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내기까지 (누가복음 15장 8-10절) |
여러분, 요즘 과자 한 봉지가 얼마인 줄 아십니까? 100원짜리 동전으로, 500원짜리 동전으로 사먹을 수 있는 과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 중에는 동전 주면 좋아하지 않을 아이들이 제법 많을 것입니다. 지폐를 주어야 좋아하지요.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이 가치가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10원짜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쩔렁거리는 소리만 나고 무겁기만 하니까 동전을 책상 서랍이나 어느 구석에 그냥 방치해 둡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말씀에는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내용이 나옵니다. 비유에 나오는 드라크마라는 동전은 예수님 당시 사용되던 헬라 은전입니다. 하루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데나리온과 동일한 가치를 가졌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여성들은 종종 은전 열 개를 결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은전은 금전적인 가치 외에도 결혼반지처럼 정서적인 차원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은전 열 개는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 여인의 비상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 한 개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여인은 그 은전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비유이고, 찾은 후 너무 기쁜 나머지 친구와 이웃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본문의 잃었다 찾은 은전의 비유를 포함하여, 잃었다 찾은 양의 비유와 잃었다 찾은 아들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찾으신다는 뜻과 찾으신 즉 몹시 기뻐하신다는 내용의 비유입니다. 오늘 비유말씀에서, 여인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은전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잃어버린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한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은 잃어버린 은전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는다고 했습니다. 동전을 찾으려면 그냥 눈으로 쓱 둘러보아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 동전이 떨어지면 떨어진 그 자리에 점잖게 그대로 있지 않고 떼구르르 굴러서 어디론가 들어갑니다. 그것이 장롱 밑이기도 하고, 냉장고 밑 깊숙이, 손이 잘 닿지 않는 틈 속으로 굴러들어갑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동전을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은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어둠 속에, 숨겨진 곳에,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드라크마 은전을 찾아내기까지 찾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들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들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들이 하나님께 잃어버린바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들을 부지런히 찾으셨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주께서 나를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내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조정 관리들의 내심도 알 길이 없습니다. .....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일을 시작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자신들과 우리 영혼이 하나임을,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1885년 4월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의하여 파송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입니다. 조선말의 암울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고, 그리고 그의 믿음의 기도처럼 오늘 은총의 땅이 된 우리나라를 봅니다. 언더우드는 고아원을 운영했고, 교육기관을 세웠고, 병원을 세우고, YMCA를 조직했고, 그리스도신문을 발행했습니다. 어둡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했던 우리나라를 위해 그는 31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이 땅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둠만 보지 않았고, 가난만 보지 않았고, 절망만 보지 않았습니다. 어둠과 가난 속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실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기뻐하실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들, 그리고 바로 우리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언더우드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인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속에서 딱딱한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생명과 희망의 새싹을 보았습니다. 그 싹이 자라나 큰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을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의 말씀처럼, 극히 작은 씨앗을 심지만 그것이 자라나 큰 나무가 되고, 나중에는 새들이 깃들이는 나무가 될 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언더우드는 야고보서 5장 7, 8절 말씀대로 믿고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마침내 열매를 보았습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농부는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땀을 흘리고, 결실을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앗을 뿌리고 땀을 흘립니다. 봄철에 꽃놀이를 가고 싶어도 참고, 작열하는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가면서도 논과 밭에 물을 대고 풀을 뽑고 땀을 흘립니다. 귀한 열매를 거둘 것을 믿고 길이 참고 땀을 흘립니다. 길이 참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서 마침내 열매를 거둡니다. 드라크마를 잃은 여인도 찾기까지 부지런히 찾으면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할 때에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는 확신, 부지런히 찾으면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이기에, 찾으리라는, 거두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소망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을 통해서 변화와 생명과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부모님이 먼저 예수님을 믿어서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에는 다른 신앙인이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복음을 전한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을 보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믿으면서,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소망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나,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찾아내기까지, 결실을 거두기까지 부지런히 기도하며 섬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이 결실의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부지런히 전한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전하시길 바랍니다.
여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잃어버린 은전을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아냈습니다.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내게 됩니다. 배추가 다섯 번의 죽는 과정과 숙성되는 시간이 걸려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듯이, 좋은 것, 소중한 것, 가치 있는 것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삭을 것은 삭고, 스며들 것은 스며들고, 섞일 것은 섞이고, 숙성될 것은 숙성되기 때문입니다. 고든 리빙스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쁜 일에 빠져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좋은 것일수록 그것을 얻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목표를 이루어가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면 믿음과 열심히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시간이 흐르는 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기다리고, 인내하고, 땀을 흘리고 기도하면서 그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지,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즉흥적이지 않은지, 정말 믿음이 있는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를 점검하게 됩니다. 그런 점검 과정을 거치면서 결실이 만들어집니다. 불순물이 제거되고 핵심만 남습니다. 정말 그렇게 할 만한 가치와 관심과 열정과 사랑이 있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소중한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남편이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교우들이 계십니다. 오랫동안 응답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전도할 대상자에게 관심과 친절과 선물과 온갖 사랑을 전했는데도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추수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씨를 뿌리는 사람과 추수하는 사람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밭의 주인이 거둔다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구를 통해서든, 언제든지, 어떤 일을 통해서든지 그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누가복음 18장 1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 아주 교만하고 못된 재판장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너무도 억울한 일이 있어서 가서 자신의 원한 좀 풀어달라고 했는데, 재판장이 과부의 말을 무시하고 아무 조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과부는 그 재판장에게 자꾸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아침에도 가고, 저녁에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또 가고, 얼마나 귀찮게 하소연을 했든지, 재판장이 생각하기를 ‘내가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어야지 안 그랬다가는 내가 귀찮고 괴로워서 못 살겠구나!’하고 풀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라! 강청하는 기도를 드려라!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다!
