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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멘토가 있습니까?  [3313]
· 설교 일자 : 2010년 02월 21일
· 본문 말씀 : 에베소서 4장 11-16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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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멘토가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11-16절)
  정채봉씨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시집에 나오는 ‘만남’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가시와 같은 만남이다. /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이다. /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 영향에 따라 인생이 좌우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이 됩니다. 우리에게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환경 중에 사람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람이 약이 되기고 하고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세워주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를 만나느냐, 그 만남을 통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교제가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 신앙에 도움이 되느냐, 어떤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몇 주 계속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교제가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성숙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영국의 마가렛 공주가 어렸을 때, 엄마인 엘리자베스 여왕 옆에 앉아서 영국국민들에게 공주로서 첫 선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여왕이 그녀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넌 이 나라의 공주다. 공주답게 걸어라!”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주에게 말해주듯,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인답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써 왕의 자녀답게 성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각종 직임을 주시고, 영적 은사를 주신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예언자, 복음 전도자, 목사, 교사의 은사를 선물로 나눠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적 성숙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본문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오늘 본문 말씀에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지만 세상 물정 모드는 아이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처럼 사기꾼의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충분히 성장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의 작정하고 미혹하는 가르침이나, 세상에 유행처럼 번지는 사상이나 이론들이나, 온갖 악의 세력의 유혹에 대해,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쉽게 미혹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뿌리 채 뽑히는 일이 없는 충분히 성숙한 어른 신앙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이신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각 지체들이 서로 성숙하고 튼튼하게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 있을까요? 서로 도와서 함께 성숙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잘 모르면 먼저 신앙을 시작한 사람이 가르쳐주고, 한 사람이 어린아이 같으면, 더 성숙한 신앙인이 삶을 나누며 성장하도록 돕고, 한 사람이 뒤처지면 앞서 가던 사람이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워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고, 한 사람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채워주어 온전케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 한 사람만 특별한 신앙과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함께 신앙이 성숙해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함께 세워져 가는 삶이요,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성숙해지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모습이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지 않고 더욱 성숙해 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좋은 모델을 보고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본받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고, 인생을 살면서 “나도 누구처럼 되어야지.”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들을 정하여 닮아갈 때에 우리에게 성장이 있습니다. 발전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델링이라고 합니다.

  모델링은 겉모양만 따라서 하고,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껍질만 같으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겉모양, 행위만 같으면 그 마음속이 어떤지, 그 중심이 어떤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겉만 의롭게 보이면 속도 의로운 것으로 여겼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연예인들이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다닌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머리카락에 물들이면 다 연예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용이 같아야 합니다. 정신을 닮아야 합니다.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모델링의 중요한 내용은 삶을 배우고 나누는 것입니다. 누구처럼 장로가 되어야지, 누구처럼 권사가 되어야지, 누구처럼 교회학교 교사가 되어야지, 누구처럼 부자 되어야지, 누구처럼 대통령 되어야지, 누구처럼 유명한 스타가 되어야지... 이런 식으로 닮고 싶어하는 것은 겉모양만 닮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장로가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떤 장로가 되려고 하느냐 입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떤 부자가 되고 싶으냐 입니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면 그냥 직업으로써의 교사가 아니라,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으냐 입니다. 우리의 꿈, 우리의 목표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구가 있는 꿈, 목표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 꿈은 장로입니다’가 아니라 ‘내 꿈은 섬기는 장로입니다.’ ‘내 꿈은 권사입니다.’가 아니라 ‘내 꿈은 기도 많이 하고 교인들을 사랑하는 권사입니다.’ ‘내 꿈은 부자입니다.’가 아니라 ‘내 꿈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부자’입니다. ‘내꿈은 하나님께 헌금 가장 많이 하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꿈은 경주 최부자와 같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하사극 ‘명가’의 주제가 된 명문 가문 최씨 부자말입니다. 부자가 3대를 못 넘긴다고 하는 데 300년 동안 부자로 지낸 명가의 진정한 부자의 삶을 닮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나도 누구누구처럼 되어야지.” “나도 누구누구를 닮아야지.” 이런 긍정적인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반대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누구누구처럼은 절대 안 돼야지.”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모델링입니다. 부정적인 모델이 많은 교회는 심각한 교회입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모습, 형이나 언니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닮아가는 가정이어야지, 부정적인 내용으로 “나는 절대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은 안 될꺼야.” “나는 죽으면 죽었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은 안 될꺼야.” 이런 가정이라면 불행합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에서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받을 만한 모델을 정하여 본받고 닮아갈 때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교회 일하는 것을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물론 교회 일을 하면서, 봉사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칫 교회 일이나 봉사를 하다가, 일을 잘 하려고 하다고 보면 일을 깔끔하게 잘 하고, 일 잘했다고 칭찬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마르다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사모하는 것,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법,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 닮아가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다고 의식하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삶을 모델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내 삶에 함께 하심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 닮아가야 합니다.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농부가 소를 모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소에게 “앞으로 가실까요.” “이제 왼쪽으로 도세요.”라고 존댓말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농부에게 “농부 양반,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왜 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겁니까?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혹시 종교가 힌두교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농사일을 처음 배울 때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앞에서 소의 고삐를 쥐고 계셨습니다. 비록 소에게 하는 명령이지만, 앞에서 아버님이 소의 고삐를 쥐고 계시면서 듣고 계시는 데 반말을 쓸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존댓말을 썼습니다. 이제 아버님은 하늘나라고 가셨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른 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고쳐볼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도 할 겸 고치지 않고 그대로 하다가 이렇게 입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계셔서 내 삶의 고삐를 쥐고 계신다.”라고 여기면서 살아계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예수님처럼 되려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고 닮아가는 것이 신앙의 목표 아닙니까?
