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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가 되라  [3512]
· 설교 일자 : 2011년 11월 20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20장 24~29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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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장 24~29절)
  어떤 젊은 여자가 병원에 찾아와서 자기 뱃속에 있는 개구리를 꺼내 달라고 하니까 의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여자의 설명인즉, 몇 달 전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너무 목이 말라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서 먹었는데 일어서다보니 그 웅덩이에는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심각할 정도로 복통이 가끔 일어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 몸속으로 들어간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 여인에게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의사가 그 여인에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엑스레이는 물론 어떤 의학적 검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개구리가 자기 몸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수술하는 척 하면서 미리 준비해둔 개구리를 한 마리 보여주자, 그 여인은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그 여인은 몇 달 후 다시 배가 아프다고 병원을 찾아와 또 개구리를 꺼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수술할 때 개구리는 꺼냈지만, 그 개구리가 낳은 알이 몸속에 남아 있어서 그 알이 부화하여 새끼 개구리가 되어 온 몸을 뛰어 돌아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다시 그 여인을 수술하는 척 하면서 미리 준비해 놓은 개구리를 보여주면서 뱃속에서 꺼냈으니 이제는 안심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 해결이 될까요? 아닙니다. 그 여인이 자신의 뱃속에 개구리가 있다고 믿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일은 계속 됩니다.
  그 여인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 그때 웅덩이 물을 마실 때 올챙이를 함께 마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 의심으로, 그리고 자기 몸속에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었고, 그 개구리 때문에 복통이 일어난다고 믿는 단계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믿음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의심은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의심이란 믿지 못하는 마음을 말하는 데, 믿지 못하는 마음을 굳건히 믿는 마음이 의심입니다. 의심이란 변질된 믿음입니다. 부정적 믿음입니다. 믿지 못함을 믿는 것입니다. 의심은 우리 삶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믿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믿음이 없이는 일상생활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수많은 악한 자들이 음식가지고 장난을 치고, 유해 식품을 만들어 내고,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이고, 주방 관리를 잘못해서 병균이 득실거리는 음식을 내놓는 식당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돈을 내고 잘 사먹습니다. 믿음이지요. 이런 믿음을 악용하고 배반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지,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 길이 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의 길이 있고, 오직 믿음으로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제자 훈련을 받았던 디두모라 하는 도마에 관한 말씀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습니다. 25절의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의 말씀의 원어의 뜻은 미완료 시제로 되어 있어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귀를 닫은 도마는 이미 무너진 믿음을 계속 지켜가기에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보이는 것만 믿는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25절 하반절에,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사건이 커다란 좌절감을 가져다주었는가 봅니다. “나는 못 믿겠다. 내가 다시 살아난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그 분이 바로 그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 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도 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도마는 봐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도마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감각의 시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보는 것, 느끼는 것이 아니면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봐야 믿는 세상, 손으로 만져 봐야 믿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 보이는 것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의심합니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고, 너무 커서 우리의 눈으로는 한 번에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거나 작아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피조물 세계에 속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존재로서 창조주이시지 피조물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피조물과는 구분되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보여주지 못하면 신은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옛 소련에서 군대에서 신병들에게 신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무신론 교육을 시켰습니다. 한 장교가 나와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합니다. “신병들, 저기 하늘을 보라. 신이 보이나, 안 보이나?” 신병들이 일제히 “안 보입니다!”라고 하자 장교는 “그렇다. 신은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이때 신을 믿고 있는 한 사병이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무신론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장교의 머리를 가리키며 “여러분, 장교님의 머릿속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신병들이 “안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사병은 “그렇습니다. 우리 장교님은 머릿속이 없는 장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장교를 한 방 먹이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자기 눈을 감고서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태양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구름에 태양이 가려 눈을 뜨고 보아도 태양이 안 보이니 태양이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어리석고 답답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존재하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빌립이라는 제자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을 이렇게 다시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예수님 안에 신성을 갖고 태어나게 하신 것이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본 것으로 믿으라. 잘 안 믿어지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으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예수님에 관해 제대로 배우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행하신 일, 예수님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들과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 예언들,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설명하신 말씀들, 약속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를 성경을 통해서 제대로 깨닫게 되면,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시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던 백부장이 그렇게 고백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의 선입견,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극히 제한 된 이성과 판단력, 그리고 짧은 지혜와 어설픈 논리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 자세는 마치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맛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 안이 헐었거나 자기 입맛이 쓰면서 음식을 맛없는 음식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는 제대로 먹어보고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냥 좋은 말을 하신 분, 예수님의 교훈이나 사상이 괜찮은 분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것이 진실이고,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약속이 진실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실이라면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심판에 따른 진노와 형벌과 지옥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불행케 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도마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마가 다른 제자들의 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적어도 3년 동안 함께 했던 제자들이 하는 말이라면 귀를 기울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보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보았다고 하면, 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가 직접 들어야 하고, 자기가 직접 먹어봐야 알겠다고 하고, 무조건 자기가 다 봐야 믿겠다고 하면 세상을 잘못 사는 것은 아닐까요? 