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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대로  [3204]
· 설교 일자 : 2010년 10월 24일
· 본문 말씀 : 고린도전서 7장 20-2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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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 대로 (고린도전서 7장 20-24절)
  토종벌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10마리 중 9 마리는 낭충봉아부패병 등으로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한국토봉협회는 지난 19일까지 전국 2만 9334개 토종벌 농가를 대상으로 폐사율을 조사한 결과 약 95.13%가 폐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단위 폐사는 이상기온으로 꿀벌의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가 침입한 데 따른 결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폐사가 지구촌 전체를 휩쓸고 있는 벌 군집붕괴현상이라는데 심각성이 더합니다. 온난화, 기상이변, 전자파 등 원인도 다양합니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꽃가루받이가 어려워 곡식과 과일 농사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꿀벌의 집단 폐사는 생태 질서가 깨지는 신호탄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 가운데 40%가 충매화입니다. 곤충을 매개로 수분하는 식물을 충매화라고 합니다. 그 중 80%는 벌이 식생을 돕습니다. 대부분의 먹을거리가 충매화임을 감안하면 벌의 폐사는 인류의 식량문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재앙인 셈입니다. 벌의 폐사는 식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산소결핍 현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식물이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역할을 했는데 식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산소 결핍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사람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벌이 지구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일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존재하는 피조물들은 이 세상에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가 없어지면 그것과 연계된 것이 영향을 받습니다. 꿀벌 멸종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또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자리로 뒤섞여버리고 경계가 허물어지면 세상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물이 경계를 넘어 한 곳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물난리가 나고 홍수가 나서 재해를 입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 타락 후, 인간은 자기 자리와 존재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바르게 알지 못한 채, 나름대로 열심히 살긴 하지만 그 끝은 허무요,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것은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제자리 찾기 하는 삶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 즉 자기만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깨닫고 역할을 다하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존재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강원도 산골 산리초등학교에 홍연이라는 열일곱 살 늦깍이 초등학생입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는 초등학교 2학년 생, 그는 철없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정신없이 놀다가 엄마가 부탁한 빨래를 삶다가  빨래를 태워버리고, 밭에서 돌아와 야단치던 엄마를 피해 도망 나온 홍연이는 산리초등학교에 부임하는 스물한 살 강수하선생님과 만나게 됩니다. 강선생은 자기반 학생인 줄도 모르고 홍연에게 길을 묻습니다. “아가씨! 여기 초등학교가 어디 있어요?” 홍연은 자기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부끄러운 표정으로 초등학교 방향을 가리킵니다. 선생님이 간 뒤에 혼자 남은 홍연은 굵은 남자 목소리로 선생님의 흉내를 냅니다. “아가쉬!” “아가쉬!” 이 영화는 그 이후로 홍연이가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겪게 되는 성장과정을 그린 마음 따뜻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홍연이에게 선생님이 불러준 “아가씨!”라는 한마디가 동생들과 싸우기만 하고 철딱서니가 없던 그를 아가씨로 변하게 합니다. 자신이 아가씨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 이상 동생들과 다투지도 않고, 고무줄놀이도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홍연이를 아가씨로 부른 한마디가 그의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을 뜨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를 아십니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선생님이 늦깍이 초등학생 열일곱 살 홍연이를 ‘아가씨’라고 부름으로 그가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눈을 뜨게 되어 성숙한 아가씨로 변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싯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한 줌 흙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던 우리들을,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가 어딘지,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우리들을 불러 하나의 의미가 되고, 소중한 가치가 되고, 영원한 삶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람의 응답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홍수 심판을 준비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응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응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내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부 시몬을 부르셨고, 시몬은 응답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교회라는 말의 에클레시아 라는 말의 뜻은 무엇으로부터 불러낸 사람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사람을 부르시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즉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도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의아해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느냐 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느냐? 그들은 자기들을 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는지,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는지, 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도와주시는 지를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말씀은 자신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고 베푸는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복의 샘이 되어서 복의 샘물을 다른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12지파가 형성되도록 하시며 역시 복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자신들만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 열방에까지 하나님의 복을 나누고 베풀고 전하는 민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잊어 버렸고, 자신들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이방 민족의 우상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고, 자기들이 해야 할 사명을 내동댕이치고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 이것이 선민사상이지요,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 이것이 성민사상입니다. 이 선민사상과 성민사상에 빠져 교만할 대로 교만해졌습니다. 자신들의 현주소는 바로 알지 못하면서 이방민족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만 가졌습니다. 