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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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  [3500]
· 설교 일자 : 2009년 12월 13일
· 본문 말씀 :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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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일컬어 책의 종교라 합니다. 그것은 책 중의 책인 성경책을 신앙생활의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이야말로 사람을 만드는 책이요, 사람을 살리는 책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얼렁뚱땅 읽는 것이 아니라면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고목에 샘물이 흐르고]라는 책에서 김 수진 씨는 서울구치소에서 일어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답니다. 서울구치소에는 기드온협회에서 보내온 작은 성경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글씨가 작고 전등불은 어두워서 읽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몇몇 교회가 글씨가 큰 성경책을 100여권을 보내왔답니다. 이 성경책을 읽던 재소자들 중에서 출소를 하면서 읽던 성경책을 가지고 나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도관에게 발각되면 “이 사람, 성경책을 도둑질해 가는 구만”하며 구박을 받기 일쑤라고 합니다. “성경도둑놈” 이는 새 생명을 준 소중한 보물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얻게 된 호칭이라고 합니다. 성경도둑놈 소리를 들어도 자신에게 새 삶을 준 성경을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사람을 살립니다. 영을 살립니다. 영을 건강하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영생을 얻게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인격수양을 위한 책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 교과서 정도가 아닙니다. 읽으면 좋은 말이 많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책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죽고 병들고 삐뚤어진 영혼을 살려내고, 고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 15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영생의 길이 있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8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성경 주석가 매튜 헨리는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문자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보내는 문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이기도 하고, 요즘 말로 하면 사랑의 이메일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우리가 몇 절씩 읽을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휴대폰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문자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받아 읽을 줄 아십니까? 조금 애를 써서 배우시면 참 좋습니다. 어떤 가정의 아내가 휴대폰을 사서 아들한테서 겨우 문자 메시지 보내는 것을 배워가지고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답니다. “여보, 사랑해”라고 보냈는데, 남편 휴대폰에는 “여보, 사망해!”라고 들어왔습니다. 잘못 누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신 문자 메시지인 성경 말씀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 무오 합니다. 잘못 보낸 문자 메시지가 없습니다.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고, 진리입니다.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만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을 위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어떻게 세상을 관리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특별히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죄인인 사람들이 어떻게 회개하고 변화 받아야 하는 지, 어떻게 영생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변화를 위해 몇 가지 도구를 사용하시는데, 그것은 말씀과 성령과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가 안 될 때는 고난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가장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변화의 도구는 말씀입니다. 본문 16, 17절에 말씀합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며, 책망합니다. 바로잡아 주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성장시켜 줍니다.
  교훈은 잘못하기 전에 하는 것이라면, 책망은 잘못한 후에 하는 것입니다. 교훈은 잘되게 하기 위해 교훈합니다. 책망은 바른 길로 가라고 교훈했는데, 듣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가면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책망을 합니다. 교훈이 예방적 차원이라면, 책망은 치료적 차원입니다. 그러므로 교훈과 책망은 사람을 바르게 하고, 선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교훈하시고 책망하시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교훈과 책망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에게 위임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교훈과 책망하는 일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 부모, 교사, 목사, 지도자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위해 세워 놓으시고 교훈과 책망을 위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위임받은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책망하는 말씀을 들을 때 기분 좋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허물이 없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듯이, 책망의 말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사람 또한 없습니다. 책망을 듣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자꾸 책망해달라고 조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있다면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사탕이나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만 먹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솜사탕이나 단팥죽이나 호박죽만 먹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달콤한 말만 듣기 원하고, 부드러운 말만 듣기 원하고, 쉽게 넘길 수 있는 말만 듣기 원하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 듣기 원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기 원하면 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잠언 15장 32절,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자기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면 훈계를 받아들이고, 견책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것, 설교를 듣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서 설교를 막 시작했는데 집사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더랍니다. 그때 목사님이 ‘아, 뭔가 급한 일이 있는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했는데, 설교가 끝날 때쯤 되어 그 집사님이 또다시 예배실로 들어와 앉더랍니다. 목사님이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었을까?’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악수를 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집사님, 아까 뭐 급한 일이 있었습니까? 어디 갔다가 왔습니까?” 그랬더니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저요?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고 왔는데요.” 목사님이 어이가 없어서 “아니, 예배시간에 설교를 안 듣고 이발소를 갔다가 와요?” 