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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II  [2983]
· 설교 일자 : 2010년 01월 10일
· 본문 말씀 : 시편 51편 16~19절 말씀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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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II (시편 51편 16~19절 말씀)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을 본질적인 성품으로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태초에 천지를 6일 동안, 빛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람까지 모두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계를 보시고 심히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4편 31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행하시는 온갖 일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도 기뻐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우리의 기쁨이 진정한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우리 또한 기쁘게 살아갈 때에 진정한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예배에로 부르십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이사야 55장 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올 때 기뻐하십니다. 그것은 부모가 떨어져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뵈러 올 때 기뻐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예배드리러 성전으로 들어올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예배를 다른 종교의 제사나 고사 드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종교의 제사는 신을 달래는 행위입니다. 신의 노여움이 두려워 재물과 정성으로 아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는 단순한 고사 드리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고,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형편과 사정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와 말씀과 사랑을 주시는 현장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크게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고, 감사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시간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응답해주시는 요소로 예배 순서들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영이신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어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소통하고 교제하는 현장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은 다 말씀으로 지으셨지만, 오직 사람만 직접 진흙으로 빚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다른 동물들, 사람과 많이 닮았다고 하는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등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을까요? 몇 가지 목적들 중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을 닮게 지으시고, 사람과 교제하면서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고 책임을 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고, 하나님과 거리낌도 없고, 어떤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사람과 함께 하시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성자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친히 인간이 되어 오신 이유는 죄와 사망으로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와 분명히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아지나 소나 닭이나 호랑이나 사자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사람만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고, 사람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람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을 맡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의 아버지가 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특히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집 강아지를 부르거나, 자기 집 강아지와 자기와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 관계로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아지 이름이 ‘돌돌이’라면 “돌돌아! 엄마한테 와!” “돌돌아! 엄마가 밥 줄게” 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과 강아지는 부모와 자식이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깝고, 아무리 강아지가 좋다고 한들, 개 엄마, 개 아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개 새끼를 낳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강아지와 가까워도 강아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강아지와 충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강아지는 그냥 사람이 돌봐주고, 강아지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며 충성을 하는 정도의 관계입니다. 개가 인류역사상 늘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었다고 해도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지지는 않습니다. 애완동물은 그냥 애완동물입니다. 주인으로써 아끼고 사랑하는 동물이지, 여러분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인격적인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인격적입니다. 개와 사람과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교제할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고 섭리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왜 나를 이 땅에 살게 하셨는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바르게 깨닫고 발견하여 그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나 또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여러분 각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의, 사랑, 선, 진리, 거룩함 등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죄를 씻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본문 시편 5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의 간음한 사건 이후, 그 죄악을 은폐하려고 우리아를 전쟁에 최 일선에 내보내 죽게 하는 죄까지 범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범한 죄악을 안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찾아와 죄악을 지적하고 비난했습니다. 그 비난을 받아들인 다윗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범한 죄와 죄과가 자신을 짖 누르고, 영혼은 시들시들해져가고 있고,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이는 그냥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면서 용서와 정결한 마음을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의롭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추방한 것도 죄를 범한 인간과 하나님께서 같이 계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시작은 회개와 정결과 거룩입니다. 그리고 회개와 정결과 거룩은 신앙의 시작이자 중심 척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 영혼을 세탁하는 시간입니다. 영혼이 목욕하는 시간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그분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 지를 일일이 소상하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제사의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죄 지은 인간이 제사와 정결 의식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레위기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고 얼마나 자주 강조하여 말씀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본문 말씀에 정결한 마음을 회복하여 자신의 예배가 회복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나아와 죄를 씻고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김삼환 목사님의 설교집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설교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행복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눈과 귀와 입, 이 세 가지만 낮추면 어디에서든지 행복하다고 합니다. 눈을 낮추고, 귀를 낮추고, 입을 낮추면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눈을 높이면 눈에 차는 사람이 없습니다. 콩까플이 씌어져서 결혼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콩까플이 벗어지면 남편이, 아내가 눈에 차지 않습니다. 불만이 생깁니다. 그런데 내 눈을 낮추면 남편이, 아내가 높아져 보입니다. 그러면 행복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귀도 마찬가지이고, 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만 높이기만 하고 낮아지지 않으면 만족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싫증이 납니다. 