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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되는 말  [3158]
· 설교 일자 : 2009년 11월 15일
· 본문 말씀 : 에베소서 4장 29-32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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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되는 말 (에베소서 4장 29-32절)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영국의 수상 처칠은 미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처칠은 목욕을 한 후 타월만 걸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예고 없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찾아왔습니다. 처칠이 일어나 악수하는 순간, 그만 처칠이 두르고 있던 타월이 벗겨졌습니다. 처칠은 이 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보십시오. 나 대영제국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이렇게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칠의 이러한 말 한마디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고 이후의 회담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당황스런 상황에서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한 마디 말로 그것을 잘 넘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은 인생의 핸들이라고 했습니다. 큰 배의 키와 같습니다. 어떻게 운전하느냐,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말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팔수도 있고, 말 때문에 성공의 빌딩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5백만 마디의 말 중에 유익한 말은 몇 마디하며, 무익한 말을 몇 마디 할 것 같습니까? 또, 한 마디 말이 일원이라고 가정을 하고 평생 5백만 원을 쌓을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도움 되는 말 한 마디를 플러스 일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마이너스 일원으로 하면, 여러분에게 얼마의 돈이 남을까요?  
  야고보서 3장 7절 이하의 말씀에는 우리의 혀를 잘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호랑이를 길들일 수는 있지만, 혀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이제껏 혀를 길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사납게 날뛰는 무자비한 살인자입니다. 그래서 한 입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도 나옵니다.”라고 말씀하면서 사도 야고보는 같은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같이 나올 수가 없는 것처럼, 사람의 입에서 단물과 쓴물이 나오듯이 두 가지 말이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혀를 잘 제어하면 우리의 입은 생명의 샘이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독을 뿜어내는 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난주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옛 생활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생활방식 중 언어생활에서 더러운 말, 함부로 내뱉는 말, 남을 헐뜯는 말, 거친 말 등 부정적인 말들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의 말씀은 버려야 할 언어생활에 관한 말씀이고, 오늘 말씀은 새로운 언어생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 중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면서,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본에는 29절을 이렇게 의역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말하는 습관을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입에서 불쾌하고 더러운 말이 나오지 않게 하십시오. 도움이 되는 말만 하고, 여러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물이 되게 하십시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말씀을 오늘의 일상적인 표현으로, 듣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선물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말의 힘과 영향력이 미생물과 사람의 인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성경뿐만 아니라 과학도 말의 위력을 동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바르게 사용하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말을 만들고, 말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이 이해가 되시지요? 성경 잠언 18장 20절,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자기가 한 말로 결과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걱정인데... 걱정인데...”라고 자꾸 말해 보십시오. 걱정거리가 자꾸 떠오르고 걱정 더미에 덮여버릴 것입니다. “스트레스 받네... 스트레스 받네...”라고 자꾸 말해 보십시오. 불평, 불만, 원망하는 소리를 자꾸 해보십시오. “죽겠네... 죽겠네...” 자꾸 말해 보십시오. 우리의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축 늘어질 것입니다. 마음은 우울하고 어둡고 기분이 나빠질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어둡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의욕도 없고, 활기도 없고,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밝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만듭니다. 미국인 여성 기업가 ‘오스틴’이라는 사람은 처음에 뚱뚱한 여자들의 속옷을 빅 사이즈(big sizes), 거대한 여자들의 속옷은 더블 빅 사이즈(double big sizes)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사업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뚱뚱한 여자들이 뚱뚱한 것도 서러운데 옷 이름까지 ‘뚱뚱이
