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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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십시오  [2850]
· 설교 일자 : 2010년 01월 24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0장 38-42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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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십시오 (누가복음 10장 38-42절)
  여러분, 요즘에는 왜 사람들이 장수하는 지 아십니까? 왜 이 땅에 오래 사는지 아십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천국에서 사람들을 데려가야 하는데 천국 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죽 서서 많이 기다린답니다. 천국 입장 대기자가 많아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빨리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장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천국입장 대기자가 많은가 하면, 사람들이 하도 많이 성형수술을 해서, 천국 문 앞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답니다. 그래서 성형 수술을 많이 한 사람은 죽을 때 주민등록증을 꼭 지참하고 죽어야 신원 확인이 빨리 바르게 될 수 있으리라고 추측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신체의 일부는 잃어버리거나 이식하거나 성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은 성형을 하거나 화장을 해서 좋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꾸준히 가꾸고 훈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몸과 영혼으로 구성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몸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습니다. 동물들 중에서 흙을 파먹고 사는 동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렸을 때에 흙에서 놀다가 어떻게 하다가 흙을 입 안에 넣을 수는 있어도 평생 흙을 파먹으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흙으로부터 지음 받았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나보고 흙 파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말을 하지요. 그렇게 해서는 못 산다는 말입니다. 해외토픽 뉴스를 보니까 어떤 사람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급히 가서 검사를 해 보니 배 속에 못과 같은 쇠가 많이 있더랍니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그 사실을 듣고서는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더랍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쇠 맛이 어떤 가하고 먹어보았는데 별 맛이 없었다고 말 하더랍니다. 별 참 정신 나간 사람도 다 있습니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입니다. 그런 이상한 사람 외에는 밥을 먹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이 쇠를 먹는다든지, 흙을 먹는다든지, 석유를 먹는다든지 할 수 없고, 음식,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혼에 채워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세계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부분이며, 하나님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 영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 마을이 베다니라는 동네입니다. 그 동네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이렇게 삼남매가 사는 집이 있었는데,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일행을 편하게 모시려고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온갖 부엌일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아는 부엌일을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마르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끊고 끼어들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부엌일을 저한테만 떠넘기고 있는데, 그냥 두십니까?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마르다야, 네가 지나치게 염려하여 아무것도 아닌 일로 흥분하고 있구나.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택했다. 그러니 마리아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으로 보면, 마리아의 모습은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랍비의 발  아래 앉아 배우는 것은 전형적인 남자들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마리아를 꾸짖어 주시라는 자신의 요청을 예수님이 존중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후 준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만 오신 것이 아니라 열두 제자들도 함께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발을 씻고 편안하게 쉬도록 배려하며 식사를 준비해야 했으니 좀 바빴겠습니까? 여러분, 집에 손님 한 사람만 와도 마음이 분주한데 말입니다. 마르다의 이런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자신의 관심과 조급한 마음 때문에 짜증을 표현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가서 동생 마리아가 일어나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마르다의 말 속에는 마리아를 비난하는 어조가 담겨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리아를 그냥 그렇게 앉아 있도록 놔두시는 예수님께도 불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투였습니다. 마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잘 안 되었습니다. 사람이 분주하게 살면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고 영혼이 메마르고 공허해집니다. 분주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지속적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쉽게 고갈됩니다. 메마릅니다. 무디어지고 딱딱해집니다.
  덕 필즈라는 새들백교회 교육담당목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은 영적인 공허함이 위험수위에 이르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영적인 충만함이 없어지고, 영적 상태가 고갈되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기적이 된다, 참을성이 없어진다, 긍휼한 마음이 없어진다,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보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에게 쌀쌀맞게 군다, 반항적이 된다, 냉소적이 된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대체로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말뿐만이 아니라 생각도 비판적이 된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허함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채워보려고 한다.” 영혼이 덜그럭 거리고, 얕아질 대로 얕아지고, 혼란스럽고 평안치 못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기쁘지 못합니다. 편치 않습니다.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마르다는 존경하는 예수님께 매우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나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이 분주하고 너무 많은 일을 떠맡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왜 그곳에 계신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식사하러 오신 것으로만 생각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은 마르다의 봉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일의 양이 많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였습니다. 태도가 잘못되었습니다. 마르다의 예수님을 대접하려는 동기는 좋은 것입니다. 그 목적은 칭찬 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분주함 때문에 더 먼저 할 것을 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분주함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지적하신 말씀의 뜻은 우리의 영혼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분주하게 살고, 열심히 분주하게 봉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게 아주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이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덕 필즈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빡빡한 일정 한구석에 하나님을 ‘구겨 넣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에 덧붙여서 교우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의 분주한 일정 속에서 하나님을 내 팽개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하루하루의 삶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분주한 손을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먼저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연료를 넣어야 하면 주유소를 찾습니다. 주유소를 찾아서 주유기 옆에 차를 댑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주유통 캡을 엽니다. 그러면 주유소 직원이 주유기를 들어다가 열린 캡 구멍 안으로 넣어 연료를 넣기 시작합니다. 주유가 끝나면 자동차도 밥을 배부르게 먹은 사람 모양 든든합니다. 그리고 부릉거리며 힘 있게 달립니다. 우리의 영혼도 재충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차를 세우지 않으면 연료를 넣을 수 없듯이, 분주히 가던 삶을 잠시 멈추지 않으면 영혼을 재충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멈춰 서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돌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멈춰 서지 않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멈춰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도, 흔들린 마음과 복잡해진 생각과 곤두박질치는 감정의 파도를 잔잔하고 선명하게 하는 것도, 속이 텅 빈 영혼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멈춰야 합니다. 