그 집사님이 하는 말, “목사님, 제가 오늘 설교 본문과 제목을 보니까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할지 딱 감이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이발하고 와도 충분할 것 같아 얼른 갔다 왔습니다.” 설교 시간에 이발소 갔다 온 사람치고 복 받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식탁에 앉아서 밥, 반찬이 어제 먹은 것과 같으니까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여 식탁에서 일어납니까? 아니지요. 또 먹어야 힘을 쓰지요. 설교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영혼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말로 귀하게 여긴다면, 자기 영혼이 건강하고 성장하기를 정말로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야 합니다. 교훈과 책망을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허물이 있고, 잘못을 범합니다. 실수를 합니다. 그러므로 교훈을 받아야 하고,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잠언 12장 15절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권고를 듣지만 미련한 사람은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알고 권고를 듣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책망을 들어도 자기와 상관없는 말로 듣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에 책망의 말씀을 나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미련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교 시간에 들려오는 책망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먼저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앞서니까 책망하는 말씀을 들을 때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고 느낍니다. 나를 망신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대체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교만합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책망을 들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감히 나를 책망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나를 까네~”라고 생각합니다. 교만은 자신의 마음을 경직되게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으니까 그렇습니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은혜로 받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눈이 높고 마음이 굳고 은혜를 받을 자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완악해 집니다. 완악한 사람이 더 심하면 강퍅해집니다. 강퍅해지면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받지 않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과 저울로 이렇게 저렇게 저울질을 하여 자기 좋은 것만 골라 듣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 속에서 뭔가 확 올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그런 분 은 쓴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고 인간적이고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원인이 내 안에 있는 해결되지 못한, 치유되지 못한 쓴뿌리 때문은 아닌지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책망의 말씀을 듣고 소화를 시켜야 여러분의 영이 건강해지고, 치유가 되고, 새로워지고, 온전해 집니다. 쓰다고 뱉어 버리고, 기분 나쁘다고 토해내 버리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약을 잘 못 먹습니다. 저희 집 큰 아들도 어렸을 때 감기가 걸려서 자주 아팠는데, 조제한 가루약을 시럽 약에 함께 타서 수저에 담아 먹이려고 하면,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토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삼 일간 먹어야 할 약이 하루에 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약을 먹이려면 전쟁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약을 잘 삼키면 좋겠는데, 몸을 불덩어리 같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약을 삼키지 못하여 더 고생을 했습니다. 얼마 전 탤런트 이 광기 씨가 신종 풀루로 인하여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 신종 플루 판정을 받고서 타미플루 약을 먹이려고 했는데, 아이가 약을 먹으면 다 토해내는 바람에 제대로 약을 먹이지 못한 것도 신종 플루를 치료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더군요.
  여러분, 약을 왜 먹습니까? 아픈 것 나으려고. 맞습니다. 병 고치려고. 맞습니다. 건강해지려고. 맞습니다. 책망은 영혼의 병을 고치는 말씀입니다. 병들고 잘못된 영혼의 상태를 고쳐서 낫게 하는 말씀입니다. 건강케 하는 말씀입니다. 온전케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을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토해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온전케 하려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즉 교훈과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닫고, 귀를 닫지 마십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은 사랑의 말로 듣고 기분 좋아합니다. 그런데 교훈하는 말과 책망하는 말도 사랑의 말입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씀에는 '아멘' 을 하면서도, 교훈하고 책망하는 말씀은 '노멘'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책망하시는 말씀 속에는 사랑이 동기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시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책망을 듣는 사람은 자신에게 교훈과 책망을 하는 사람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야 합니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생각을 닫고서 거절하고, 불쾌해 하고,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책망할 때에 자녀의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며 잘 되길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책망하다가 흥분하여 자기감정에 휩싸여 자녀에게 상처가 되거나, 치명적인 비난으로 자녀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녀를 교훈하고 책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 부모의 사랑을 알면 철이 든 것입니다. 신앙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철이 들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시는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책망을 들어야만 하는 것인가요? 책망을 듣지 않으면 안 될까요? 성경은 책망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잠언 1장 23절 이하에는,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듣고,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 두려움의 광풍이 임하겠고,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근심과 슬픔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는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역대기서를 계속 보고 있습니다. 역대기서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역대 왕들에 대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위기를 만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돌이키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왕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상황을 분별하고, 가던 길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왕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와 책망의 말씀에 대해, 지난 주 설교에 말씀드린 요아스 왕처럼 처음에는 거절하고, 다음에는 더욱 완악하고 강퍅해져서 선지자들 죽이는 왕들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악한 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는 잠언 12장 1절의 말씀처럼, 짐승처럼 은혜로 잊고, 사람의 도리도 잊어버렸습니다. 권면이나 책망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나귀나 노새처럼 말을 듣지 않고 고집만 피우는 것이지요.
