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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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용서하십시오  [3146]
· 설교 일자 : 2010년 08월 01일
· 본문 말씀 : 시편 32편 1-11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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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시편 32편 1-11절)
  지금 살고 있는 사택에 이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사유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수돗물이었습니다. 맨션이 지어진지가 오래되어서 수도관에 많은 이물질이 끼어있었고, 녹물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수압이 낮아서 샤워를 하고 있으면 주방에서는 물이 거의 안 나와서 물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몇 해 동안 점점 그런 증상이 더 해져서 장로님들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여러 가지 사택의 관리, 수리 등 사유로 새로운 사택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사택은 얼마나 수돗물이 잘 나오는지, 수도꼭지를 다 틀면 샤워기가 가만히 못 있고, 뱀처럼 춤을 추면서 물을 내뿜습니다.
  여러분, 수도관에 녹이나 찌꺼기가 잔뜩 끼어있다든지, 수도관이 깨져서 중간에 샌다든지 하면 수원지에서 공급되는 맑고 깨끗한 물을 수도관을 통해 충분히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상처와 찌꺼기와 장애물이 있으면 하나님의 복과 사랑과 은혜를 공급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죄책감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난 몇 주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두려움, 거절감, 수치심, 열등감, 불안감과 함께 죄책감은 우리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죄책감은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사랑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참된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쉽게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상한 감정을 치유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죄책감이란 “하나님의 법이나 시민법 혹은 양심의 법을 어긴 일 또는 어겼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근심하는 태도” “과거에 있었던 죄나 실패 등의 기억과 그때 깨어진 이미지로 인해 지속적으로 고통 받는 마음”을 죄책감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죄책감이라는 장애물을 해결하지 않으면 고통스런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죄의 세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짓고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폭들이나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자들이나 정치인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죄를 짓고서도 얼굴을 뻔뻔스럽게 들고서 법정에 나타납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양심이 마비가 되었든지, 이미 영혼이 짐승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 고등부 학생 중에 자주 사고를 쳐서 많은 걱정을 끼치는 철호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부터 철호가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고등부 전도사님은 철호가 오토바이를 훔치다가 소년원에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몇 분의 선생님들과 소년원으로 면회를 갔습니다. 면회를 하면서 전도사님이 철호에게 말했습니다. “철호야, 이제 네게 출소하면 너 혼자 두지 않고 내가 너를 기꺼이 도와줄 테니 걱정마!” 그러자 철호가 깜짝 놀라며 대꾸했습니다. “전도사님,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데요. 오토바이 훔치는 것은 엄청난 배짱과 경험이 있어야 되는거라구요. 전도사님은 절대 못하실 거예요.” 철호라는 학생은 아직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범한 죄를 뉘우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를 짓고서도 죄인 줄 모르고, 죄책감을 못 느낀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양심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자기를 정당화하여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것을 책임전가라고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서 하나님께 범죄한 후, 하나님께 하와는 뱀이 먹으라고 해서 그랬다고, 아담은 하와가 먹으라고 주어서 그랬다고 책임전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책임전가를 한다고 해서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책감은 자기가 벗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지어도 결국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지 아닌지 판단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그의 저서 [죄책감과 은혜]에서, “어느 누구도 죄책감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죄책감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억압하느냐 인정하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 상반된 과정을 겪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치심도 해로운 수치심과 건강한 수치심이 있듯이, 죄책감도 병든 죄책감과 건강한 죄책감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말씀하면서, 죄책감을 근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으로 구분하여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건강한 죄책감입니다. 세상 근심은 병든 죄책감을 말합니다. 건강한 죄책감은 우리를 회개와 용서와 구원과 성숙과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병든 죄책감은 우리를 정죄의식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병든 죄책감이 우리에게 어떤 문제와 고통을 주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소식이 끊겼던 의대 동창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었고, 그는 12-15정도가 정상인 헤모글로빈 수치가 5이하로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마음속에 품었던 증오와 분노의 문제를 하나님께 고백한 후,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자 헤모글로빈 수치가 즉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미움이나 분노 등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면 즉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 영적 평화를 누리면, 그에 따른 생리적 변화가 빠르게 정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인체 시스템의 공식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병든 죄책감은 우리의 건강을 해칩니다.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모든 병이 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지만, 죄책감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병든 죄책감은 그렇게까지 확대하여 적용할 필요가 없음에도 계속적으로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을 경멸하고 비하하고 자학합니다. 