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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3748]
· 설교 일자 : 2009년 06월 14일
· 본문 말씀 :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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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사도행전 7장 54~60절)
  보통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고 보이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이는 것을 위하여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이 세상에 있는 것들보다 오는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들,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보다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아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혜로운 삶이고,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속이는 자 같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이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아도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여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망한 죽음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라는 영국 선교사입니다. 그는 1865년 9월 황해도 연안의 창린도에 도착하여 약 두 달 반을 머물면서 섬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누어 주는 한편, 한국어를 배우면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휘몰아친 태풍으로 만주 해안에 표류한 끝에 1866년 1월에 북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통역겸 안내자의 자격으로 제너럴 샤먼호라는 상선을 타고서 대동강변으로 들어왔습니다. 제너럴 샤먼호가 대동강 입구에 도착하여, 계속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평양으로 항진을 하였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서툰 통역으로 무역을 하러 왔다고 하자, 우리나라 문정관들은 외국과의 무역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물러가라고 했지만, 셔먼호는 이를 무시하고 항진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셔먼호는 무역선답지 않게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정을 하러 배에 올라간 지현익을 배의 선원들이 억류를 하고 강압적인 자세를 보이자 강변의 병졸들과 성민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돌을 던지고 활과 화승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셔먼호도 소총과 대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홍수로 불었던 대동강 물이 줄어들고 서해에 썰물 때가 되어 물이 급격히 줄어들자 셔먼호는 강바닥에 좌초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양감사 박규수의 명에 따라 셔먼호에 불을 지르자 배에 탄 선원들은 강으로 뛰어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대기하고 있던 병졸들이 뭍에 오르는 선원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 죽였습니다. 토마스 목사도 더 이상 배에 있을 수가 없어서 성경 몇 권을 품에 품고 강으로 뛰어 내려 헤엄쳐 나왔습니다. 헤엄쳐 나온 토마스 목사를 박춘권이 칼로 쳐 죽임으로써 그는 27세에 한국 초기 역사에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개신교 성직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날이 1866년 9월 2일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토마스 목사는 참으로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뭐 제대로 선교를 해 보지도 못하고 너무도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목사는 품에 품고 온 성경을 죽기 전에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에게도 성경 한 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받지 않다가 되돌아 갈 때 이것을 주워 집으로 가지고 갔고, 후에 성경을 읽고서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되었으며, 안주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이 때 군중 속에 열두살난 소년 최치량이 있었는데, 그는 토마스 목사가 던져준 성경 세권을 주워 갖고 있다가 두려워 그 중 한 권을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주었습니다. 박영식은 한문성경을 보고 종이의 질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도배지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으로 자기 집 벽은 물론 방바닥과 천장까지 도배하였습니다. 아마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말씀의 집일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벽에 도배된 성경말씀을 읽고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는 박영식의 집에 갔다가 벽에 바른 성경을 읽고 감동하여 예수를 믿고, 후에 평양 숭실전문을 졸업하고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레널즈의 조사(助事)가 되어 한국인 성서번역위원의 한 사람으로 큰 공헌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2살이었던 최치량이 성인이 되어서 박영식의 집을 구입한 후 주막을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죽은 지 27년 후인 1893년, 이때 마펫 선교사가 평양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다가 최치량의 주막에 머물다가 성경으로 벽지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최치량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최치량도 예수님을 믿고 1894년에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과거 박영식의 집이었던 최치량의 주막이 평야 최초의 널다리골 예배당이 됩니다. 이 널다리골 예배당이 바로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의 중심에 있던 장대현 교회의 전신이고, 그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님이 조선 최초의 장로교 목사가 됩니다.
  마펫 사무엘 목사의 보고서에는 1886년 김성집, 최치량, 서경조 세명의 젊은이들이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를 목격했고, 그가 남겨둔 한문성경으로 신앙을 갖게 됐다고 적혀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토마스 목사가 죽으면서 던져 준 성경 몇권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허무해 보이는 순교의 피에서부터 시작이 되어 놀라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토마스 목사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첫 순교’의 영광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릴레이가 이루어졌습니다. 토마스 목사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낳았습니다. 또 생명을, 또 생명을 낳았습니다.

