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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3939]
· 설교 일자 : 2012년 12월 09일
· 본문 말씀 : 히브리서 4장 12-13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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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 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서 4장 12-13절)
  여러분,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어떤 말은 소음입니다. 쓸데없는 말, 헛소리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닙니다. 어떤 책은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성경책은 다른 책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은혜와 선물이 참으로 많은 데, 그중에 귀한 선물 하나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책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좋은 글을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활력 즉 에너지가 넘칩니다.
  본문 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정도 살아있고 활력이 있느냐 하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말씀합니다. 관절과 골수는 인간 육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부의 끝입니다. 이 은유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12절 끝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이 활력 즉 에너지를 발산하며 파헤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중심을 다 아십니다.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할 때,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죄인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상한 심령이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내면에 들어와 요동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깊숙한 어두운 곳을 찾아 밝혀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대하는 이에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고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의심을 버리고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생명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사람을 살려내고,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구소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목사가 기차 안에서 무신론자와 한참 동안 변론을 했습니다. 목사는 성경을 펴서 읽어 주었지만 그 무신론자는 성경을 빼앗아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그 목사가 서재에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흔쾌히 허락하며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몇 가지 문답을 하였습니다. 먼저 언제 어디서 어떤 연유로 예수님을 주로 믿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세례를 받으러 온 낮선 여행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희 동네에는 예수를 믿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기차가 지나가면서 웬 물건이 날아와 가슴에 부딪치고는 떨어졌습니다. 그 책은 성경책이었고, 그날부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세례를 줄 사람이 없어서 수소문하여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그 농부에게 날아와 부딪친 성경은 바로 그 목사님이 기차속에서 무신론자에게 빼앗긴 성경책이었습니다. 농부와 목사님의 성경책의 만남도 신비한 일이지만, 농부가 성경책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으로 농부의 마음을 움직였고, 믿음을 갖게 해 주었고, 마침내 구원받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는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수술을 은유한 표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수술해야 하면 수술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알고 수술을 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영적인 건강과 풍성함을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칼보다 더 예리하게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수술하십니다. 이런 경험을 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가까이 합니다. 말씀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받습니다.
  지난 2월 국민일보에 연재된 윤복희 권사의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수이며, 우리나라 최초 K-Pop 원조 가수, 미니스커트 보급한 사람, 지금은 주님을 찬양하는 영원한 디바입니다. 그 분이 1976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공연을 준비하는 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랍니다. 급하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후두암이라는 것입니다. 수술을 해도 더는 노래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공연이 예약되어 있으니 겨우 흉내만 내서 노래를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오빠인 윤항기 씨가 무대에서 울먹이며 “내 동생이 후두암에 걸렸습니다. 이번이 고별 공연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관객들도 울고, 윤복희 씨도 울고, 그렇게 공연을 끝냈답니다. 그런데 1년 전, 잠시 귀국했을 때 공연시 후라이보이 곽규석씨가 사회를 보았는데, 윤복희씨가 다시 출국할 때 공항에 나와 배웅을 하면서 선물이라면서 성경책을 한권 주었답니다. 받은 성경책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었지만, 1년 후 귀국할 때 가방에 같이 넣어가지고 들어왔고, 후두암에 걸린 그녀가 비로소 성경책을 보기 시작하여 그녀의 인생은 결정적으로 변화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후에 1976년 3월 7일, 연예인교회가 창립되어 그 교회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연예인 성경공부가 시작되어 참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뜨거운 불처럼 그녀를 달구었고, 날선 검처럼 찔렀습니다.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뜨거움으로 넘쳐났고, 어둡던 속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놀라운 빛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받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살아 역사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까지, 여러분의 세포 하나 하나까지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좌우에 날 선 검’은 로마 군인들이 백병전투 때 사용하던 ‘글라디우스’라는 예리한 단도를 가리킵니다. 60-65센티미터였으며 최대 폭은 5센티미터였고 무게는 약 700그램정도 되었습니다. 그 검의 이중 날은 찌르고 자르는 전투에서 이상적인 무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 선 검’ 즉 ‘양날의 칼’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칼처럼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내면에 있는 선하고 악한 모든 것을 모두 인식합니다. 우리의 도덕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칼이 피부조직을 뚫고 들어가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뚫고 들어갑니다. 우리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감정과 욕망까지도 알아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납니다. 마치 우리가 벌거벗은 채로 거울 앞에 서면 숨김없이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면 우리의 감정과 욕망과 생각과 의도와 태도까지 다 드러납니다.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 번역본에는 본문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능력 있는 말씀은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로워서, 의심이든 변명이든 무엇이나 갈라내고, 우리 마음을 열어서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꿰뚫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모습을 숨길 수 없습니다. 숨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말씀 앞에 설 때, 여러분에게 생명의 변화와 성숙과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칼보다 더 예리하여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여러 가지의 성품이 있으시지만 성경 전체에 나타난 대표적이며 중요한 성품 중의 두 가지는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인간을 위하여 대속하여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절정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온전하게 충족되어 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속의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의 성품에서 나오는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마치 양날의 칼처럼 두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우에 날이 선 양날 칼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의 한 쪽 날은 위로의 날입니다.
