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 (로마서 14장 17-23절) |
어느 교회의 교회학교전도사님이 어린이부 성경공부 시간에 천국이 어떤 곳인지 열심히 가르치고서 어린이들에게 물었답니다.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려면, 천국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 잠시 침묵을 깨고 한 아이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먼저 죽어야 해요.” 선생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해요!”라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국은 죽은 다음에 들어가는 곳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물론 죽은 다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천국은 죽은 다음에 들어갈 뿐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천당’이나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나 다 같은 말입니다. 엉덩이나 궁뎅이나 방뎅이나 히프가 다 같은 부분을 말하듯이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 즉 하늘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곧 하나님께서 계시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단어가 많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도 조금 나오고,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일컬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성경을 이해하고,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 왕, 통치자가 다스리는 나라와 사탄이 지배하는 영역과는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셨고,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자주 말씀을 하시니까?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그 물음에 대해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 20-21절) 이 말씀의 뜻은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이 땅에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때까지는 눈에 보이는 땅이나, 나라나,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천국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나라의 상태를 누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7절 말씀이 이를 설명해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평강과 즉 다른 성도들과 연합하는 것과, 희락 즉 영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임하시는 영역,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시는 모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그렇게 살아갈 때, 즉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를 맛보면서 살아갈 때, 성도의 교제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한마디로 성도들 간에 교제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교회를 설명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세상 속에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로마서 1장 6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은 예배당이라고 부릅니다. 거룩할 ‘성’자에, 큰집 ‘전’자를 써서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온 우주 어느 곳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곳에 임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배드리고, 성도들이 모여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모인 사람들 속에 하나님께서 임하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역사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속히 건설되도록 악의 세력과 투쟁하고
노력하는 기관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지 하나님 나라 자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가 교회 자체의 존속과 교회라는 기구의 성장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성장 목표는 교회가 성장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되기 위해서이지, 단지 교회가 큰 교회가 되고, 교회가 예산이 넉넉해지기 위해서 교회의 성장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예배와 성례 즉 세례와 성만찬, 복음 선포,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교회의 영적 직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적 직분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 하나님께로부터 이 영적 직분을 받았습니다. 예배라든지, 성례 즉 세례와 성만찬, 복음선포는 목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성도의 교제는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교제는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전조(前兆; 앞에 나타나는 조짐)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자유와 능력을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능력이 나타나도록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속에 드러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4-16절 말씀처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불을 켜서 숨겨두고 가려두는 사람이 없고 빛이 드러나도록 단 위에 두어 두루 비치게 하는 것처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사람들이 너희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오고,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성도의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계를 미리 맛보게 되고, 비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따라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천국은 매우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곳이라고 자세히 설교를 했습니다. 그 교회에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설교하는 목사님을 향해 못 믿겠다는 식의 말로 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목사님은 한 번도 실제로 가본 적도 없으시면서 어떻게 그곳이 좋은 곳인지 알 수 있어요?” 목사님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건, 천국에 갔다가 다시 이 땅으로 되돌아 온 사람을 내 한 사람도 못 봤기 때문에 천국이 정말 좋은 곳인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좋은 곳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볼 수는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미리 교회를 통해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전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벌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축하하는 잔치를 맛보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조건 없이 호의를 가지고 베푸는 것 아닙니까?
