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중독 (시편 37편 1~11절) |
지난 14일 오후 9시 경 부산에서, 버스에 타고 있던 60대 남자 승객이 버스에 탄 40대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함께 탄 50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19일 저녁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폭행을 휘두른 남편은 60대 남자 승객에게 “왜 남의 부인에게 신경을 쓰느냐?”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반응으로 시작했습니다. 폭행을 하는 남편을 말리는 부인을 남편이 버스 속에서 폭행하는 장면이 다 녹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이제는 남자는 남자에게만, 여자는 여자에게만 양보를 해야 하는가 봅니다. 도대체 폭행을 휘두른 이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왜 그랬을까요? 더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요? 무슨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이 있어서 일까요? 부인이 혹시 전에 버스에서 자리양보 받은 일로 좋지 않았던 과거가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리 그대도 그렇지 자리 양보해 준 매너로 보나, 나이로 보나 어른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요. 무엇이 그렇게 못 마땅한 것일까요? 부인에게 불만이 있는 것일까요? 사회에 불만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것일까요?
못 마땅한 것,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말로 하면 불평이 되고, 행동으로 하면 공격적 행동이나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불평의 근원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울면서 태어나서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걱정, 염려하는 것과 불평하는 것입니다. 걱정하는 것과 불평하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시편 37편은 1절에 불평하지 말라는 충고로 시작됩니다. 다윗의 시입니다. 1,7절을 보면, 악한 사람이 잘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고,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가난하고 고난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모순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불평이 많았었나 봅니다. 그 불평은 사실 우리들의 불평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주위를 둘러보면서, 악한 사람이 돈도 더 잘 벌고 떵떵거리며 살고 법에 걸리지도 않으면서 꼴 보기 싫게 잘살고 있고, 선하게 살려고 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은 가난하고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오히려 악한 자들에게 당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 못 마땅하고 불평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불평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불평은 마약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불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불평을 합니다. 불평이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불평을 통해서 자신의 불만스러운 것을 해소하려고 하지만 절대로 불평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불평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져야 하는 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평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자꾸만 하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불평하는 습관이 생기고, 나쁘게 말하면 불평에 중독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평에 중독되어 불평에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불평을 버리지도 못하면서도 불평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불평 중독에 걸린 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불평 중독을 고치지 못하여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고, 복음을 복음으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면서 안식하고 재충전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불평을 충전하여 불평 중독에 걸려 부정적인 교회생활을 하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에 중독됩니다. 그리고 불평에 중독이 되면 합병증처럼, 다른 악들이 같이 드러납니다. 남에 대해 불평을 잘 하는 사람은 험담도 잘 하고, 비난도 잘하고, 원망도 잘 하고, 불평하게 만드는 사람에 대해 분노도 잘 합니다. 버럭 화를 잘 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내면서 그냥 놔두지 않으리라고 다짐합니다. 증오심, 적개심, 복수심이 줄 지어 생깁니다.
교우 여러분, 불평, 험담, 비난, 원망, 분노, 증오심, 적개심, 복수심을 갖고 사는 사람치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치고 얼굴이 밝고 편안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불평은 나쁜 입 냄새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는 냄새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입 냄새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불평하는 소리를 하면 쉽게 불평하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내 자신이 불평하는 소리는 불평이 아니고, 정당한 주장이고, 또는 내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지난 주간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떠오는 것이 운전할 때입니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운전하면서 짜증이 많이 나고,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왜 저렇게 운전하지?” “왜 빨리 안 가는 거야?” “뭐 운전을 저 따위로 배웠지?” “아니,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가 거칠게 운전을 하네.” “아무데서나 중앙선을 넘어 차를 돌리네!” 특히 고속도로에서 주행선과 추월선을 구분하지 않고 달리는 갑갑한 차들을 보면 속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릅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려면 주행선으로 달려야지 추월선에서 100놓고 달리면서 비켜주지도 않으면 어떻게?” 지난 한 주간에는 그동안 내 입에서 나오는 미처 불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불평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불평을 줄이려고 애를 써 보았습니다. 불평이 줄어드니까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여유도 생기고 너그러워집니다.
