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감사해야 합니까 ? (시편 100편 1~5절) |
어느 가정에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녀석이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감사히 먹겠습니다.”하며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예쁘고 대견한지, 그 가족식구들은 앞으로 항상 감사인사를 하고 밥을 먹기로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반찬이 달랑 두 가지만 올라왔답니다. 아이들 앞에서 불평도 못하고... 그래도 감사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간신히 먹겠습니다!”
감사하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만은 않습니다.
‘감사하다’라는 말은 ‘~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런 내면의 표현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서, 누구누구에게 고마워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이 감사입니다. 자발적으로 마음이 동해서 하는 표현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어떤 형태로 표현하여 전달할 때, 그것을 사례라고 말합니다. 사례, 감사를 표현하는 예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베푼 호의와 은혜와 도움 등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어떤 선물과 같은 것에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례라는 것이 자칫 뇌물이 되기도 합니다. 모양은 감사한 마음을 담은 사례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시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나 도움을 요구하는 의도를 담아서 사례하는 것이면 그것은 뇌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뇌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를 드렸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셔야 한다는 식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뇌물을 드리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교역자들에게 감사가 아니라 뇌물을 주는 격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명절 때나 아니면 다른 어떤 일로 교역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 어떤 것을 선물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하고 전한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교역자에게 선물을 했는데 교역자가 나한테 신경을 더 써주나 안 써주나, 교역자에게 내가 선물도 하고 잘 했으니 나에게 이렇게이렇게 해 주어야지..., 교역자가 내 선물을 받고서도 나를 서운하게 해? 이런 것이 되면 그건 뇌물입니다. 감사는 감사로 끝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한 일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뇌물을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기뻐하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뇌물에 의해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헌금을 얼마를 했는데...’ ‘내가 하나님께 어떻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어?’ ‘내가 하나님께 이러이러하게 섬기고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나에게 복을 주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뇌물을 드린 것이고, 그 뇌물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뇌물일 뿐입니다.
여하튼 감사는 자발적으로 그 마음을 표현해야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만이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말씀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명령에 의해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왜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실까요? 우리는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3절 상반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소망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언약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창조 목적을 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참된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이 세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갖고 싶은 대로 갖고, 정욕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을 따라 사는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나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 드리는 당연한 반응이요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순간순간 생명을 유지시켜주시고, 햇빛과 비와 공기와 물과 자연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무례이자 모욕이고,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게 합니다. 김현승 시인의 “감사”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감사는 / 곧 / 믿음이다 // 감사할 줄 모르면 / 이 뜻도 모른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내리신 선물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관점에 초점을 두는 자연스러운 믿음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도 않는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감사를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감사도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훈련은 왜 합니까?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평상시처럼 해서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훈련시켜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훈련합니다. 잘 하지 않는 것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의 감사가 더욱 훈련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감사하는 유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데도 감사를 모르고 사는 후안무치, 배은망덕의 경우입니다. 둘째는 감사해야 할 조건과 상황에만 감사하는 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셋째는 조건을 넘어선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힘든 감사입니다. 이 세 번째 감사는 철저한 믿음이 없이는 이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단계까지 감사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세 번째 단계의 감사입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감사는 처음부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명령은 좋든 싫든 명령에 순종, 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령은 선택이 아닙니다. “감사할 수 있으면 감사해라”가 아닙니다. “같이 감사해 볼까?” 이런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참 좋겠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명령은 꼭 해야 하는 것이기에 명령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은 감사하는 생활을 위한 재활치료를 하라는 명령입니다. 여러분, 재활치료, 재활 훈련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예를 들어 발을 다쳐서 발에 기브스를 하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발은 기브스를 풀고 나면 반드시 재활훈련, 재활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발을 사용할 수 없고, 발에 힘도 없습니다. 이런 재활치료나 재활훈련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활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훈련을 시키시는 것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감사 생활을 재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후안무치, 배은망덕한 우리들에게 감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게 해서 감사생활을 회복함으로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온전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삶이 형통한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일뿐만 아니라 슬프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것들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고,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고 감사하도록 훈련하십니다. 