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로 던지는 부메랑 (에베소서 4장 27-32절) |
카멜레온의 혀는 자기 몸의 길이보다 두 배나 길다고 합니다. 흰 긴수염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데, 몸무게가 200톤에 가깝습니다. 흰 긴수염 고래의 혀의 무게는 웬만한 코끼리의 몸무게 보다 더 무겁답니다. 카멜레온의 혀의 길이나 흰 긴수염 고래의 혀의 무게에 비하면 사람의 혀의 길이와 무게는 굉장히 작고 적습니다. 세치 혀라고 그러지요? 길이는 10센티 남짓하고, 무게는 약 60그램이 채 안됩니다. 사람의 혀는 개구리 혀처럼 잽싸게 곤충을 채서 잡거나 뱀의 혀처럼 어두운 동굴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더듬이 구실을 하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작은 혀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강한 근육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사람의 혀의 권세와 힘을 아십니까? 그 영향력과 파급 효과를 아십니까? 성경에서 혀나 입을 표현할 때는, 말이나 언어에 관련하여 말씀하였는데, 야고보서 3장 1절 이하에는, 달리는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 말의 온 몸을 통제하는 것처럼, 혀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큰 배의 작은 키가 능숙한 선장의 손에 잡혀 있으면, 그 배는 거센 풍랑을 만나도 항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찮아 보여도, 그 말이 무슨 일이든 성취하거나 파괴할 수 있기에 혀를 잘 다루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말은 인생의 핸들과 같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주 작은 불꽃이 큰 산불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부주의한 말이나 부적절한 말이 자기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고, 조화를 무질서로 바꿀 수도 있고, 명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고, 지옥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연기처럼, 온 세상을 허망하게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혀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 뜻을 인정하십니까? 혀에는 힘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혀를 움직여 하는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고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찌르기도 하고 사람의 상처를 싸매기도 합니다. 말로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사람을 세워주기도 합니다. 말로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의 마음을 풀어줄 수도 있습니다. 말로 병들게 할 수도 있고, 치료하기도 합니다. 말로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불행하게 할 수도 있고, 행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저주할 수도 있고, 축복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본문 말씀은 새로운 말, 언어습관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앞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낡은 생활방식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까지 따라 가려면, 옛날의 삶은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속속들이 썩었으니 내다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활 방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생활 방식을 몸에 익히라고 말씀합니다. 4장, 5장, 6장이 그런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무엇을 벗어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내다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본문 29절에, 더러운 말은 어떤 것도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말은 단지 신성 모독하는 말이나 저속한 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유형의 모든 부정적인 말, 죄악된 말들을 뜻합니다. 31절에도,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가시 돋친 말, 헐뜯는 말, 불경스러운 말, 수군수군 거리는 말, 쓸데없는 말로 시끄럽게 떠드는 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교우 여러분, 성경은 왜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왜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왜 불경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은 더러운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마음에서 나오니까 말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악한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악한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 이하에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에서 말이 되어 쏟아져 나옵니다. 험담, 비방, 비판적인 말, 모욕하는 말, 비꼬는 말, 거친 말, 조롱하는 말 등은 남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죄입니다. 비록 혀로 죄를 지을지라도 진짜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험담, 비방, 비판적인 말, 모욕하는 말, 비꼬는 말, 거친 말, 조롱하는 말 등 이 모든 말 뒤에는 죄악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죄악된 마음속에 가득 담긴 것이 밖으로 나올 때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혀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이라는 인생의 핸들을 어떻게 돌리는 지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이 가득 담겨있는 지를 드러내기 때문에, 자기가 쏟아낸 말이 그대로 쌓여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이 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는지,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한 번 더 생각하여 말해야 합니다. 내가 한 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말이 나를 키우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앞길을 막고 나를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말, 언어습관으로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될 것 같습니까? 혀를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까? 마치 핸들을 함부로 돌려 난폭하게 운전하는 운전수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처럼, 혀를 다스리지 못하고 혀를 잘못 사용하여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해치는 사람은 아닙니까?
