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경험 (열왕기하 5장 8-14절) |
어제 우리나라와 그리스와의 월드컵 축구 경기에 응원 열심히 하셨습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를 붙들고서라도 그 앞에서 “대~한 민 국!” 하면 바로 “짝 짝 짝 짝 짝!”이 나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억하십니까? 월드컵 기간 동안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붉은 옷을 입고 응원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한 경기 한 경기를 할 때마다 마치 온 국민이 뭐에 홀린 것처럼,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광장이든, 운동장이든, 음식점이든 심지어는 우리 교회 주차장에서도 함께 12번째의 선수가 되어 응원하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16강, 8강, 4강으로 올라가는 승리를 했을 때 밤새도록 자동차 클락숀을 울려대며 거리를 돌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 너그럽게 넘어갔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처음으로 태극기를 디자인하여 응원복으로 입고 나온 젊은이들을 향해 놀라움과 걱정과 찬성과 반대가 있었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월드컵이 끝난 후에 이비인후과에 성대에 병이 생겨 찾아온 환자가 그렇게 많았다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전 세계가 놀랐습니다. 4강으로 올라간 것도 놀랍지만,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고, 신명나게 응원하고, 경기가 마치면 깨끗하게 청소하고 자리를 뜨던 국민의식에 놀랐습니다. 그 때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나라의 국가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국가 인지도를 1%높이는데 1억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2002년에 우리나라 인지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 상당히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얼마 전 2002년 월드컵 당시 응원의 한 가운데 있던 젊은이들, 해외교포들의 인터뷰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도 소중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했습니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고,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겠다고 하더군요.
이번 우리나라 월드컵국가대표 선수들 중에는 2002년 월드컵 때에 중학생이던 선수가 그 때 경기에 뛰던 박지성, 이영표 선수를 보며 자신도 국가 대표가 되어 월드컵 경기에서 선수로 뛰어야 겠다고 꿈을 꾼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함께 뛰고 있습니다. 이청룡, 기성룡, 이승렬 선수 가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2002년 월드컵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개최 경험이 한 개인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스포츠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문화가 상당히 바뀌고 향상되었습니다. 국민 전체의 월드컵 주최와 응원, 그리고 함께 이루어낸 경험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이나 다른 사람들이 쉽게 먹어 볼 수 없는 음식을 먹고 나서 그 경험을 자랑합니다. 알파 코스 주방팀의 식사 메뉴가 그렇습니다. 돈이 있어도 일반 음식점에서 쉽게 먹어 볼 수 없는 음식이 매주 다르게 준비되어 게스트들을 대접합니다. 1기부터 5기까지 계속 발전하고 다양한 메뉴로 게스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섬김이들도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다음 6기에 게스트나 섬김이로 오시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해외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독특한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삶은 경험의 연속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경험, 나쁜 경험, 유익한 경험, 무익한 경험, 그리고 직접 경험과 간접경험이 있습니다. 직접 경험이란 자신이 직접 겪는 경험이고, 간접 경험이란 자신이 직접 겪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겪은 경험, 책, 어떤 보고 자료 등에 의해 경험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 그 경험이 나의 인생에 어떤 힘으로 작용하고 있느냐? 그 경험을 통해 나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왔느냐? 그리고 그 경험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아서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은 일반적인 경험, 보통 사람들이 다 할 수 있는 경험, 덤덤한 경험이 아니라, 감동과 감격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일 수도 있고, 자기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런 경험, 자기의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그런 경험, 자신을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우리는 위대한 경험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경험해야 할 가장 위대한 경험은 피조물인 인간이 절대자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가장 위대한 경험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다 죽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 진리를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경험이 위대한 경험입니다. 사람이 에베레스트산 열 몇 개 봉우리를 정복하고, 세계를 일주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경험,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절대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다면 그 경험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록으로 남는 것? 자기 죽은 다음에 기록으로 남으면 묫자리에서 기분이 좋아집니까?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위대한 경험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경험입니다. 위대한 경험은 우리의 삶의 차원을 바꿔줍니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높여줍니다. 위대한 경험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여성 성도 고백 동영상)” 동영상에서 고백한 여성은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손을 잡아 준 동료 교사로 말미암아 인생의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만나게 되는 위대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경험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전환점을 이루게 한 경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하는 경험, 위대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위대한 경험을 하였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이야기이고, 사람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하고 있고,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경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이 삶의 전환점이 되어, 그들의 인생이 바뀌고, 삶의 차원이 달라진 사람들의 삶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성경의 인물처럼, 신앙의 선조들처럼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위대한 경험을 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나라 옆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실세인 군대장관 나아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그 무엇으로나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나병환자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더욱 나병환자를 멀리 하고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나병을 숨기면서 군대장관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몹시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마침내 이스라엘 땅에 병을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집에 찾아 가긴 했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람을 시켜서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하게 날 것이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발끈했습니다. 11, 12절에 그가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는 자기 생각에, 자기를 낫게 해 주기 위해서 선지자가 나와서 자기 몸에 손을 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도 자기 나라에는 요단강보다도 더 크고 맑은 강이 있는데 그 강에서 씻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화를 내며 당장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때, 같이 온 종들이 주인 나아만 장군에게 한 말씀 올렸습니다. “선지자가 더 한 일을 하라고 해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이 낫기 위해서라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쯤 못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나아만 장군이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의 말이 맞거든요. 나아만은 자기 생각과 자기 기대와 자기감정을 내려놓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니까 무서운 나병이 깨끗이 다 나아서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절 이하에 보니까, 요단강에 가서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나병이 깨끗이 치유가 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 밖에 진정한 신은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문제, 나병을 고침 받으면서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의 영혼의 눈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아만은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삶의 문제가 하나님을 통해 해결되는 위대한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 나아만 장군이 자기가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인데 나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나... 