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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3880]
· 설교 일자 : 2011년 10월 30일
· 본문 말씀 : 로마서 1장 17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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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람데오 (로마서 1장 17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밤에 성경을 너무나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쳐다가 불을 켜고 읽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는 것은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해도 그것을 이루는 수단이 옳지 않으면 칭찬 받지 못합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이라는 이단 교주는 라스베거스에 가서 슬럿머신으로 도박을 하면서 그것이 들통이 나니까, 교회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랬다고 했습니다. 목적이 좋더라도 잘못된 수단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중세 로마 율리오 교황은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대성당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술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 라파엘의 바티칸 벽을 가득 채운 벽화들은 모두 그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1506년 로마에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워낙 방대한 건축이었기 때문에 율리오 교황은 건축이 진행되는 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1513년). 그의 뒤를 이어 레오 10세가 교황이 되었습니다. 씀씀이가 헤펐던 그는 늘어나는 베드로 대성당 건축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를 증명하는 증서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용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면죄부를 팔아 건축비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전건축의 목적은 좋았으나 그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이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한편, 어느 여름날, 변호사 한 사람이 터벅터벅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를 퍼부었고, 곧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그네는 별안간 강력한 번개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는 일어나려고 애쓰며 “성 안나여! 저를 구해주소서. 구해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나이다.”라고 기도하며 신음했습니다. 그 변호사는 살아났고, 자기가 약속한 대로 수도사가 되었지만 수도원에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늘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때가 1505년이었으며 그 변호사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1511년 경,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깨닫고 고해실에 들어가 6시간 동안 참회했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흐느끼며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라고 자신에게 물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공부에 집중해 보아도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고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를 끈덕지게 괴롭혀 온 질문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의롭지 못한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원 시절부터 인간 ‘구원’의 문제에 관해서 깊이 사색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모든 종교적 노력을 다 해 보았습니다. 추운 겨울 골방에서 기도하며 “이만큼 추위의 고통을 겪으면 하나님이 만족하실까?” 오랫동안 금식하며 “이만큼 굶주림의 고통을 쌓으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하며 고행과 금식을 하며 정성을 쏟아 보았으나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선행을 하고 공적을 쌓는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틴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에서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읽던 중 ‘의(義)’라는 단어가 ‘의로운 상태’를 뜻할 뿐 아니라 ‘누군가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일 뿐 아니라 죄인들에게 의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오늘 본문 말씀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그토록 오래 찾아 해매였던 말로 다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감겼던 눈이 떠지며 밝은 빛을 보듯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신앙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은총의 순간이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순례 때 베드로 대성당 돌계단을 무릎에서 피를 흘리며 기도하며 올라가는 비 복음적인 고행을 중단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는 말씀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해줍니다.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며 인간의 구원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당시 가톨릭교회의 일반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복음이 왜 복음입니까? 영원한 형벌, 진노, 멸망 아래에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마르틴 루터는 독일의 마인츠 지방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마인츠 지방의 대주교 앨버트는 대주교이자, 그곳을 통치하는 제후였습니다. 그때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완공하기 위해 현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인츠의 제후 앨버트와 거래했습니다. 마인츠 지방에서 면죄부를 팔 수 있도록 허락할 테니 그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앨버트가 수족처럼 부리는 심복 가운데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는 십자가와 교황의 면죄부 교서를 군중들 앞에 높이 내세우고 웅변조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들으시오. 하나님과 성 베드로가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의 구원과 세상을 떠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유혹과 위험 가운데서 맹렬한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될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죄를 슬퍼하고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기부금을 바친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죄의 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들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들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귀를 여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너희들을 낳고, 양육하고 기르고 재산까지 남겨 주었는데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도 잔인하고 인색해서 조그만 돈을 내어 우리들을 건져 내려고도 하지 않느냐?’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이러면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교회의 권세를 남용하는 데 격노했습니다. 그는 그 면죄부를 파는 자들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논쟁을 벌일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써서 테첼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비텐베르크 성문 앞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소망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종교개혁의 불길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선행과 면죄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임금, 왕후, 대감독은 금화 25 풀로린, 수도원장, 고위 성직자들, 고위 귀족들은 금화 20, 하위 성직자들과 하위 귀족들은 금화 6, 평민들은 금화 한 개를 지불하고 면죄부를 샀습니다. 죄 용서를 받는 것도 등급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행되었습니다.
  구원의 길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루터의 눈에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영혼의 구원을 위해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만들어 돈을 주고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성도들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 어떻게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을까? 마르틴 루터는 이것은 성경의 진리에 전혀 어긋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여러분, 교황은 죄를 용서할 권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면죄부를 통한 구원의 확신은 무익합니다. 면죄부로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도와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더 위에 놓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지독하게 부패했기 때문에 종교 개혁은 불가피했습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라틴어로, Sola gratia! Sola fide! Sola Scriptura!를 외치며 개혁의 불길이 퍼져 나갔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이라는 뜻입니다. 교우 여러분, 함께 따라서 해 보시겠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함께 외치고, 지키려고 했던 핵심입니다. 의롭다고 일컬어지는 것 즉 칭의는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며, 성경만이 교회의 유일한 권위가 되어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요약하는 말입니다.