지옥도 내가 가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죽은 다음에 지옥에 가서 그때 되어 지옥의 존재를 믿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참으로 답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아무 말이나 다 믿고 부화뇌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믿을 만한 사람들의 진실한 말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무조건 자기 고집대로, 무조건 자기 생각에 맞아야만 믿는 자세는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다른 신앙인들의 고백, 신앙 간증 등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통해서 지혜도 얻고 인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른 신실한 신앙인들의 생생한 신앙 간증, 신앙고백을 통해서 믿음을 갖는 데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을 하면서 수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음에도 제자들이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척 안타까워하셨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저 같으면 화가 났을 지도 모릅니다. 제자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잡히심과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에 다 도망가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나서도 제자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속이 터졌을 것 같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어 다시 나타나시었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부활을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뒤, 8일이 지난 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의 모임에는 계속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문들이 닫혔는데도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고 그냥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을 영체라고 말합니다. 몸의 형체는 보이지만 시간과 공간, 물질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은 몸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의 다시 살아난 몸과 같은 종류의 혈과 육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죽음 이 전과 같은 자연법칙에 지배받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인사를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러자 도마의 의심은 사라지고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잠간, 만약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그냥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찾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더라도 신앙의 모임에 계속 참여하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키가 매우 작았던 삭개오라는 사람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보려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방문하시는 일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벳세다 들녘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나갔던 사람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숫자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가실 때,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고, 신앙의 모임에 참여할 때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특별히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신지 얼마 되지 않는 새 교우 여러분, 계속 예배에 참석하고 모임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에 참석하고, 알파코스에도 참석하고, 교인들과 동아리 활동도 계속 하다보면 믿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내 마음으로 선물로 들어옵니다. 믿음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믿어지게 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찾아 오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즉 예배에 참여하고, 신앙모임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어지지 않더라도 기도회에도 참여하고, 성경공부에도 참여하고, 열심히 참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본문 29절에 “너는 네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구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복이 기다리고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보고 믿는 사람과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 믿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으로 성숙해 져야 합니다. 도마는 보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도마와 다른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그럼에도 믿게 될 수많은 사람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확한 표적이나 기적을 본다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만일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다면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갓난아이는 배가 고프면 갓난아이의 눈에 우유병을 들고 흔들어 보여도 울어댑니다. 드디어 입에 우유병이 물려지면 우유병을 빨며 울음을 그칩니다. 어린아이는 갓난아이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배가 고파 밥을 달라고 재촉하거나 울어댈 때,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을 보여주면 조금은 기다릴 줄 압니다. 갓난아이처럼 계속 울어대지 않습니다. 청소년은 어떻습니까? 배고파서 밥을 달라고 하면 어린아이보다 더 기다릴 줄 압니다. 주방에서 엄마가 밥을 차리고 국이 끊고 도마 위에서 칼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면 밥이 준비되어 올 것을 믿고 참습니다. 어른은 어떻습니까? 어른도 배가 고프면 빨리 밥을 먹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갓난아이처럼 마냥 울어대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배가 고픈 것을 참습니다. 때로는 밥을 금식하기도 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 믿음이 좋아진다는 것, 큰 믿음이 된다는 것, 반석 같은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던 믿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이 상황과 시간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것이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증거는 성경말씀과 먼저 믿은 신자들의 증거, 간증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노아에 관한 말씀을 보면,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했다고 말씀합니다. 노아는 자신이 사는 동안 큰 비, 홍수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큰 배를 본 적도 없었습니다. 큰 배 뿐만 아니라 방주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큰 비, 홍수, 큰 배를 겪었기 때문에, 매체나 뉴스를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것과 홍수이야기를 하시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압니다. 그러나 노아는 본 적도, 겪은 적도 없습니다. 사진으로 볼 수도 없었고, 물난리가 나는 것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본 적도 없었습니다. 노아가 살던 곳은 바닷가가 아닙니다. 내륙 깊숙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배라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배를 타 본 적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홍수의 심판을 겪게 되었고, 그 가운데에서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소개된 믿음의 선조들, 믿음의 영웅들,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니까 사자 굴에 집어 던져졌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 구원해 주신 사건, 불 가운데서 지켜주시고, 칼날을 피하게 해 주시고,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고, 극심한 고문과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셨습니다. 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 때가 믿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믿음으로 이루어질 일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즉시 즉시 눈에 보이는 일이 벌어진다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보고 그냥 경험하고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1장 1-3절에,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만질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이는 것으로,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해가 되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이해가 됩니다.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보다는 믿으면 보여주십니다. 기적이 일어나니까 믿기보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온 마음으로 찾는 이를 만나주십니다. 곤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손을 뻗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 힘들고, 믿음이 흔들리거나 믿음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믿음의 열쇠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더욱 온전한 믿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1년 11월 20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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