얼굴도 나타내지 않고 요단강으로 가라, 마라,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일곱 번씩이나 씻으라고 하니, 그동안 목욕을 얼마나 자주 했는데... 내가 뭐 안 씻어서 나병에 걸릴 줄 아나? ...등등 못마땅함과 불평과 짜증과 발끈과 분노와 신경질, 성질대로 했다면, 그래서 본국으로 돌아갔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씩씩 거리며 기분 나빠 하다가 나병은 점점 더 심해졌을 것이고,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나병이 깨끗이 낫게 되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경험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생각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방법대로, 자기가 기대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치료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안 되니까 화를 내었습니다. 오히려 나아만의 종들이 더 생각이 옳았습니다. 병 낫는데 그깟 일하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 말입니다. 더 큰 일을 하라고 해도 병이 낫기만 한다면 뭔 짓을 못할 게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까 하나님의 종의 명령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고 겸손하게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병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나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의 기준, 생각의 사고 체계, 나의 경험으로 쌓여진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내 생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사고체계가 형성되어 그 사고체계에 의해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본래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하얀 종이와 같은 상태의 마음과 정신이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와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향을 주는 부모, 형제, 친구, 세상이 선하고 의로운 영향을 주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은 타락해 있고 사람들도 본의 아니게 죄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삐뚤어지고, 왜곡되고, 상처가 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 우리의 지혜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고 근시안적인지 아십니까? 2004년도에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에 들짐승이나 동물들은 뭔가를 알고 다 도망을 갔습니다. 유일하게 사람들은 10분 전까지도 쓰나미가 오는지 모르고 보트를 타고 뱃놀이를 하다가 수십만이 죽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부정적인가 아십니까?
이 사고체계, 즉 생각을 바꾸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의 능력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해되는 것만 이해하고 믿어지는 것만 믿는다면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3D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입체영화입니다. 실제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 화면을 보려면 3D안경을 써야 합니다. 3D안경을 쓰지 않으면 화면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선명하게 볼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세계는 단순한 상식이나 자기 생각만으로 판단하고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내 방법을 버릴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되고, 내 경험을 버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생각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에 얽매여 있으면 이 땅의 일들만 바라보고 이해하고 경험하게 되지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위대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삶, 평범한 경험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또 오늘 같고 그저 그렇게 그림자처럼 살다가 허무하게 죽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위대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내 안과 밖의 장애를 넘어서야 합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예수님 당시 사회에서 욕을 먹는 세리였습니다. 손가락질을 받는 매국노로 취급되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 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세금을 얼마를 걷어 들이든 로마에게 갖다가 줄 것만 주면 나머지는 자기 몫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계속 들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그가 사는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모릅니다.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키는 작고 사람들은 많고 사람들의 키에 가려 예수님의 얼굴은커녕 예수님의 옷자락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근처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뭐라 하든, 손가락질 하든, 욕을 하든, 그는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셨습니다. 아무도 나무 위로 올라간 사람이 없었는데, 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 삭개오를 어떻게 아셨는지, “삭개오야, 속히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하루 머물러야 하겠다.” 아무도 자기를 상대해 주지도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알고 불러 주시고, 집에까지 오시겠다고 하니, 삭개오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삶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철저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을 열고 위대한 경험을 하려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를 신경쓰지 마십시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장애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힘을 빼야 합니다. 우리 어깨의 힘을 빼고, 목에 힘을 빼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장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이 소중하지만 위대한 경험을 하기위해서는 그 경험이 도움이 안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는 위대한 경험을 하고 나서도 자기 생각을 다 내려놓지 못하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하고,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강림을 경험한 뒤에 놀라운 일들을 행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손길로 위대한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새가족 여러분, 신앙은 경험입니다. 머리로만 깨달아져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경험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는 위대한 경험이 계속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 위대한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맑게 순화되고 정화되는 위대한 경험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손을 움켜쥐고만 살던 사람이 손을 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베풀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위대한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상황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안함을 누리는 위대한 경험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시고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을 힘들었지만 용서해 주고, 그 때 찾아온 마음의 평화, 새로운 그리스도의 사랑, 주님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는 위대한 경험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는 무엇을 해도 허무했는데, 무엇을 열심히 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탈했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도 의미가 있고, 무엇을 위해 사는 지도 분명해졌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며 영생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며 살아가는 위대한 경험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는 위대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인생이 위대한 인생입니다. 존귀한 인생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경험한 위대한 경험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잘 간직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통해 위대한 경험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이 위대한 경험으로 풍성하여 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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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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