성도의 교제는 세상의 원리, 물질만능주의 원리, 세상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것을 은혜의 원리로 뛰어 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의 원리 중에 품앗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품앗이는 우리나라 농경문화 속의 미풍양속중의 하나입니다. 모내기를 한다든지, 타작을 한다든지 할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지요. 좋은 뜻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아주 오래된 미풍이라고 말들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이런 품앗이만 존재한다면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품앗이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만큼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교회 안의 성도들이 품앗이라는 세상의 풍습을 넘어서서, 서로 섬기고 돌보고 사랑하고 베풀 때,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 때,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품앗이만 맛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될 것이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교회 성도가운데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심방을 가니까 벌써 많은 분들이 병문안을 다녀가셨더라구요. 여전도회에서, 구역에서, 심방권사님들이, 교구 목사님이, 그랬더니 같이 입원해 있는 다른 환자가 묻더랍니다. 보아하니 교회에서들 온 것 같은데 어느 교회냐고, 보기 좋더라고 말하더랍니다. 자기도 만약 교회에 나가면 그 교회엘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더랍니다. 물론 우리교회가 모든 교우 환자들에게 그렇게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알려 주시면, 구역에서, 교구목사님이, 심방권사님들이 열심히 병문심방을 하시고,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세상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이 아닙니다. 친구와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두 팔 벌리신 모습은 “내가 너희들을 이만큼 사랑한다. 이렇게 사랑한다!”고 몸으로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조건없이, 아낌없이,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깨닫게 되고, 받게 되고, 얻게 되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 드러납니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성도들끼리라고 할지라도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성도라고 부르지만 온전한 거룩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성도라고 불러지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한 말입니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거룩한 사람들입니까? 내가 감히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러질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부담스러운 호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한 성도라고 불러질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거룩하다고 불러질 수 없는 허물과 죄가 많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성도라고 불러 주시는 것이지 존재자체가 완벽하게 거룩한 존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도라고 불러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거룩한 백성,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성화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변화시켜가는 공사 중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불완전한 죄인들이고, 아직도 완공이 먼 공사중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서로에게 가시나무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고, 그 사랑을 내 속에 다시 채우고, 십자가의 사랑의 힘으로 가시를 잘라내어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 주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갈망, 예배에 관한 책을 쓴 토미 테니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드림팀]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만이 지닌 능력이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는 능력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중간지대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도 더럽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란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낼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힐 것이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싸우고 분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은 편지하면서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다, 아볼로파다, 베드로파다, 그리스도파다 하면서 분열되는 것을 향해, 그것은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의 지배하에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를 세상처럼 보이게 하는 길은 싸우고 분열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고 분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싸우고 분열되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짜기 멀어지고 싸우고 분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쌓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성도의 교제로 시작합니다.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서로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꺼내 놓고 함께 기도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눕니다. 점점 더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그러다가 서로 자기들끼리만 더욱 가까워집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그렇게 친밀하지도 않고,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멀리합니다. 이미 가까워진 교우와 좋은 관계가 유지되니까 다른 사람이 자신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기면 서로 친밀한 사람끼리 챙겨줍니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허물을 덮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그 사람 몇몇끼리는 자주 모이고, 가까울 대로 가깝고,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니까 교회 안에서도 표시가 납니다. 그 모임에서 다른 교우들에 대해 험담한 내용도 나옵니다. 상처 주는 말도 오고갑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다른 교인들은 그들 사이에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고 다른 교인들과 그와 같은 모임을 만듭니다. 그러다가 서로 힘겨루기를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제가 마침내 주님의 몸인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신체에 비유하자면 피에 해당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피는 온몸을 순환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면 몸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느 날 아침 팔이 저려서 왜 그럴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밤에 옆으로 누워 자면서 팔이 눌렸기 때문에 신경과 피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가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손발이 저리고, 차갑습니다. 힘을 쓸 수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지속이 되면 마비가 옵니다. 장애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근육이 뭉쳐서 고생한 적은 없습니까? 오십견 같은 것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습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담이 결린다든지, 피가 순환되지 않아 생긴 어혈로 인해 질병이 생기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교제가 활발하지 못하여 순환되어야 할 것이 순환되지 않고, 통해야 할 것이 서로 통하지 않고, 고이고 뭉치고 딱딱해지면 건강한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란 문제와 질병이 발생하고, 사탄의 공격에 대해 대처할 수 없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 않는 교회가 됩니다. 한마디로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교회로써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 끼리 끼리만 뭉쳐서 그리스도의 몸을 뭉치게 하지 마십시오. 담 걸리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피가 순환되어야 하는 데, 어혈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덩어리지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몇몇 지체들끼리 덩어리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사조직을 해체하십시오. 교인들 간에 있는 계모임을 해체하십시오. 그리고 교회 안의 있는 조직, 기관의 이름으로 모이는 경우 교회의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교회와 자기 소속 기관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본문 20절 이하의 말씀의 내용은 형제자매가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간에 화평의 일을 힘써야 합니다. 자기들끼리만 좋으려고 화평을 깨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교우 여러분, 열려있는 교제이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다른 교우에 대해서도 열려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은 놀라운 일을 이룹니다. 믿음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게 합니다. 믿음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일을 기적처럼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질병과 죽음을 세상에 가져오고 거짓과 불의와 분쟁과 살인과 온갖 죄악을 짓게 만듭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쾌락과 거짓 행복으로 현혹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을 고통과 불행으로 끌고 가며 사탄의 종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의 통치가 분쇄되는 곳에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제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미리 맛보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다스리심으로 악의 지배가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두 세 사람이 모여 기도하면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 믿음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기도의 목소리를 모아 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는 일입니다.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여 예배드리기를 힘쓰고, 서로 필요를 따라 물건을 함께 나누어 쓰고, 멋진 화합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서로 식사를 함께 할 때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잔치였습니다. 이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습을 너무도 좋게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수가 늘어갔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가 끼리끼리만 교제하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제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하나님의 능력이 넘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성령 안에서 열심히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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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7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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