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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5414]
· 설교 일자 : 2009년 07월 12일
· 본문 말씀 : 빌립보서 3장 12~16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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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빌립보서 3장 12~16절)
  한 여인이 시장에 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나님의 과일 가게’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그래, 바로 저기야!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가게구나! 저곳에 가면 내가 사고자 하는 과일을 살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완전한 바나나와 완전한 참외, 완전한 수박, 그리고 완전한 복숭아를 주세요.” 서 계시던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말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가게에서는 완전한 바나나, 완전한 참외, 완전한 수박, 완전한 복숭아가 없습니다.”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과일 가게’잖아요? 그런데 완전한 과일이 없다구요? 그러면 왜 ‘하나님의 과일가게’라고 간판을 붙였어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과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씨앗만 팝니다. 완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을 팝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하나님의 과일 가게에 들어오면 누구나 쉽게 완전한 과일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기적처럼 완벽하여 흠 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기독교 신앙생활이란 돈을 넣으면 금방 자판기에서 완전한 제품을 꺼내듯 순식간에 변화되는 삶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변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양합니다.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변화의 양도 각각 다릅니다. 어떤 신앙인은 신앙 성장이 빠른데, 어떤 신앙인은 신앙 성장 속도가 매우 늦습니다.
  키에르케고르라는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는 우리 인간을 ‘도상의 실존’이라고 말했습니다.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길 위에 우리의 삶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도상의 실존이라는 의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던 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빌립보 교회에 편지로 쓴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12-14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땅의 삶은 과정의 삶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과정 중에 있습니다. 천국백성이 다 된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으로 변화되고 있는 과정을 살고 있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 말씀하신 것 중에, 즉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대해 하신 말씀 중에는 씨앗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씨앗이 자라나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자라나는 과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기독교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이란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며 살던 삶에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여 진정한 자신의 삶의 주인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이 시작되는 것은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연약하고 부족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의 주인을 바꾸는 일입니다. 삶의 주인을 바꾼다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것은 삶의 주인을 제대로 찾는 것입니다. 잘못 주인 행세를 하던 것에서부터 참 주인에게 삶의 소유권을 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참 주인에게 삶의 관리권을 넘겨주는 것이지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가요가 있습니다. 가사가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더군요. 정말 그렇습니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가면 행복합니까? 성공적인 삶을 삽니까? 내가 나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고 경영할 수 있습니까? 지난주에 저는 밥을 먹다가 안쪽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런데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시 깨물고 또 깨물었습니다. 어제 점심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내가 내 살을 먹으려고 하나?” 여러분은 혀를 깨문 적은 없습니까? 평생 입 안에 음식을 넣고 윗니와 아랫니를 마주 하여 음식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입 안에 있는 혀를 깨물기도 하고, 안쪽 입술을 깨물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라는 사람은 내 혓바닥조차 온전히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말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누구의 것입니까? 생명이 여러분의 것이라면 여러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뜻대로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고, 여러분의 계획대로 생명을 잠간 휴식 상태에 들어갔다가 몇 십 년 쉬었다가 다시 깨어나 다시 삶을 살아가고, 여러분이 맘에 안 들면 생명을 죽였다가 원하는 때에 다시 살아나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너무 복잡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여러분 마음대로 관리하고 다스릴 수 있느냐 말입니다. 생명의 소유주다운 삶을 살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동안에는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인 줄 알고 살았던 사람이 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동안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살면서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한 인생이고,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이 세상에 생명을 주어 보내신 분이 있고, 그래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인생의 목적이 있고,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 생명과 내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 즉 내 삶을 본래의 주인에게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내 삶의 왕이라고 생각했던 잘못을 깨닫고 바로 잡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온 것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삶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실수하고, 허물이 드러나고, 죄를 짓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게 되는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하는 것,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우리 안에 두 주인이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처럼 두 주인을 똑같이 섬길 수도 없고, 실제로도 우리 인생의 주인은 둘이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결정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 삶의 주인이시고,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의 주인이시고, 이 땅의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시며, 우리에게 재능, 지혜, 건강, 물질을 주셨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주인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입니다.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파트너,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신앙생활이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신앙생활을 경주하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중요한 뜻은 신앙생활이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달려가는 방향이 분명합니다. 신앙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예수님 안에서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닮아가기 위해 방향을 잡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님을 향해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방향으로 따라갔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삶의 목표를 향하여 가는 과정에서,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위해서 우리가 이 땅위에서 바른 방향을 향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방향을 바꾸는 삶, 방향을 지속적으로 바르게 잡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지난 5월 초에 EBS 방송에서 [테마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배창호 감독이 태양의 나라 케냐를 여행한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케냐의 보고리아 호수에 대해 보여주었습니다. 보고리아 호수는 간헐천입니다. 여기저기서 100도씨나 되는 뜨거운 온천물이 솟아나와 호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호수의 물의 온도는 100도씨에 육박하여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 호수에는 여기저기에 새들과 동물의 시체들이 보였습니다. 그 시체는 그 호수물이 뜨거운 줄 모르고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익혀져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그 물 온도를 왜 몰랐을까요? 바람의 방향이 호수로 접근하는 새나 동물들의 방향으로 바람이 불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불어서 호수의 뜨거운 수증기를 못 느끼니까 호숫물 속에 들어가 삶아져서 죽은 것입니다.
  꼭 가야만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가서는 안 되는 방향이 있습니다. 만약 그곳으로 잘못 가고 있다면, 그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가던 방향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 ‘회개’ 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사용하게 됩니다. ‘회개’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방향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을 회개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던 것을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행위가 회개입니다.
