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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2995]
· 설교 일자 : 2011년 03월 06일
· 본문 말씀 : 호세아 10장 12-15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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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땅을 갈아엎으십시오 (호세아 10장 12-15절)
  어떤 부인이 외국여행을 가면서 남편에게 메모를 써서 냉장고에 붙여 놓기를 이렇게 붙여 놓았답니다. “까불지 마라! 까! 까스 조심하고 불! 불조심하고 지! 지퍼 조심하고 기다리시오. 마! 마누라는 돌아올거니, 라!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으시오.” 그것을 본 남편이 냉장고에 답장을 써서 붙여 놓았답니다. “웃기지 마라! 웃! 웃음이 절로 난다. 기! 기뻐 죽겠다. 지! 지퍼는 내 자유다. 마! 마누라가 오든 말든. 라! 라면은 먹든 말든...” 실제로 있었던 것인지, 누가 웃기려고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면 그 부부는 머지않아 따로국밥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듣고 재미있게 웃는 유머나 조크는 결혼과 부부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것도 겨혼 생활을 안 좋게 표현하고, 부부 사이가 안 좋은 내용으로 만들어진 유머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들으면 다들 재미있게 웃습니다. 공감이 된다 이거지요. 여러분, 부부가 결혼할 때에는 죽고 못 살 것 같아 결혼해 놓고서 살아가면서 서로 멀어지고 애정이 식고 서로에 대해 무덤덤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신혼 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가 그랬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 호세아를 떠나 야반도주한 고멜이라는 여인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다른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였습니다. 특별히 1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마음을 속히 버리지 않는다면 주의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는 원인은 언제나 그들이 두 마음을 가진 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신을 동시에 섬겼습니다. 사실은 바알을 섬기느라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나니 그 마음에 온갖 죄들이 쌓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버리고 자기 욕심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죄악을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묵은 땅을 갈아엎는 것이었습니다.
12절 중반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라고 말씀합니다.
  묵은 땅이란 농사를 짓지 않고 내 버려둔 땅입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돌맹이들이 많이 있는 땅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았으니 겉이 딱딱해진 땅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아 땅이 기름지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방치된 땅은 씨앗을 잘 자라게 할 영양분이 토양 속에 없습니다. 그것이 묵은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묵은 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에도 묵은 땅이 있습니다. 영적 묵은 땅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묵은 땅이란 두 마음이 되어버린 마음을 말합니다. 두 마음이 된 것이 오래되어 그렇게 굳어질 데로 굳어진 마음입니다. 헛된 것을 믿은 결과로, 헛된 것을 좇은 결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을 추구한 결과로, 내일이면 변해버릴 유행과 같은 것을 따라 산 결과로 마음이 묵은 땅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잊고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은 두 마음, 세 마음이 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이 자연과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우리의 건강, 우리의 물질, 우리의 시간, 우리의 능력, 우리의 지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게 됩니다. 탐욕과 돈에 대한 집착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자기 욕심대로 삽니다. 하나님 앞에 묵은 땅이 되어 갑니다.
  지난 목요일 다 저녁때에 CTS 방송에서 최 선규 정 애리씨가 진행하는 간증시간이 방영되었습니다. 거기에 가수 구 창모씨가 나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송골매라는 노래하는 그룹에서 노래하다가 솔로 가수가 된 구 창모씨가 구 창모집사로 나왔습니다. 그는 본래 모태신앙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동북아시아에 가서 사업을 하는 데 너무 잘 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녹용을 수입하는 사업을 했는데, 34억 원어치를 한국에 수입하여 팔려고 하다가 잘못되어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동안 사업이 잘 되는 것에 대해, 자신이 타고난 복이 있어서 자기는 하면 무조건 잘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는 것마다 잘 되니 당연히 자기 복인 줄 알고, 자기는 당연히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고, 잘 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에 실패하고 나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깨달았었지 못했다고 고백하더군요.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았던 자신을 회개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게 바로 마음이 묵은 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영혼이 비실비실 해져가고 있고, 영혼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그 영혼이 묵은 땅이 되었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인데도 기도할 줄 모르고, 기도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꾸만 다른 데서 방법을 찾고 세상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다면 묵은 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찬양을 부르는데도 가슴 속에서부터 솟아나오는 고백과 마음이 없다면 묵은 땅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주일에 교회는 나오지만 월요일이 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겉으로는 헌신적으로 보이지만 열매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면, 알맹이 없이 형식만 갖추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재물을 획득하고 그것을 얻는 데 모든 정력을 다 쏟아 붓고 있다면, 묵은 땅, 굳은 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에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한 때는 저랬지.. 좋은 때다...’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묵은 땅이 된 것입니다. 또는 그런 사람을 불러다가 ‘너무 열심히 하지마! 그러다가 상처받아!’ 그렇게 말해주며 걱정해 주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 자신이 열심도 식고 감사도 식고 충성도 식은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자세로 바뀐 묵은 땅이 된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은 십자가를 바라보아도 감격과 감사가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걱정스러운 상태의 묵은 땅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묵은 땅이 된 마음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나 묵은 땅이 있습니다. 어느 한 부분이 묵은 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하나님 앞에 다 내 놓지 못하고 자기만이 고집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식에 관한 부분이 묵은 땅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만의 생활, 내 신앙 내가 알아서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만 간섭하세요!, 이것은 내 영역이니 건들지 마세요! 하는 갈아엎기를 거절하는 묵은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 사용 부분이, 어떤 사람은 습관이, 어떤 사람은 자기 경험과 주장이 묵은 땅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갈아엎어야 할 묵은 땅입니다.