자신들이 대단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줄 알았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7장 7절에,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하고 잘나고 대단하고 능력이 많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적고 못나고 힘없고 부족하기 때문에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자아도취에 빠질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목적을 잊고서 목적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딴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니까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는지, 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하셨는지,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셨는지를 바로 알지 못하거나, 잊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신앙이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점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적에서 벗어날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는 목표를 벗어나간 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 목적을 행하지 않고 다른 것을 행하는 것, 다른 것을 성취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까 죄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질병이 생기고, 정신 질환이 생기고, 사회적인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여 오늘도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사람이 신앙인이요,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시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 쓸모 있는 존재에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 부르신 목적을 발견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고린도 교회 교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20절,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며 자신의 신앙을 보여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결혼한 후에 그리스도인 되었고, 여러분의 배우자는 아직 믿음이 없는 비신자라면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이혼을 하고 그리스도인과 다시 재혼할 필요가 없다고 본문 앞에서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그 자리임을 명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자리라는 것은 결혼, 직업, 사회적인 신분 등과 같이 실제적인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사과나무가 사과 열매를 맺고, 감나무가 감 열매를 맺고, 밤나무가 밤 열매를 맺고, 벼는 벼를 맺고, 무는 무를 맺고, 꽃은 꽃을 피우라는 말씀입니다. 사과나무가 생각하기를 ‘내가 감나무였다면 더 좋은, 더 많은 감을 맺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열심히 맺으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감나무였더라면, 밤나무였더라면, 배나무였더라면...이라고 생각해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종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일을, 더 중요한 일을, 더 멋있는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상상과 착각을 하느라 지금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거나, 지금 그 자리에서 잡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고 이제까지 해 오던 일이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라면 그대로 계속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직업은 그리스도인의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섬기고 전파하는 일임을 깨닫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깨닫고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형으로서, 언니로서, 동생으로서, 교회에서는 목사로서, 장로로서, 안수집사로서, 권사로서, 서리집사로서, 교사로서, 찬양대로서, 구역장, 권찰로서, 각종 봉사자, 사역자로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깨닫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직장에서도 여러분의 위치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깨닫고 행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무엇으로 부르셨는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위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다 목사해라, 선교사 해라 하면서 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방언의 은사를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다 목회자, 선교사가 되라고 기도원장이 많이 권했습니다. 오래 전에 저에게 어떤 분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상담이라고 하기 보다는 본인은 이미 마음으로 결정을 해 놓고서 나의 찬성 의견을 들으러 온 것 같았습니다. 말인즉슨, 신학을 공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과 결정을 하게 되었느냐고. 그는 대답하기를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도 받고, 새 삶을 살아야겠다는 강한 다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 체험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목회자의 길을 걷도록 부르신 것이 확실하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의 은혜는 믿는 사람들이 다 받아야 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 체험을 했다고 해서 다 목사가 되어야 하고, 선교사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다 목사가 되어야 합니까? 다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까? 다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이하에,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부르심은 각각 다르다, 부르심을 받은 대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저희 큰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부산기독청년들이 해운대 집회를 계획하여 준비할 때 촬영 스탭으로 함께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준비기도회에 참여하고, 열심을 내어 부산복음화를 위해 참여하였습니다. 그 때 내가 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준희야! 너 그러다가 군대 갔다 와서 신학공부하겠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랬더니 큰 아들이 대답하는 말, “아빠! 평신도로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목회자 안 돼.” 그 말에 나는 속으로 ‘그래, 평신도가 교회에서 할 일이 더 많고 더 중요하지.’그랬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가끔 아들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들은 교회에서 좋은 평신도로 섬겨야 한다. 긍정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될 수 있다면 훌륭한 장로가 되어 목회자를 돕고, 교회를 잘 섬기는 평신도가 되어야 한다.”
  있는 그 자리에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을 때에는 그 직분에 합당한 부르심이 있기에 직분을 받습니다. 그런데 직분만 받고 그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을 받는 것은 직분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직분에 합당한 삶, 직분에 합당한 봉사와 섬김을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오늘 정책 당회를 할 것입니다. 정책당회 시 제직들의 일 년 동안 제직회 참석, 십일조 생활, 공중예배 기도순서 담당 등 통계가 보고됩니다. 중직자도 마찬가지이고, 서리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직이 되었으면서도 제직회를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 십일조 생활도 안 하고, 년 중에 예배 안내 위원, 봉헌위원으로도 한 달 네 번 봉사하는 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신앙이 무엇이며,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어떻게 사랑한다는 고백입니까? 주님께 충성한다는 말은 무엇으로 충성한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주일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리집사 임명을 하지 않으면 섭섭하네, 그럴 줄 몰랐네, 상처받았네, 교회 옮겨야겠네... 그런 소리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껍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급장 달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알맹이를 채우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살도록 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역할을 발견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천국에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면서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 닮은 형상으로 회복이 되고, 천국 백성답게 변화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신앙생활은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은 업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태도, 자세라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신앙생활은 최고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되느냐라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신앙생활은 형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에베소서 4장 1절에, 성도들에게 말씀하기를,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는 데 어떻게 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까? 부르심을 받은 대로 진실하게, 신실하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깨닫고 발견하여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합당하게 행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칭찬 받고, 영원한 기업을 상으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10월 2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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