함부로 내 뱉는 말은 악한 말입니다.
분별없이 경솔하게 하는 말은 사람에게 아픔을 줍니다. 누구나 조심해야 하는 말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잠언 12장 18절에,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함부로 하는 말은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상처를 줍니다. 분별없이 경솔하게 내 뱉은 말이 사람에게 아픔을 줍니다. 어느 집에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잘 생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처럼 못생긴 아이가 이런 잘생긴 아이를 낳다니...” 그러면서 손자를 안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악의 없는 농담으로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에 시어머니가 “너는 네 집에서 뭘 배워 온 거냐? 가정교육을 그렇게 배웠느냐?”고 한 말이 기억나고, 시누이가 “시집올 때 해 온 것도 없는데 애라도 잘 나야지...”라고 한 말이 함께 기억이 나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아마도 그 며느리는 이제 시집 식구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 때문에 ‘시’자만 들어도 싫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금치도 안 먹고, 시청 근처에도 안 가고, 성경의 시편도 잘 안 읽으려고 할 것입니다. ‘시’자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시어머니, 시누이, 시집살이가 줄줄이 사탕처럼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인 시어머니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시어머니가 윗사람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가졌다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빼앗길 것이 없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함부로 내뱉는 말은 악한 말입니다.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디모데전서 5장 13절에,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만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 교회에 젊은 과부들이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며 한담하는 버릇에 빠지기가 쉬우니 특별히 주의를 주고, 말로 죄짓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할 일없이 다니면서 말을 함부로 옮기는 사람은, 잠언 16장 28절에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니는 사람은 친한 벗을 이간합니다. 상처를 줍니다. 말을 하다보면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20장 19절에는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할 일없이 다니면서 이말 저말 하고, 이말 저말 옮기고, 이말 저말 만들어내고, 말하거나 옮겨서는 안 될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하고는 사귀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우 여러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옮겨야 합니다. 잘 옮길 자신이 없으면 아예 말하지 마십시오. 말을 옮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말을 옮기려면 이렇게 옮겨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주일 날 안수집사 한 사람이 예배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사님으로부터 그 집사님이 낚시를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안수집사가 그렇게 한 것에 화가 나서, “다리나 똑 부러져라!” 그랬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는 목사님은 앗차!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옆에 있던 집사님은 안수집사의 친구였고, 낚시 간 안수집사의 성격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저녁, 낚시를 갔던 안수집사님이 사택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잔뜩 긴장을 하고 기다렸습니다. 한 성질 하는 분이 오겠다니 단단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는 안수집사님의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습니다. 손에는 과일이 한 바구니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어제 교회를 나오지 않았는데도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옷이나 두툼하게 입고 갔느냐고 걱정해 주셨다면서요, 다음부터는 꼭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목사님!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는 말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낚시 간 안수집사의 친구 집사님은 목사의 말실수를 더 큰 문제로 만들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로 말을 전한 것입니다. 그 세 사람 중에 누가 제일 훌륭한 신앙인입니까?
