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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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2946]
· 설교 일자 : 2011년 12월 11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장 46-56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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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누가복음 1장 46-56절)
  도로 옆에 인접한 농촌 마을의 이장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 때문에 마을이 평온하지 않았고 가축도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자라지 않고 닭은 이상한 달걀을 낳는 것입니다. 또한 도로를 가로질러 논밭에 일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마을 이장으로서 이 질주하는 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긴 해야 하겠고 해서 며칠간 고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마을 앞 도로가에 눈에 확 뜨일 정도로 큼직한 표지판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러자 즉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차들이 그 마을 앞에 이르게 되면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아예 거북이 기어가듯 천천히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장님의 아이디어가 대 성공이었습니다. 마을 앞 도로가에 설치한 큰 표지판에는 뭐라고 써 있길 래 달리던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였느냐 하면, “나체촌 마을 입구, 차 안에서도 볼 수 있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이 일시적으로 해결되었다가 다시 문제가 생기는 미봉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영구적인 해결이 필요합니다. 문제의 일부분만 해결되는 부분적 해결도 궁극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총체적 해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면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나라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총체적 해결이 필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성탄절이 왜 기쁘고 중요한 절기인지를 알려면,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누릴 때, 성탄이 기쁘고 즐거우며, 성탄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았던 사람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했던 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실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알려주었습니다. 마리아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 생명과 자신의 삶 전체를 내어 드리는 결단이 있었기에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메시야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잉태하게 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고백적인 찬가의 내용입니다. 이 마리아의 찬가 속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비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성자 하나님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고 믿었습니다.
  47절에, 마리아는 하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9절 이하에, 구주 되신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실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주란 구원자, 구속자, 구세주와 비슷한 뜻입니다. ‘구원하시는 주’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려움에서 건지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구원자라고도 하지만, 예수님께 이 칭호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에는 천사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주가 나셨다 곧 그분이 그리스도 주시다.” ‘구주는 곧 메시아 주이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성을 지나가다가 우물물을 길으러 온 여인과 대화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기 동네에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했고, 예수님은 수가성으로 들어가 이틀이나 묵으시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구주로 오셨습니다. 구주가 되셨습니다. 구주로써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냥 어느 날 하늘 세계에서 지내는 것이 심심해서 인간 세상을 구경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또는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을 인간 세상에 보내어 인간 세상을 탐지해 오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이 세상을 구원하도록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17절 말씀,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주이십니다. 구세주, 곧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나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은 구주시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신앙을 아주 간단하게 집약한 고백이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있었습니다. 물고기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헬라어 첫 글자를 모아 단어를 만들면 “물고기”라는 ‘익수스’라는 단어가 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핍박과 박해 속에서 서로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라라는 표시를 물고기를 그려서 표현했습니다. 이 물고기라는 단어 속에 담겨진 중요한 신앙 고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시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금세기에 위대한 크리스천 평신도였던 C.S. 루이스가 캠브리지 채플에서 한번은 ‘예수의 구주 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어떤 한 학생이 C. S. 루이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본받아야 할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라는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C. S.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이런 반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삶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가?” “그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완전하게 따라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하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도덕적인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분은 자네에게 도덕적인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도덕적인 모델이 되거나, 훌륭한 교훈과 사상만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49절-55절의 말씀 내용은 구주로 오신 성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지를 고백한 말씀입니다. “49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한 마디로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좁은 의미의 구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원이란 단지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해 주는 것, 위험에 빠진 사람이나 나라를 구해주는 것, 자연재해나 적의 침략과 같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서 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원수나 환난, 온갖 두려움, 질병 등으로부터의 구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주로 죄와 죽음,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해 내는 것으로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도록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게 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신체적, 물질적, 경제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 인간관계적 등 모든 면에서의 도움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인적 구원, 총체적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총체적 구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마리아의 찬가 내용에 담겨진 말씀에 50절, ‘두려움 속에 있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51절, ‘허세부리는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52절, ‘오만한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고통당하는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53절, ‘배고픈 자들을 배부르게 하시고, 욕심쟁이 부자를 빈손으로 보내신다’고 말씀합니다. 구주이신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하실 지를 말씀합니다.