  1891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1950년에 순교한 문 준경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문 준경은 17살 때 증도로 시집을 왔지만, 이미 딴살림을 차린 신랑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소박을 맞은 것이지요. 하지만 말없이 시부모를 섬겼습니다. 그렇게 남편 없이 20년을 시집살이를 하였는데,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그는 재봉틀 하나를 들고 오빠가 있는 목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문 준경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곧 예수님입니다. 그 후 목포에서 한국교회의 유명한 부흥강사가 될 이성봉 목사가 목포교회에서 시무하였는데, 이성봉 목사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됩니다. 1931년 이성봉 목사가 원장인 이명직 목사에게 부탁하여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는 남편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교회에서 체험한 그는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을 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그분은 마을 잔치 집에서 음식을 얻어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가슴 아파하며 기도했답니다. 학교도 없는 섬마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닥에 나무로 글씨를 써가면서 한글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해질녘에는 동네 어귀 언덕에 올라가 조용히 노래를 불렀답니다. 섬마을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언덕에 모여들었답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타고 났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답니다. ‘천당가’ ‘예수 사람하심은’ ‘희망사’ 같은 찬송을 불러 준 뒤, 노랫말을 풀어 설명하면서 자신의 간증과 더불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보통 허사가로 알려져 있는 ‘희망사’라는 찬송이 있는데, 당시 널리 유행했던 창가 형식을 빌려서 기독교의 내용을 구성지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명직 목사가 작사하고, 이성봉 목사가 불러서 널리 보급한 희망사입니다. 이렇습니다. “세상만사살피니 참헛되고나 / 부귀공명장수는 바람잡이요    고대광실높은집 문전옥답도 /
우리한번죽으면 일장의춘몽  ///  일생일귀북망산 불귀객되니 / 일배황토가련코 가이없고나   // 솔로몬의큰영광 옛말이되니 / 부귀영화어디가 자랑해볼까   ///   우리희망무엔가 뜬세상영화 / 분토같이 버리고 주님을뵈서  //  천국락원영광중 화평의생애 / 영원무궁하도록 누림이로다 ”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공산당들이 그곳까지 침투하여 문전도사님과 교인들을 목포로 압송하였지만, 목포는 이미 국군이 상륙하였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문전도사님은 교회와 자신의 양딸인 백정희 전도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중동리로 돌아왔는데, 그곳은 아직도 공산치하였습니다. 그래서 1950년 10월 5일 새벽, 공산당은 문준경 전도사님을 포함한 양민들을 중동리 백사장으로 끌어내어 세우고,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죄목을 붙여 단도와 죽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확인사살을 하였습니다. 문전도사님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사랑하는 양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달라고 부탁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셨습니다. 공산당들이 붙여준 죄목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는 이름과 같이 그분이 머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들어 기도처가 되었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증도면 일대 27개 섬에 10개의 교회가 그분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그 결과 증도 일대 2000여명 주민의 90%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100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분들은 CCC총재인 김준곤 목사,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지낸 이만신 목사, 정태기 교수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문경준 전도사님은 복음의 씨암탉이었습니다. 그분의 전도의 열정과 순교는 우리나라 교회의 생명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결실을 거둔다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초대교회에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자, 공회원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체포하여 심문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을 그들의 질문에 대해, 구약의 말씀을 들어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사도행전 7장 2절부터 53절까지의 오늘 본문 말씀 앞의 내용입니다. 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렸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의 마음의 뼈를 자르는 톱과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갈았습니다. 그들은 야수같이 스데반에게 으르릉 거렸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란에 찬 무리들이 점점 다가올수록,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55, 56절에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그리스도를 고백하였습니다. 성경말씀은 순교자들이 홀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에게 버림받은 채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충성하는 신실한 종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받아들이기 위하여 주님이 서계셨다고 말씀합니다. 스데반의 이 말을 듣자 그들이 미친 듯이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쳐 돌로 쳐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 날아와 살을 찢고 피를 내고 고통이 휘몰아치는 동안, 스데반은 부르짖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리고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스데반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부터는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고, 사마리아와 아프리카를 향한 전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대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흩어져 더욱 강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사도들에 대한 핍박, 박해가 함께 몰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사도들은 모여 있는 사도들이 아니라, 흩어져 세상 끝으로 퍼져가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스데반처럼 순교하였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순교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힘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헬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X형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여 죽임 당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 부르기아에서, 바돌로매는 알메니아에 가서 전도 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 당했습니다. 