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을 더 높이십시오 (여호수아 6장 1~7절, 15~21절) |
여러분이 여러 번 들어 봤을 유머가 있습니다. 다시 들어도 재미있는 유머이기에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목사님이 교회학교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분반 공부가 막 끝난 학생에게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 물었습니다.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지?” 교회학교 학생이 대답하기를 “제가 안 그랬는데요.” 옆에 있던 담임선생님이 말하기를, “얘가 안 그랬다면 애는 정말 안 그런 거예요. 목사님!” 목사님이 학생, 교사의 대답에 성경 교육의 심각성을 느끼고 교육위원회를 소집했습니다. 목사님이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교회학교 한 학생에게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물으니, 그 학생은 자기가 안 그랬다고 하고,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가 안 그랬다고 하면 정말 안 무너뜨린 것이라고 하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 교회 교회학교가 교육을 잘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랬더니 교육위원회에 모인 위원장 장로와 각 부서 부장과 총무들이 한참 상의 하더니 하는 말, “그렇다면 우리 교육위원회 예산으로 여리고성 무너뜨린 부분을 변상을 해 줍시다.”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첫 성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함락시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을 함락시킨 방법과 내용이 아주 기이하고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떻게 그런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여리고성 함락 전쟁에는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fms 수준의 자세로 전쟁에 임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대하는 만큼 이루면서 살아갑니다. 삼류인생을 기대하면 삼류인생으로 삽니다. 실패와 패배를 기대하면 실패와 패배의 인생이 됩니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지 뭐!’하면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나는 원래 그래! 나한테 이 이상 바라지마!’라고 자신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면 정말로 기대할 수 없는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기대하는 것이 있어야 노력이 있고, 발전이 있고,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려면 기대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지휘에 따라 여리고성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 수준이 과거와는 달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나올 때부터 끊임없이 하셨던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를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극심한 노역과 탄압속에서 신음하던 그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놀라운 기대와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그들의 기대와 비전을 잊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기만 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될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서 자꾸만 애굽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차라리 애굽에 있었더라면... 그들의 마음속에 기대하는 것이 자꾸만 작아졌습니다. 기대 수준이 낮아졌습니다.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그들의 기대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에서 계속적으로 훈련하신 것은 그들의 기대를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는데 그것은 단지 낮에는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시는구나, 밤에는 불기둥으로 빛을 비춰주시고, 밤의 냉기를 없애주시는구나 하는 정도로 깨달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 하고 깨달아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도하실 거야!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들어가서 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계속 인도하실 거야! 이렇게 믿고 기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어 매일 매일 양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먹이시지만,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것이고, 우리의 생명을 책임져 주실 것을 기대하도록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땅이 단지 땅덩어리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그 약속의 땅에서 풍성하게 살 것을 기대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리고성 정복 사건속에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게 했고, 백성들은 그동안 그들의 기대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실 지 더욱 크게 기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리고 성을 향해 갈 수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 수준을 높이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기대 수준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하나님을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주실 복과 은혜와 신령한 것들을 더욱 기대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믿음생활이란 하나님을 기대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것을 기대하는 삶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면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면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의 격려를 기대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기대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기대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자기 혼자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꿈이나 허황된 소원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을 소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둔 소망!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기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까? 작은 기대를 가진 사람은 작은 복밖에 받지 못합니다. 기대 수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예배에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기대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주실 말씀을 기대하십시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려면 믿음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단순히 기대 수준을 높인다고 해서 기대한 만큼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둔 기대가 아니면 허황된 꿈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대는 철저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하나님의 복과 은혜와 사랑과 풍성함을 누리기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수준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놀라운 일을 위해서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어제까지의 믿음으로 오늘을 살려고 하지 맙시다. 오늘의 믿음으로 내일을 살려고 하지 맙시다. 날마다 믿음 수준을 더 높여야 합니다. 믿음이 제자리 걸음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길을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첫 번째로 전투 대상인 여리고 성은 철옹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성이었습니다.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여리고 성의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고, 외부의 공격에 의해서 쉽게 무너질 성벽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전쟁 능력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만약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 전투인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실패하여 패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기소침해서 가나안 땅 정복을 쉽게 포기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수준을 높여 놓으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의 역사를 모두 다 살펴보지 않더라도, 여호수아 1장부터 5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어떻게 훈련시켜 믿음의 수준을 높이셨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 인도자였던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도 몹시 불안했고, 긴장되었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할테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격려와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다시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말합니다.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기 위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이 여리고 성을 정탐한 후에 보고하기를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들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라고 보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탐하러 갔더니 여리고성 주민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자! 갑시다. 저들이 아무리 강한 여리고성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저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 없지만 정탐꾼의 보고 속에는 이런 믿음으로 인한 사기충천한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보고 한 내용과는 수준이 다른 정탐 보고입니다. 정탐꾼의 보고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이제는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요단강은 강 언덕에 물이 넘칠 정도로 물이 많은 때였습니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메마른 강이 아니라 마치 장마철의 강물처럼 물이 깊고 강의 폭이 넓은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그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을까요? 그것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수준을 높이는 훈련을 하신 일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뗏목을 만들고, 배를 만들고, 수영을 배워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해도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고 건널 배나 뗏목을 만들 나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에 강 물살을 헤치고 건널 수영을 가르치고 배울 상황도 못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렇다 치고 짐승들과 천막, 개인 물건들은 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백성들에게 여호수아 3장 5절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 경험한 것을 기억하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을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배를 타고 건넌 것도 아니고, 수영을 해서 건넌 것도 아니고, 강 이쪽에서 저쪽까지 밧줄을 묶어서 그 밧줄을 붙잡고 건너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앞서 가고 백성들은 약 1킬로미터 뒤를 따라갔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들어서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강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섰습니다. 