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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반응  [3845]
· 설교 일자 : 2009년 07월 19일
· 본문 말씀 : 히브리서 11장 6-12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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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반응 (히브리서 11장 6-12절)
  어느 날 아침, 아주 큰 카우보이 모자를 쓴 덩치 큰 텍사스 사람 하나가 어슬렁거리며 교회 사무실로 들어와 말했습니다. “여기 이 교회 왕초 만나러 왔소.” 그는 심한 남부 사투리가 섞인 느린 말투로 말했습니다. 교회 사무원이 놀라서 “교회 뭐.... 뭐라고요?” “왕초요. 왜 거 있지 않습니까?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계속 앞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 말이요. 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하고 할 얘기가 있어 들렀습니다.” 그 텍사스 사람은 특유의 사투리로 말했습니다. 그의 불경스런 언어가 기가 막혀, 그 품위 있고 단정한 사무원은 의자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꾸짖는 목소리로 반박했습니다. “이 보세요. 이 사무실에서 그런 무례한 언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분을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그 외의 호칭으로는 부르지 않는다구요!” 그 남자는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말했습니다. “난 절대로 무례하게 굴려던 게 아니오. 내가 오늘 아침 가축 한 떼를 막 팔고 내 농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교회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기에 여기다 10,000불을 기부하려고 왕초를 만나러 온 것이요.” 그 목장 주인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200만원을 헌금하러 온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무원은 목소리에 활기를 띠며 재빨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잠시 기다리세요. 가서 왕초 모시고 올게요.” 처음부터 교회를 방문한 목장 주인은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무원의 처음 반응과 나중 반응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삶은 반응입니다. 산다는 것은 어떤 사건과 상황,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죽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니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반응하는 것이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흐믓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앗싸!”라고 소리를 치며 좋아합니다. 히딩크 감독같은 사람은 어퍼컷 세레머니를 하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옆 사람을 마구 때리면서 기뻐합니다. 옆사람을 꼬집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로 붙잡고 돌면서 펄쩍 펄쩍 뜁니다. 어떤 사람은 기뻐서 눈물을 철철 흘립니다. 같은 기쁜 일에도 이렇게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기쁠 때에야 그렇다지만, 슬플 때, 괴로울 때, 상황이 안 좋을 때, 문제를 만났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이런 금언이 있습니다. “인생의 10퍼센트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로 구성되며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일어나는 일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구성된다.”
  계속되는 상황과 만나는 사람들, 사건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방향으로 반응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태도로 바꿔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긍정적인 태도, 믿음의 태도로 바꾸어 나가는 삶을 말합니다.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면 상황과 사건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6절,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며 믿음으로 삶의 모든 일에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사건들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 오랫동안 병을 앓던 한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가까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바라보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속의 믿음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믿음을 보시고 “네 속에 나를 믿는 믿음이 있구나, 그렇다면 너의 믿음과 함께 내가 너와 함께 일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믿음이란 믿는 대상과 내용이 있어야 ‘믿음이라는 말’이 말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의지를 믿고 무엇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신념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믿는 것이고, 또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시고, 나에게 어떻게 대하시길 원하시는지를 알아, 하나님의 나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으시는 것을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관심 가지시는 것을 우리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전과는 분명히 다른 눈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못나고 어떻고 저떻고, 자신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고 살고,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나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놀라운 사랑의 사건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사망과 저주의 지옥으로 던져질 것을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에는 목적이 있고, 뜻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담긴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소중합니다. 존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왜 내가 나를 포기합니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이 벌여졌을 때,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여러분이 그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예를 들면, 비가 온다고 합시다. 놀러가려고 하는 사람은 “또 비야!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어. 비가 나를 방해하네!” 그렇게 내리는 비에 대해 귀찮고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가뭄 속에 있는 사람은 “야! 비가 오신다! 금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는구나! 어서 오십시오. 대지를 흠뻑 적셔주세요.” 그렇게 내리는 비에 대해 반가움과 고마움으로 반응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오니까 기분이 울적하네요.” 그 사람은 비오는 날 애인과 헤어지고 비에 쫄딱 맞으면서 걸었던 처량하고 슬펐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울적한 기분으로 반응을 합니다.
