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sermon

양정교회 홈페이지와 YouTube 채널을 통하여 설교말씀과 강의를 영상/음성/스트리밍으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2004년 8월 부터, 현재까지의 영상과 말씀 음원파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이 가능하며,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설교말씀 다시보기를 통해, 예배시간에 받았던 은사와 감동을 다시한번 회고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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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3094]
· 설교 일자 : 2010년 05월 02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0장 21-24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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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누가복음 10장 21-24절)
  지난 3월 남편 김 모씨(41살)과 부인 김 모씨(25살)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씨 부부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지난 해 9월 갓 태어난 딸을 홀로 놔둔 채 PC방에 갔습니다. 한 번 가면 6-12시간씩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날이 반복되다 결국 딸은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그 날에도 역시 부부는 밤새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아침에 들어왔습니다. 겁이 난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은 아기가 미라처럼 말라 있는 것을 석연치 않게 여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영양실조와 아사로 나왔습니다. 김씨 부부는 부검이 진행되던 중 도주했고 이들을 쫓은 경찰은 5개월여 만에 부부를 검거했습니다. 젖먹이 딸을 굶겨 죽인 부부가 PC방에서 즐긴 게임은 가상세계에서 소녀를 양육하는 내용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일정 이상 레벨이 올라가면 캐릭터에게 옷과 장신구를 사주거나 육아일기까지 쓰면서 딸처럼 키울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부부는 현실을 도피한 채 온라인 속의 소녀를 양육하느라 정작 자신의 3개 월 된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즘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왜 그리 많은지, 아동폭력, 아동 성폭력, 유괴, 납치, 살해 사건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른으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을 다시금 느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천지의 대주재이시며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알게 하신 것에 대해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자기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진리가 계시될 것이다, 진리가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평가는 지식인들과 부자들과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것인양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열려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지위나 능력과 관계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폄하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지혜롭지도 않고 학식도 높지 않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본문 2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나타내셨을까요? 어떻게 어린 아이들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될 수 있을까요?
  교우 여러분,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 대해 하신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영적인 진리가 열려져 있다고 했는데, 어린아이의 그 무엇을 우리가 배워야 할지를 깨닫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할 것은 수용성입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들어갈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하나님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 15-17절에,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곳이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수용하며 의심 없이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믿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릴 때의 신앙교육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백지와 같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바른 신앙생활 습관을 갖게 한다면 일생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과 같은 인물들이 되어 이 땅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나 어른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어린이들의 순수한 믿음을 악용하여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어른, 즉 나쁜 놈들이 있습니다만,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Eric Bern)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성격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어버이 기능, 어른 기능, 어린이 기능입니다. 어버이 기능은 권위적이고 양육적인 기능입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보살피고 가르치는 기능입니다. 두 번째 어른 기능은 현실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기능입니다. 세 번째는 어린이 기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순수성과 생동감을 주고 인간 본연의 맛을 나게 하는 기능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어린이 기능은 울고 웃고 하는 놀이의 기능으로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소생시키는 역할을 한답니다. 정태기 목사님이 미국 캔터키 주립병원에서 근무할 때, 그 주립병원에 6명의 목사가 정신이상자로 입원해 있었답니다. 그들의 병명은 ‘어린이 상실증’이었답니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고,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하다가 어느 날 돌아버리는 병입니다. 어린이 기능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온전한 인간성을 상실하여 버리게 된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들처럼 어린이 기능, 즉 마음속에 살아서 뛰어 놀아야 할 어린이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삭막해지고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어린이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어린이는 좋으면 마냥 웃고, 기쁘면 뛰놀고, 화나면 웁니다. 순진하고 무구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순리대로 행동합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산을 산대로 물을 물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진리에 대한 수용성이 풍부하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어른의 마음, 어른의 눈을 전혀 다릅니다. 자기 이익과 욕망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만사를 봅니다. 자기 속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다른 것을 수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너무 생각이 복잡하여 말씀의 씨앗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하게 느끼고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순수하게 표현하고 순수하게 생각하려는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 1세기에는 어린아이들이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못되었습니다. 사실상 전혀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집에서야 자기 자식을 아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그저 참아주는 정도였습니다. 당시 언어에서 그런 편견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파이스, 또는 파이디온이라는 말에는 종이나 노예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 다른 단어 네피오스라는 말에는 미숙하고 미련하여 무력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어리석거나 미련한 사람을 꾸짖을 때 늘 ‘네피오스’라고 불렀습니다. 실은 성경에도 보면, “지혜에는 어린아이(파이디아)가 되지 말고”라고 권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가시고 시끄러운 어린아이를 불러 무리 가운데 세우셨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러면서 이 어린아이들이야 말로 모두가 따라야 할 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놀랬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그러면서 마가복음 10장 15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들다’는 말을 사용하여 어린아이처럼 받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받든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받드는 것입니까? 받든다는 것은 ‘높이 올리다’ ‘존귀하게 여기다’는 뜻입니다. 믿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며 믿고 받드는 자세가 있습니다. 이것은 곧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어린 아이는 겸손하여 하나님을 높일 줄 압니다.
