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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892]
· 설교 일자 : 2012년 02월 26일
·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1장 17-4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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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요한복음 11장 17-44절)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만약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태어났다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을까?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들 속에 함께 있었을까? 그 때 만약 내가 병에 걸렸다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찾아갔을까? 그냥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주셨을까? 내가 만약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이스라엘에 태어나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직접 보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내가 예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을 텐데... 라고,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만약 내가 이조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선비였을까? 노비였을까? 저는 만약 이조시대에 노비로 태어났다면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사람 취급도 못 받으면서 살아갈 수 없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엇무엇 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하고 상상하고 추측해 보면 수많은 상황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만든 영화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궁금증과 재미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게 합니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하에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입니다. 그 밖에도 만약 과거로 돌아가 사랑하는 그녀를 구할 수 있다면? 만약 하루 아침에 어른이 된다면? 만약 하루 아침에 청춘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만약 남자와 여자의 몸이 서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영화를 만든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많은 생각을 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합니다. 그 결과 삶의 내용이 만들어집니다. 사실 근심, 걱정, 불안 이라는 것은 “만약 이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씨가 되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근심하고, 걱정하고,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정해서 “만약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서 괜히 문제를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하고 다시 결혼할거냐?”는 부부의 질문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환생, 윤회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가정하여 질문하고 그 대답이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부부싸움을 합니다. 어리석은 것이지요. 그런 가정법의 질문은 천하에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쓸데 있는 “만약에”가 있습니다. 만약에 남한과 북한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런 가정 하에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미래를 위한 준비에는 항상 미래를 가정하여 준비합니다. 미래의 모습을 가정하여 예측을 잘 한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데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또 ‘만약’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1달 후에 죽는다면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앞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 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으로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두 종류의 “만약”이 나옵니다. 후회의 만약과 믿음의 만약입니다. 데이빗 씨멘즈의 [탓]이라는 책의 주요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의 집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요단강 쪽으로 가셨는데,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사로의 병을 고치러 가시지 않고, 그곳에서 이틀 후 머무신 후에 예루살렘 성 옆 동네인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동네에 도착하시니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났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은 곳에서 이틀에 걸려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조금 후에 마리아도 예수님께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만약 내 오라버니가 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서 곧 바로 오셨더라면, 그래서 고쳐주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뜻의 말을 하였습니다. “만약 ~ 만 했었더라면”의 말입니다. 이런 말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해 지금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후회, 죄책감, 불평, 원망을 할 때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이런 만약을 후회의 만약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만약입니다.
  이런 “만약 그 때에 ~ 했었더라면”이라는 말은 지금 상황이 좋으면 그런 말을 안 합니다. 꼭 그런 말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할 때, 다른 것과 비교하여 부족하다고 느낄 때, 슬픔이나 고통이나 문제나 불행을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후회의 만약을 하는 것은 과거에 경험한 고통이나 상처를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자기를 탓하든지, 남을 탓합니다. 자기를 탓하는 사람은 자기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자학하든지, 낙심에 빠집니다. 또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책임 전가를 시키기만 합니다. 남들을 탓함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이후에 그런 소리를 너무도 자주했습니다.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를 따라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질적인 병이 있었는데, 후회의 만약이라는 병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길에서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만나기만 하면 과거를 돌아보며 애굽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혀 있을 때에는 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면서 애굽에서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살다가 애굽에 묘자리를 얻어 장사지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광야에서 죽는구나, 물에 빠져 죽는구나! 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차라리 그냥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서 배불리 먹던 때에 하나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모세와 아론이 광야까지 우리를 끌고 나와 굶주려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시니까 조금 지나서 또 탐욕을 품고 말하기를, 애굽에 있었더라면 고기도 먹고, 생선도, 오이도, 참외, 부추, 파, 마늘도 실컷 먹을 텐데.... 라고 또 원망했습니다.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할 때에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먹는 문제 때문에 극심한 고역으로 시달리던 종살이 시절로 돌아가고픈 후회의 만약을 하였습니다.