옷’이라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것입니다. 오스틴은 고민 끝에 속옷 크기를 퀸 사이즈(Queen size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여왕이 입는 속옷이라는 느낌의 퀸 사이즈를 사는 뚱뚱한 여자들은 자신들이 여왕이라도 된 듯 활짝 웃으며 속옷을 사가기 시작하여 오스틴은 금방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빅 사이즈, 더블 빅 사이즈’라는 말을 ‘퀸 사이즈’라는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면서 그 속옷을 사 입는 여성들도 마음 밝아지고, 기업가 오스틴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온 긍정적인 말 하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뭐라고 하나요? 다섯 글자로 된 말로 대답해 보세요.” 아이들이 대답을 합니다. “너무 좋아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만, “뭘, 이런 걸 다” 그러더랍니다. “뭘 이런 걸 다”보다는 ‘감사합니다.’라는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는 말은 긍정적인 말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미고용사’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4자성어처럼 만든 말입니다. “미감용사”라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입니다. 다섯 글자로 된 삶에 중요한 말들입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다섯 글자의 말을 생각해 봅시다. 다섯 글자의 말들을 만들어봅시다. “축복합니다. 평안하십시오. 환영합니다. 우아합니다.  아름답네요. 멋지십니다.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힘을 내세요. 기도할께요.” 이런 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생활방식, 우리의 옛 사고방식, 우리의 옛 언어생활을 바꾸기 위해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제로 한참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때 갑자기 한 교우의 핸드폰 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태진아씨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 진행에 절묘한 순간에 노래 가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설교에 어긋나는 가사로 들렸습니다. 교회 안은 쏴! 한 분위기로 모든 교우들이 목사님과 그 교우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침착하게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참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싶어도 사랑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사랑, 정욕적인 사랑, 잘못된 사랑은 배우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선물과 같은 사랑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야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길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칭찬하는 말,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 용기 주는 말, 소망 주는 말, 세워주는 말,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덕을 세우는 선한 말입니다.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이에게 선물이 됩니다.
  교우 여러분, 긍정적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물이 되는 말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웃음을 주는 말을 하면, 듣는 이에게 보약 한 첩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에게 웃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어 있기는 하지만, 웃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사람만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웃음은 뇌의 모든 부분에서 경험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나오기 때문에 사람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웃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우리가 말로 할 수 있는 귀중한 선물입니다. 잠언 16장 24절,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말은 좋은 약입니다. 보약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웃을 때 엔돌핀이 나온다, 몸의 면역력이 높아진다,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통증이 감소된다 등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웃음치료법이라는 것도 나오고, 웃기 위해서 모이는 모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황수관박사는 한 번 웃는 것은 보약 한 첩을 먹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보약은 한 첩 가지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한 재, 두 재 먹어야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웃음은 웃을 때마다 보약 한 첩보다 더 효과가 즉시 나타난다고 하니, 돈 안들이고 얼마나 좋은 약을 먹는 것입니까?
  보약 한 첩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 주보에 이런 광고가 실렸습니다. “여전도회 여러분, 바자회 물품을 기증해 주시고, 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세요. 집에서 쓰지 않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남편을 꼭 데리고 오십시오.” 남편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으로 바자회 때에 내 놓으라는 뜻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약 한 첩 드리려고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보약이 약합니까? 보약이 좀 약했습니까? 한 첩 더 드리지요.
