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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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신앙  [3697]
· 설교 일자 : 2010년 09월 19일
· 본문 말씀 : 마태복음 1장 23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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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신앙 (마태복음 1장 23절)

  지난 목요일 아침 KBS 아침마당 시간에 목소리 컨설턴트, 소통전문가로 알려진 김 창옥 씨가 출연하여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의 강의 중에 어린이들의 놀이 중 ‘얼음땡 놀이’를 말했습니다. 얼음땡 놀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술래잡기와 비슷하지만 좀 다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술래를 정하여 술래가 숫자를 세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되도록 술래에게서 멀리 달아납니다. 숫자를 다 센 술래가 아이들을 잡으러 달려갑니다. 달려가던 아이들이 자기가 잡힐 것 같으면 “얼음”하고 외칩니다. 그러면 술래가 자기를 못 잡습니다. 그 대신 자신은 온 몸이 얼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합니다. 그 얼음에서 풀려나려면 술래 아닌 다른 아이가 다가와서 어깨를 치면서 “땡!”하고 말해주면 얼음에서 풀려나게 되는 놀이입니다. 김 창옥 씨의 강의 중에 이 얼음땡 놀이를 말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얼음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땡!”하고 얼음을 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들과 상황과 사람들로 인해 얼음 상태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죄와 죽음의 문제 앞에 모든 인간은 “얼음!”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로부터 시작된 온갖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과 불행에 얼음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이 얼음상태에서 풀려나려면, 누군가 와서 “땡!”하고 어깨를 쳐주어야 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죄와 죽음과 온갖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 사건, 영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사건에 관한 말씀 중에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명령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그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이로써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서 임마누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성육신 사건은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임마누엘 사건의 절정이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임마누엘의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볼 때에든지,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내다보면서든지, 그리고 아주 중요한 현재의 나의 삶에 대해 가져야 할 중요한 신앙은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심적인 내용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임마누엘 신앙을 갖지 못할 때에 우리는 근심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그냥 저 멀리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나와 상관없는 하나님으로만 계신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깨달음과 믿음이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는 우리의 삶이 분명히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그 믿음이 구체적으로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이 임마누엘 신앙을 확고히 갖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과 함께 하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으로 임마누엘 신앙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의처증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아내를 사랑하여 믿고 결혼한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정신질환입니다. 아내를 믿지 못해서 계속 의심합니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5분 간격으로 전화를 해서 집에 있는지, 딴 남자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합니다. 그래서 그 아내는 샤워도 제대로 못합니다. 샤워하느라 전화를 제때 받지 않으면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외출할 때에도 길에서 다른 남자와 눈만 마주치는 것 같아도, 이웃집 남자와 인사를 하는 것 같아도 누구냐? 어떤 사이냐? 몰래 만나는 놈은 아니냐? 하면서 닦달을 합니다. 아주 심한 의처증 환자는 회사를 출근하면서 대문 밖에서 문을 잠그고 간다고 합니다. 그러고서도 또 수시로 확인 전화를 하지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처증 환자처럼 하나님을 계속 의심하고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못 믿을 만한 분이 아닙니다. 임마누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끝없이 의심하여 믿지 못하는 영적 의처증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임마누엘 신앙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임마누엘 신앙이 왜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요?