  둘째로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회복되어야 할 것은 겸손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지식이 늘고 자기 확신이 깊어지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가 점점 줄어듭니다. 자기 고집도 늘고 자기 자랑도 늘고 자기 신념이 강해지면서 교만해지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이 죄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처럼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에게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있음을 보셨고, 그 겸손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배우려고 합니다. 반대로 어른들은 소위 자신이 많이 배웠다고, 대학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오고 했다고, 또 여기저기서 많이 주워들었다고, 인생의 연령만큼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주장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려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어릴수록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이 자연스럽고 빠릅니다.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받아들이고 배우고 변화하는 일이 힘들고 느립니다. 그런데 화요강좌나, 알파 게스트로 나오시는 분들 중에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나오시고 얼마나 열심히 들으시는지 모릅니다. 너무 좋은 자세로 듣습니다.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도 있다”는 말씀처럼 그 분들이 먼저 된 자들을 제치고 더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대체로 말이 많습니다. 비판하는 말, 불평하는 말, 원망하는 말이 많습니다. 교만하니까 못 마땅한 것이 많은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겸손한 것 같아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이나 모임시 자세를 보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이 앞으로 조금 더 향해 나온 분은 어린아이처럼 잘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눈을 감고 팔짱을 끼듯 다리를 꼬듯 하고 머리가 한 간격을 뒤에 위치해 있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자세가 아니라 관람하는 자세로, 설교를 듣고 배우는 자세가 아니라 감상하는 자세인 사람은 마치 창틀에 앉아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졸다 떨어진 유두고 같은 사람이 됩니다. 세상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교우 여러분,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로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고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는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어린아이의 영적인 비범함은 어린아이의 무력함에서부터 나옵니다. 자신들이 힘이 없고 부족하고 연약함을 알기에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 신뢰하는 자세가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믿음만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훌륭한 신학자 가운데 한 분인 박윤선 박사는 어린이를 배우자고 하면서 어린이들의 장점을 열거했는데, 그 중에, “어린이들은 신뢰심이 풍부하여 근심과 걱정이 별로 없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공연한 근심과 걱정으로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시편 131편에 시인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 시를 풀핏 주석에서는 “가장 축복 받은 영혼의 상태”를 노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젖 뗀 아이의 심리 상태 같은 영혼의 자세는 축복된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신앙 자세요, 복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베스트 셀러였던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시리즈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수전 앤더슨이라는 서른 네 살의 직장여성이 의사의 오진으로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 년여에 걸친 치료 끝에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장애인을 보호하는 국가정책의 혜택을 본 것입니다. 앤더슨의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아내를 직장에까지 데려다 주고 출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당신, 어느 땐가는 혼자 다녀야 하는데 오늘부터는 혼자 나가면 어떻겠소?” 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앤더슨 부인은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그렇게 귀찮아요? 눈멀고 살아 있는 것이 남에게 부끄러워요?”라고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사과하며 “미안해, 그러면 계속 도와줄 께.”라고 말했지만, 부인은 다 그만두라고 뿌리치고 그날부터 혼자 버스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보름이 지난 후, 버스 운전사가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은 참 행복하십니다. 부럽습니다.” “아니,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무엇이 행복이란 말입니까?” 엔더슨 부인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운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이 버스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저쪽에서 잘생긴 군인이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어린아이 돌보듯 지켜줍니다. 그러니 당신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부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은 남편의 사랑의 손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혼자 버려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혼자인 줄 알고 근심과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에 늘 사로잡혀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속상할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부모인 여러분을 믿고 밝고 순수하게 걱정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여러분은 흐뭇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돌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를 어린아이처럼 돌보고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믿고 의지할 때 우리를 지켜보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시기에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어리석게도 온갖 걱정을 다하면서 살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린아이처럼 믿고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진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의 뜻은 진리 안에서 우리가 자유케 된다는 말이고, 진리 안에서 우리가 어린이처럼 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처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다른 것에 매이지 않고, 그저 부모 품안에 있으면 걱정 근심이 없듯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 평안을 누릴 수 있을 때, 오늘 본문 23, 24절,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는 말씀처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어린이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은총의 선물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상징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잘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린 시절 순수함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닳을 데로 닳고, 뺀질거릴 대로 뺀질거리고 거칠 대로 거칠고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지고 메마를 데로 메마른 사람으로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길 수 없습니다. 사랑의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교우 여러분, 순수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자기를 낮춰 겸손히 배우십시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05월 02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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