아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상한 감정을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쏟아 부음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제일 만만한 사람이 가족들입니다. 자신이 당한 수치심과 증오심을 원망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가족들에게 쏟아 붓습니다. 그 결과 가정 안에서 가족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하여 상처는 릴레이가 됩니다.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덮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으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상처를 덮으려고 합니다. 정욕을 채우면 상처가 덮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쾌락을 즐기면 덮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타락한 행동을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하면 자신의 상처가 덮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술로 괴로움을 잊으려고 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상처받은 것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런데 상처를 바르게 치유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우리의 내면에서 점점 자라나 쓴뿌리가 됩니다. 상처로 인한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지만, 자라나서 위험할 정도의 쓴뿌리가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라는 말씀에 쓴 뿌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쓴뿌리란 신명기 29장 18-19절의 ‘쓴 독을 맺는 나무 뿌리’가 심겨질 것이라고 경고한 말씀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쓴뿌리가 있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자신이 괴롭게 되고, 다른 사람을 더럽히게 됩니다. 더럽힌다는 말은 죄를 짓게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주석에서는 성도들의 마음이나 양심을 오염시키는 행동이나 태도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주위에 있는 성도들을 심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마음속의 독 덩어리가 쓴뿌리라는 말입니다. 쓴뿌리는 악독함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독이란 무엇입니까? 악하고 독한 것입니까? 악독은 완고한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의지와 마음입니다. 나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사람을 결코 용서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 덩어리입니다. 이런 마음과 의지의 쓴뿌리는 우리 영혼을 상하게 하고 파괴하는 독입니다. 쓴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쓴물은 자신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전염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괴롭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 상처를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올바른 방식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그것은 쓴뿌리가 되어 우리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파괴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쓴뿌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시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쓴뿌리를 지옥의 씨앗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쓴뿌리를 가지고 있는 동안만큼은 신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마치 밧줄로 묶어놓은 채 배를 타고 나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밧줄의 길이가 다하면, 배는 물위에서 노를 저을 때 움직이는 것 같을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앞을 향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쓴뿌리는 그냥 놔두면 점점 잔뿌리들이 더 자라납니다. 여러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무의 뿌리를 땅 속에서 캐내었는데, 뿌리도 많고 잔뿌리도 많아서 뿌리만 뽑히는 것이 아니라 큰 흙덩어리가 한꺼번에 땅속에서 들어 올려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내면속에 쓴뿌리를 그냥 두면 그렇게 됩니다. 잔뿌리까지 점점 자라서 우리의 마음에 점점 가득 차 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 좋은 것이 자리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모난 성품이 있습니까?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되어 있습니까? 쉽게 불안해지고 격해집니까? 열등의식이 있습니까? 교만합니까? 피해의식이 있습니까? 콤플렉스가 있습니까? 말할 때 공격적 언어나 거친 말을 잘 사용합니까? 모든 일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닫혀져 있습니까? 이것이 상처 난 과거의 실상과 쓴 뿌리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쓴 뿌리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헛바퀴가 돌듯 그 이상을 못 올라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못하는 이유도, 상처와 한에 묶여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쓴 뿌리를 제거하는 일도 신앙생활입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도, 우리 마음속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일도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야 내가 온전히 세워 지게 됩니다. 상처가 있는 대로, 쓴뿌리가 있는 대로 교회 일을 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도 또 다른 상처를 받습니다. 쓴 뿌리를 그냥 가지고 주의 일을 하면 나중에 선한 결과는 없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면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은 성령님께서 충만하여, 샘에서 샘물이 계속적으로 솟아 흐르듯이, 강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듯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의 목마름을 적셔주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목마름이란 메마르고, 지치고, 곤비하고, 생명력이 사라지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목마름을 해소한다는 것은 새 힘과 회복과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것은,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임하시길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전인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총체적인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서 이 땅에서 몸과 마음과 영이 조화롭게 건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바로 상처와 쓴뿌리가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인간 치유]라는 그의 저서에서 “건강이란 병이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질적인 문제이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구김살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 건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건강은 마음과 영혼의 건강에 달려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쓴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령님은 치유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분이시며,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의 성령이십니다. 