자존감이 저하됩니다. 그로 인해 생겨난 각종 상한 마음에 고통스러워합니다. 늘 스스로를 벌 받을 존재로 생각하고 무엇을 선택할 때에도 자기를 처벌하는 결정을 합니다. 또한 병든 죄책감이 심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자기에게 벌 받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삶이 흔들리고, 삶이 흔들리면 영도 흔들립니다. 영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만사가 그에 따라 흔들립니다. 먼저 가정의 화목이 깨지고, 사회생활이 불편해집니다. 항상 마음이 불안정해서 무슨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숨겨 놓은 죄가 탄로 날까 봐 사람의 접근을 피합니다. 비난이 두려워 대인관계를 회피하게 됩니다. 이렇게 병든 죄책감은 체중이 무거운 거인과 같습니다. 이 죄책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인에게 서서히 짖 눌려 서서히 질식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책감은 천천히 고문하듯 사람을 죽입니다. 나무에 목매단 가롯 유다를 보십시오. 죄책감을 해결하지 못해 자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끝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롯 유다가 불쌍한 것은 예수님을 배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반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로 인생을 끝냈기 때문입니다.

  병든 죄책감은 죄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정확히 알지 못하고 느끼는 불합리한 죄책감입니다.
그래서 죄를 숨기고자 하고, 죄가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되리라는 좌절감, 거절감입니다. 벌을 받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신의 못난 것을 탓하는 열등감입니다.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수치감입니다. 실패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부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의심입니다.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자멸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거절하는 고독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실로 병든 죄책감은 회개를 막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내면에 병든 죄책감을 불어넣어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를 죄의 권세로 묶어버리고 가두어버리려고 합니다. 어느 가난한 여인이 임신 중독에 걸린 상태로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그리고 출산후에도 치료도 잘 받지 못한 채 심하게 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몸을 혹사한 여인은 신장이 약해져서 신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청년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청년에게 무심코 그때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 엄마가 너를 임신하고 임신 중독증에 걸려서 몸이 약해지고 이렇게 병이 들어 수술까지 한 거야.” 나쁜 뜻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청년은 어머니가 병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죄책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죄책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했고, 그를 많은 갈등 가운데로 빠뜨렸습니다. 청년은 고민하다가 목사님을 찾아 상담하였습니다. 상담 후 청년은 죄책감에 빠진 자신이 미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어머니가 아픈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과 또 그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이 사탄의 작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죄책감을 떨쳐버린 뒤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병든 죄책감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우리에게 병든 죄책감을 갖게 해서 죄의 세력에게 짖 눌려 살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건강한 죄책감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질책을 받는 것들로부터 나옵니다.
자기감정이나 자기 생각이나 자기 판단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준과 판단으로 죄를 깨닫고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죄책감은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용서로 해결을 받습니다.
  다윗은 중년이 넘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했던 다윗 왕은 이제 궁궐에 거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시간도 많았고, 여러 가지 쫓기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옥상에 올라갔다가 저 건너편 집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밧세바였습니다. 매력적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섹시하였나 봅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를 데려다가 동침을 했습니다. 간음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덮어버리려고 했는데 임신을 했습니다. 그 모든 사실을 은폐하려고 결국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최전방에 보내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가 전쟁터에서 죽으므로 모든 비밀은 숨겨지는 듯했습니다. 온 세상은 눈을 감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는 동안, 다윗은 그냥 그렇게 숨기면 다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다윗의 죄를 지적하는 순간, 다윗은 죄책감의 극한 고통으로 인해 시편 51편의 통회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얼마나 죄책감으로 인해 그의 영혼의 상태가 고통스러웠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과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쫓으신 것처럼 느끼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다 날아가 버렸고, 버림받은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다윗은 그 때의 자신의 상태를 오늘 본문 시편 32편 3절, 4절에,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떻게 되는 지를 다윗이 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씻지 못한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달라고, 죄과를 말갛게 씻기시며 제거해 달라고,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는 짓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호통을 치며 진노하셔야 하지만, 회개하는 다윗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처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렇게 용서와 회복을 체험한 다윗이 본문 1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최우선으로 중요한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를 용서받는 복입니다. 죄 용서함을 받는 은혜가 가장 큰 은혜입니다.