  우리나라에 그 집안이 석학 집안이고, 문학박사이고, 전 문화부장관이셨던 이어령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학문과 인본주의 철학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인본주의 철학이란 하나님은 없고,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억압하고 훼손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은 곧 인간이 자유를 잃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요. 그분이 20대 때에는 반기독교적인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시집 간 딸이 암에 걸리고 손자의 질병으로 인해 그분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딸을 위해, 손자를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딸과 손자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적인 손길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오직 지성만으로 살아가던 방향을 이제는 영성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진리의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가 보고서 “어? 이 길이 아니네!” “어? 방향이 틀렸네!” 그때서야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 큰 질병에 걸려서,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서, 어떤 사람은 인생의 시련과 위기를 만나고서, 어떤 사람은 커다란 문제를 만나고서, 하나님께 방향을 돌리게 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을 찾는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끝까지 방향을 돌리지 않고 그냥 삶을 허비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신 동안 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였고, 진리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약속하신 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때,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사랑의 길, 영생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삶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보면 방향이 잘못 될 수도 있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잘못 곁길로 샐 수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또한 방향을 모르는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하나님께 달려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함께 천국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 방향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방향이 바르게 잡힌 신앙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신앙생활이란 좋은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태도를 다른 말로 자세라고 말합니다. 태도가 좋은 학생, 자세가 좋은 학생이 공부를 잘합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옛날 얘기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지만, 제가 그래 뵈도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00m를 14초 5에 뛰었습니다. ‘신목사가 은근히 자랑하네’라고 생각하는 분은 ‘신목사가 오직 자랑할 게 없으니 저걸 자랑이라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잘 뛰는 애들이 있었기 때문에, 단거리 선수로는 밀렸습니다. 그래서 축구선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저 신목사가 초등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들어갔나?’하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 아닙니다. 당당히 주민등록초본에 의거하여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여하튼 육상부에서 달리기를 어떤 자세로 뛰어야 하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달리기를 할 때, 뛰어가는 자세를 보면 저 사람이 일등을 할지, 못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배를 내밀고 상체를 뒤로 젖히고 뛰는 사람은 절대로 일등을 할 수 없습니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면서 뛰어야 가속도가 붙고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또 오른 손하고 오른 발이 같이 나가는 사람도 잘 뛸 수 없습니다. 자세!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축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공을 차는 순간 상체가 재껴지면 반드시 공이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그것을 일명 똥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자세에서 공을 찼느냐에 따라 공의 방향과 속도, 회전 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테니스도, 탁구도, 골프도 자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공이 작으면 작을수록 자세에 따라 민감하게 나타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경기하다가 공이 잘 안 맞으면 기본 폼, 기본자세를 연습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운동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나뉩니다.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뉩니다. 어떤 삶의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서 하루 하루 변화가 다릅니다.
  여러분, 태도가 불량한 사람은 삶의 모든 것에 불량합니다. 그래 놓고도 늘 다른 사람들 탓만 합니다. 행운이 안 따라준다고 합니다. 재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의 뜻을 아시지요? “저 사람, 참 삐딱하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치고 친구가 많은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치고 잘 되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삐딱한 태도에는 삐딱한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태도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커밍 워크라는 사람은 성공의 요인을 네 가지로 요약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성공의 요인으로 첫째는 지능이 높아야 하며, 둘째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기술이 좋아야 하며, 넷째는 태도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루는데 적어도 93% 이상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능, 지식, 기술은 성공을 이루는 데 7%밖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사람의 태도에 관한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하는 자세로 일을 하지만,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란 삶의 좋은 태도, 바른 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려는 바램이고, 노력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자만하지도 않고, 손에 잡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늘 달려가는 자세를 갖고서 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성장하고자 하는 자세, 언제나 더욱 온전해 지려는 태도, 언제나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 언제나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태도로 살아갔습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태도이며, 긍정적인 태도이며, 발전적인 태도이며, 신앙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로 바뀌어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태도가 바뀝니다. 삶에 대한 자세가 바뀝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긍정적인 태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태도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합니다.
  믿음의 태도란 하나님께 자신을 믿고 맡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내가 치러야 할 죄의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시고,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대신 죽게 하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믿음의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믿음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의 태도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셨고,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어 가게 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한 결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직업이 바뀌고, 삶의 내용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삶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태도로 바꾸면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요. 쉽게 바뀌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하나씩 하나씩 바꿔 주심으로 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진리의 삶으로,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으로, 행복한 삶으로 바꾸는 삶입니다.  
  교우 여러분, 저희 교회에 처음 또는 두 번째로 오신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을 바꾸십시오. 여러분, 그동안 인생의 길에서 우왕좌왕했습니까? 잘못된 길인 줄 알지 못하고 가다가 돌이키길 원하십니까? 삶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어서 자꾸만 허무하고 허탄하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바꾸십시오. 여러분의 태도를 좋은 태도, 긍정적인 태도,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태도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행복해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009년 07월 12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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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일시  2009년 07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17-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의 반응
· 일시  2009년 07월 19일
· 말씀  히브리서 11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 일시  2009년 07월 12일
· 말씀  빌립보서 3장 12~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 일시  2009년 07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 일시  2009년 06월 28일
· 말씀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찾아내기까지
· 일시  2009년 06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 일시  2009년 06월 14일
· 말씀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수의 강
· 일시  2009년 06월 07일
· 말씀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님 임재하소서 !
· 일시  2009년 05월 31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 일시  2009년 05월 24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항상 기도 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
· 일시  2009년 05월 10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03일
· 말씀  잠언 22장 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의 검 - 하나님의 전신갑주(VI)
· 일시  2009년 04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복음의 신 - 하나님의 전신갑주 (V)
· 일시  2009년 04월 1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