  차라리 그때 그렇게 했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할 걸... 이런 생각과 말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때 땅을 사놓았더라면 지금쯤 갑부가 되었을 텐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생각입니다. 가슴만 아플 뿐이지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후회의 만약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차라리 편할 텐데 괜히 해 가지고, 생고생을 한다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관두든지... 계속 할 것이면 기분 좋게 긍정적으로 하든지...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조용히 교회에만 왔다가는 교인으로 살 걸... 괜히 봉사한다고 해가지고 힘들고 마음 상하고 실망하고 시험 들었네...” 아니요! 힘들고 마음 상하고 실망하고 시험들을 만한 일들을 겪으면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믿음이 연단됩니다. 흔들려 봐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어 갑니다.
  이런 후회의 만약은 변화불능의 지나간 사건들에 집착하게 함으로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미래의 희망을 바라볼 힘을 빼앗습니다. 후회와 불평과 원망과 탐욕의 “만약 ~했었더라면...”의 생각과 말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고, 믿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완악해지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과거에 발목이 묶여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 합니다. 과거에 갇히게 만듭니다. 과거라는 감옥에 갇혀 옴짝 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교우 여러분, 과거의 사건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난 그 사건을 보는 눈을 바꾸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나에게 유익한 것으로, 내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의 사건으로, 나를 더욱 지혜롭고 강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만약은, 우리가 가져야 할 만약은 믿음의 만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이라고 말하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지나간 시간의 사건을 돌아보며 그것에 집착하여 “그 때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이렇게 안 됐을텐데요...”라고 말하지 말고, “지금 네가 나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지금 네가 나를 믿으면 믿음대로 되리라. 지금 믿음을 갖고 믿음으로 반응하면 믿음의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지나간 사건을 되돌려 놓을 수 없다. 안타까워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 거기에 묶여있지 말고, 지금 나를 믿으라! 오라버니가 죽기 전에 여기 계셨더라면... 이라고 말해 보아야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지금 필요한 것이지, 과거를 돌아보며 그 때 그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고 원망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과거를 따지고 이미 행한 죄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고통의 문제, 절망의 문제, 삶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문제를 지금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현재니라” 라는 글이 있습니다. “저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 갑자기 저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 그리고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 제가 기다리자 그분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실수와 후회로 얼룩진 과거에 매여 산다면 / 네 인생은 힘들고도 몹시 괴로울 것이다 /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 나의 이름은 과거가 아니니라 // 네가 미래에 닥칠 문제들 때문에 두려움을 가득 안고 산다면 / 네 인생은 역시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 나의 이름은 미래가 아니니라 // 네가 현재 이 순간을 산다면 / 네 인생은 힘들지 않을 것이다 / 왜냐하면 내가 바로 여기 있기 때문이다 / 나의 이름은 현재니라 ”
  믿음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입니다. 믿음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지금 믿어야 합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믿음이 있었는데... 앞으로 믿음이 생기면... 이것은 소용없습니다.