이런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자신이 직접 보여주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예수님을 닮게 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좋은 모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쓴 서신들을 보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여러 번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완벽하니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 말씀을 보면 그 뜻이 분명해 집니다. ‘나를 닮아라’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는 것을 닮아라’ “내가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하는 그 자세, 태도, 본받는 삶을 본 받아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자체를 닮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의 삶의 태도, 삶의 반응 자세를 본받을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려면 자신의 인생의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은사를 주신 것이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케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닮고 싶은 모델을 정하여 본받는 것은 모델이 되는 당사자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일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모델링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발전된 교제를 할 때,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한 서로 교제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 발전이 있는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성숙해지기 위한 교제, 서로를 성숙해지도록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요즘에 “멘토링”이라고 말합니다. 쌍방교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멘토링이란 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이타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아들 텔레마쿠스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오디세우스 왕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 바로 멘토(Mentor)입니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텔레마쿠스의 친구이자,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돼서 그를 훌륭한 인물로 길러 냈습니다. 그 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이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의 의미로 사용 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이 기원을 중심으로 일대 일 관계로 인생을 이끌어주며, 상호작용관계가 일어나는 것을 멘토링이라고 합니다. 더 경험이 많고 지혜가 많고 전문성이 있는 멘토에게 배우고 지도를 받는 사람을 멘토리, 또는 멘티라고 부릅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단 1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승훈 선수가 남자 중장거리 5000m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은메달을 땄고, 모태범 선수가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이어 1000m에서 은메달을, 이상화 선수가 여자 500m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 맨 위에 섰습니다. 그래서 세계 외신들이 도대체 코리아가 세계 빙상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를 취재하느라 바쁘답니다. 어느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아스팔트 위의 금’라는 머리글자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불모지였고, 열악한 환경에서 거둔 쾌거라는 말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 이런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첫째로는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2000년 1월에 국제 규격 메인 링크로 개장하여 사계절 연습할 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 원인입니다. 그전에는 야외스케이트장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물이 얼어야 국제규격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훈련 중 체력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손가락에서 피를 채혈하여 선수의 피로도, 건강상태를 점검하여 과학적인 훈련을 한 것, 그리고 살인적인 훈련양도 주목할 만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태범 선수나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나서 인터뷰 때에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규혁이 형이 나의 스승” “규혁 오빠, 강석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태범 선수는 32살 된 대선배 이규혁 선수와 이강석 등 선배들이 국제대회에서 세계선수들과 기량을 겨루는 모습을 보면서 꿈과 자신감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상화 선수는 이규혁 선수나 이강석 선수들이 이상화 선수의 훈련을 위해 함께 연습 상대가 되어주어서 자신이 남자선수들과 경기를 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이규혁, 이승훈 선수에게는 SBS 방송 해설위원 제갈성렬이 멘토입니다. 제갈성렬 씨도 1990년대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선수였습니다. 그는 후배 선수들의 기도 후원자이고, 그들의 멘토입니다. 그들은 벤쿠버에 입성하기 전에 함께 예배도 드렸답니다. 이규혁 선수는 제갈성렬 씨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전도해서 믿음의 용사로 세웠습니다.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는 모태신앙인입니다. 이렇게 선배들이 후배들의 꿈을 키워주는 좋은 모델이 되어 주고, 또 그들과 함께 운동하고 격려하고, 멘토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과학적인 훈련을 한다고 해도, 본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도전정신과 목표의식, 비전, 자신감, 끈기 등은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채워질 수 있습니다. 멘토링의 위대한 결과다 그 말입니다.