  20세기에는 인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여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혁명을 통해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입니다. 특별히 53절에 말씀하는 ‘배고픈 자’ ‘욕심쟁이 부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은 21세기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휴지조각처럼 되어버린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생각과 유물론적 사상은 얼마나 우수꽝스럽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이데올로기입니다. 실패한 혁명이데올로기입니다.
  또한 인간 세상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문화 발전주의는 과학, 기술, 의학, 문화의 발전을 이루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엔 놀라우리만치 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과학, 기술, 의학, 문화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인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발전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과학은 발달하여 우주를 연구하고 있고, 기술도 발전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편안하고 쉬운 삶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의학도 발전하여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100살 이상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화도 발전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발전의 이면에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파괴된 자연이 다시금 우리들에게 재앙으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의학이 규명하지도 못하고 치료 방법도 알지 못하는 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화, 사상의 진보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 범죄, 문화 현상은 어떻습니까? 계속 증가하는 정신 질환, 자살, 패륜적 범죄, 인간다움을 상실한 사회 현상은 과학으로, 기술로, 의학으로, 문화로 해결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 없는 과학, 기술, 의학, 문화의 발전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지만 양날의 칼처럼 우리들에게 악한 것으로 되돌아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현상적인 문제해결은 궁극적 해결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회복하지 않고는 세상은 더욱 더럽고 악하고 끔찍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무엇에 종이 된 우리, 노예가 된 우리, 지배받고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죄에서부터 해방시키십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도우시고,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죄가 우리 영혼을 장악하고 지배하지 못하게 합니다.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또 다시 죄의 지배를 당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욕망의 늪에서 건져주십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삶이며, 그 끝은 사망입니다. 탐욕의 욕망, 정욕의 욕망, 쾌락의 욕망, 소유의 욕망의 늪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사망과 진노와 허무로 끝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욕망의 늪, 사망의 늪에 빠져 죽어가지 않도록 예수님의 구원의 손을 잡는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의 늪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를 불행케 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불행의 요인들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몇 번 노래를 부른 것으로 인해 수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그의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임 재범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가수입니다. 오래 전 설교 중 ‘여러분’이라는 윤 복희씨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셨는데, 그 때 남자의 가수가 임 재범씨 입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무런 이유 없이 불안이 엄습해 왔고 매일 죽음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으며 냉골에 자신을 방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심각한 생활고도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전기료를 낼 돈이 없어 밤에는 모든 전원을 내려야 했고, 수도세조차 아끼기 위해 씻지도 않았답니다. 그야말로 페인처럼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그의 곁에 둔 성경책을 접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차차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의 아내가 시키는 대로 따르니 결국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푹 빠져 살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한때 불교 등 다른 종교에 심취했던 것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결국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지난 6월 자신의 콘서트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중”이라고 1만여 관객 앞에서 공개했습니다. 불안, 두려움, 허무와 같은 부정적 감정의 불행이 늪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의 늪에서 건져주십니다. 누구나 손을 내밀면, 예수님의 손을 잡기만 하면 욕망의 늪에서, 불행의 늪에서 건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 손을 내밀어 잡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감옥에서 꺼내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지 감옥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치장, 감호소, 교도소와 같은 감옥에서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를 가두어 둔 첫 번째 감옥은 자기중심이라는 감옥입니다. 자기중심적 사랑의 감옥, 자기중심 속에 갇혀 있는 그 감옥에서 우리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꺼내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나를 내가 주인으로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어 나를 다스리고 인도하고 주관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이란 결국 나 중심, 자기중심적인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가두어 둔 감옥의 문을 열고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감옥은 자기중심의 감옥입니다. 한 상복씨가 쓴 [배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아스퍼거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지요. 1944년 오스트리아 의사인 한스 아스퍼거가 처음 발표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반적 발달장애의 하나로 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지능과 언어발달 상태는 정상이지만, 행동양상은 자폐증과 비슷하여 사회생활이나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폐증세가 있는 소아의 대부분은 언어발달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많이 늦는데 비해, 이 장애를 가진 소아의 대부분은 2세가 되면 단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배려]라는 책에는 사스퍼거라는 용어가 언급됩니다. ‘소셜 아스퍼거’를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아스퍼거는 대개 괴팍스럽기는 해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많지 않지만, 사스퍼거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 예의조차 없고,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목적, 자기 유익,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몰두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다보면 사스퍼거들을 만납니다. 