  이렇게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의 처지, 자기의 이익과 관련해서 상황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내 생각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가 겪는 일들, 만난 상황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좋을 때뿐만 아니라 나쁜 상황에서도, 즐거운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결과를 얻게 하시려고 하시는 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일을 통해 나의 삶에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 즉 믿음을 깊게 하고, 나를 더욱 온전하게 하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고, 덕을 세울 결과를 바라보고 반응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에게 선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골리앗을 앞세워 쳐들어 왔을 때,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반응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하나님께서 쳐부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신체적 조건, 즉 키, 체중, 팔뚝 근육, 그리고 나이, 군사장비, 목소리 굵기, 등 모든 것에서 골리앗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 상황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그 상황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의 눈으로 볼 때는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별볼 일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골리앗은 하나님 앞에 쓰러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반응을 했습니다. 이 관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관점입니다. 이 반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으로 나도 나의 삶을 바라볼 때 믿음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자신이 겪는 사건과 상황이 그냥 현상적으로만 보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만 보입니다. 그냥 느껴지는 데로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믿음으로 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자신이 겪는 사건과 상황이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믿음이 없으면 고난은 괴롭고 지겹고 짜증스럽고 불평스럽고 원망스럽고 불안하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은 것으로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고난이 고난으로만 보이지 않고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복을 보기 때문에 고난에 대해 반응이 달라집니다.
  여러분, 이 찬송 가사를 아시지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않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반응하자는 찬송입니다. 지금만 보지 말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실 것을 믿으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용광로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반면에 믿음을 가지고 용광로에 들어가면 정금이 되어서 나온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금처럼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점점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면 자신이 겪는 사건과 상황을 볼 때 해석이 바뀌게 됩니다. 믿음이 들어가면 상황이 바뀌지 않더라도 해석이 바뀝니다. 해석이 바뀌면 반응도 바뀝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의 결과, 그 여종이 그 귀신에 힘입어 점을 쳤습니다. 귀신이 떠나갔으니 점을 칠 수가 없게 되었고, 그러니 여종의 주인들은 수입이 없게 되니까 수입원을 날아가 버리게 한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두게 만들었습니다. 빌립보 성에 들어와 억울하게, 재판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거짓되고 편파적인 죄목을 뒤집어 쓴 채, 몹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때 그들은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불안해하고 답답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그 여종의 주인들을 원망했습니까? 통곡했습니까? 아니면 애처롭고 처량하게 울고 있었습니까? 자포자기 했습니까? 빌립보 성으로 들어온 것을 후회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갇혀 있는 그 시간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최고봉에 도달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일들에 대한 해석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에서 나올 생각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겪는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고, 이튿날 아무 일없이 바울과 실라는 석방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의 눈으로 믿음의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의 반응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삶은 반응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매 사건마다 반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고 매번 오래 동안 시간을 끌면서 반응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마다 빠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선택을 위해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 안에 형성된 방향으로, 익숙해진 습관에 의해 움직입니다. 본능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여러분, 자동차안의 좌석은 나름대로 좋은 좌석 순서가 매겨져 있습니다. 사실은 운전석 옆 좌석, 일명 조수석이라고 말하는 좌석은 좋은 좌석이 아닙니다. 승용차의 경우 조수석 뒷자리, 그러니까 뒷좌석 중 오른편 좌석이 1등 좌석입니다. 그 좌석이 1등석이 되는 이유 중에는 자동차 추돌 또는 충돌 사고시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자동차를 조수석쪽으로 틀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운전자가 자기 생명을 보호하려는 반사적 행동으로 인해 조수석 쪽으로 차를 부딛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운전자의 반사행동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고민할 시간적 여유 없이 순간적으로 우리가 반응을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특히 현대 생활처럼, 스피드를 중시하는 생활 패턴에서는 즉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훈련을 통한 믿음의 반응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동 항법장치라는 것을 아시지요? 자동항법장치를 작동하면 자동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가도록 운행을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자동항법장치가 되어 있다면 휠씬 실수와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 신앙이 성숙한 사람, 경건한 사람이란 신앙의 자동항법장치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방향으로 운행되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믿음의 훈련이 되어 있어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기도를 아무리 길게 하여도, 교회에서 맡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한 신앙인으로 보여도, 그가 진정으로 삶에서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지 않는다면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왕의 신임을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적들로부터 위협당하고 있었습니다. 