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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학교  [3541]
· 설교 일자 : 2009년 08월 02일
· 본문 말씀 : 신명기 8장 1~10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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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학교 (신명기 8장 1~10절)

  어떤 엄마가 오랜만에 미장원엘 갔습니다. 미장원 주인이 반갑게 맞습니다. “정말 오래 간만이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네, 덕분에.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머리 손질 좀 빨리 해주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30분 안에 완성해 주세요.” “30분 안에요? 네, 알겠어요.” 한참 손질을 하던 미장원 주인이 “이 왕 오신 거, 머리를 마는 게 어때요? 훨씬 보기 좋을 텐데요.” 훨씬 보기 좋다는 말에 솔깃한 엄마는 “그럼 어디 간만에 파마나 해 볼까....” 그렇게 해서 엄마는 꼭 3시간 걸려서 파마를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집안 공기가 썰렁했습니다. 파마하느라 딸 결혼식이 다 끝난 뒤에 집에 온 것입니다. 그 후 엄마는 딸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봐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날씨가 더우면 머리가 멍해서 딸 결혼식인 것도 모르고... 정신을 잘 챙겨야 하는 때입니다. 오늘 설교 시간에도...

  지난주에는 이 땅위에서의 삶은 학교라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학생으로서 매일 매일을 살아야 하고, 영원한 삶을 살 천국을 준비하는 예비학교의 학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특별학교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광야학교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십니다. 광야학교는 특별수업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시는 과외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부터 해방이 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목표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광야 학교를 2년만 다녀도 되는 데 유급이 되어 40년을 다닌 격입니다. 그들은 광야학교를 빨리 마칠 생각은 하지 않고, 틈만 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에게 불순종할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까지 2년 정도만 걸리면 되었는데, 38년을 광야에서 더 방황하며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부탁하는 모세의 설교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간 광야 생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 광야 40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훈련했습니다. 광야 교육을 통해서 그들은 훈련되었습니다. 여러분,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 사진1,2를 봅시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거친 모래 바람이 부는 곳, 밤에는 일교차가 커서 춥고 황량한 곳, 불뱀, 전갈, 이리, 독충만이 있고, 그늘이 될 만한 나무도 쉴 수 있는 곳도 없는 곳, 메마르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죽음의 땅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것이 지리적인 광야입니다. 오늘은 상황적 광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업이 망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광야 길에 선 것입니다. 암에 걸려서 모든 것을 일단 중지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합니다. 광야 길에 선 것입니다. 직장에서 진퇴양란의 문제를 만났습니다. 이것이 광야입니다. 실수와 실패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거절을 당했습니다. 광야 한 복판에 홀로 남겨진 것입니다.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서 절망하고 체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광야에 던져진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 이것을 상황적 광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삶의 광야 길에 서 있습니까? 광야 한복판에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여러분이 광야 길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광야 한 복판에 몰아가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상황적 광야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고 없이, 내 계획과 상관없이 만나게 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계란이 외부로부터 깨어지면 계란 후라이가 될 수 있지만, 내부로부터 깨어지는 경우에는 병아리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광야학교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지 못하고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계란이 계란 후라이밖에 안 되는 것처럼, 그 상황, 그 모습, 그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믿고,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깨달아 광야학교로 이끄시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거기에 놀라운 깨달음과 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방황하고 헤매다가 지쳐서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광야 길에서 광야학교 입학을 깨닫고 광야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지, 어떻게 광야학교를 수료할 지, 광야학교 수업을 마친 후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될지를 기대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신앙인 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은 광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광야를 헤매고 다녔고, 다윗은 광야에서 도망 다녔습니다. 사울 왕에게 있어서 광야는 점점 사람이 이상해지고, 포학해지고, 광기를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지만, 다윗에게는 광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광야는 진정한 왕이 되는 인격과 영성의 수련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에 우리 반 아이들 중에는 고시공부를 하는 애가 있었습니다. 그 애는 수업시간에도 고시 공부 책을 꺼내 놓고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고시에 붙겠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릅니다. 국어 시간에도 고시 공부, 수학시간에도 고시 공부, 영어 시간에도 고시 공부,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가서도... 그 애가 고시에 합격했을까요? 못했을까요? 물론 못했습니다. 그 애가 고시에 합격했다면 제가 그 애라고 하지 않고, 그 검사가... 이렇게 말했겠지요. 그 애는 공부하는 방법과 과정이 틀렸습니다. 차라리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고시 공부를 하든지... 실제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게 고시라면 아무나 다 그렇게 할 겁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고 그 다음 과정을 해야 합니다. 헌법, 형법, 민법 등의 법 조항 용어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서 무슨 고등고시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딴 짓을 한 것입니다. 과정에 맞게 배울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훈련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배울 뿐만 아니라 인생의 특별학교인 광야학교에서 광야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고, 훈련받을 수 있는 내용을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우선 우리에게 광야체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 깊은 목적을 헤아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광야학교에 잘 적응하여 속히 배울 것을 배우고, 훈련 받을 것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광야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광야학교는 우리를 낮추는 학교입니다.
