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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봉사하려면  [3600]
· 설교 일자 : 2009년 01월 18일
· 본문 말씀 : 베드로전서 4장 10~11절
· 설교 :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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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봉사하려면 (베드로전서 4장 10~11절)

  어떤 사람이 돼지고기 집에 가서 삽겹살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가지고 온 삽겹살이 그야말로 삽겹살 무늬가 예쁘게 있는 고기가 아니고 비개가, 기름기, 지방이 많더랍니다. 그래서 그 손님은 식당 사장을 불러서 “아니, 이 삽겹살은 왜 이리 지방이 많아요?” 그랬더니, 사장이 삽겹살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아니? 이놈이 운동을 안 했구만!” 그러더랍니다. 사장의 재치 있는 말에 그 손님은 웃으면서 “아니, 됐습니다. 내가 먹고 운동하지 뭐!” 그랬답니다.
  사실 몸속에 지방이 많아지는 것이 꼭 돼지고기의 지방 같은 것을 많이 먹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고서 그것을 소모하지 않으면, 그 영양분이 나중에 몸속에 지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뱃살로 가서 쌓이고, 몸의 여기저기에 저축이 됩니다. 그러니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섭취된 영양분을 사용하는 것, 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음식을 많이 먹고 살이 쪄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거친 숨소리를 내쉬고, 그저 꼼짝하는 것조차 귀찮은 비만인으로 사는 게 좋습니까? 아니면 먹지 않아서 바짝 마르고, 좀 움직이면 먹은 게 없으니 어질어질하고, 비실비실하여 영양실조로 쓰러질 것 같은 상태로 사는 게 좋겠습니까? 둘 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몸이 건강해야 하듯, 우리의 신앙도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봉사는 꼭 해야 하는 활동입니다. 봉사는 영적인 유산소운동입니다. 봉사는 영의 양식을 섭취한 것을 사용하여 영적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만 먹고 봉사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비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영적인 활동과 봉사는 열심히 하는 데, 영의 양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체력이 고갈 될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11절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 말씀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봉사할 수 있는 힘, 봉사하는 데 사용되는 힘을 공급받으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뜻은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았다면, 그것을 쌓아두지 말고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비만에 걸리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골골골 하는 신앙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를 구원해 주시는 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한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대신 죄 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두 팔을 벌리신 모습이 “내가 너희를 이~ 만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데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가 창에 찔려 피를 다 쏟고, 물까지 쏟아 목숨을 다 내주기까지 사랑한다. 나를 봐라! 이렇게 사랑한다.” “십자가 위의 나를 볼 때마다 기억해라!, 내가 너희를 이만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랑을 믿고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해라.”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나와 같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하지 않으련?” “이 사랑하는 일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라, 서로 섬겨라, 서로 나누고 베풀어라, 서로에게 유익이 되도록, 덕을 세우기 위해,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 살리기 위해 봉사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봉사하며 사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봉사하는 우리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자녀가 되었으니 내가 너희의 쓸 것, 너희의 봉사할 수 있는 힘, 봉사에 필요한 재능, 은사,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봉사자는 내 힘으로 봉사하지 말고 하나님의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봉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지 않고, 내 힘으로 봉사할 때, 자기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봉사를 하면서 자꾸만 자기가 드러나고, 자존심, 자기중심의 생각과 주장이 앞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11절 하반절 말씀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봉사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땅위에 모든 곳에 내립니다. 모든 그릇에 담깁니다. 깡통에도 담기고, 항아리에도 담기고, 깨진 항아리 조각에도 움푹 패인만큼 담깁니다. 그러나 엎어져 있는 그릇에는 담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금 그릇이든, 은그릇이든, 그 어떤 그릇일지라도 엎어져 있는 그릇, 뚜껑이 닫혀져 있는 그릇에는 빗물이 담기지 않습니다. 빗물을 받으려면 엎어져 있던 그릇을 하늘을 향해 열어 놓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늘을 향해 마음의 그릇을 열어 놓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을 받기 위해서 하늘을 향해 열어 놓는 마음은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갈망하는 것입니다. 갈급해하는 것입니다. 