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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3927]
· 설교 일자 : 2010년 01월 03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8장 29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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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요한복음 8장 29절)
새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허락해 주신 은혜의 시간입니다. 다시 허락해 주신 기회의 시간이고, 시간으로 표현하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새해가 벌써 3일을 맞았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 신년주일입니다. 그리고 새해 새로운 목표를 향한 결심을 하고 난 후 삼일째 되는 날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벌써 결심한 것이 흐트러지지는 않으셨지요?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새로운 목표와 결심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다시 결심하십시오. 계속 삼일마다 결심하고 다짐하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습관을 바꾸는 데는 3주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며칠 해 보았다고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3주, 4주 간 계속해야 옛 습관이 바뀌고 새로운 습관과 자세가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다시 용기를 내시고 다시 또 시작하는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목회표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입니다. 이 목회표어는 우리 교단, 즉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 총회의 표어입니다. 금년에는 우리 교회의 표어와 교단 총회의 표어가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라는 표어는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주제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표어는 우리 신앙생활과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주제요, 표어입니다.
  이 표어, 주제는 우리 신앙생활과 삶에 이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부부가 여러 달 동안 집을 비우고 떠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창문을 닦아야겠고 집안 칠도 새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남편은 선반과 옷장에 흰개미들이 있다는 것이 크게 걱정됐습니다. 선반들은 깨끗해 보였지만 페인트칠을 해 놓은 얇은 나무에 굴처럼 뚫려 있는 개미구멍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곧 흰개미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아내는 집이 밖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페인트 칠만 새로 하면 멋있는 집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남편은 집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사용된 목재가 구멍이 나거나 썩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한신목재라는 사업체를 경영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목재로 쓸 나무는 나무를 잘라보면 알 수 있고, 아무리 나무가 크고 멀쩡한 것 같아도 잘라보면 큰 구멍이 나 있는 나무도 있고, 벌레 먹고 썩어 버린 나무도 있답니다. 그런 나무는 목재로는 쓸 수 없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우리의 속이 구멍이 나 있거나, 벌레 먹고 썩었거나, 흰개미가 들락거리며 구멍을 뚫어놓았다면, 중요한 순간에 그것이 다 드러날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신앙생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금년 표어 “하나님을 기쁘시게”는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꽉 차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표어입니다. 겉만 페인트칠 한다고 해서 새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우리 내면의 변화, 속사람의 변화, 바른 경건한 생활을 살아갈 때에 중심이 건강하고 풍성한 신앙과 삶이 됩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경건한 생활을 위해 항상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항상 기도하는가? 둘째, 너는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셋째, 너는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넷째, 너는 욕심내는 것이 없는가? 다섯째, 너는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가? 여섯째, 너는 네 중심에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일곱째,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사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너무도 광범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신앙과 삶은,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원하는 절실한 주제이지만,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한 두 마디로 쉽게 요약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단기간에 성취하고 끝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생을 좇아가야 할 주제입니다. 평생의 신앙의 목표이고 우리들의 신앙과제입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부모님께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범위가 넓어집니다. 부모님께 용돈 보내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늘 부모님을 살피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영상으로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그것을 광고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들 누구야! 잘 있냐? 우리는 잘 있다. 그런데 옆집 김씨 할아버지네는 벽걸이 텔레비전 샀더라. 우리는 괜찮다. 아직 KBS는 잘 나온다. 다른 방송국 것은 그 집 가서 본다. 아들아! 우리는 괜찮다. 텔레비전 사달라는 말이 아니다.” 텔레비전 사달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을 안 하실 뿐이고, 참으실 뿐이고, 자식들을 위해 기쁨을 유보하고 있을 뿐이지 정말로 그렇게 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살아계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렵게 생각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도 잘 하려고 하면 처음부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보다 마음 아프게 해 드리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사회에서도 모델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좋은 본보기를 정하고 그것을 닮아가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성공한 나라, 성공한 기업, 성공한 사람을 연구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입니다.
훌륭한 가정이란 부모가, 형이나 언니가 좋은 삶의 모델이 되어주는 가정입니다. 행복한 사회란 곳곳에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대우받고 존경받는 사회, 그래서 그들을 닮으려고 모델로 삼을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교회란 훌륭한 신앙 모델이 많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모델링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분을 먼저 모델로 찾아 닮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사람들을 모델로 그 분을 닮아간다면 막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분들이 누구일까요? 물론 성경에 나온 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분들 중에 무엇보다도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분들 찾아 그분을 모델로 삼아 닮아간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훨씬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빛을 풍성히 주어 그 속에서 살게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바리새인들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계속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21절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말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죽음이라는 막다른 길로 가서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요?”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표현으로 대답하는 말을 피하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자를 들어 올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분은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그분은 잘 아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과 삶의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이시며,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게 변형되었을 때, 베드로가 그곳에 집을 짓고 거하자고 하자, 홀연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을 뿐 아니라 우리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과 삶을 실천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예수님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셨는지를 깨달아 본 받아 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
  오늘 본문 29절 말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뜻이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손주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가 찾아오면 기뻐합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명절 때나 휴가 때나 찾아뵈었었는데, 그때가 되면 아직 명절이 며칠 남았는데도 벌써 전화를 하셨습니다. “언제 오냐?” 전화를 하셔서 대답을 해 드렸는데도 명절 전날 되면 또 전화하셔서 물으셨습니다. “언제 오냐?” 우리 집 아이들이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명절 귀향길에 차가 많이 막힌다는 뉴스를 보시고는 전화를 하십니다. 오지 말라고. 그런데 진짜 오지 말기를 바라시지는 않는지 다시 전화해서 출발했냐고 물으십니다.