본문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려고 광야 길로 가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광야는 우리를 낮추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십니까? 샘물이든, 시냇물이든, 강물이든, 다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다가 어떻게 다른 물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왜 겸손 하냐 구요? 낮기 때문입니다. 산보다 낮고, 육지보다 낮기 때문에 산에 있는 물이, 육지에 있는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곳에 쌓입니다. 절대로 높은 곳, 교만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뭔가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 자신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유한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사람의 권력과 힘만을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이오, 이런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 또한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낮은 곳에, 자기를 낮추는 사람에게, 겸손한 사람에게 풍성히 임합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겸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란 인간의 지혜나 능력이나 힘이나 권력이나 소유나 재능이나 학벌이나 그 무엇이라도 아무 소용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당장 목말라 물 한방을 마시지 못해 입술이 타고, 먹을 것이 없어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도 친구해 줄 사람도 없고, 주위는 온통 불뱀과 전갈과 독충만 우글거리는데 대통령인들, 재벌 총수인들, 세계적인 인사인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계급이 무슨 소용 있으며, 지식이 무슨 소용 있으며, 세상 인기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인데.
  광야는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어 겸손해지는 곳입니다. 겸손해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해져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겸손해져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낮아져서 겸손해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을 낮추기 위해 하나님께서 광야로 끌로 가십니다.
  서울 산정현교회 김태정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1997년 호남 출신임에도 검찰총장에 발탁되어 검찰총장이 된 뒤에 조금씩 권력에 도취되어 갔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하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법무부장관에 임명이 되었고, 옷 로비 사건의 파장으로 1999년 12월에 구속되면서 그는 감옥이라는 광야로 내몰렸습니다. 그는 교도소를 순시하던 자신이 죄수가 되어 감방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꼭 무덤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자살하고 싶었답니다.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신 것입니다. 새벽 2시쯤 갑자기 어디서 오는 지, 왜 오는지 모르게 기쁨이 물밀듯이 덮쳐왔고, 그 어둠 속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회개를 많이 했답니다. 그 동안 내 출세를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은 것, 그리고 검사 시절 감정적으로 일을 하진 않았는지, 심지어 사람을 잡아넣으면서 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그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까지 지낸 자신도 수사를 받을 땐 달걀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었는데, 서민들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고, 구치소에 있을 때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변호사만 있었어도 지금 당장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내가 나가면 이 사람들을 좀 도왔으면 좋겠다고 마음먹고, 현재 무료법률상담 사이트를 운영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본죽 대표 김철호 집사님도 잘 되던 사업이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고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고 방황하였습니다. 그 때 세상만 원망했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 교만이 가득 차 있어서 주님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를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하루하루를 먹고 살기 위한 길거리 노점으로, 그렇게 건강하던 아내가 입원하는 등, 그의 가족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처지가 되도록 주님께서 광야로 몰고 가셨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답니다.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주님 앞에 낮출 대로 낮추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자 믿음이 생기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답니다. 그리고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어 사업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 사업을 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고난의 광야를 만날 때 하나님 앞에 낮차져서 겸손히 주님만 바라보고 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학교는 우리를 시험하는 학교입니다.
본문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려고 광야 길로 가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길에서 속이 다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지도자 모세에 대해서 어떤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들 속에 담고 있던 마음들이 다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광야는 시험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광야 학교로 데리고 가시는 것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시험하셔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똑똑히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신의 진실 된 모습에 직면하여 무엇을 보충하고,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새롭게 하여야 하는 지를 발견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떤 존재인지가 광야에서 밝히 드러납니다.