시몬은 애굽에 가서 전도하고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맛디아는 가롯 유다 대신 선거된 제자로서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내용은, 돌로 치던 사람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 앞에 두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처형 현장에서 사울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과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시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에, 제일 먼저 스데반의 죽음의 모습과 핍박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어가면서 보여주었던 얼굴, 죽어가면서 했던 기도, 마지막 순간에 하늘 보좌를 보고 외친 말들이 사울의 뇌리에 박혔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사울이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순교의 증거를 남겼습니다. 스데반은 말로 증거 했습니다. 신앙 고백적인 삶으로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부활신앙을 증거 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도들과 제자들,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했고, 사도 바울과 같은 이가 스데반의 순교적 삶을 이어갔습니다.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하고, 땀과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순교의 피가 없었다면 일제 치하에서, 한국전쟁의 공산당의 만행 속에서 교회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고, 기독교 복음은 변질된 진리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땅에는 피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모기도 피를 필요로 하고, 적십자 혈액원도 피를 필요로 합니다. 민주주의도 피를 먹고 자랍니다. 초대교회 교부이자 변증가인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순교자가 흘린 피는 생명의 씨앗으로, 교회를 자라게 하고, 교회의 신앙을 지키게 한 힘이었습니다.  
  기독교 대백과사전에는 “순교자”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림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 신자”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기독교 순교자란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란 아주 특별한 형태의 신앙고백입니다. 죽음으로 보여주는 복음의 증언입니다. 그런데 이런 순교가 있더라도 그 죽음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헛된 죽음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순교자의 신앙을 가장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후배인 우리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바르게 이어받지 않는다면, 순교자의 죽음은 헛된 죽음으로 평가한다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렇게 믿어야 하느냐고 한다면, 기독교 신앙은 세상에 정복당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외친다고 해서 죽이지는 않습니다. 성경책을 읽는다고, 교회에 다닌다고 체포해 가고, 지하 감옥에 쳐 넣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한다고 해서 운동장에 묶어놓고 굶주린 사자를 풀어놓지 않습니다. 화형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북한에서는 도처에서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1995-2006년까지 77명이 순교하였다고 풀러신학교 박사논문에 발표되었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자유로운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도, 복음에 대해서도 너무도 자유롭다 못해 방종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순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순교자기념주일에 우리 모두가 순교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하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순교 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순교하도록 도우시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순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나가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도 필요로 하십니다. 순교자의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순교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통해서 깨닫고 본받아야 할 중요한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과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입니다. 왜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을까? 왜 죽음으로 복음을 증언했을까?를 깨닫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멸망과 저주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 영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천국에 가기까지 이 세상을 살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커밍아웃해야 합니다. 동성연애자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아신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 당장 그 결과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뿌려진 씨앗을 거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면 그 땅이,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추수하실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되나? 나는 할 수 없어...’ 그렇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로써 보여준 놀라운 결과들을 보지 않았았습니까? 하나님은 절대로 헛손질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땀을 날려버리지 않으십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 그가 또 어떤 사람을 전도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하는 닭이 되어야 합니다. 묵은 닭처럼 다른 닭들을 건드리고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면서 모이나 축내고, 고기가 고무신짝처럼 질겨 백숙조차 해 먹기 어려운 묵은 닭, 폐계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심하십시오. 오래 된 교인들은 묵은 닭이 되지 않기 위해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 되어 버립니다.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매일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세워 경건의 시간을 갖지 않거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묵은 닭이 되어 있습니다. 묵은 닭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묵은 닭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피와 그 피로 구원받은 은혜와 사랑을 받아 복음을 지키고 증거한 순교자의 피를 기억합시다. 그 순교의 피 앞에서 우리들은 순교할만한 신앙까지는 없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순교 신앙을 본받아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는 씨암탉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9년 06월 14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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