기대하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절실하게 필요를 받아들이기 위해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막힌 것을 뚫어내고,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씨 뿌리는 것에 비유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그 비유에는 씨를 뿌렸는데 씨가 떨어진 밭이 4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 좋은 밭입니다. 이 비유를 살펴보면, 4가지 경우에 씨는 모두 같습니다. 뿌리는 농부는 똑같습니다. 말씀 자체나 말씀을 전하는 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듣는 자가 다르고, 듣는 마음이 다르고, 듣는 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 마음이 옥토처럼 되어야 온전한 받아들임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은혜를 받으려면, 우리 마음속의 돌맹이들, 각종 염려, 재물에 대한 유혹, 여러 가지 욕심들, 세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비우고, 깨끗케 하여 빈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상처나 쓴뿌리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는 것, 고집스런 자아, 자존심이 그냥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안에서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힘과 기름부으심을 받는 데 방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것들을 비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다 내어 맡기는 기도를 먼저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낮추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수원지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곳에는 수돗물이 배달되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공급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드릴 때에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믿음과 힘이 흘러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 비운 내 안에 성령님께서 가득 차시도록, 즉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연약합니다.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저는 추악합니다. 저는 게으릅니다. 저는 무능력합니다. 그래서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가장 작은 일조차도 주님이 제 안에 오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능력으로, 제 힘으로 한다면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되겠지만, 결과는 죄 짓는 일로 끝날 것입니다. 나는 자주 내 영광을 위해서 행하고, 점점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보다 상처를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주시지 않으면,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거룩함을 채워주시지 않으면, 신실함과 열심과 충성과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봉사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저에게 은혜를 주십시오. 힘과 능력을 주십시오. 제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성령 충만을 받기를 원합니다. 은사를 주옵소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을 받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책을 보니까,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는 말을 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예배는 신앙의 시작이요, 중심이요, 핵심입니다. 예배에 목숨 걸 만큼 예배의 중요성을 알아라, 예배에 집중하여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영어 단어가운데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서비스(service)’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서비스라는 말은 `봉사' 또는 `섬김'이라는 뜻이 있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워십(worship)이라고도 하지만 서비스라고도 합니다. 봉사하는 것과 예배드리는 것은 관련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영적인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사에 있었던 예배에 관한 아주 유명한 일화를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오산학교 교장인 조만식 장로님은 평양산정현교회 장로님으로, 주기철 목사님는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사제지간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학생시절 오산학교를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주일, 조만식장로님이 예배시간이 지나도록 손님과 이야기하다가 늦게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장로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예배를 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니 조 장로님이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죄를 용서하옵소서.”하고 회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아시는 장로님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은혜, 성령을 먼저 구하고 사모하지 못한 죄를 목사에게 지적받은 후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조만식 장로님의 훌륭하신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자세는 신앙생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는지,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힘과 성령충만을 주시는 지를 분명히 안다면, 예배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나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쏟아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새벽부터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면 새벽에 기도 열심히 하고, 은혜 충만, 평안 충만 하던 마음이 깨집니다. 은혜를 길바닥에서 쏟아버립니다. 안타깝고 실망스런 일입니다.