여러분에게 어떤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무엇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까? 전도할 대상자의 이름이든, 가정의 문제든, 사업과 직장의 일이든, 세상사는 일이든, 신앙생활의 일이든 하나님께 강청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고 농부가 열매를 기다리며 땀을 흘리듯이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람을 전도하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출발이 선하게 출발했고, 선한 목적을 향하여 선한 방법과 과정으로 가고 있다면, 지금 잘 못되는 것 같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더디더라도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빌립보서 1장 6절에 사도 바울이 우리들에게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교우 여러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었다가 찾은 양의 비유, 잃었다가 찾은 동전의 비유, 잃었다가 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잃어버렸다가 찾는 내용도 공통적인 내용이지만, 찾았을 때, 찾은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잔치를 벌인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계산상으로는 손해가 나는 줄도 모르고 기쁨의 잔치를 합니다. 여러분, 양 한 마리를 잃었다가 찾은 뒤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서 즐기려면 얼마나 비용이 들까요?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은 뒤 역시 친구와 이웃을 불러 즐기려면 얼마나 비용이 들까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 아닙니까? 재산을 다 탕진한 아들을 찾은 뒤,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한다면, 그 아들이 갖다 허비한 재산은 그만두고 다시 또 재산을 축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 개의 비유에 등장하는 양이나, 은전이나, 아들은 모두 사람을 비유하는 말씀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한 생명 한 생명을 찾으시는 분이시고, 한 생명 한 생명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찾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찾는 데에 천하와도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십자가 위해서 우리 대신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 세상의 경제적인 원리로 쉽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경제 원리는 투자를 하면 투자 한 것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현세적인 경제 가치로만 그 결과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합니다. 영혼 구원에 들어간 시간, 땀, 돈, 열심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고, 마지막 날 심판의 때에는 이 세상의 가치와 이 세상의 평가로는 상상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말하지 말라.” 짐 엘리엇이 한 말입니다. 그는 그의 말처럼,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1927년 미국의 포트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글을 잘 썼고 재능 있는 연설가이며 교사였습니다. 휘튼 대학 재학 시절에 지도력 있는 학생으로 레슬링부의 챔피언이며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남아메리카에서 사역했던 선교사와 교제하면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아우카 부족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우카 부족에게 들어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1955년 가을 비행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는 아우카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다음 달부터 짐 엘리엇과 동료 여러 선교사들은 아우카 부족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비행기에서 선물을 그들에게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1년을 그렇게 하고 마침내 1956년 1월 6일, 짐 엘리엇과 4명의 선교사를 태운 헬리콥터가 에콰도르 동쪽에 있는 쿠라라이 강가에 착륙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월 8일에 헬리콥터에서 내린 짐 엘리엇과 4명의 선교사들은 아우카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Life]지에서는 이 사건을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선교에 힘이 빠졌고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선교를 지원하던 단체들과 사람들은 열정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5명의 젊은 선교사들의 끔찍한 죽음 앞에 무지한 아우카 부족에게는 선교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뒤, 한 미국인 여성이 아우카 부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부족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병들과 아픈 사람을 간호해주고, 부여자들에게 유익한 것을 많이 가르쳤고, 아우카 부족이 외부로부터 도움과 원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맞아 본국인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부족 사람들은 천사와 같은 그 여자를 환송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부족의 추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왜 우리를 위해 그렇게 고생하며 희생합니까?” 그 여자는 “그것은 내 남편이 당신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 남편을 잘 모릅니다. 당신 남편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제 남편은 5년 전 쿠라라이 강가에서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한 짐 엘리엇입니다. 남편은 당신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내 남편은, 당신들을 사랑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이곳에 왔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는 내 남편이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려 주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내 남편보다 당신들을 더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우카 부족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 자리에서 아우카 부족의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짐 엘리엇과 동료 선교사들이 1년 동안 헬리콥터로 선물을 뿌린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돈이 아깝고 5명의 젊은 목숨이 아깝다고, 미련하다고, 헛수고라고, 개죽음을 당한 것이 라고, 그렇게 까지 선교를 해야 하느냐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뒤,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그곳으로 들어갈 때에도 많이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무의미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들은 헛수고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불필요한 낭비란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뿌려진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거두십니다. 천국 창고에 쌓아 두십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드라크마 은전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쓸면서 등불의 기름을 다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름 값이 한 드라크마의 가격보다 더 비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드라크마를 찾을 것입니다. 부지런히 찾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단순한 돈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들여 찾아내기까지 찾을 것입니다. 열심히 빗자루로 온 집안 구석구석 쓸며 빗자루 끝에 동전이 걸리는 소리를 듣기까지 먼지를 마셔가면서 찾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여인에게 잃어버린 은전은 너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또 찾으실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한 영혼이 하나님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실 때 너무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위해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러분을 찾아내기까지 여러분에게 관심과 열심과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은전을 잃은 여인이 은전을 찾기 위하여 먼저 등불을 찾아 켜고 빗자루를 찾아 들고 온 집을 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해 등불과 빗자루 역할을 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렇다면 먼저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은전을 찾으시는데 사용하는 등불이 되어야 하고, 집안을 쓰는데 사용하는 빗자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꺼이 시간을 드리고,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언더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짐 엘리엇과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땅에 들어와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은 선교사들과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처럼, 하나님의 등불이 되고, 하나님의 빗자루가 되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을 찾은 일에 찾아내기까지 시간을 들이고, 부지런히 찾고 대가를 치르며 복음을 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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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2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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