행복해지려면 귀와 눈과 입을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낮춰야 하는데, 예배를 잘 드리면 낮춰집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욕심과 이 세상에 둔 소망과 이 세상에 둔 온갖 즐거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영원한 것으로, 신령한 것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자신을 다시 낮추는 시간이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자신은 낮추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관점, 새로운 자세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또한 예배는 우리에게 있는 거품을 빼는 시간입니다. 거품은 빨래하는 세탁기 안에서나 유용하지 내 마음과 삶에는 필요 없습니다. 욕심이라는 거품, 사치와 허영이라는 거품, 명예욕이라는 거품, 우리 삶에 끼어있는 거품들, 우리 마음속에 차 있는 거품들은 우리 인생을 불안하게, 거짓되게, 허탄하게, 허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의 끝을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거품을 빼야합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 온갖 거품이 빠집니다. 예배라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온갖 거품이 빠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비우고 낮춘 자리에 진리로 채우고 사랑으로 채우고, 선하신 뜻으로 채우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삶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행위이며,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제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교우 여러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 신앙입니다. 함께 모여 신앙이 온전해지는 신앙입니다. 기독교 영성은 공동체영성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진정한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혼자 기도 많이 하고, 혼자 성경 많이 읽으면 굉장한 신앙의 경지에 이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신앙, 치우친 신앙, 건강치 못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 공동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의 본질이자 사명이 다섯 가지입니다. 예배, 교육, 선교, 봉사, 교제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교회의 시작이요, 중심이요, 핵심입니다. 예배가 잘못되면 교회도 잘못 됩니다. 교회가 잘못되면 교인도 잘못됩니다. 예배가 힘이 없으면 교회도 힘이 없습니다. 교회가 힘이 없으면 교인도 힘이 없습니다. 예배가 은혜가 없으면 교회도 은혜가 없습니다. 교회가 은혜가 없으면 성도도 은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예배드리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될 수도 있고,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것을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밀린 잠을 자든지, 등산이라도 하면 건강에 좋을 텐데, 웬 예배를 드리느냐고 말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 성수는 모세에게 주신 10계명보다 우선하는 창조질서의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6일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안식일에 쉬면서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고, 재창조의 날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 받는 날이요, 기쁜 날이요, 세상의 근심과 두려움과 고통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맡기는 날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새로워지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교우 여러분, 예배는 때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무슨 출근표에 도장 찍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께 얼굴 도장 찍으면 다음 일주일 동안, 별일 없겠지... 하는 기복적인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여러분 공적인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교회학교 교사 가운데는 “꼭 주일예배를 어른예배를 드려야 하느냐? 어린이 예배, 학생 예배는 예배가 아니냐? 나는 학생 예배가 더 은혜가 된다.”고 말하면서 교회학교 예배로 주일예배를 때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교사는 교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 자세가 잘못되어 있는 교사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여러분이 유치부 아이들이 먹는 식사를 먹고서 밥 먹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대학생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교회학교 교사들이 교회학교 예배를 드리면서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한다면, 예배가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든지, 아니면 영적 수준이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부, 중고등부 수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교사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교사가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함께 예배드리며 돕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잘 하려면 집중해서 예배드리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교회학교 예배만 드리고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교사들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교사의 역할, 두 가지 다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예배를 드려도 주일을 성수한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의 99.999%는 변명일 뿐입니다. 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시간이 아깝고 바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궁색한 변명이요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일 뿐입니다. 예배는 주일에 행하는 모든 봉사보다 우선합니다. 아무리 크고 힘들고 놀랍고 귀한 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예배드리는 것이 잘못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옷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위원들은 특별히 예배가 예배가 될 수 있게 잘 해야 합니다. 예배 안내 위원들,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 기도자, 찬양대, 특히 반주자들, 설교자, 헌금 봉사자, 방송실 봉사자들은 특별히 본인이 집중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방송실에서 유리벽 사이를 두고 잡담하며 예배를 드리고 예배의 기술자로만 참여한다면,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방송실 봉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예배를 잘 드리려면 3부 봉사자는 2부 예배를 드리고 2부에 받은 은혜를 가지고 3부에 집중해서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자녀들에게 주일예배에 대해서 잘 가르치십시오. 무엇이 우선인지 잘 가르치십시오. 자녀들이 수험생일 때, 또는 학원에 가는 것으로 인해 때우듯이 예배를 드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학생 때, 공부하게 한다는 핑계로 주일 예배에 자꾸 빠지고, 고3때니까 한 1년 공부에만 집중하고서 대학 들어가고 난 뒤에 열심히 신앙생활하게 하면 되겠지...하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한번 둘러보십시오. 그런 아이들이 고3 생활이 끝나고 신앙생활 잘 하는 지, 그들이 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둘러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부모들에게 그렇게 훈련받은 데로, 무슨 급한 일이 생기면, 세상적으로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고 뭐고 다 뒤로 하고, 그 일부터 해결하려고 하느라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그래도 우리 아들, 딸은 안 그럴 겁니다.”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영적인 힘과 지혜를 공급받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자녀들이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랍니까? 학생 때에는 공부와 신앙, 학교생활과 교회공동체 생활을 통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바른 인격과 신앙이 형성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신앙인 부모의 책임입니다.

  양정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 비전 선언문에 나오는 두 번째 비전을 아시지요? “우리교회의 비전은 준비된 예배, 하나님을 만나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집중하십시오. 예배의 성공자가 신앙의 성공자입니다. 신앙의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됩니다. 예배를 대충 드리는 사람이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정말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2010년 새해에는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예배를 점검해 봅시다. 우리 가족들의 예배, 우리들의 자녀들의 예배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온 마음으로 예배드립시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01월 10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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