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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3853]
· 설교 일자 : 2013년 01월 13일
· 본문 말씀 : 열왕기하 5장 1-1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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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에게, 작은 것 부터 (II) (열왕기하 5장 1-14절)
  여러분, 이번 겨울에는 많이 춥습니다. 또 눈도 많이 왔습니다. 1월 초순 기준으로 그동안 전국적으로 보면 3일에 한 번꼴로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 부산에도 지난 12월 말에 눈이 쌓여 학교가 임시 휴교하기도 하고, 눈길에 차량 사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나무 가지위에 눈이 쌓여 눈꽃이 핀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눈이 그렇게 가지위에 쌓이다가 어느 순간 나무 가지가 쌓인 눈을 이겨내지 못하여 부러집니다. 눈송이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새가 비둘기에게 물었습니다. “눈송이의 무게를 알고 있니?” 비둘기가 대답했습니다. “눈송이의 무게라고? 눈송이에 무슨 무게가 있겠어. 허공처럼 전혀 무게가 없겠지.”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봐.” 참새가 말했습니다. “언젠가 나는 눈 내리는 전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어. 할 일도 없고 해서 나는 눈송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지. 가지 위에 쌓이는 눈송이 숫자를 말이야. 눈송이는 정확히 374만 1,952개였어. 그런데 말이야 ….” 참새의 잔잔한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 374만 1,953번째 눈송이가 가지 위에 내려앉으니까 가지가 그만 뚝 부러지고 말았어. 무게가 전혀 없는 것 같은 눈송이 하나가 앉았을 때 말이야!” 그렇습니다. 나무 가지위에 무게가 전혀 없는 것 같은 눈송이 하나가 더 내려앉는 순간, 가지는 부러집니다. 작은 것 같아도 작은 것 하나 때문에 사건이 생깁니다.
  여러분, 작은 것이라고 우습게 여겼다가 낭패 본 일은 없습니까? 손에 박힌 작은 가시를 뽑지 않으면 계속 신경 쓰이게 합니다. 겨울철 손톱 주위에 건조해서 생긴 조그만 손끄스럼을 손으로 잘못 뜯으면 생인손을 앓게 됩니다. 작은 담뱃불을 함부로 버려 대형 산불이 나고, 작은 부주의 때문에 대형 사고가 발생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쉽게 생각하면 의외로 곤란한 일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수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면 크고 중요한 것보다는 아주 작은 것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고 중요한 것은 신경을 써서 중요하게 다루지만, 작은 것은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하여 그 결과, 그 작은 것 때문에 문제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그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태산이 되기도 하고, 한걸음 한걸음이 더하여 천리 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큰 것은 처음부터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주에는 “작은 이에게! 작은 것부터!”라는 목회 표어로 새해를 시작한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면서 예수님의 심판을 준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과 작은 자가 누구인지, 작은 자에게 관심과 돌봄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것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왕들이 왕위 수업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중심 내용은 “작은 것부터!”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시작하는 열왕기하 5장은 이방 나라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을 고침 받게 된 사건의 말씀입니다. 아람나라는 이스라엘 옆 지금의 시리아 지역의 나라였습니다. 나아만은 아람나라의 실세였습니다.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고 했습니다.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비범한 사람이었고,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나병은 레위기 13장에 보면, 각종 악성 피부병들을 나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나병을 모두 오늘날의 문둥병, 즉 한센씨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하튼 나아만의 병이 한센씨병이든, 악성 피부병이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심각한 병이었기 때문에 나병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병이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사회적으로 격리시켰던 사실들을 생각해 볼 때, 나아만의 나병은 그가 외부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초기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대 최고의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좋은 약이란 약을 다 먹어보고 발라 보았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보았지만 병은 치료되지 않았고, 오히려 점차로 더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아만의 이름의 뜻은 ‘유쾌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과 그의 아내의 마음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나병 때문에 자신이 이룬 성공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세와 자신의 가정에 그늘이 져있었습니다. 나아만 자신뿐만 아니라 나아만의 아내는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걱정과 깊은 한숨 소리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와 병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신앙을 고백하고 다짐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유쾌하지 못했던 나아만은 결국 이름 뜻대로 유쾌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나아만이 나병에 걸린 피부가 마치 어린아이 피부처럼 고침을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데에는 누구의 도움이 있었는가? 하는 것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깨닫고자 합니다. 물론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방 아람나라의 군대 장관이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오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먼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드는 어린 여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여종은 아람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스라엘 땅에 가서 사로잡아온 소녀입니다. 그 소녀가 잡혀 올 때, 그의 부모를 죽이고 잡아 왔는지, 아니면 소녀만 잡아 왔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가 다른 나라의 장정들에게 사로잡혀 와서 사회 계급 상 아주 낮은 노예가 되었다는 것, 부모와 형제, 고향 친구들과 생이별이 되어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여종입니다.