  부모는 자녀가 함께 있으면 기뻐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 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뻐합니다. 자녀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수시로 성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어서 기도했고, 언제나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깨달았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에 늘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마음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 신학의 중심이 되는 존 칼빈의 신학의 중심사상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인생의 제일의 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조목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창조 목적을 이루는 삶이란 결국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만의 나의 인생,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나에게 기대하시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지만, 결국 내가 기쁘게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기쁘시려고 우리 인생을 착취하고, 노예처럼 부리고,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하나님만 즐기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시절에도, 김정일에게도 기쁨조가 있다던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물만 쏙 빼먹는 기쁨조로 사용하려고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고,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도록 이 땅에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명품들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전부터, 만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얼마나 귀하게 만드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뜻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자기를 누가 이 땅에 보내셨고, 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는지, 이 땅에서 무엇을 하셔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남김없이 다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곳, 내가 행해야 할 일들, 내가 해야 할 역할, 책임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창조목적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살도록 창조하셨는데 여러분은 엉뚱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이시겠습니까?
  여러분, 휴대폰의 안테나가 통화 기능이나 DMB 방송수신이 잘 되도록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단지 휴대폰 안테나가 귀를 후비는 데만 사용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과 능력과 은사와 성격과 경험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파트너로 이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고, 서로 돕고 함께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하셨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발견하셨습니까?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창조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셨습니다.
오늘 말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즉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늘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채우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당신이 내게로 오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세례란 죄를 씻음을 받는 표로서 옛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확증하는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래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죄를 씻는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날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씻어야 할 죄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왜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시느냐는 뜻으로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에도 사람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셨고, 똑같이 어린 시절을 지내셨고, 사람이 겪는 모든 것, 사람이 느끼는 모든 것, 사람과 동일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온 인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인류의 첫 사람으로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왔고, 참사람으로 오신 한 분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생명과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으로 채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본받아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우리 욕심과 우리 생각과 우리 마음이 너무도 많아서 그게 문제입니다. 그것 때문에 일이 꼬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미워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관계가 깨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욕심대로, 우리 생각대로, 우리 마음대로 행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조화를 이루고 선한 결과를 이룬다면, 누구든지 자기 욕심대로, 생각대로, 마음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아담과 하와이후에 너무도 타락하여 자기 욕심대로, 생각대로, 마음대로 행한 결과, 피조세계인 자연을 오염시키며 파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폭력과 범죄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내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본대로 나도 행한다. 내가 아버지께 들은 대로 내가 말한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기적을 행할 때에도, 오병이어의 기적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행하셨고, 죽은지 사흘된 나사로를 살릴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기도부터 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 너무 사랑하십니다. '김가'도 사랑하시고, '이가'도 사랑하시고, '박가'는 물론 '최가', ‘정가’도 사랑하십니다. ‘신가’도 사랑하십니다. 제 아내 성씨 ‘한가’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입니다. 무엇이든지 나를 나타내고 나를 앞세우는 사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주님도 그러한 성을 가진 사람을 너무 너무 싫어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채워야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바클레이의 기도문 중에 “내게 있는 것을 잘 사용하게 하소서”라는 제목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 나로 하여금 나의 생명을 / 당신께서 내게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게 도와주소서. 나로 하여금 은사와 능력을 / 다른 사람을 위해 쓰게 하심으로 / 남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유익케 하옵소서. / 내가 가진 물질로 /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 / 남을 돕는 일에 후히 쓰게 하옵소서. / 나의 시간을 선한 일에만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도와주옵소서. / 이기적이거나 육적인 쾌락을 위해 쓰지 않고 / 남을 위해서 사용케 하옵소서. /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깨닫고 / 자신을 발전시키는 일을 위해 노력하게 하시며 /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시고 / 세상의 무익하고 썩어질 것들에 / 결코 마음을 두지 않게 하옵소서. / 오늘 하루가 자신을 발전시키고 / 다른 사람을 유익케 하며 /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여지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교우 여러분, 이 윌리엄 바클레이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일을 겪으면서 보니까 나무에 구멍이 나 있듯이 내면이 비어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을 기쁘시게!”라는 신앙의 출발이자 신앙의 중심이고, 신앙의 핵심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잃어버리고 사람 앞에서만 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하고, 나에게 영광, 나를 기쁘게, 내 만족을 위해 살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합시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다시 세웁시다.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을 바르게 이룹시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 해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창조 목적과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을 발견하여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우리가 기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림으로 우리 삶이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0년 01월 03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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