교우 여러분, 쓸데없는 말에는 귀를 막으십시오. 이말 저말하고 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말은 한심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리거나 깎아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죄입니다. 옛날에도 그랬었던 것인지,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근거도 없이 남을 비방하는 말들을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됩니다. 비방을 하는 사람이 쉽게 이야기를 하겠지만, 비방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인터넷 악플, 악성 댓글이라고 말하지요. 자기 이름이 실명으로 밝혀지지 않으니까 함부로 말하고, 사실 무근인 악성 소문을 퍼뜨립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기가 감정적으로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이는 말, 유언비어, 공격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합니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인터넷을 도살장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최진실씨 자살 사건 등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지 않습니까? 비방을 받는 사람은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명예와 신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게 되는데, 정작 비방을 한 사람은 '아니면 말고' 식입니다. “누가 그랬다카더라...” 카더라 통신의 말을 합니다. 자신의 언어폭력이 그 어떤 흉기를 휘두른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을 중상 모략하는 자는 무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더 죄가 무겁다. 무기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상대를 해칠 수 없지만, 중상모략은 멀리서도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여러분! 언어폭력을 휘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이솝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늙은 사자가 병이 나서 자리에 눕자 숲의 모든 동물들이 문병을 다녀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여우만은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늑대는 이 때다 싶어 사자에게 여우의 잘못을 미주알고주알 고해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여우가 사자를 동물의 왕으로 인정하지를 않아 병문안도 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여우가 나타나 늑대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늑대의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난 사자는 때맞춰 나타난 여우를 보자 노여움을 터뜨렸습니다. 여우는 몇 번이고 자기의 잘못을 사죄한 후 엎드려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사자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 용한 의사를 찾아다니느라고 늦었습니다. 마침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었답니다." 흐뭇해진 사자는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기를 "늑대의 생가죽을 벗겨서 식기 전에 아픈 곳에 부치면 됩니다." 늑대가 당장에 붙잡혀 가죽이 벗겨진 채 죽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남을 헐뜯고 공격한 말은 시간이 걸릴 뿐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말도 씨앗만큼이나 정직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남을 깎아 내리는 말이라는 화살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는 법입니다. 그것을 부메랑이라고 하지요? 부메랑아시지요? 던지면 다시 자기에게 날아오는 무기 말입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해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만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부메랑을 혀로 던지는 것입니다. 험담은 자기 입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가지만 그 칼끝은 돌고 돌아 반드시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날카로운 칼끝을 괜히 스스로 불러들여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꼴입니다.” 자기 혀로 던진 말이라는 부메랑에 자신이 당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인간도 역시 입으로 걸린다.” 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자신이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말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말로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로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을 명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9월 총회 기간 중에 수요일에 우리 노회 소속 지명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조인서 목사님인데, 예배 전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명교회 권사님들 자랑을 하더군요. 조 목사님이 어느 주일 날, 새 교우가 등록을 했답니다. 그리고 새 교우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지명교회에 등록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지명교회에 등록하게 된 배경을 설명을 하더랍니다. 그 분이 근처에 이사를 와서 목욕탕에 갔는데, 목욕탕에 몇 명의 여성들이 들어와 목욕을 하면서, 서로 권사님, 권사님 하면서 말을 주고받더랍니다. 그래서 생각에 ‘저 사람들, 교회 다니는가 보다, 교회 권사인가 보다...’하고 목욕을 계속하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 내용이 자꾸 귀에 들리더랍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자기 교회 목사님 자랑, 칭찬, 교회 누구누구 칭찬하고, 교회가 너무 좋다고 말을 하는데, 속으로 목욕탕에 와서 저런 얘기를 할 정도의 교회라면 내가 가보겠다고 해서 와서 등록을 했다고 하더랍니다.
우리교회 집사님, 권사님들은 목욕탕에 가서 지명교회 권사님들보다 교회 자랑, 목사 자랑을 더 많이 하는데, 왜 그 이야기 듣고 우리교회에 등록하는 사람이 없느냐 하면, 목욕탕에 가서 ‘김 권사님, 이 권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만 불러 말하니까 교인인지, 어느 교회 소속인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남 헐뜯고 비방하는 말 할 때에 김 집사!, 김권사! 신목사! 이러면서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전도의 문을 닫는 말들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입을 벌려 죄를 짓고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보다 입을 다물어 자신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 말로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예,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산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살아가려면 의사소통을 해야 하니,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혀로 던지는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의 모임은 바른 말하는 곳이 아니라 좋은 말 하는 곳이며, 죽이는 말하는 곳이 아니라 위로해주고 세워주고 살리는 말하는 곳입니다. 험담하고 비방하고 수군수군하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곳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온갖 더러운 말, 함부로 하는 말, 남들을 깎아내리는 말, 가시 돋힌 말, 수군 수군대는 말은 내다 버리기 바랍니다. 입을 다물 수 있으면 다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혀로 함부로 내뱉는 말, 더러운 말, 헐뜯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라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살라고 생명을 주셨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잘 배워 말로 죄짓지 않고, 생명의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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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8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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