  요즘 기업에서도 멘토링 제도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신입사원과 고참 사원이 일대일로 관계를 맺어 회사에 적응하도록 돕고 일을 전수하고 배우도록 해주고,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멘토링은 일반적인 멘토링과 구별됩니다. 일반 멘토링은 멘토의 모습과 삶을 배우고 닮아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 영적 멘토링은 멘토의 삶의 자세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세워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모델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일반 멘토링에서는 멘토가 자기가 깨달은 것, 인생에서 터득한 지혜, 자신의 인생 철학들을 멘티에게 가르치고, 그것으로 지도해주고 격려하는 것이라면, 영적인 멘토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과 은혜를 나누어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대화하고, 함께 느끼고 가르치고 인도하고 상담해 주고,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성경적인 멘토링입니다.
   성경을 이런 멘토링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수많은 인물들 사이에 멘토링이 이루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 밑에서 시종 들던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고, 땅을 분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이끌었던 것을 보면, 여호수아의 멘토는 모세였고,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멘토링을 잘 수행한 멘토였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도 아주 좋은 멘토링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촌 오빠입니다. 에스더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모르드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난 에스더를 딸처럼 여기며 그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아름답도록,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굳건해 지도록 멘토링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사도 바울이 사도 바울이 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해 준 사람은 바나바라는 사도였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다 죽이던 공포의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회심한 후에 다들 경계하는 분위기일 때, 바나바는 바울을 믿고 변호하고, 바울을 받아들이도록 사도들과의 사이에서 중간 교량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믿고 함께 동역하기도 하고, 바울의 선교 사역에 굉장한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고 바울이 더욱 크게 사역을 하도록 나중에는 자신은 바울 한 발자욱 뒤로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멘토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돕고 지지해주고 세워주는 훌륭한 멘토였습니다. 바나바가 있었기에 바울도 있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사람을 돌보고,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워주는 일이 제일 위대한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려고 오셨고, 우리를 은혜로 보호해 주시고 세워주시고 성숙케 하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닮고 싶어 하는 신앙의 모델, 인생의 모델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신앙과 인생의 멘토가 있습니까? 그냥 혼자서 알아서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델이 필요하고, 멘토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멘토로 삼았습니까? 그렇다면 열심히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우십시오. 예수님을 닮으십시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십시오.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도 멘토와 멘티가 만나는 멘토링의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날 식당에서 계돈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끼리끼리 모여서 그저 세상 교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교제를 하면서 그것이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을 닮기 위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영적이 교제를 이루는 성숙한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앙이 더욱 성장하기 위하여 나에게 영적인 도움, 인생에 도움을 줄 멘토를 찾아서 배우고 닮고 교제하기를 바랍니다. 생선가시 같은 교제, 꽃송이 같은 교제, 건전지 같은 교제, 지우개 같은 교제가 아니라 손수건 같은 교제가 우리 교회 안에 성도들 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서로 좋은 신앙의 모델이 되어주십시오. 인생의 모델이 되어 주십시오. 서로 좋은 멘토가 되고, 좋은 멘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0년 02월 2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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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본문을 기재해 주세요)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기다려 주시는 은혜
· 일시  2009년 12월 20일
· 말씀  이사야 30장 18~2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
· 일시  2009년 12월 13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세 종류의 삶
· 일시  2009년 12월 06일
· 말씀  역대하 24장 15-2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인생
· 일시  2009년 11월 29일
· 말씀  마태복음 25장 14-3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용서의 지우개
· 일시  2009년 11월 22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31절 ~ 5장 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선물이 되는 말
· 일시  2009년 11월 15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29-3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혀로 던지는 부메랑
· 일시  2009년 11월 08일
· 말씀  에베소서 4장 27-3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감사가 주는 선물
· 일시  2009년 11월 01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5-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실망이라는 지뢰
· 일시  2009년 10월 25일
· 말씀  시편 42편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후회의 비탈길
· 일시  2009년 10월 18일
· 말씀  고린도후서 7장 8~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툴툴 탓 탓
· 일시  2009년 10월 11일
· 말씀  빌립보서 2장 14-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우상을 만들지 말라
· 일시  2009년 10월 04일
· 말씀  신명기 4장 15~2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