로마서 8장 2절 말씀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생명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믿는 자의 영 가운데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로마서 8장 9하, 10절 말씀입니다. 생명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면 우리의 생각 가운데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면 몸 가운데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보혜사이시며 생명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면 몸과 마음과 영이 살아나고, 새롭게 됩니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배란 우리의 가장 중심 되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 내면 속을 의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합니다. 그래서 흐르는 생수의 강을 통해 우리의 상처와 쓴뿌리를 흘려버려야 합니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웅덩이가 되고, 생각은 흐르지 않으면 고민이 되고, 피는 흐르지 않으면 고름이 되듯, 상처가 흐르지 않으면 응어리가 되고, 쓴뿌리가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교회 안의 다른 교우들에게 상처를 주고, 실족케 하고,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치유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치유는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자녀 삼으시고, 지속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그 은혜를 깨닫고 누릴 때 궁극적인 치유가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은혜로 임할 때 상처를 아물게 하고, 쓴뿌리를 제거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생명의 성령의 강이 흐를 때에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과 영에 지속적으로 생수의 강, 성령의 강물이 흐르도록 성령 충만을 갈망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반도의 전쟁이 낳은 비극으로 혼혈인들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현상으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혼혈인들은 얼마나 무시당하고, 놀림당하고, 냉대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혼혈아라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튀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가수 인순이씨를 아시지요? 인순이씨가 쓴 책에, 조 영남 씨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수 인순이씨는 혼혈인으로 냉대와 멸시와 가난 등 아픈 기억과 상처들을 털어 놓은 후, ‘내 인생의 절정기는 카네기홀에서 공연할 때가 아니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카네기 홀은 가수라면 누구든지 한번쯤 그곳에서 노래하고 싶은 일생일대의 무대입니다. 그러나 인순이씨는 그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것이 최고의 영광이 아니었답니다. 그 공연 후 미 국방성에서 군인들을 위해 공연해 달라는 요청이 왔답니다. 그래서 인순이씨는 특별히 한국전쟁에 참여한 은퇴군인들을 많이 참석하게 해달라는 주문을 했답니다. 그리고 그 공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당신들은 모두 내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당신들의 딸입니다. 나와 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가슴아파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들의 사랑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불행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나는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온 이유는 바로 이 순간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인순이씨의 삶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출발부터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 인생을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주 할 수도 있었고, 하나님 앞에 항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를 품고, 그 상처 때문에 속에 꼬기꼬기 접고 또 접어 간직한 증오와 원한, 그리고 그것으로 만들어진 쓴뿌리를 품고 어디에서나 독을 뿜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새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무런 조건도, 자격도 따지지 않고, 그에게 생명을 다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쓴뿌리를 품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만이 그를 치유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의 삶을 잘 아시지요? 요셉이야 말로 상처를 품고 살았다면, 이 상처, 저 상처, 상처투성이로 그의 마음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인해 고름 투성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쓴뿌리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청춘을 망치게 한 형들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덩어리가 자신을 괴롭히고,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상처가 쓴뿌리가 되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믿음과 꿈을 성취하는 에너지로 삼았습니다. 요셉이야말로 그의 배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흐르도록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자신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싸매달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손으로 선하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매달렸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쓴 뿌리와 상처들이 고개들 때마다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나의 쓴 뿌리와 상처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 낱낱이 토설하고 모두 다 쏟아 놓으십시오, 한두 번에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수십 번 계속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이 아프면 낫기 위해서 나을 때까지 병원엘 가고, 치료하고, 약 먹고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상처와 쓴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마음속에 흐르도록, 성령의 생수의 강이 우리 속에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면서 대신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고 깨달을 때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샘솟듯 충만히 거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상처와 쓴뿌리를 통해 새로운 우리의 모습, 성숙된 하나님의 자녀, 더욱 온전해지고, 강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데이빗 씨맨즈는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저서에서 “온전한 치유란 하나님께서 ‘재생시키시는 은혜’를 사용하시어 우리를 고치시는 기적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취하셔서 모든 것을 유익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실제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를 재생시켜 온전하고 유용한 사람들로 변화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대로,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생수의 강이 우리에게 충만히 흘러 우리가 받은 상처, 우리 안에 자리잡은 쓴뿌리를 치유하고 제거하여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06월 07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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