  그 어린 소녀는 자기 주인 나아만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요?
자신이 포로로 잡혀 올 때, 부모님이 죽었다면 소녀의 마음속에는 아람 나라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득 차 있었거나, 그 날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자신만 포로로 사로잡혀 왔다면 그녀는 날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남몰래 울며 서러워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슬픔과 외로움, 힘든 나날과 그리움이 더 할수록 소녀의 마음에 분노와 증오, 복수심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여주인이 잘 해주었든지, 소녀가 열심히 여주인의 수종을 잘 들었는지, 그렇게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활의 연속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주인도 어린 소녀 여종의 말을 귀담아 들은 것을 보면, 신뢰 관계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어린 여종은 주인 나아만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었나 봅니다. 주인이 나병에 걸렸으니 ‘잘 됐다! 샘통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증오와 복수심으로 칼을 갈지 않았습니다. 연민의 마음이 들었고, 주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은 작은 자가 뒤바뀌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작은 자인 어린 여종이 주인 나아만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주인에게 주인님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가시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주인은 그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나아만의 병을 고치려는 온갖 노력에 비하면 어린 소녀가 한 일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소녀의 작은 행동 하나, 아주 작은 말 한 마디가 주인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아만과 그의 아내와 그 가정에 그늘을 거두게 했습니다. 비록 어린 소녀 자신도 돌봄을 받아야 하고, 사랑이 필요한 작은 자였지만, 나병이 걸린 주인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행한 작은 것이 이방 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어린 소녀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사람들의 병도 고쳐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어린 소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주인이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기만 하면 나병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한센씨 병이든, 악성 피부병이든 분명히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믿음이 없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이스라엘에 갔던 주인 나아만 장관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웃음거리만 되어 헛걸음을 하고 오게 되면 그 소녀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가차 없이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나아만 군대장관 집의 작은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어린 여종이 믿음으로 주인이 이스라엘 땅 선지자에게 가도록 말한 것은 사실 엄청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 연민의 마음, 병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낫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말 한마디를 전하여 나아만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그렇습니다. 작은 것 하나가 믿음으로 이루어질 때 놀랍도록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31절, 32절에,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씨보다도 아주 작은 씨이지만 그것이 점점 자라난 후에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33절에,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은 누룩과 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가루 서 말 전부를 부풀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서 생각하기에 이것 가지고 뭐가 되겠나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크고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행한 아주 작은 말, 아주 작은 행동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나아만이 병을 고치는 과정에서 나아만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의 집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가 보낸 사람이 문 밖으로 나와 나아만 장관에게 하는 말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해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이 화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에는 선지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그 환부 위에 흔들어 병을 고쳐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아래 사람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는 소리만 전하니 화가 났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아람 나라 군대장관이고, 이스라엘 왕도 자신을 두려워하는 존재인데 감히 자신을 홀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의 나라에는 요단강보다도 더 크고 좋은 강들이 많은데 몸을 씻는다며 거기서 씻지 여기까지 와서 씻으라는 말이냐고 노발대발하고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간 나아만의 이름에 관한 유머가 있습니다. 나아만의 이름이 왜 나아만이냐 하면,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을 전해 듣고서 “요단강에 가서 나~만 씻으래!” 그렇게 말해서 나아만이 됐다는 유머입니다.
  여하튼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려는 나아만 주인에게 그의 종들이 한 마디 말을 조심스럽게 아룁니다. “장군님, 선지자가 더 어렵고 거창한 일을 하라고 했어도 그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씻기만 하면 된다는데, 그 간단한 일을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의 분노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까지 약 40킬로미터를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가 씻었더니 그의 살이 마치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치유되었습니다.
  어린 여종의 말처럼, 나아만을 수행한 종들의 한 마디 말이 나아만을 돌이키게 하였고, 병을 고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작은 말들이, 작은 것들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일을 이룹니다. 기적을 이룹니다.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기에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부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적은 것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많은 것으로 변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고, 믿음의 역사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20절 이하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이 게하시라는 종은, 나아만 장관이 병을 낫게 되자 선지자에게 와서 자신이 가지고 온 선물을 주려고 했지만, 선지자는 선물을 받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을 때, 게하시는 마음속에 엘리사 선지자가 선물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하며 나아만을 뒤따라가서 무엇이든 얻어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뒤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에게 선지자가 자신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게하시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게하시는 그것을 받아 몰래 숨겨두었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돌아오자 엘리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게하시는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에게 들어가 순식간에 나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조적인 모습을 봅니다. 한 사건 안에 주인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말, 작은 행동으로 병을 고치도록 도운 어린 여종과 나아만을 수행한 종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에 시작된 작은 탐욕이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나병에 걸리는 벌을 받은 게하시도 있습니다. 게하시도 웃기는 사람이지요. 나아만 장관에게 자기가 받을 선물이 아닙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작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나병에 걸렸습니다. 작은 욕심, 작은 죄는 점점 커져 우리를 불행과 파멸로 끌고 갑니다. 반면, 사랑의 작은 말 한마디, 사랑의 작은 섬김은 한 사람의 삶을 바꿔 줄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작은 것이 소중합니다. 작은 자에게 작은 것부터 사랑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작년에 우리교회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빵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2백여 만 원을 월드비전을 통해 라오스에 보냈습니다. 또 여러분이 기념되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 378명, 16기관이 참여하여 구입한 만 원짜리 퍼즐 하나 하나가 모아져 1004개의 퍼즐을 다 맞추어 선한 목자 예수님의 그림을 완성하여 1004만원으로 사랑의 천사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와 관련이 없고, 기독교인도 아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조혈모세포이식 수술비 500만원을 후원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후원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교사에게 학용품을 모아 보냈습니다. 끼르키즈스탄에는 안 입는 한복을 모아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영수증으로 포인트를 모아 지난해 10월까지 3분기 동안 모인 돈이 20만 6천원을 받아 사랑의 도시락을 전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모이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돕는 작은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지만, 그것이 모여 큰 사랑이 됩니다.
