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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6259]
· 설교 일자 : 2013년 06월 23일
· 본문 말씀 : 골로새서 2장 6~7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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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골로새서 2장 6~7절)

  여러분, 요즘 들과 산의 풀과 나무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산으로 나가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잔뜩 물이 올라 힘찬 가지와 짙푸른 잎사귀를 볼 수 있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짙푸른 녹색의 나무들이 긴 가뭄이 계속된다든지, 폭풍을 만나도 저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비가 오고 가물지 않을 때에는 저렇게 짙푸른 잎사귀가 가뭄이 오면 너무도 쉽게 누렇게 메마르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저렇게 힘찬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들 중에는 거친 폭풍이 불어오면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나 뒹구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가뭄에도, 폭우와 폭풍에도 끄떡없이 견뎌내고 잎이 푸른 나무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다를까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 24절 이하에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말씀하셨습니다. 두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기 전에는 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두 집 모두 지은 모습 그대로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비가 내려 큰 물길이 집으로 닥쳐오고 비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히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끄떡도 하지 않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외부의 공격이 있으면, 평상시 아무 문제없어 보이던 집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집을 어디 위에 세웠느냐 하는 기초의 문제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약하면 더 이상 성장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기초가 약하면 암기 과목은 시험 점수가 나올 수 있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실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공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제 조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농구를 잘 했습니다. 포지션이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제법 잘해서 인기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조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농구팀이나 프로농구팀에서 뛰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 제가 동숭교회 있을 때, 그 교회에 엘지농구단 마켓팀장이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프로 농구 코치에게 테스트를 받아 볼 수 있게 연결해 주어서 함께 엘지농구팀 연습장에 가서 테스트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론은 기초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프로팀에서 뛰려면 기초가 잘 다져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농구 좀 잘 할 수는 있지만 프로로 오랫동안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농구의 기초 폼, 자세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기초는 튼튼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집을 지을 때, 다리를 놓을 때, 사업을 시작할 때, 연구실에서 연구할 때에도 기초가 튼튼하고 바르게 되어 있어야 안전하고, 발전이 있고, 성장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는 괜히 기초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나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나무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나무에 비유하여 인생을 말씀하고, 신앙의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나무도, 신앙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로 기초, 뿌리가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 바로 그런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주로 믿어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신앙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는,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라는 뜻입니다. 신앙은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어떤 땅에 뿌리를 내리느냐는 아주 중요합니다. 나무가 어떤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곳이 나무의 생명의 터전이 된다는 뜻 아닙니까? 나무 스스로가 이곳저곳 옮겨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옮겨 주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무는 좋은 땅을 만나 뿌리를 내리느냐, 나쁜 땅을 만나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나무의 상태와 열매의 상태가 결정이 됩니다. 여러분, 맛있는 귤나무도 척박한 땅에 심으면 탱자나무처럼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탱자나무를 아십니까? 탱자나무의 열매인 탱자는 조그맣고 시고 맛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맛있는 귤이 열리는 귤나무일지라도 땅을 잘못 만나면 탱자나무같이 되고 맙니다. 나무가 어떤 땅에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그 나무의 상태와 성장과 열매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란 나무의 기초이며, 땅과 나무의 줄기를 연결하고, 땅과 나무와의 관계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뿌리는 영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흙으로 빚은 인간의 형체의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코를 통해 영혼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진흙의 형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고,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뿌리를 두지 않은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두어야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장 5-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나무의 생명과 성장에 물이 결정적인 것이듯, 우리 인생을 나무로, 하나님을 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막의 떨기나무가 되는 일이라고, 저주 받은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린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돈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오직 성령님께만 도움을 구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떤 힘과 도움을 공급받고 있습니까? 