이것이 감사훈련을 통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길이요,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할 수 없을 때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는 단순히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단순한 긍정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를 감사하게 하고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믿음과 감사를 통해 더 훌륭한 인격으로 훈련됩니다. 커 깊은 영성으로 훈련됩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원자력학자이며, [나는 과학자보다 신실한 기독인이 되고 싶다] 신앙고백집 저자인 정근모 박사의 아들은 10살 때부터 만성신장염을 앓았습니다. 정근모 박사는 아들의 병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후 정 박사는 자신의 신장을 떼어 아들에게 이식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26년간 생과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을 하던 아들이 자동차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불평도 많이 했습니다. 정박사는 부인과 같이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기도가 빨리 응답이 되지 않자 하나님께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장염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짐으로 여겨 온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정근모 박사는 “주님, 제 아들은 효자입니다. 제가 예수 믿도록, 제가 겸손하도록 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져야 했던 아들에게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2001년 아들이 뇌출혈로 마지막 죽어가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 죽음을 축복해주세요. 힘들고 고통스런 여행은 이제 끝났어요.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되니 감사해요.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로 인해 절대로 눈물 흘리지 마세요.” 6번의 대수술, 비관과 절망 속에서 절규했던 아들이 죽어가면서 오히려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정박사 부부를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의 감사 훈련은 더 큰 감사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아버지 정박사는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으로 더 크고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됐고,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 4장 6절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할 때 믿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명령합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에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고난과 환난 속에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더욱 크고 깊고 높은 감사로 훈련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시고, 감사를 훈련시키시는 것일까요?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감사할 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실험을 해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실험을 해 보십시오. 짜증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난 뒤에 어떤 감정과 마음을 느끼게 되는 지를 실험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니까 “아! 속이 시원하다.” “짜증내고 불평하고 나니까 참 마음이 흡족하다.” “불평하고 원망하니까 너무 너무 행복하구나!” 이렇게 되는 지, 어떻게 되는 지 실험해 보십시오. 그 결과는 뻔합니다. 아니, 여러분, 우리가 자주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명령하셨습니다. 행복을 주시고자 명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를 오늘의 표현으로 의역을 하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계신 곳의 문에 들어가라’, 즉 ‘행복의 문에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이 평안해지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과 조너선 그루버 교수는 최근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삶의 차이점’(종교 시장 구조, 종교 참여의 결과 - 종교는 유익한가)라는 연구논문에서 ‘교회 출석 빈도가 두 배가 되면 가계소득이 9.1% 증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논문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고 건강하며 재물도 많고 이혼율도 낮다고 분석했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감사드리는 신앙생활을 하므로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마음이 평안하고 육신이 건강해지며 그로 인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여 경제적으로 부요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신앙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평안케 하고 행복케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미국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은 자신의 저서 [감사의 힘]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감사 연습을 꾸준히 하면 역경에서 빨리 회복되고, 고난에 대한 면역력이 깊어지고, 수명이 길어지며, 타인의 호감을 사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닥터 스코프는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인은 깨어있는 순간 고민하며 지내고, 참된 성도는 눈을 뜨면 감사하며 하루를 열어갑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수도원에 들어오면 수도원은 그에게 감옥으로 변하고, 성도가 감옥에 들어가면 그곳은 그에게 수도원이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리로이 쿠프만의 [아름다운 혀]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감사하기를 배운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감각을 배운 것입니다. 독수리와 벌새는 다 같이 광야 위를 날아다닙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썩어가는 시체를 발견할 뿐인데, 그것이 그가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벌새는 아름다운 꽃을 찾아내는 데 그것이 그가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찾기를 원하는 것을 찾게 마련입니다.
감사하는 고객은 호텔의 체크아웃 카운터에서 담당 아가씨의 뽀로통한 얼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짐을 꾸려주는 사람의 친절한 태도에 더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밭에서 일할 때 잡초를 보고서 불쾌해 하기보다는 탐스러운 열매를 보고서 더 행복해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갓난아이를 돌볼 때 더러운 기저귀 때문에 불평하기보다는 애기가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을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이웃을 평가할 때 그는 그들의 시끄러운 개를 저주하기 보다는 이웃의 친절함을 더 깊이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교회에 다닐 때 설교자의 설교 습관을 개탄하기 보다는 진리를 전하는 말씀을 더 마음 깊이 간직합니다. 감사가 모든 추함과 불안과 불확실한 장래를 다 제거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그것들에 대처하도록 도와주고 훨씬 더 그것을 잘 요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나무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햇빛과 물이 늘 필요하듯이 행복이라는 나무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감사는 행복을 키우는 햇빛과 물입니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행복이 임합니다. 감사하는 만큼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토록 반복해서 감사하며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녀들에게, 교회에서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감사의 분량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내용이 풍성해지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단계가 더욱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왜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까?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시는 명령입니다. 감사를 훈련하여 작은 감사가 큰 감사로, 조건적인 감사가 무조건적인 감사로, 기쁜 일에 감사가 괴로운 일에도 감사로, 형통할 때 감사가 환난 중에도 감사로 성숙해지도록 하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감사하는 만큼 행복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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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07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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