  사무엘서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음을 하고, 제사 고기를 탐내어 억지로 빼앗으며, 못된 짓을 행했습니다. 이에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인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나귀와 노새와 같은 짐승처럼 책망을 듣고 돌이키지를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두 아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같은 날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의자에 앉아 있다가 놀란 나머지 의자에서 넘어져 죽었습니다.
  천사들이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롯의 사위나 자녀들, 롯에게 속한 사람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사위들은 롯의 교훈과 책망을 농담으로 여기고 흘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롯의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할 때에 죽었습니다. 책망을 듣지 않는 사람의 끝은 멸망입니다. 진노 아래 놓입니다.

  교훈과 책망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담아 주시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교훈과 책망을 잘 듣는 이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잠언 9장 9절에,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훈과 책망을 잘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책망을 듣고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책망을 듣고 인생의 낭떠러지로 달려가지 않게 됩니다. 책망을 듣고 가지 말아야 할 길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평안을 얻고, 다른 이들에게도 평안을 줍니다. 선한 길을 걷게 되고, 기쁨의 생활을 하게 되고,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이 땅 위에서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김홍섭 판사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1915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법관이었지만 사랑과 청빈을 생활신조로 삼고, 늘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퇴근 후에는 감방의 죄수들을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회개와 새로운 삶을 권면했습니다. 특히 사형수에게는 면담뿐만 아니라 편지를 보내어 위로하고 그들의 대부 역할까지 했습니다. 그는 재판할 때마다 성경과 육법전서를 같이 펴 놓고 재판했습니다. 그리고 판결할 때는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당신이나 나나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대한민국 법관이 되어 당신을 재판하게 되었으니 널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판사님은 이혼하려고 하는 한 부부의 사건을 맡게 되었습니다. 장롱을 방안에 놓는 위치를 가지고 싸우다가 결국은 이혼하기로 합의를 본 부부였습니다. 세상에는 별의 별 일로 다 이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자를 뭘 찍어 먹느냐로 이혼까지 갑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 치약을 중간에서 짜서 쓰느냐, 끝부터 짜서 쓰느냐 때문에 이혼하는데, 이 부부는 장롱 놓는 위치 때문에 이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 그렇게 됩니다. 어쨌든 아이의 양육 문제, 재산 나누는 문제를 놓고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재판 자리에서 김홍섭 판사님은 그 집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는 누구와 함께 살고 싶으냐?” 그 아이가 부모의 손을 양손에 붙잡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엄마, 아빠 두 분 모두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김 판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재판을 한 달 연기하기로 작정을 하고, 그 부부에게 성경 한 권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판결을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하루에 3번씩 모두 100번 읽고 다음 재판에 임하도록 하시오.” 부부가 집에 돌아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습니다. “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들은 처음에는 그냥 성경을 읽고 오라니까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수십 번을 읽으면서 성경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찌르고 쪼개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자신들이 참지 못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피차 사랑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모든 말씀이 자신들을 향하여 퍼붓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가슴에 박혔습니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그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이혼 소송을 취소하고, 새롭게 행복한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좋은 약을 다시한번 추천합니다. 구약과 신약입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주시지 않았다면 얼마나 하나님을 잘못 알고, 우상을 섬기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복 받는다, 형통한다, 달콤한 말씀만 듣지 말고, 교훈하고 책망하는 말씀을 바르게 듣고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배여있는 책망의 말씀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존심, 체면, 자기 주관, 자기 판단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하여 온전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12월 1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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