  첫째, 임마누엘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케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멀어졌던 사이가 가깝게 되었습니다. 화목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즐겁게 행하고,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목적입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다른 인생의 문제의 해결은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불편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죄와 거룩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꾸만 죄를 짓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옛 습관 그대로 행하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슬퍼하신다는 말입니다. ‘이를 어찌할 꼬!’하면서 근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근심하시는 것을 우리의 영혼이 느끼고 뉘우치고 회개하면 죄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슬퍼하시고 근심하시는 대도 회개하지 않고 옛 습관 그대로 행하고, 죄를 자꾸만 범하면, 점점 더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성령님이 탄식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는 대도 회개하지 않고 죄가 쌓이고 죄의 지배아래에서 살아가면 결국 성령님께서는 참다가 참다가 우리에게서 떠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서 떠나시도록 하는 것을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부사이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부부가 서로 잘못을 하거나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함께 살려면 다시 풀고 화해하면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이 토라지거나, 어느 한 쪽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부가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부부로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부든,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화해하고 용서하고 살아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으로 살아갈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지은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죄로부터 회복이 됩니다. 죄의 고백과 용서 받는 은혜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이 분명할 때, 우리는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지은 죄는 회개하고 용서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임마누엘의 신앙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이 여러분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까? 임마누엘 신앙은 우리들에게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을 이기게 하여 평안을 줍니다. 담대함을 줍니다. 견디게 하고 이기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앞날이 걱정되고, 사람들이 두렵고, 삶의 상황들이 불안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임마누엘 신앙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 가나안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당시 부족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은 생명을 내놓고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블레셋지역 그랄 땅에 거하면서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이 귀한 곳이었기에 그 지역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빼앗으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평화주의자인 이삭이 다툼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또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 우물을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이삭은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으로 인해 두려움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도 임마누엘을 약속하셨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로 양을 치던 모세를 불러 모세 나이 80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에게로부터 구해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의 대답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때 모세의 마음속을 꿰뚫고 계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후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된 여호수아도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장 5,6절상) 여호수아는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10여년 동안 광야에서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고독과 고생과 고통과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아들 솔로몬에게 임마누엘 신앙을 갖도록 강권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희 함께 하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 하시리라”(역대기상 28: 20)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 왕국을 침입했을 때, 유다 백성들과 그의 군대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하며 항복하라고 외쳐댔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은 백성들 앞에 나아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역대기하 32장 7,8절) 히스기야는 임마누엘 신앙으로 백성들을 안심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임마누엘 신앙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어 앗수를 군대를 진멸하셨습니다. 임마누엘 신앙!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이 그들로 승리케했습니다.
   유대인 소녀가 독일 경찰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수색 체포하는 동안, 그녀의 부모는 벌써 독일 경찰에 붙잡혀 끌려갔습니다. 용하게도 이 소녀는 ‘왈소’라고 하는 곳으로 도망하여 산속에 있는 굴속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화란 신학자 요하네스 할켄딕(Johannes Halkendijk)이란 신학 교수가 그 굴속에서 입수한 그 소녀의 메모지를 공개하였습니다. 메모지에는 세 마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나는 지금 빛나는 태양을 보지 못하나 밖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둘째, ‘이런 험악한 세상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셋째, ‘지금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고 계시나 이 굴속에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임마누엘 신앙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히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온갖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임마누엘의 신앙은 미래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임마누엘 신앙은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시며, 나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따돌리고, 외면하고, 거절하고 무시해도, 결코 나를 따돌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거절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를 무시하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냥 함께 옆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미래에 대해 소망을 갖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함께 일하시고, 함께 도우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일도 함께 하심을 믿고 소망을 갖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자 리빙스턴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또 때로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또 포로생활과 같은 나날을 살아가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위로받으며 선교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한 구절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실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성장하고 변화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저희 집에 두 아들이 어렸을 때에는, 어디로 여행을 떠나거나 명절이 되어 부모님 댁으로 가려고 하면 제가 짐을 싸고, 짐을 차로 다 운반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니까 당연히 제가 다 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희 두 아들은 서로 장난이나 치거나 오히려 출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저한테 혼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집에서 아빠요, 남편이지만 마치 짐꾼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성장하여 고등학생, 이제 대학생이 되니까 힘을 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행을 떠나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해야 할 때, 그저 나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큰 아들! 이거 들어라! 둘째야! 저거 들어라!” 그러면 두 아들이 알아서 척척 들어서 옮깁니다. 우리 네 가족이 함께 사는 방식이 옛날과 지금이 달라졌다 그 말입니다. 전에는 함께 살면서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내가 주로 움직이고 일했다면, 이제는 그 일들을 두 아들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움직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신앙이 갓난아이 같고, 어린 아이 같을 때에는 그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고 행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를 떠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은 은혜와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은 점점 더 신앙이 성숙해 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은혜에 대한 반응, 은혜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야 하고,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해 반응해야 합니다. 책임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과 자녀된 우리들이 함께 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예수님도 행하셨고,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미래의 소망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도, 헌신도 없이 무조건 하나님께서 나와 지속적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기주의적 신앙입니다. 갓난아이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언제나, 어디서든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임마누엘 신앙으로

2010년 09월 19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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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열매
· 일시  2010년 09월 26일
· 말씀  에베소서 5장 8-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임마누엘 신앙
· 일시  2010년 09월 19일
· 말씀  마태복음 1장 2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 일시  2010년 09월 12일
· 말씀  시편 57편 1~2절
· 설교  손병인 목사 (양정중앙교회)
   
주일예배 설교
 그럼, 그리 바꾸겠습니다
· 일시  2010년 09월 05일
· 말씀  누가복음 14장 25-3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 일시  2010년 08월 29일
· 말씀  고린도후서 13장 5-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수준을 더 높이십시오
· 일시  2010년 08월 22일
· 말씀  여호수아 6장 1~7절, 15~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