  나무뿌리는 땅 속으로 뻗어야 합니다. 나무뿌리가 땅 위로 올라오면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부러지거나 죽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어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을 향해 뿌리를 뻗으면 우리의 신앙의 뿌리는 메마르고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게리 토마스는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동행에 깊이 박혀 있지 않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힘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의 어떤 수고와 행복도 하나님께 뿌리를 박을 때에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신앙이 왜 메말라 가는지, 왜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지, 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지요?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를 하나님께만 뻗어야 하는데, 하나님께 뻗었다가 세상으로 뻗었다가 하니까 마치 땅위로 올라온 뿌리가 메마르거나 밟히거나 부러지거나 죽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 결과 나무가 메마르고 힘이 없어지듯이 신앙도 메마르고 힘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이방 땅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주위에 많은 정치적 세력들에게 견제 당하고, 공격당하고,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왕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왕의 명령을 어겼다고 풀무 불에 던져질 때에도, 하나님께 신앙의 뿌리를 힘있게 뻗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 불에서 건져주시지 않아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다니엘도 끊임없이 예루살렘 성전 쪽 창을 향하여 신앙의 뿌리를 뻗었습니다. 기도의 뿌리를 뻗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세력들로부터 꼼짝없이 사자 굴에 던져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신앙의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뻗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여 주셨습니다.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배신하지 않고 순교의 피를 흘릴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의 신앙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깊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핍박과 박해의 도끼가 내리쳐져서 뿌리 하나가 끊어지면  하나님을 향해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 또 하나가 끊어지면 또 다른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무리 뿌리를 뒤흔드는 일을 만나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실 것이고, 하나님은 날 도와주실 것이고,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며,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 일로 죽게 된다면 천국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되지...! 결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구요? 하나님께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의 뜻은 뿌리를 조금 내리거나 얕은 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깊이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뿌리를 하나님께, 예수님께 깊이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깊이 뿌리박으라고 말씀합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풍성히 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입니다. 더위 속에서도, 가뭄 속에서도,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메마르지 않고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거센 폭풍에도 나무가 뽑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메스퀴트라는 넝쿨 비슷한 사막 식물이 있습니다. 메스퀴트는 수많은 뿌리를 갖고 있으며, 사막의 모래 밑 30미터까지 뿌리를 내려 수분을 흡수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작열하는 태양아래 물 한 모금 발견하기 어려운 사막에서 생존할 수가 있습니다. 겉보기에 아무리 아름다운 식물이라 할지라도 뿌리가 약하면 뜨거운 태양이나 약간의 비바람에도 견딜 수 없습니다. 뿌리 얕은 신앙으로는 작열하는 세속의 태양을 견뎌 낼 재간이 없습니다. 반면에 메스퀴트라는 사막식물처럼 우리의 뿌리가 영혼의 샘터 깊은 곳까지 내린다면 인생의 가뭄이 찾아와도, 세상의 온갖 바람과 유혹 속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쉽게 메마릅니까? 쉽게 지칩니까? 쉽게 상처 받습니까? 쉽게 신앙이 흔들립니까? 쉽게 믿음을 잃어버립니까? 쉽게 넘어집니까? 쉽게 실족합니까? 신앙의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훈련이 중요합니다. 경건훈련이란 경건훈련을 통해서 신비 체험을 하거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깨닫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의 기초를 계속 훈련하고 경험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훈련입니다. 성경을 보고 묵상하는 말씀생활, 기도 생활, 찬송하는 생활을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며 자신은 죄인이며 부족한 인간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경건 훈련을 통해서 “나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날 지켜보시고, 도와주신다!”고 깨닫고 고백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더위가 와도, 가뭄이 닥쳐도, 폭풍을 맞고, 추위가 올지라도 견뎌내고, 이겨내고, 그 속에서도 열매를 맺는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뿌리 깊은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 6,7절을 정리하면, 예수님 안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굳게 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신앙의 뿌리를 내린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자양분과 생명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린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 말씀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날라 다니는 겨를 비유하여 복 있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을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이냐 하면,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깊이 깊이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양분,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 하나님의 능력의 생명력, 진리의 지혜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템즈 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뜰에는 유명한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답니다. 그 포도나무는 유난히 맛이 좋은 열매를 맺기에, 식물학자들이 이 포도를 종자로 하여 우수한 포도를 보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아울러 자양분도 충분히 공급받아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의 말씀을 “강가에 심은 포도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맛이 유난히 좋음과 같으니”라는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사람은 생각의 뿌리가 달라집니다. 생각의 뿌리가 달라지니 하는 말도, 하는 행동도, 삶이 달라집니다. 삶의 잎이 푸릅니다. 맛있는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생각의 뿌리가 텔레비전인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에는 수많은 정보가 나오고,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이 소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뿌리를 텔레비전에 둔 사람의 생각과 삶의 가치는 잡다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의 뿌리가 일간 신문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의 뿌리가 미장원에서 읽은 여성 월간 잡지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정함이 없습니다. 생각의 뿌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의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내려야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을 실 때,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이 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귀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겁 대가리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두고 계신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험 당하심은 예수님 개인의 시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겪게 될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시는 모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셨기 때문에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에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했고, 손에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승리하게 하는 힘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경험하기 전에는 뿌리가 얕은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강림을 경험하여 성령 충만하게 되니까 신앙의 뿌리가 깊어졌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하나님께 깊이 내려졌고,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에 잡혀 심문을 받고 협박과 핍박과 위협을 받았지만 그들의 대답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였습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한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의 뿌리다!”
  요즘 사도행전 7장 말씀을 새벽에 보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사건의 말씀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그렇게 예수님처럼 자신을 박해하고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천사의 얼굴을 하며 죽어갈 수 있었던 것을 살펴보면, 성령과 은혜가 충만하였기 때문이지만,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구약 성경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진리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구원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경을 많이 아는 정도로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행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신앙의 집이 무너지지 않았고 아름답고 영원한 집을 지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더욱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삶,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과 삶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래 된 뿌리라고 해서 나무에 자양분을 많이 공급하는 뿌리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랜 뿌리 중에도 죽은 뿌리가 있을 수 있고, 메마른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된 뿌리라고 해서 꼭 뿌리 깊은 뿌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양정교회가 창립 60주년이 되었습니다. 60년의 오래 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오래된 뿌리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 뿌리 깊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깊이 깊이 뿌리내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은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삽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더위와 가뭄과 폭풍과 추위를 견뎌내고 이겨내듯이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은 고난을 이겨냅니다. 하나님께 깊게 뻗은 뿌리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마침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뿌리 깊은 신앙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3년 06월 23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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