위로의 말씀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음소리, 우리의 탄식소리,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긍휼과 사랑의 말씀이 위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이 생기게 하고, 믿음이 자라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고 읽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믿음의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통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인내하도록 격려합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 선진들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이겨 냈는지, 고통을 이겨 낸 후에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깨달아 고통을 인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으면서 믿음의 영웅들의 믿음을 배워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이 말씀들이 인내하도록 우리를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안한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차원의 평안입니다.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주님의 평안을 줍니다. 평안을 주심으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줍니다. 자꾸만 주저앉고 움츠려 들고 포기하려고 하는 우리들이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 말씀을 읽으면서 나도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붙잡게 하여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굳세게 잡아 주실 주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불평, 불만, 원망이 가득 차 마음이 텅 비고 메마르고 거칠어져 있을 때,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하여 자족하고 만족하는 위로를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 받고, 박해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할 때,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0-12절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삶에 지치고 상처 받고 곤비합니까? 위로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면서 읽으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지금 읽는 성경 말씀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주십시오.” “위로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교우 여러분, 말씀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좌우에 날이 선 양날 칼보다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쪽 날은 책망의 날입니다.
  책망의 말씀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책망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온전케 하시려고 사랑의 하나님이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달콤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말만 받으려고 하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갓난아이 신앙 단계에서나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갓난아이가 자라나 어린아이 단계를 지나 청년의 단계, 그리고 어른이 되려면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거친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소화하는데 오래 걸리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쓰거나 맵거나 신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하듯, 신앙의 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온전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위해 교훈하고 책망하기도 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위로의 말씀만이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는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병원에 갔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여러분을 검진하더니 “괜찮습니다. 병은 있는데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냥 하십시오. 마음대로 하십시오. 술, 담배를 해도 괜찮습니다.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음식도 마음껏 드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의사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그 의사가 정상이 아닌 의사이든지, 아니면  더 이상 고칠 수 있는 가망성이 없어서 차라리 고치려고 하는 것보다 며칠 못 살꺼니까 단 며칠 동안이라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하다가 죽게 놔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럴 것입니다. 정상적인 의사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 그리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것을 말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 줄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옛 성현도 “양약은 고구이나 이어병이라 충언은 역이이니 이어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 이롭다는 뜻입니다. 약이 필요 없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쓴 약을 먹일 필요가 없겠지요. 바른 말을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안 해도 되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항상 건강합니까? 항상 바르게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기분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합니다.
  교우 여러분, 면전에서 하는 기분 좋은 말을 듣고 싶으면 백화점 같은 곳이나 값비싼 음식점에 가면 됩니다. 상냥한 말로 여러분을 맞이하고, 잘 어울린다고 하고, 손님을 위한 옷이라고 말해 주고, 싫은 소리를 안 합니다. 서비스가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순간적으로 웃을 수 있는 말을 듣고 싶으면,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를 보면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하하호호 해죽해죽 웃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그런 것을 원하십니까? 그런 말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당신은 이런 병에 걸렸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상처받았다고 말하지 않지요? 당신이 건강해지려면 이런 이런 것들은 먹지 말고, 이런 이런 것들은 피하라는 말에 “의사 선생님, 어떻게 저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 말에 상처 받았어요.”라고 말하지 않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이대로의 식습관,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죽습니다!”라고 하는 말에 “내 다시는 병원에 가나 봐라!”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교 시간에 잘못을 지적하고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설교하면 자존심 상했다고 하고, 상처 받았다고 하고, 시험에 들었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해야 되나요? 구약 성경에 보면, 거짓 예언자들이 그렇게 예언했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안 망한다! 안 망한다!” “복 받을 것이다. 복 받을 것이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고, 그들을 죄와 우상에서 돌이키는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예언자들의 말보다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더 듣기 좋아하고, 그러다가 앗수르에게 북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에게 침략을 받아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여 나라를 잃어버리고 70년 동안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분 좋은 말, 위로해주는 말만 듣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말을 듣기 위해서 주일예배에 나옵니다. 세상에서 시달리다가 주일날만큼은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며 위로만 받고 싶어 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통제만 놔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염증을 제거하고, 병균을 제거하고, 수술을 해서라도 온전한 건강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불편하지 않지만, 진리 안으로 들어와야 할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합니다. 진리 아닌 것을 지적받아야 하고, 죄를 지적받아야 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책망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것, 가려진 것, 옳지 못한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면서 “네게는 남편이 모두 다섯이 있다. 지금 사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바로 죄 문제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위로만 받고 사랑만 받고 은혜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는 [예수님처럼]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수가 지나가길 래 자기 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려고 하는데, 모래밭에서 놀던 딸의 입에 온통 모래였답니다. 그래서 입속에 물고 있는 모래를 뱉으라고 하고, 입을 씻어주고 나서야 아이스크림을 사 먹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애야, 더러운 흙을 뱉어라. 죄를 뱉어내어라. 네 마음속에 있는 부도덕, 부정직, 편견, 원한, 탐욕, 교만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 너에게 주려고 하는 좋은 것을 줄 수 있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위로의 말씀, 사랑의 말씀, 긍휼의 말씀을 주시지만, 또한 책망의 말씀, 바르게 하는 말씀,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 후에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읽으면서 여러분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면 어떤 말씀이든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면 어떤 말씀이든, 귀에 거슬려도, 기분이 안 좋아도, 마음이 아파도, 책망하는 말씀일지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좌우에 날이 선 칼보다도 더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며, 여러분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지 않은 수술은 없습니다. 마비되지 않은 이상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생살을 찌르고 자르는데 어찌 안 아프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책망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고통스럽습니까? 그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영적 나병이 걸려있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통증을 못 느낍니다. 자신의 손가락이 썩어 떨어져 나가는데도 모릅니다. 통증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영이 완악해졌거나 강퍅해졌으면 하나님의 책망하는 말씀을 들어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이 있을 때는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이고,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 때이고,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또한 책망과 바르게 하는 말씀도 주십니다. 감동을 주시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찔리게도 하시고, 결단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고, 생명의 양식이 되고, 싸매주시기도 하고, 수술하여 도려내기도 하고, 치유하여 온전케 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믿음이 자라고 성숙해지는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더 좋은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12년 12월 09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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