  마가복음 9장 41절에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 한잔을 대접하여도 그것에 대해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 한잔 대접하는 것부터 귀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어려운 이들을 위해 ARS 전화 한통화로 후원할 수도 있고,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그것을 모아 후원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그 다음 작은 것을 할 수 있고, 그 다음, 그 다음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 중 교인들의 마음을 작은 것 하나로 한 번 웃게 만들자는 생각을 하면서 동영상을 준비했습니다.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이 동영상이야말로 준비하는 데 제가 한 것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가 직접 춤을 춘 것이 아닙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이 동영상을 보시면서 “목사님 부부가 언제 저렇게 춤을 배웠나?” “목사님이 저렇게 춤을 춰도 되나?” 하실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춤을 추는 동영상에 얼굴만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그저 차려진 상에 숟가락만 얹어 놓았을 뿐입니다. 이 동영상은 서수관 목사님이 만들어 나에게 보낸 동영상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뿐입니다. 작은 것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웃음을 드릴 수 있으니 좋습니다.

  교우 여러분, 금년에는 작은이에게 작은 것부터 실천 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변화와 성숙에도 작은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예배 시간에 늦는 습관부터 고치십시오. 5분만 일찍, 10분만 일찍 준비하여 나오면, 예배를 드리는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예배 시간 전에 휴대폰을 끄는 것, 이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더 신경 쓰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찬송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십시오. 예배실에 커피를 들고 들어와서 마시고는 의자 밑에 두고 가는 것부터 고치기 시작하십시오. 기도 시간에 눈 뜨고 다른 행동 하고 있는 것부터 고치십시오.
  서리집사로 임명 받아서 오후예배에, 수요기도회에 기도 차례가 되었는데 못 한다고, 안 한다고 빼기만 하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그냥 매년 그 상태로 간다면 신앙의 성장은 없습니다. 제직이 되어서 제직회에 일 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 예배 안내위원, 봉헌위원도 제대로 봉사 안 하면, 서리집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며, 작은 봉사인데 서리집사로써 무엇을 봉사하고 있다고 대답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입니다. 마음만 조금 바꾸면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부터,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하나님 앞에 바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 낯선 교우들에게 인사하는 것, 새교우에게 관심을 갖는 것부터 작은 일이지만 결코 소홀히 할 일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작은 것부터 생각을 바꾸고, 작은 것부터 말을 고치고, 작은 것부터 행동을 새롭게 합시다. 그동안 해 오던 데로 하는 것도 좋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여 타성에 젖은 행동은 아닌지, 잘못된 관행은 아닌지, 변화를 주어야 할 전통은 아닌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메마르고 완악해져 가고 있지는 않은 지를 평가하여 작은 것부터 고치고 변화시켜 나갑시다.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많은 시간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매일 성경 한 구절 읽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기도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차장 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가는 시간에, 사무실이나 집에서 멍 때리는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늘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간,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려 가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번에 전도하기란 어렵습니다. 전도할 대상을 정하여 관심을 갖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섬기고 사랑을 베풀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가 어려우니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전도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주신 지상 명령에 귀를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작은 것에 성실한 사람이 큰 것에도 성실합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큰 것도 소중히 여깁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사람이 큰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큰 것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말 한마디, 종들이 주인에게 아뢰는 말 한마디가 나아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사소한 것, 아주 적은 것,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아주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작은 자에게 내민 작은 손짓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작은 것부터 변화되십시오. 작은 것부터 실천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삶도, 여러분의 신앙생활도 작은 것부터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 작은이들에게 베풀 사랑의 작은 행동을 결정하십시오. 지금, 자신의 신앙생활에 노력해야 할 작은 것을 결정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작은이에게 작은 것부터!  2013년을 살면서 가슴에 새기고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3년 01월 1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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