여기서 멈춰 서라는 말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180도 다른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주하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기도원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매일 기도원에 가거나 한적한 장소와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있겠습니까? 멈추라는 말은 몇 시간씩 기도하고, 몇 시간씩 성경 읽고, 몇 시간씩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잠시 멈춰 잠잠히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시편 46편 10절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시편 62편 1절 말씀에 시인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이렇게 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하나님을 부르는 것,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하나님을 찾아 만나려는 것, 예수님께 상의 드리는 것,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임하시도록 초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우 여러분, 길을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를 기다리며 심호흡을 하면서 속으로 “하나님!” 하며 불러봅시다. 운전하는 중 빨강신호가 녹색신호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주님, 제가 지금 잘 하고 있습니까?”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 1분이나 2분 정도 기도해 봅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어깨가 뻐근하여 기지개를 켜면서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 지혜와 도움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기 전이나 끄고 난 후 잠시 마무리하는 기도를 드려 봅시다. 밖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담배 한 대 피울 때에, 영혼의 긴 호흡을 내쉬어 봅시다. 슈퍼마켙에서 물건을 골라서 계산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잠시 우리 속에 복잡하고 탐욕스럽고 근심걱정 거리를 내 뱉어 봅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시를 갈망해 봅시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서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십시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멍 때리고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실 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실 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매일 여러 번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면 점점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생기게 됩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해 보고, 하루 하다가 안 되면 그 다음 날 다시 해 보고, 또 안 되면 주일 지나고 월요일에 다시 해보고, 이런 연습과 반복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여인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당시 유대교 랍비들은 여인에게 성경을 가르치느니 성경을 불태워버리는 것이 낫다고 했답니다. 이런 당시 관습에서 보면, 여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이나 그 발 앞에서 말씀을 배우는 마리아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말씀을 조용하게 경청하는 데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다른 많은 날들을 섬기고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최선을 선택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 베다니 촌의 마르다 동생 이 마리아는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예수님의 발아래에서 발견이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은혜를 갈망하는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고, 요한복음 11장 32절에는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님께서 오시니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또 요한복음 12장 3절에는, 지극히 비싼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겸손히 예수님 발아래 앉아서, 발 앞에 엎드리어, 발에 향유를 붓고 씻어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마리아를 ‘발아래 여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늘 주님 가까이 가려고 했고, 주님 가까이서 간구하고 교제하려고 했고,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려고 했습니다. 이런 마리아의 자세를 칭찬하셨습니다.
  지난 주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히브리서 11장 5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깝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혼을 재충전함으로써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찾아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지 않은 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않은 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하나님과 긴밀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경건을 연습하라, 경건을 훈련하라고 당부하고 명령합니다.  
  여러분, QT라는 용어를 들어 보셨지요? Quiet Time, 조용한 시간, 경건한 시간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경건한 시간, 큐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가라앉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단순히 인격 수양을 위한 시간과는 다릅니다. 일반 다른 종교나 수련단체에서 행하는 명상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나 자신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받고, 충만함을 받는 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만져주시는 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연구하고 나를 만지고 나를 고쳐주시고 나를 새롭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루 중 시간을 정하여 경건의 시간, 큐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 말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로마서 10장 14절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교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하나님께 묻고 대답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안 들릴 수 있습니다. 들려도 정확하게 못 듣고 다르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멋을 내고 골목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웬 젊은 사람이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그러더랍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의 생각에, 그래도 앞은 좀 늙었어도 뒤태는 처녀같이 보이나 보다 하고 기분이 좋아서 뒤를 돌아다보니까, 뒤에 리어커에다 생선을 싣고 따라오는 남자가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하면서 뒤 따라 오더랍니다. 그렇게 잘못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꾸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 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맑고 깨끗하다면 처음부터라도 잘 듣겠지만, 우리의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져 있고, 세상 풍속과 가치관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져 있고, 사탄, 마귀의 방해를 받아 잡음이 많이 들리기 때문에 잘 안 들릴 수 있습니다. 잘못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처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들으려고 하고, 만나려고 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믿음은 기도를 통해 표현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말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시고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경건의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너무 바빠서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경청할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지런히 봉사하기를 원하시지만 우선순위를 바로 잡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 하나님께 묻고 듣는 시간,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영혼이 만족을 얻는 시간, 목마르지 않는 영혼의 생수를 마시고, 허기지지 않게 하는 영혼의 양식을 먹는 시간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시고 만나주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해 보십시오. 영이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우리를 만나시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씀을 주시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십시오. 기도를 통해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십시오. 교우 여러분, 예배드릴 때에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드리십시오. 하루 일과 중 하던 일을 멈추고, 하던 생각을 멈추고, 가던 길을 멈춰서서 여러분의 영혼을 재 충전하십시오. 그렇게 영혼을 연습하고 훈련하여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수님과 대화하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경험하여 여러분의 영혼이 풍성해 지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여러분의 몸도 건강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0년 01월 2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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