마치 홍해 바다를 건너던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것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같이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수준이 점점 높아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여리고 성 함락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신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행하신다! 이것이 믿음의 수준이 높아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끊임없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응답하라는 요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행위나 선행이나 조건으로는 이룰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생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운 일, 평탄한 일, 쉬운 일에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말고, 나쁜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고통스러운 일,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인도하실 지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선한 길로, 유익한 길로, 열매 맺는 길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한 말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이한 일들을 행하실 거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거야!”라고 믿어야 합니다.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리며 기대하며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뜻 가운데 중요한 것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사건 사건을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믿음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하나님과 더욱 온전히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우 여러분, 더 큰 믿음을 준비하여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견고한 믿음을 준비하여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뿌리 깊은 믿음을 가져서 그 깊은 신앙의 뿌리로 빨아들인 신령하고 거룩하고 신비로운 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수준을 높여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려면 순종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여리고 성 함락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참으로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 장난을 하자는 것인지, 무슨 축제의 가장 행렬을 하는 것인지, 여리고성 주민들의 눈에 보이기에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이상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제사장 일곱이 양각 나팔을 잡고 불며 언약궤 앞에서 가면 그 뒤를 군사들이 따라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여섯 날 동안 그렇게 한 뒤 제 7일에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길게 불면 백성들은 일제히 다 큰 소리로 함성을 외치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전쟁하는 광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쟁 작전치고는 이상한 작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 명령에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그전 같았으면 난리 난리,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가 났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수준이 높아지니까 순종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열매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받는 복입니다.
여러분,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십니까? 베드로전서 2장 8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는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마치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끝은 실패와 진노와 멸망입니다.
여러분, 순종의 수준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성장, 발전, 성공을 원한다면, 어제와 똑같은 수준으로 살아서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다가 쉬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여름이 되면서 폭우가 내리고, 휴가철이 되고, 열대야가 며칠씩 계속되면서 잠을 제대로 못자서 새벽에 일어나기 힘이 들어 하루 쉬고 이틀 쉬고 그러다가 장기간 방학하신 분들! 다시 개학하십시오.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 더 나은 신앙을 위해서, 더 큰 기대를 성취하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동안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던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새벽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수요기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요기도회에 나오고 있는 분들은 더 큰 믿음의 수준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동안 나오지 않던 분들은 믿음의 수준을 높여 이제 함께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수준을 더 높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기대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믿음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순종의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 큐티 생활을 하는 것, 개인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의 기본 중에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1월 달에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교제, 거룩한 교제, 사랑의 교제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려면 사조직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6개월의 기간을 해체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20년이 넘게 운영되던 친목계를 목사님 말씀을 듣고 어렵지만 해체했다고 하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 해체하는 자리에 또 다른 계모임을 해체하기 위해 모인 교인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로 수준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결단을 하신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계를 하는 것보다 더 풍성한 기쁨과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신목사가 모르겠지... 하면서 계모임을 유지하고 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은 사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건전한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사조직을 해체한 이유는 끼리끼리의 모임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누구든지 모든 교인들을 사랑하고 교제하고 서로 용납하고 함께 하기 위함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형태의 모임으로 다시 끼리끼리가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목사의 설교가 목사의 말로 들리기 시작하면 신앙생활에 큰일이 난 것입니다. 적신호가 켜진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믿음이 자라고, 신앙이 바로 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신앙이 좋은 훌륭한 어른들을 보면, 그분들의 자세는 첫째 겸손하고, 둘째 온유하며, 그리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교회에도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분들은 담임목사가 설교를 할 때나, 젊은 부목사가 설교를 할 때에도, 전임전도사나 교육전도사가 설교를 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여기에 영적인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목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종으로 알고 들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십니다.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 자세를 보십니다.
노량진 교회 림 인식 목사님이라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회에 백과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목회의 정도를 걸으셨고, 목회의 모든 면에서 후배 목회자들의 상담에 답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돌아가신 임택진 목사님처럼 후배 목사님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그 목사님께서 노량진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중, 당회에서 어느 장로님이 림 목사님의 설교의 내용을 가지고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였답니다. 그 때 림 목사님이 당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장로님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목사의 말로 듣기 시작했으니 우리 교회가 큰 일이 났습니다. 이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목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서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읽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과 순종의 자세가 없는 데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성취되겠습니까? 말씀에 아멘이 없는 데 어찌 믿음의 능력과 순종의 열매가 있겠습니까?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들 식으로 여리고성을 함락시키려고 했다면 분명코 패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을 순종으로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요즘 컴퓨터나, 휴대폰이나, 네비게이션 등은 계속 업그레이드 해주어야 합니다. 전자제품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도 자꾸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버전 업, 레벨 업시켜야 합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고 싶으십니까? 더 나은 신앙, 더 나은 인격, 더 나은 습관, 더 나은 행동, 더 나은 성장, 더 나은 성숙, 더 나은 복, 더 나은 봉사, 더 나은 헌신, 더 나은 희생, 더 나은 구제, 더 나은 풍성, 더 나은 사랑을 이루려면, 지금 이대로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기대 수준을 높이기 바랍니다. 믿음의 수준을 높이기 바랍니다. 순종의 수준을 높이기 바랍니다. 어제의 수준에 머물지 말고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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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22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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