  루터의 신학 용어 중에 ‘변기 위에서’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루터는 친구들에게 이 신앙고백을 식탁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변기 위에서’ 신학의 의미는, 인간은 변기 위에서 가장 겸손해지고 가장 숨김이 없고 가장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가장 자신이 노출되며 가장 자발적이고 가장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것을 거지가 되는 상태라고도 표현합니다.
  이 신앙고백 속에는, 조금 표현이 심하긴 하지만, 거지는 누구에게로부터 얻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부끄럽고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걸어가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거룩한 거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밥 한 덩어리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구하는 거룩한 거지가 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온전히 생각할 수도, 바르게 분별할 수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말고는 다른 무엇으로도 우리 자신을 자랑하려고 하지도 말고, 겸손하게 살아갑시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과 오직 성경을 붙잡고 살아갑시다.


  마르틴 루터가 결혼하게 된 에피소드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시토파 수녀들이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받아들여 수녀원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당시에 수녀들을 수녀원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 중죄에 해당했으므로 마르틴 루터의 친구가 청어를 담는 큰 동에 수녀들을 담아가지고 마차에 싣고 몰래 수녀원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12명의 수녀 가운데 8명은 결혼했고, 3명은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명 남았지요? 남은 한 명의 수녀는 붉은 머리에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26세의 처녀 캐서린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1525년 마르틴 루터가 나이 42살 때, 캐서린이 루터에게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 때 루터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녀가 농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캐서린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세 가지 이유는 첫째, 그녀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으며, 둘째는 교황을 약 올릴 수 있고, 셋째, 후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내려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르틴 루터가 혼자 남은 캐서린의 청혼을 거절 할 수 없어서 결혼하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와 결혼하여, “프랑스를 다 준다고 해도 캐서린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주셨고, 다른 여자들은 훨씬 더 결점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참으로 동정적이었고, 사랑이 깊었으며, 겸손하며 특별한 재능을 많이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작사, 번역, 편역한 찬송곡들이 37편이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인물이기 때문에 굉장히 강하고 고집 세고 관념적이고 외향적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실제로 루터의 마음은 유약하고 온유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우울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어떻게 95가지 조항의 반박문을 쓰고,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펼치며, 끝까지 자신의 신앙의 깨달음을 굽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성격이나 고집이나 어떤 성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95개 조항 첫 항에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에 대한 핵심 관심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며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신자의 모든 삶이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거절하고 외면할 수 없어서 말씀대로 깨닫고 말씀대로 말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루터를 보름스 회의에 참석하여 루터가 그동안 썼던 책들에 대해 루터의 입장을 밝혀 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자리는 루터의 생명이 걸린 자리였습니다. 그는 보름스 회의에서 황제와 주교의 계속되는 강요와 요청에 땀에 젖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고 나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단코 아무것도 철회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오 주여! 나를 도우소서!”
  그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른 생각과 다른 주장과 다른 믿음을 허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루터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중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해당하는 말씀 중심의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면, 장로교의 신학을 대표하는 존 칼빈은 개혁을 조직적으로 시행한 사람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죄 많은 인간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로 선택하셨고, 인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을 발견하고, 성경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험하고 믿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 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 지를 깨닫고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 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 전통을 더 중시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그 전에는 사제들만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고 강론을 하였는데, 이제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 번역과 출판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루터도 교황청의 위협 때문에 은둔생활을 할 때에 성경을 독일 현대어 번역하여 성경 보급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성경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고, 성경 말씀을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읽을 수 있도록 생명을 걸고 종교개혁을 한 분들, 그리고 그 성경 말씀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 생명과 젊음과 모든 것을 받친 분들이 있습니다. 대동강변에 제너럴 샤먼호를 타고 와서 성경책 몇 권을 던지듯 전하고 칼에 맞아 죽은 토마스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도록 번역하고, 연구하신 분들의 생명 같은 성경책입니다. 아니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니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깨달을 수 있도록 신앙을 전해주신 분들, 신앙을 양육해 주신 분들, 그리고 오늘도 성경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묵상할 때마다 우리 안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감동과 결단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경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며, 살았고 운동력 있는 능력의 말씀이기에 생명처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기에 성경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귀찮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책 들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책을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경! 성경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이 아니면 신앙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철로를 이탈하는 기차처럼, 진리를 벗어난 행위, 복음을 벗어난 신앙,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모든 권위에 앞서 성경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믿으며, 말씀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코람데오를 삶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코람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이 정신은 곧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에서 코람데오의 자세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앙자세를 코람데오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고, 온전한 의를 이룰 수 없는 자신에게 철저히 절망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집이 파괴되는 고통을 겪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할 수 있고, 그 절망의 낭떠러지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며 새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늘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살고, 그렇지만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구하고 은혜 아래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에 잠길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능력을 행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적 부패상을 채찍을 휘두르며 청결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외식과 거짓과 왜곡된 신앙을 강력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드러내 놓고 잘못된 신앙, 잘못된 전통, 잘못된 제도, 잘못된 생각들을 바꿔야 합니다. 과거의 전통과 틀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세계를 열어나가고자 했던 개혁정신을 우리들도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개혁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을 때가 아니라 자기개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회칠한 무덤 같은 한국교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각자가 새로워져야 하고, 특별히 지도자들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정결케 하시는 손길을 기대합시다.
  교우 여러분, 다시 한 번 따라하겠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개혁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30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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