굉장히 말썽을 피우는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화가 난 주인은 그만 그 앵무새의 머리깃털을 모두 뽑아서 대머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목사님이 심방을 왔습니다. 목사님이 집에 들어와서 모자를 벗자 목사님의 대머리가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앵무새가 목사님께 하는 말, “너도 말썽부렸구나!” 그러더랍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하는 선한 말은 영적인 선물을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말은 영적인 선물을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억나게 하는 말,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는 말은 영을 살려주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에게 한 말 때문에 그 결과가 지옥과 천국이 된 두 여인이 있습니다. 한 여인은 사울왕의 딸이자 다윗의 부인인 미갈이고, 다른 여인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입니다. 둘 다  다윗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각각 한 말 때문에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사무엘하 6장에, 다윗 왕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되찾아 예루살렘성으로 옮겨 옵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바지가 내겨가는 줄도 모르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 모습을 미갈이 창밖으로 내려다보다가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다 옮기고 나서, 다윗이 자기의 집안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궁전으로 들어오니, 미갈이 다윗을 맞으러 나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왕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윗이 미갈에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소. 내가 주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께서는 나를 뽑으셔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 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를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미갈은 다윗에게 그렇게 말한 것 때문에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 25장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도피하여 살던 때에, 다윗이 양떼를 많이 치는 나발에게 부하들을 보내어 먹을 것을 구해 오도록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나발이 다윗과 부하들을 모욕하고, 도움을 거절하자 다윗은 나발을 죽이려고 4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칼을 차고 분노와 복수의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옵니다. 나발의 일꾼이 이 상황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가서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다윗이 지켜주어서 주인의 재산이 보호와 혜택을 많이 입었다는 것, 다윗이 부하들을 보내어 음식을 구했는데 주인께서 그들에게 호통만 쳐서 보냈고, 다윗이 화가 나서 주인을 죽이러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비가일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 바로 서둘러 음식을 잔뜩 챙겨서 다윗을 맞으러 갔습니다. 벌써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배은망덕하고, 무례한 나발과 그 집의 모든 자들을 몰살시키겠다고 그의 가슴은 분에 겨워 펄펄 뛰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아비가일이 마주 오는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애원하며 먼저, 용서를 구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며, 다윗의 모든 삶의 사건들 속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에, 오늘 지으려고 하는 죄로 인해 후회하지 않도록 말해주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죄를 짓지 않게 했습니다. 아비가일의 이 말들 때문에 다윗의 분노와 살기등등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비가일의 말은 다윗을 하나님께 무릎 꿇게 했습니다.
  미갈은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춘 다윗에게 사람만을 의식하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사람에게 분노하여 하나님을 잠시 잊은 다윗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서도록 말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말입니다. 결과 또한 다릅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용서해주시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야 문제 속에 휩싸이지 않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야, 우리의 상처를 부둥켜안고 고통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야, 걱정과 불안과 불평과 낙심과 절망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야, 예수님 앞에 서야 우리 안에  성령님께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스려 주실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워주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영적인 선물이 되는 말을 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선물로 받게 하는 말입니다.
민수기 13, 14장에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12지파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정탐을 시켰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2명의 사람들은, 그곳 땅에 대해서는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강하고, 성읍도 견고하고 심히 크다고 똑같이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보고를 마치고 그 다음 하는 말은 두 종류의 말로 나뉘었습니다. 12명 중 10명은 그 땅에 사는 아낙자손을 보니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같아서 능히 그들을 치지 못하고, 우리가 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어떤 기적과 능력을 행하셨는지, 그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고,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눈에 보이는 데로, 자기 기준대로, 인간적인 생각대로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말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를 지르며 밤새도록 통곡하며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차라리 우리를 그냥 애굽 땅에서 죽게 하지... 왜 우리를 가나안 땅에서 아낙자손의 칼에 맞아 죽게 하나.... 애굽으로 돌아가자.”
  한편,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들도 다른 열 명처럼 똑같이 보았습니다. 아낙자손들이 강하다는 것을 똑같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아낙자손만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크신 하나님이시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니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땅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들의 밥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원망하고 아우성을 친 출애굽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수기 14장 28절의 하나님의 말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말씀대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믿음의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도록 합니다. 믿음의 말은 용기를 주고, 의심이 물러가게 합니다. 소망을 갖게 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입에서 믿음의 말이 나와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기 위해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했는지를 보고 듣고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고, 믿고, 의지할 때 우리 속에서 믿음의 말이 나옵니다. 믿음의 말은 성경 말씀을 믿고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믿음의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말을 듣는 이들도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경험케 하기를 바랍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장난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장난감을 받고 좋아하며 가지고 놀고 있는 아들을 아버지는 흐믓하게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했고,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기쁨이라는 선물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말을 할 때, 그 말로 인해 듣는 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말을 한 사람도 기쁨을 선물로 받습니다. 악한 말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선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 되는 말 한마디를 하면, 자신에게는 몇 배의 선물이 돌아올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말이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살리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생명의 말, 살리는 말, 선한 말, 은혜의 선물을 주는 말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겉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에서 나타난다.”는 말처럼, 우리가 하는 말로 우리가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답게 긍정적이고, 신앙적이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물이 되는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1월 1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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