교우 여러분, 불평 전문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불평에 중독이 된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틈만 나면, 사건만 터지면, 문제와 장애물을 만나기만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평소리와 원망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원망은 끊임없이 불평하는 나쁜 태도를 말합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바다 앞에 섰을 때, 그 때에도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홍해 바다까지 끌고 와서 죽게 한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민수기에 그들이 어떻게 불평하고 원망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해바다를 기적을 체험하며 건넌 뒤에도 사흘 길을 걷다가 물을 얻지 못했더니 또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마라의 쓴물에 나무를 하나를 던져 단물로 바꾸어 백성들이 물을 마실 수 있게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셔서 먹여주셨습니다. 얼마 안 있다가 그들은 종살이 하던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들먹이며, 고기를 안 먹었더니 기력이 떨어진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여호와의 불을 보내어 이스라엘 진영 끝을 불사르게 하셨습니다. 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을 꺼 주셨습니다. 민수기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는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민수기 13장에는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 이스라엘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어 그 보고를 듣습니다. 12명 중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고를 하자 온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밤새도록 원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중 출애굽 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40년 동안 헤매다가 광야에서 다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6장에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당을 지어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면서 불평을 해 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땅이 갈라지게 하셔서 그곳에 빠져 죽게 하고, 그들을 따라 향로를 들고 있던 사람 250명을 불살라 죽이셨습니다. 20장에는, 그들이 광야 길을 이동하여 르비딤이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다고 또 불평하고 원망하며 모세에게 자기들을 목말라 죽게 한다고 대들었습니다. 21장에는 광야 길을 우회하여 간다고 해서 백성들이 속이 상해가지고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했습니다. 광야에 와서 죽게 한다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하찮은 음식이나 준다고 불평하며 원망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그래서 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놓고 쳐다보는 사람은 불뱀에 물렸어도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 40년 동안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장 열심히 가장 잘 했던 것은 불평하는 소리, 원망 소리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 죽이셨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렇게 불평 전문일까요? 그들만 불평에 중독된 사람들인가요? 한번 우리 자신을 들여다봅시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불평하지 말라고 세 번씩이나 말씀합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태도는 의로운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단정지어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불평, 불만, 원망은 죄를 짓는 일이요, 오히려 악을 스스로 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해롭고 악한 것입니다. 불평은 악을 만들 뿐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기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깨집니다. 점점 사라집니다. 또한 우리가 불평할 때에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중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불평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불평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불평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릴 기회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이렇게 불평은 행복을 쫓아내고 불행을 부릅니다. 불행하기 때문에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평하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이 불평입니다. 또한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인 경우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심인성 질병이 많습니다. 심인성 질병이란 심리작용에 의해 생기는 질병을 말합니다. 의사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료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심리적 원인에 기인한 질병으로 병원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아보십시오. 1주일도 안 가서 소화불량이 생기고, 곧 신경성 위염 증세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편두통, 불면증, 고혈압, 심장질환도 줄 지어 찾아 올 것입니다. 그야말로 맘의 불편이 몸의 불편이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불평은 건강에 악순환이 벌어지게 합니다. 불평이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질병이 생기게 하고, 질병이 생겨 아프니까 불평을 하고, 그래서 또 불평하고 질병이 더 생기고, 또 더 불평하고 더 질병이 생기고.... 이런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불평은 더 큰 불평거리를 만들어냅니다.
불만스러운 마음은 불평하는 소리를 내게 하고, 불평하는 소리는 점점 더 화를 내고 격한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큰 길이 자동차들로 붐벼서 시간에 쫓긴 목사님의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고급 외제차 한 대가 곡예를 하듯 앞으로 끼어드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때 핸들을 잡은 사람은 욕지거리가 마구 튀어 나오기 십상이고, 최소한 차 안에서 ‘뭐, 운전을 저 따위로 해!’라면서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때는 교양도 인격도 외출하고 없습니다. 목사님은 빨간 신호등에 막혀 차를 세웠습니다. 그 차도 당연히 앞에 섰습니다. 목사님은 차 안에서 실컷 불평하는 소리를 하다가는 열을 받아서 화가 났습니다. 마침내 화를 참지 못해 차에서 내려 앞의 운전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뭐, 차를 그렇게 몰아요! 사고 날 뻔 했잖소!” 그러자 난폭 기사가 머리를 차창 밖으로 내밀고 미안해하면서 수없이 머리를 숙이며 “미안합니다. 목사님,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날 보고 목사라고? 어느 교회에 다녀요? 내가 그 교회목사에게 전화해서 교인들 교육을 잘 시키라고 야단을 쳐야겠어!” 그러자 난폭 기사는 난감해 하면서, “아이쿠! 목사님, 저는 목사님 교회 집사예요.” “어헝! 우리교회 집사라구? 아뿔싸...” 불평은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는 자신에게 유익이 안 됩니다. 유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를 끼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깨지게 합니다.