자기 자동차 안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운전자들이 해당됩니다. 차 안에서 자신의 인격이나 예의, 교양을 내동댕이친 극한 이기주의 운전자가 사스퍼거입니다. 이런 사스퍼거들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 감옥에서 문을 열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사스퍼거는 아닙니까?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조롱을 받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 사스퍼거로 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구원은 받았고, 언제든지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니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자기 중심적인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죄 짓고 용서받으면 되니까 사스퍼거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스퍼거가 되었느냐고!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중심의 감옥에서 꺼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분노와 증오와 복수심의 감옥에서 꺼내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통해서 우리를 분노와 증오와 복수심의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마음속에 미움과 복수심으로 가득 찰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억울한 마음이 해결될 것 같아 복수를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복수심을 해결하는 방법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은 우리의 마음이 감옥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복수심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혁명으로 우리를 증오와 복수심의 감옥에서 구해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으로 분노와 증오와 복수심의 감옥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구원자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고쳐 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귀신을 쫓아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권세, 능력보다 뛰어나시고, 그것들을 복종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는 떠나갈찌어다!”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권능을 의지하여 명하노니 무슨 무슨 병은 깨끗하게 나을지어다!” 우리가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이름 속에 담긴 권세를 통하여 믿음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질병의 고통속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구원은 이것들만이 아닙니다. 총체적인 구원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총체적인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말씀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사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 속에 담긴 궁극적인 의미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돕고, 치유하고, 해방하고, 구원하시는 의지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아래에서 궁극적으로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의 근본적이면서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구주로 오셨습니다.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며 구원하여 주십니다.

  오늘은 대강절 세 번째 주일이며,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구원을 주셨는가를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인생의 모든 면에서 총체적 구원을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11년 12월 1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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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요한복음 20장 24~2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누가 찬양할 수 있습니까 ?
· 일시  2011년 11월 13일
· 말씀  시편 106편 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자족의 비결
· 일시  2011년 11월 06일
· 말씀  빌립보서 4장 10-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코람데오
· 일시  2011년 10월 30일
· 말씀  로마서 1장 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V (기도)
· 일시  2011년 10월 23일
· 말씀  요한일서 5장 13-1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은혜 아래 사는 사람
· 일시  2011년 10월 16일
· 말씀  로마서 6장 12~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II
· 일시  2011년 10월 09일
· 말씀  로마서 5장 17~2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새 언약의 몸과 피
· 일시  2011년 10월 02일
· 말씀  마태복음 26장 19-2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II
· 일시  2011년 09월 25일
· 말씀  미가 7장 18-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신앙생활에 대한 오해
· 일시  2011년 09월 18일
· 말씀  시편 103편 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너그러운 사람
· 일시  2011년 09월 11일
· 말씀  빌립보서 4장 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터닝 포인트
· 일시  2011년 09월 04일
· 말씀  사도행전 9장 1-9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님께서 먼저 보시는 것
· 일시  2011년 08월 28일
· 말씀  마가복음 2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네 사람의 이름과 신앙
· 일시  2011년 08월 21일
· 말씀  마가복음 2장 1-1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
· 일시  2011년 08월 14일
· 말씀  마태복음 24장 1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주의 하십시오 !!
· 일시  2011년 08월 07일
· 말씀  마태복음 24장 3~14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두 인생의 종말
· 일시  2011년 07월 31일
· 말씀  누가복음 16장 19-3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불평 중독
· 일시  2011년 07월 24일
· 말씀  시편 37편 1~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장롱 면허증
· 일시  2011년 07월 17일
· 말씀  야고보서 1장 2~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친구 예수님
· 일시  2011년 07월 10일
· 말씀  누가복음 7장 31~35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