  다윗은 건강한 죄책감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했습니다. 그 결과 후회할 것이 없는 용서와 회복과 구원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질책을 받아들이고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고백함으로 사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본문 32편은 이 사죄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죄책감은 용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변화를 추구합니다. 건설적인 죄책감이지요. 자신을 성숙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죄책감입니다.

  건강한 죄책감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에 비해 병든 죄책감의 증상 중의 하나는 죄를 감추려고 합니다. 숨기고 감추려고 하니까 죄책감을 치유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은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죄는 숨긴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죄악은 하나님 앞에 나의 죄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회개할 때 사라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은 죄가 무서운 죄악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무서운 죄악입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운 죄악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다. 숨기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 죄라고 인정하지 않고 아직 회개하지 않아 용서받지 못한 죄는 없습니까? 숨긴다고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내 눈을 열어 나의 죄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입술을 열어 죄를 고백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백한 나의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깊이 박힌 죄책감을 우리 영혼으로부터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고, 그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게 하시려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의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감추어졌습니다. 정결케 되었습니다. 용서되었습니다.

  어떤 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용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죄인 줄 모르고 회개하지 않거나,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을 모르고 회개하지 않거나,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죄책감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면 그 죄에 대해 잊어버리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 말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8장 12절 말씀,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코리텐 붐은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낚시금지’ 즉 우리의 옛 죄를 낚아 올리지 말라는 싸인을 걸어놓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꾸만 이미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죄를 낚시질하여 끌어 올려서 되새김질을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고백하여 용서받은 죄에 우리가 매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더 이상 네 죄를 모른다. 기억도 하지 않는다. 너도 모르기를 원한다.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새 삶을 살기 원한다. 네 죄의 구습을 벗어버리고 그것을 삼켜버릴 만큼 나와 풍성한 교제를 누리기를 바란다!”

  우리가 죄책감의 장애물을 제거하여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어릴 때 6.25전쟁을 겪었던 70세 가까운 어느 여자 성도는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아버지가 어린 자식을 내버리고 혼자 도망간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여 원망과 미움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성도로써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죄책감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기도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녀는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예수님께서 어린 자신을 안고 계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너를 두고 도망갔지만 나는 너와 함께 있었고 너를 지켜 주었단다.” 순간 그녀는 주님의 사랑이 물밀듯 밀려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다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제 너의 아버지를 용서하거라.” 그녀는 주님의 음성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결단하자, 평생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차츰 사라져갔습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워하고 있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사랑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용서하고 또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먼저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괴롭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남은 마음이 솟구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자신을 좋아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욕구, 그리고 감정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용납해야 합니다.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죄를 용서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기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이며, 하나님보다 자신의 결정이 더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 말씀,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3절 이하에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데 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고발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38, 39절에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떳떳해 집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얻었어. 나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더 이상 불결하지 않아. 더 이상 추악하지 않아!”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0년 08월 01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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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일시  2010년 05월 16일
· 말씀  골로새서 3장 18-21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어머니
· 일시  2010년 05월 09일
· 말씀  잠언 1장 8절~9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어린아이처럼
· 일시  2010년 05월 02일
· 말씀  누가복음 10장 21-24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인생의 퍼즐 조각들
· 일시  2010년 04월 25일
· 말씀  시편 139편 13~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일시  2010년 04월 18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31~3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자유케 하시는 주님
· 일시  2010년 04월 11일
· 말씀  요한복음 8장 31-36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첫 번째 부활절
· 일시  2010년 04월 04일
· 말씀  요한복음 20장 1-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 사랑의 확증
· 일시  2010년 03월 28일
· 말씀  로마서 5장 6~11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 일시  2010년 03월 21일
· 말씀  마가복음 14장 32-42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 일시  2010년 03월 14일
· 말씀  로마서 3장 23~26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십자가의 도
· 일시  2010년 03월 07일
· 말씀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