현재 예수님을 믿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고, 삶의 문제를 내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물론 죄의 무게로 보면 가룟 유다의 죄가 큽니다. 그러나 둘 다 예수님께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팔아 넘겨 예수님께서 죽게 되신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후회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행한 지난 죄에 대해 죄책감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닭이 울자 통곡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점점 더 멀리 멀어지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고, 베드로는 예수님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했습니다. 또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들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행한 과거의 죄에 묶여 자신을 정죄하고 죄책감에 빠져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으시는 질문에 대답을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는 명령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베드로는 “만약 그 때 내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지 않았더라면...”하고 후회하기만 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감정만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물음에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지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지금 나는 생명의 떡이다! 지금 나는 선한 목자다! 지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지금 나는 부활이다! 나는 메시야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지금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과거에 묶여 있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고만 있지 않고, 현재 내게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금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믿음의 만약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약 너희가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지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지금 내가 믿으면 이루어지리라. 지금 내가 믿으면 응답되리라. 지금 내가 믿으면 믿음대로 되리라. 지금 내가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리라. 지금 내가 믿으면 은혜를 받으리라! 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만약’, 꼭 해야 할 ‘만약’은 ‘감사의 만약’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과거를 보고, 믿음으로 현재를 보는 사람이 갖는 만약입니다. 후회와 불평과 원망과 부정적인 눈으로 과거를 뒤돌아보고서 “그 때 ~했었더라면...”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눈으로 과거를 보고, 현재를 본 후에 깨닫게 되는 만약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만약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행하지 않으셨다면, 나에게 더 큰 불행이 닥쳤을 것이라고 깨닫는 신앙입니다. 시편 124편 1,2절에 시인은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느냐고 하면서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이스라엘은 원수 대적들에게 산채로 삼킴을 당했을 것이며, 또 넘치는 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6절에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라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명령합니다. 지금 안전하고 평안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주셨기 때문이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내 모습은 지금과 정반대였을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인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다가 무슨 사고를 당했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전에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오늘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이런 만약을 해 보면,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 이렇게 생각해 보니 감사합니다. 저것도 생각해 보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개그맨들이 나와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면서 웃음을 주더군요. 그들은 웃기려고 하는 “감사합니다!” 이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과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것을 지적하면서 만약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놔두시지 않았다면,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심에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시고 즉시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오늘날 우리나라의 곳곳의 끔찍한 범죄와 타락을, 한국교회의 실상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기에 감사하지요. 은혜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만약을 해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도 많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게 되고, 새롭게 우리 자신을 추스르게 됩니다. 이것이 감사 신앙의 가장 기초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내가 저렇게 되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으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을까? 복음의 비밀을 알고 믿게 되었을까?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면서 하늘의 신비한 세계를 깨닫고 믿고 소망할 수 있을까?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게 신앙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감사의 만약을 하시기 바랍니다. 후회의 만약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요셉은 “만약 ~했었더라면”의 후회의 만약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믿음의 만약과 감사의 만약의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요셉을 아시지요? 야곱의 아들 요셉 말입니다.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종살이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그렇게 13년 동안이나 지내다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대신이 된 인물 말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날 미워하고 시기하여 애굽에 팔지 않았더라면 난 종이 되지 않았을 텐데... , 내가 종으로 팔려오지 않았더라면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누명을 쓰지 않았을 텐데... , 이렇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텐데... ,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그냥 모른척하고 받아주었으면 주인 몰래 내연남으로 잘 지냈을 수도 있을텐데... 라고 후회의 만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 오히려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에 비록 종살이는 좀 했지만, 보디발 장군의 집의 종으로 그곳에서 신임을 받아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신임을 받게 되었고, 비록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쳐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나 그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결과 시간을 좀 많이 걸렸지만, 애굽의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뜻의 말을 했습니다. 창세기 45장 7,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하였더니 하나님의 깊고 큰 뜻을 이루었습니다. “억울하고 증오심과 복수심을 갖게 하는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입니다”는 뜻의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현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들이 자기의 절을 하는 내용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애굽이라는 나라에 오지 않고서는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희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기 위해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훈련시키셨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려가서 그 집에서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주인의 소유를 다 맡겼습니다. 창세기 39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감옥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요셉의 손에 다 맡겼고, 그래서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했다고 창세기 39장 22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계속 있는 곳에서 총무 일을 맡아 훈련받았습니다. 큰 가정집에서, 감옥 행정 업무에서, 그리고 마침내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부터 총리가 되기까지 13년 동안 애굽 땅에서 애굽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셉이 일부러 애굽에 와서 유학을 하지 않는 한,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의 만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집착하고,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고통과 실망과 낙심에 사로잡혀 또 다른 자기 감옥 속에 갇혀있었다면 요셉이 성경 속의 훌륭한 믿음의 요셉, 꿈꾸는 사람 요셉, 하나님과 동행하여 승리한 요셉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에 대해 감사의 만약을 적용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과 손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후회와 불평, 원망과 책임전가의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주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네가 지금 나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네가 지금 나를 믿고 의지하면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리라. 네가 나를 믿으면 네 삶이 변화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만약 그때 내가 ~했었더라면...”하며 후회만 하고 있습니까? 지금 예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감사함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2월 26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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