질투와 시기에 빠진 그의 적들은 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바벨론의 왕 외에 어떤 신을 섬기면 사자굴에 던져 넣으려고 왕의 조서를 내리게 하여 결국 다니엘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다니엘은 다니엘서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철저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상황에 반응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믿음의 반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거룩한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다니엘은 정치적인 적들의 편견, 편협, 증오, 핍박, 그리고 불공평과 맞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였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훈련으로 얻은 습관과 그 습관이 낳은 인격과 거룩한 영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믿음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몸에 배도록 훈련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믿음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 주일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성경도 규칙적으로 읽고, 기도도 매일 하고,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함으로 내가 언제나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으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말씀들을 듣게 됩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쉬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습관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배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중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중 노아라는 사람과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따라 살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사건들이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방주를 준비하라는 말씀을 듣고 언제 홍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20년 동안 방주를 산꼭대기위에다 만들었습니다. 도저히 믿음이 아니고는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시자 마냥 죄짓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물로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들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하더라도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없는데 무슨 조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 명의 아들도 없는데 무슨 자손이 바다의 모래알이니 밤하늘의 별들이니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결국 아들 이삭을 100세에 낳았습니다.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졌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 분들은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들이 겪게 된 상황과 사건, 불가능과 문제들 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믿음으로 훈련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거룩한 습관이 배여 있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놀라운 삶을 살다가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믿음의 반응으로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사라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죄로 말미암아 분리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분리된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묶어줍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밴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와 멸망의 강이 흐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이 죄와 멸망이 흐르는 강 위로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여러분 가스 밸브를 아시시오? 밸브를 잠그면 가스가 차단되어 불을 켤 수가 없습니다. 밸브를 열면 가스가 공급이 되어 가스렌지 불을 켤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통하게 하는 밸브와도 같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마치 밸브를 여는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사랑을,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모든 것을 풀고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직 믿음! 믿음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무겁고 지겨운 종교생활이 되고 맙니다. 믿음이 축이 되지 않으면 우리 삶에 변화와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기본 틀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행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의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반응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선언하시며 우리 삶에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찬송가 543장 가사 1절 “어려운 일 당할 때 / 나의 믿음 적으나 / 의지하는 내 주를 / 더욱 의지합니다. / 세월 지나 갈수록 / 의지할 것뿐 일세 / 무슨 일을 당해도 / 예수의지 합니다.” 3절 “밝을 때에 노래와 / 어둘 때에 기도로 / 위태할 때 도움을 / 주께 간구합니다. / 세월 지나 갈수록 / 의지할 것뿐 일세 / 무슨 일을 당해도 / 예수의지 합니다.”
교우 여러분,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2009년 07월 19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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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9년 08월 16일
· 말씀  여호수아 14장 6~12절
· 설교  이동훈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학교(2)
· 일시  2009년 08월 09일
· 말씀  신명기 8장 1-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학교
· 일시  2009년 08월 02일
· 말씀  신명기 8장 1~1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일시  2009년 07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17-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의 반응
· 일시  2009년 07월 19일
· 말씀  히브리서 11장 6-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 일시  2009년 07월 12일
· 말씀  빌립보서 3장 12~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 일시  2009년 07월 05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6-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 일시  2009년 06월 28일
· 말씀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찾아내기까지
· 일시  2009년 06월 21일
· 말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 일시  2009년 06월 14일
· 말씀  사도행전 7장 54~6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생수의 강
· 일시  2009년 06월 07일
· 말씀  요한복음 7장 37-3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님 임재하소서 !
· 일시  2009년 05월 31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15~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
· 일시  2009년 05월 24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항상 기도 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17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만들어가는 가정
· 일시  2009년 05월 10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십시오
· 일시  2009년 05월 03일
· 말씀  잠언 22장 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성령의 검 - 하나님의 전신갑주(VI)
· 일시  2009년 04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복음의 신 - 하나님의 전신갑주 (V)
· 일시  2009년 04월 19일
· 말씀  에베소서 6장 13~17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