  그런데 묵은 땅을 기경하는 일,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쟁기로 갈아엎는 것은 힘들고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이 힘들다고 그 땅을 그냥 놔두면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씨앗이 뿌려지지 않습니다. 뿌려도 뿌려진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씨앗을 새가 날라 와서 먹어버리거나 땅이 딱딱해서 씨앗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기 때문입니다.묵은 땅을 그냥 방치해 두면 딱딱한 길바닥처럼 됩니다. 길바닥이란 무엇입니까? 온갖 것이 밟고 다니는 곳이 아닙니까? 우리 마음이 묵은 땅이 되고 그리고 길바닥처럼 딱딱해지면 세상의 온갖 잡스러운 것, 걸러지지 않은 온갖 속된 것이 들락거리게 됩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말씀은 과거의 마음을 돌이키고 새롭게 하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가졌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새롭게 변화되도록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바꾸라는 회개 촉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의를 심기는커녕 오히려 죄악 가운데 방치해 두었던 마음을 갈아엎음으로 새롭게 변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레미야 4장 3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촉구한 회개의 권고와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묵은 땅을 기경하라,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묵은 땅을 갈아엎기만 하면 비를 내리신다고 약속하십니다.
  12절 하반절의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비는 하늘에서 내려져 땅을 촉촉하게 적시고 모든 생물들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이스라엘에게 의의 은혜를 풍족하게 내리사 구원받도록 하시리라는 뜻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시겠다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슬퍼하고 울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뻐하기 위해 죄에 대해 슬퍼하고 죄를 범한 자신을 향해 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통회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새 삶이 시작됩니다. 희망이 싹터 오릅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네 가지를 기억하여야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죄의 능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죄가 우리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는 누구나 다 침몰시킵니다. 죄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렇게 죄를 지었고, 다윗도 그렇게 죄에 무너졌습니다. 죄의 능력 앞에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습니다. 이 땅의 지혜자도, 왕도, 재벌도, 누구든 죄의 능력 앞에 넘어집니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죄를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죄를 지으면서 이 죄는 대수롭지 않은 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는 곧 암세포와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세포 하나이지만 점점 몸집을 불려서 마침내 다른 장기에까지 퍼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영적 암세포가 죄입니다. 둘째는 죄의 결과를 깨달아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영적 암세포와 같다고 했습니다. 암세포를 죽이지 않으면 결국 암세포에 의해서 우리가 죽습니다.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력을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마음 가운데 체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점점 쌓여 우리의 영혼에 치명타를 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죄를 회개하고 정결케 되면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삶, 자유의 기쁨으로 가득 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는 죄의 해결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주님을 향해서 나의 믿음을 고백하는 길 외에는 죄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봏ㄹ로만이 죄가 씻겨집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수도사였습니다. 수도사는 죄를 지으려고 해도 죄짓기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수도원에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간음죄를 지을 수도 없고, 도적질할 것도 없고, 명예나 권세를 얻기 위해 출세할 필요도 없으니 욕망의 노예가 될 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 기도와 명상을 하며 사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틴 루터는 수도원에서 자신의 죄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그는 “내 죄, 내 죄, 내 죄입니다.” 하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아무리 회개하고 고행을 해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고행이란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하려는 노력인데, 자기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수행을 하게 하여 죄를 씻어보려는 행위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스칼라 산타’라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성 계단 교회’라고 불립니다. 그 성당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올라가셨다는 계단을 예루살렘에서 뜯어다가 그 성당 안에 옮겨 놓았습니다. 후에 많은 사람이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여기에서 기도하면 연옥에 있는 죄인도 구원을 받는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루터도 그곳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바닥에 입을 맞추고,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다 올라갔는데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마치 큰 불빛을 보는 것처럼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지 무릎으로 기어오른다고 죄 사함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개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예수님을 가장 놀랍게 체험하는 수단입니다. 시원하고 유쾌해집니다. 십자가의 진리와 용서, 감사의 원리를 깨닫게 되며, 회개의 기쁨과 능력을 맛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넷째는 성결된 삶의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결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계속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도,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합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보면, 여호와의 신이 임해서 예언까지 했던 사람이지만, 그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점점 그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양심이 무디어지고, 점점 더 죄를 물먹듯 마시고 죄와 타협하면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묵은 땅처럼 된 마음의 땅을 갈아엎어야 할 때에 갈아엎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의 결과를 깨닫고, 죄의 해결 방법을 깨달은 후에는 성결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악의 묵은 땅을 갈아엎어버리고 나서 그냥 놔두면 다시 묵은 땅이 됩니다. 갈아엎은 땅에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 땅에 씨앗이 뿌려져 씨앗이 뿌리를 내고 싹이 터 올라와야 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야 합니다.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신앙 고전에는 “영적 성장을 원한다면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지나친 자유를 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감각을 억제하여 자신을 헛된 쾌락에 빠져들지 않게 하십시오. 자신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회개를 하십시오. 그러면 경건해 질 수 있습니다. 회개는 여러분을 선한 일로 인도하지만, 방종은 선한 일을 잃게 합니다.”