독일에서 화를 낼 때 우리 몸의 변화에 대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불평할 때 누군가에게 막 해대는 소리, 화를 낼 때 즉 분노에 가득 찬 사람이 말을 뱉어낼 때의 입김을 받아 농축시켜보니 노란 액체가 모였습니다. 이 액체 0.5cc정도를 돼지에게 주사했더니 돼지가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즉사해버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입에서 나가는 독성이 얼마나 독한가를 알게 해준 실험입니다. 화를 낼 때의 입김을 호박이나 오이 같은 넝쿨의 생장점에 대고 불면 생장점은 하루도 못가 이내 시들어 버린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한 시간 동안 내뱉은 독소는 80명의 사람을 해칠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독소가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화를 낼 때 나오는 독성은 공기를 금방 독성화시킵니다. 우리 속담에 "장맛이 나쁘면 집안이 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메주를 담가서 새끼줄로 엮어 벽이나 천장에 걸어두는데 그러면 집안의 온갖 미생물이 메주에 달라붙어 그것을 발효시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가족간에 다툼이 잦으면 그 다툼의 홧김에 의해 메주 균이 죽게 됩니다. 그래서 메주가 시꺼멓게 되고 결국 장맛이 고약해지는 것입니다. 옛말에 싸움 잦은 집안 아이들이 온몸에 유난히 부스럼과 종기를 달고 산다고 했습니다. 싸울 때 독한 입김이 자녀들의 건강에 해를 끼칩니다. 어린 아이를 기르는 부부가 가끔 ‘애가 어리니까 잘 모르겠지’하는 마음에 부부가 아이 보는 앞에서 서로 악을 쓰며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일수록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감기를 달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화를 낼 때보다 불평하는 소리는 독성이 덜 하겠지만, 불평은 분노로, 증오심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윌 보엔 목사는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세상에 불평을 근절하자는 의식 개선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생활 습관이 바뀌려면 최소 21일 3주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21일간 불평없이 살아보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평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도 썼습니다. 그 책에는 불평을 참아내는 시도를 해 본 뒤 사람들에게, 만성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직장 생활이 확 피었고, 전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편지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불평은 믿음의 적입니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불평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민하게 반응을 하셨을까요?
염려는 우리 마음의 믿음을 벌레 먹게 만들고 썩게 만드는 것이라면, 불평은 우리의 믿음을 깨뜨립니다. 불평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썩은 쓰레기의 입냄새입니다.
불평은 믿음을 깨버립니다.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사건과 사람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곧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해 불평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시고, 어떤 뜻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못 마땅하게 느껴 불평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최상의 일을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적 환경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므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데, 불평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노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로는 “믿습니다! 믿슙니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과 원망을 같이 하고 있다면 우리의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소리에 믿음이 오염되어 말의 권세, 믿음의 권세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본문 3절에,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5절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참고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불평은 은혜를 잊게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평할 때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늙은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불평하는 소리를 달고 살았습니다. 어느 해에 감자 농사가 잘 되어 그 부인의 밭에 감자가 많이 수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이 생각하기를 ‘이번에는 불평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길에서 그 부인을 만나자 “감자가 잘 되었다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그러자 그 부인은 “감자는 잘 되었습니다만 작년에는 썩은 감자가 많아서 돼지를 먹였는데 올해에는 썩은 감자가 없으니 뭘로 돼지를 먹이지요?”라며 또 불평하는 소리를 하더랍니다. 불평은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소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불평과 감사는 물과 기름처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불평이 마음에 생기면 감사하는 마음은 사라집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불평하는 소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행복을 간직할 수도 없고, 행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는 우리 입을 물이 솟아나오는 샘에 비유한 것이 정말로 맞는 비유입니다. 한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같이 나올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우리 입에서 쓴물과 같은 말들이 나오지 않으면, 단물과 같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한 번 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 불평, 불만, 원망, 험담, 비방, 수군수군 대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여러분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 칭찬하고 격려하고 감사하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이겨낸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철저히 경험한 것을 신앙고백적으로 시를 써서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불평하지 말라는 것은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불평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팔자려니 운명이려니 하고 비뚤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에 대한 의욕을 죽이고 소극적으로 세상 흐름에 자기를 맡기는 타협주의자나, 세태 영합주의자나, 무조건 맹종하는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인간이 만든 이 부조리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이 불평하는 인간보다 더 관심 갖고 계시고, 그의 역사 계획에서 이런 부조리를 다 아시고 반드시 그 처리를 하실 것이니 사람은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기다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고, 선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며 온유한 사람으로 살라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문제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믿고 온유하게 살라고 말씀합니다. 불평으로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해가 되고, 악을 행할 뿐입니다.
교우 여러분, 날씨가 무덥습니다. 금년 더위는 9월까지 간다는 예보도 있습니다. 더위를 잘 견디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보다 더 더위를 타고 신경질이 많지는 않습니까? 불평을 달고 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짜증낼 것 다 내고, 신경질 부릴 것 다 부리고, 투덜대고 불평, 원망하는 소리를 다 쏟아내면 시원해질까요? 불평을 많이 하면 더 열 받는다는 것 아시지요?
불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집에서도 불평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왔다가 집에 가서는 교회에 대한 불평, 목사에 대한 불평, 당회에 대한 불평이 많습니다. 그런 집 아이들은 주일날 담임목사를 보고서도 인사를 안 합니다. 집에서 맨 날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나한테 인사 안하는 집 아이들 명단을 따로 작성을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 교회생활에 불평이 많은 사람에게 이단 신천지가 접근한다고 합니다. 이단한테 인기 있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불평 중독에 걸려있지는 않습니까? 벗어나십시오.
교우 여러분, 바라보는 눈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세상이 달라 보이면 삶이 바뀝니다. 불평이 줄어들면 들수록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불평을 없애 버림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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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24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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