  지난 번 폭우 때에 비가 쏟아 붓듯이 내리고 바람까지 부니까 대책이 없더군요. 그 때에 들고 있는 우산이 좋은 우산인지 중국산인지 드러나더군요. 중국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중국산은 표시가 나더군요. 여러분, 약한 비가 올 때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폭우와 거센 바람까지 불면 중국산 우산을 다 망가집니다. 보통 때는 괜찮지만 고난이 닥치면 우리의 믿음이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차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면 그 안에 어떤 차가 들어있는지, 어떤 색깔이 우러나오는지, 어떤 맛이 담겨 있는 지 다 드러납니다. 광야학교는 차봉지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 같은 사건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지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부끄럽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추악하고 미련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광야학교에서 여러분의 내면의 것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광야학교의 목표는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광야 같은 상황과 사건을 만나게 하여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고, 우리 마음이 어떠한 지를 시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학교에서 우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시험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진실한 모습인지 가짜, 짝퉁인지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가면을 벗는 곳입니다. 가면을 쓴 채로는 광야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죽은 고인을 들먹여서 안 됐습니다만, 얼마 전에 죽은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흑인이면서도 피부색이 까만 것을 그렇게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얼굴 성형수술도 수차례 했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 공연할 때에는 얼마나 분장을 했는지 공연 도중 땀이 많이 흐르면 화장인지, 분장인지, 변장인지, 위장인지 한 그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진 것처럼 된 사진이 찍혀 수없이 세계 매스컴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면서 살려고 했던 그가 얼마나 마음이 불행했겠습니까? 그런데 마이클 잭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가면을 쓰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장을 하고, 변장을 하고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그런 척 하면서, 신앙이 좋은 척 하면서, 거룩한 성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 시간에 개인 기도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광야에 혼자 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를 내려놓습니다. 가면을 벗습니다. 가면을 벗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거짓된 모습, 위장된 신앙, 가면을 쓴 얼굴이 안 되려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어 나를 어떻게 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들의 이 땅위에서의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가면을 벗고, 나도 모르게 써져 있는 가면을 벗어던지려는 노력이 신앙생활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 이하의 말씀처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나의 진실된 모습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교우 여러분, 가면을 벗고 하나님 앞에 솔질해 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학교에서 우리의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시고 싶어 하십니다. 사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를 몰라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르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확인을 하는 시험을 하십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하여 넘어뜨리는 시험이 아니라, 테스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를 창세기 22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지, 아브라함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하나님께 달려 있고, 하나님만 믿는 지를 보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자손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누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진짜입니까? 믿음의 시험에 통과 할 수 있겠습니까?

  각 사람들의 착각에 대해 정리해 놓은 글이 있더군요. 들어보십시오. 남자들의 착각! 못 생긴 여자는 쉽게 자기를 좋아할 줄로 착각한 답니다. 시쳇말로 못생긴 여자는 꼬시기 쉽다고 착각합니다. 여자들의 착각! 어떤 남자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면 그 남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어서 따라오는 줄로 착각합니다. 아기들은 울면 다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엄마들은 내 자식은 머리가 좋아서 천재인 줄로 착각하고, 고등학생들은 졸다가 선생님을 봤는데 앞의 애 머리 때문에 선생님이 안 보이면 선생님도 자기가 안 보이는 줄로 착각합니다. 대학생들의 착각은 자기들이 철든 줄 압니다. 이 얘기를 듣는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은 나는 안 그런 줄로 착각합니다.
  나한테는 아무 일도 없겠지, 나는 광야 같은 곳에 가지 않겠지, 나에게는 광야학교가 필요 없겠지... 하는 착각입니다. 내 믿음은 전혀 흘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평소에 믿음이 있는 것 같고, 좋을 때 즐거울 때 건강할 때 만사가 잘 될 때에는 믿음이 견고하고 봉사도 잘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다 드릴 것 같아도, 막상 슬픔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실패와 좌절과 상실을 겪게 되어 광야 길에 서게 되면, 그동안 받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고, 가지고 있던 믿음, 가지고 있는 열심, 가지고 있던 인격이 와그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린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모습은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던 모습입니다. 평소에는 상상도 안 되는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광야 길에 서게 하셔서,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셔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만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하고 훈련되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같은 인물은 하나님의 시험에 만점을 맞은 사람입니다. 수없는 어려운 시험의 관문을 다 믿음으로 통과하였지 않습니까?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종살이 10년이라는 광야 삶, 보디발 장군의 집의 여주인의 유혹과 거절로 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 3년, 도합 13년 동안의 광야 길을 훌륭히 걸어가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에 올라 하나님의 꿈과 사명을 이룬 인물입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신앙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시험하실 때에 요셉처럼 진짜 믿음으로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광야학교로 끌고 가셔서 정말로 그렇게 믿고 사는 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과 시련의 광야로 이끌고 가셔서 광야학교를 거치게 하실 때,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08월 02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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