  장유에 있는 모 교회에 남선교회 수련회 세미나 강사가 왔는데, 그분은 그럴 때에 자신이 뭐라고 하는 지를 남선교회 교인들에게 말해주어서 박장대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 강사는 자기가 운전하다가 화가 나면, “저런 시베리아를 봤나!” 그러고 “저런 개나리 같은 사람!”그런답니다. 그러다가 정말정말 화가 나면, “저런 시베리아의 개나리를 봤나!” 그런답니다. 어떤 사람은 “야! 식기세척기야!” 그런답니다. 더러운 식기를 깨끗하게 세척해주는 사람 같다는 뜻 아닙니까? 정말 그런 뜻으로 한 말일까요? 그런데 설교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설교는 하나도 기억하지 않고서, 이 말은 또렷하게 기억해서 예배 마치고 식당에 내려가면서 써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가 있는 사람입니다. 교우 여러분,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주시는 힘을 받아 쏟지 않고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할 때에 우리의 봉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봉사의 주기가 여러 단계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봉사를 꼭 해야 하는 지를 잘 알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열심히 일하고 싶지만 교회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말을 들을까 봐 스스로 조심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다른 사람들의 격려에 힘입어 열심히 자기에게 맞는 사역을 찾아 봉사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은혜 충만, 믿음 충만하여 앞 뒤 안 가리고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 주소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 찬송을 부르며 온 힘을 다해 섬깁니다. 지쳐도 기쁘고, 힘들어도 좋고, 싫은 소리를 들어도 언제나 “아멘”하는 단계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봉사하는 일이 너무 많거나,  사람들이 너무 비협조적이거나,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싫은 소리, 기분 나쁜 소리를 들으면서 점점 맥이 빠지고 속상해져서 시들해지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봉사할 기회들을 멀리 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봉사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봉사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후에 어떤 계기로, 또는 어떤 정신 번쩍 드는 일을 경험한 후에, 이렇게 구경꾼으로 살아선 안 되겠다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시 힘을 얻어 새롭게 봉사의 기회를 찾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성도들 가운데 봉사하다가 상처를 입거나 실족하는 경우입니다. 서로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려고 하니까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지만 사람이 모은 곳에는 어느 곳에서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교회 생활이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안 하고 말지.’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조용히 주일 예배만 왔다가 다른 사람 얼굴 안 보고 얼른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그것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쇠약해집니다.
  여러분,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 체중이 늘고 뚱뚱해지니까 안 되겠다 싶었든지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뛰는 것을 처음에 하니까 힘이 들지요. 처음에는 힘이 들고 근육도 땡기고 하니까 그 다음날 그만 두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힘든 단계를 넘어서니까 조금씩 자신의 몸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걸어도 그전처럼 숨이 덜 가쁩니다. 다리도 훨씬 덜 후들거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건강해지는 것을 조금씩 느끼니까 운동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면 그 다음날 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움직일 때마다 ‘어이구구... 어이구구’ 하지요. 그렇다고 멈추면 그 몸은 더 쇠약해집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하다가 힘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때 그것을 신앙으로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을 받아 극복해야 합니다. 그때 신앙이 더욱 굳건한 반석위에 올라섭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 속에, 봉사할 수 있는 건강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실 뿐만 아니라 위로와 격려도 주십니다. 지난 해 11월, 12월 지나면서 저 개인적으로 많이 우울했습니다. 1차적으로는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고, 2차적으로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에 성경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읽으면서, 사도 바울도 그랬구나, 그런 사도 바울은 어떻게 극복했을까를 묵상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입니다. 공급해 주시는 에너지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신앙생활 속에서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영적인 것이 강해집니다. 그것 때문에 더 기도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되고, 그것 때문에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없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는 않는가,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믿음 없는 생각으로 세상의 이치와 논리를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 큰 소리로 주장하지는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봉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는 현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할 때에 봉사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이 더욱 강해집니다.
  봉사는 우리의 영적인 근육과 영적인 뼈와 관절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걷기, 달리기를 하면 뼈의 골밀도가 높아져 뼈가 더 튼튼해지듯이, 봉사를 하면서 영적인 근육과 뼈가 더욱 튼튼해집니다. 봉사는 단순히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세상에 사탄이 세력을 넓히려는 것에 대해, 우리의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과 영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저력이 생깁니다. 우리의 봉사를 막아서는 저항들이 우리의 신앙을 더 강력하게 만듭니다. 영적으로 싸우면서 결집되고, 싸우면서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봉사를 하면서 힘들고,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냥 쉽게 물러서면 영적 전쟁에서 후퇴하는 것입니다.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지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힘을 받아서 이겨낼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강건해 집니다. 맷집이 생깁니다. 강력해 집니다. 신앙이 온전해집니다. 영적으로 풍성해 집니다. 봉사의 더 큰 보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고, 하나님의 나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01월 18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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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를 만났을 때
· 일시  2008년 12월 07일
· 말씀  이사야 37장 14~20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렸을 때
· 일시  2008년 11월 30일
· 말씀  요한 15장 1-2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함께 전도하는 교회
· 일시  2008년 11월 23일
· 말씀  요한복음 1장 43~5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을 자랑하라
· 일시  2008년 11월 16일
· 말씀  시편 105편 1~3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