  오는 9일 수요일은 교회 절기로 성회수요일입니다. ‘속죄일’ 또는 ‘참회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까지 40일간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그 안에 있는 주일은 날짜에 포함을 시키지 않습니다. 사순절 기간이 40일인 것은 원래 1세기에는 사순절이 단 40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40시간 동안 있었던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가 6일간의 한 주간을 성주간으로 지켰고, 이 6일간이 1년의 365일의 십일조로서 36일간으로 늘어났습니다. 주후 731년 경 샤를마뉴 대제 시대에 4일이 첨가되어 지금처럼 40일간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으신 것,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했으며,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으로 가는 길에서 40일간 금식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에서 40일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순례의 절기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영적인 훈련 받는 기간입니다. 그 시작이 회개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회수요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의 심령으로 주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우리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절기입니다.

  모든 씨앗은 파종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뿌려야 할 시기에 뿌리지 않으면 싹이 터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가 차면 하나님의 공의로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지적하고 가르쳐 주실 때, 그 때가 바로 회개할 때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을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바로 이 절기입니다. 봄이 되어 농부가 밭을 갈아엎어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이,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에 죄는 미워하시지만 회개하는 죄인은 무한히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은혜의 비를 내려 주십니다. 공의의 비를 내려주십니다. 그때에 생명의 씨앗, 말씀의 씨앗,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회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른 신앙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바른 자리로 돌려놓고 싶으십니까? 어긋난 걸음을 바른 길로 돌려놓고 싶으십니까? 궤도를 이탈한 삶이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불안과 고통과 불행이 있습니까?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떠난 것 같습니까? 뭔가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같이 삶이 어긋났습니까?
  멈춰버린 기계를 다시 잘 돌아가게 하려면, 먼지가 끼고, 녹이 슬고, 이물질이 달라붙은 기계를 다시 잘 돌아가게 하고 싶다면, 먼지와 녹과 이물질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쳐집니다. 그래야 다시 제 기능을 다 하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을 회복하는 길은 묵은 땅을 갈아엎고 회개하는 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는 길은 은혜와 복을 받을 그릇을 내밀면서 가득 담아 달라고 밤낮을 부르짖고 기도하며 때를 쓴다고 되지 않습니다. 먼저 은혜와 복을 담을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합니다. 깨끗이 비워져 있어야 무엇을 담아도 담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교우 여러분, 회개의 쟁기질을 하지 않아 묵을 데로 묵고, 단단해질 데로 단단해진 여러분의 마음을 갈아엎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은혜의 비를 내리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의의 비를 내려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시려고, 회복의 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닭이 알은 낳지 않고 모이만 축내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닭을 묵은 닭이라고 말합니다. 묵은 닭이 있는 닭장에 새 닭을 넣으면 어떻게 되는 지 아십니까? 주인이 닭장에 모이를 주면 새 닭들은 좋아서 꼬꼬댁거리며 모이통으로 달려와 머리를 서로 들이밀면서 모이를 쪼아 먹습니다. 그런데 묵은 닭은 어슬렁거리며 기웃 기웃 다가와 훑어보다가 새 닭의 모가지를 쪼아 쫓아냅니다. 그리고 혼자 배불리 먹습니다. 이 묵은 닭은 고기가 질겨서 잡아먹기고 힘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묵은 땅이 되어버리면 닭장 안의 묵은 닭처럼 살아갑니다. 회개와 회복이 없는 묵은 닭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나 혼자만의 회개에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회개로까지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부터 회개의 쟁기질을 해야 할 때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번 사순절 기간에 여러분에게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011년 03월 06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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