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장 1-15절) |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너무나 느리다. 시간은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빠르다. 시간은 슬퍼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 시간은 신나지 않은 자에게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나 시간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쓰는 자에게는 한 알 한 알의 귀중한 보석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벌써 2010년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의 한 해는 어떠했습니까? 느리게 지나갔습니까? 빠르게 지나갔습니까? 한 해가 너무 길었습니까? 너무 짧았습니까? 너무 지루한 한 해였습니까? 아쉽고 안타까운 한 해였습니까? 이번 2010년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고, 값진 한 해였다고 느끼십니까? 시간의 속도를 어떻게 느꼈느냐는 여러분의 삶의 내용이 어땠느냐와 연관이 있습니다.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면 한 해가 너무도 짧게 느껴질 것이고, 외롭고 괴로운 일들이 많았다면 한 해가 너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어쨌든 한 해를 돌아보면, 누구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고 말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전도자가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때가 있음을 소개하고 있는데, 본문에는 전도자가 7의 배수인 14개의 서로 정반대되는 단어를 사용하여 28개의 때를 말씀합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여러분의 한 해가 이런 때들의 연속이었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는 ‘때’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시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의 중요성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때를 사람이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해를 지나면서, 아니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14가지의 때가 여러분 마음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여러분이 계획한 대로 그 때가 착착 맞아 들어갔습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그때를 늦추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하고 그때가 내게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까? 내 뜻대로 원하는 때를 만들 수 있었습니까?
전도자는 먼저 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때에 관한 내용이 ‘날 때’와 ‘죽을 때’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언급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때’에 대한 이야기를 인생의 시작과 끝이라는 인간이 조장할 수 없는 두 사건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28개의 모든 때들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말뚝’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인생의 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범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행하시는 데는 항상 충분한 시간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조급해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께서는 조급해 하실 필요가 없으시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잠언 16장 9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때를 주관하시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한 해를 뒤돌아보면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있었지는 않았습니까? 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왜 내가 겪고 싶지 않던 일을 겪게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인도하셨을까? 나에게 그 일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나에게 그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에게 가치가 없는 일인데...내 인생에 무의미한 일인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하는 사건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든 일에는 무의미한 일이 없습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목적에 이바지하고 하나님의 통제 아래 움직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것도 장소나 시간을 불문하고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목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가 없는 일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이 신앙인과 비 신앙인의 차이가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이 차이는 아주 중요한 차이이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처럼 차이가 나는 내용입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서 납니다. 이 세상만을 보고 사는 사람과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또는 팔자소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사건이 단순이 좋고 나쁜 사건으로 밖에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왜 허무를 느끼게 될까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열심히 많은 시간동안 땀 흘리며 애를 쓰며 움직이고 일했는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무를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합니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못 견딥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허무와 좌절의 삶을 살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깨달아 가며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쉽게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생각과 이해가 막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우리가 납득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의미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레브 쉬므엘 벤 요세프(Reb Shmuel ben Yosef)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범사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은 모순, 의문, 갈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한번도 시원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리속에는 '왜?'(Why) '어떻게?'(How)라는 질문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만나 그가 갖고 있는 모든 의문을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들판 길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엘리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반가워 엘리야에게 인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생의 의문점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와 함께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그 뜻을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동행한다면,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행하기로 결심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가난한 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부부가 가진 유일한 소유는 소 한 마리였습니다. 가난한 부부는 두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이른 아침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집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 때 갑자기 소가 죽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집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레브 쉬므엘은 매우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호의를 베푼 가난한 부부의 전 재산인 소가 죽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유히 그 집을 떠나온 엘리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다시 날이 저물어 어느 부자 집에 들려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두 행인에게 빵 한조각 대접하지 않고 박대 했습니다. 두 사람은 몹시 배가 고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날 밤을 그대로 지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두 사람이 그 집을 떠나려고 집을 나섰을 때 그 집 앞마당에 큰 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려져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나무를 보자 곧 일으켜 세워 그 자리에 묻어 주었습니다. 쉬므엘은 엘리야의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에게 물었습니다. "선지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착하고 가난한 사람의 소는 죽게 하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먹을 것을 주지 않은 부자를 위해서는 좋은 일을 하십니까?" 엘리야는 거기에 대해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중략... 얼마를 가다가 엘리야는 그와 동행한 쉬므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쉬므엘 자네는 나와 동행하면서 나의 행동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나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게." 첫 번째 우리가 마음씨 착한 가난한 부부 집에 들렀을 때 그 집 소가 죽은 것을 자네는 기억하는가? 그 날에 그 집 아내가 죽기로 되어있었던 날인데,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해서 그 부인 대신 소가 죽게 했네. 그 다음 욕심쟁이 부자집에 들렸을 때 그 집 마당에 쓰러진 큰 나무를 내가 세워준 것은 바로 그 나무뿌리가 뽑힌 자리에 황금 덩어리가 있었기 때문에, 욕심쟁이 부자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나무를 다시 세웠네. 엘리야는 쉬므엘을 떠나기 전에 “나는 자네에게 그 어떤 유익한 충고도 주기를 원치 않네, 나의 친구여, 그러나 자네가 사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거든 분명히 그의 사악함이 궁극적으로 그에게 불행한 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기억해 두게, 그리고 의로운 사람이 인내하며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어떤 불행한 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그리고 더 이상 의문을 품지 말게, 아무도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네.” 그리고 엘리야는 쉬므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적절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그 깊은 뜻을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혼돈이 오고,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한 해 동안 겪은 모든 일들 속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 그 뜻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유익으로 돌아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알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우리에게 감추실 정도로 가혹한 분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하고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적절하게 설명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물리학 교수로부터 양자역학을 배우는 두 살짜리 어린아이를 떠올려 보십시오. 천재인 두 살짜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두 살짜리 말입니다. 양자 역학이 어쩌구 저쩌구, 열역학 제 2법칙이 어쩌구 저쩌구, 그 물리학 교수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재치가 있고, 열정적인 사람일지라도 두 살짜리가 그 원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선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있습니다. 두 살짜리는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울고, 엄마 품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것이 관심의 전부인 수준에는 도저히 다 이해를 시킬 수가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한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며, 그 지혜와 수가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완전히 알 수없기 때문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살아가야만 하는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선을 행하며, 우리의 모든 수고에서 낙을 누리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말씀합니다. “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게 하셨으니, 또한 하나님께 목적과 뜻과 의미를 가지고 행하시니 하나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세상일을 네 손에 쥐락펴락하려고 하지 말아라,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 앞에서 까불지 말아라, 네 인생 네 맘대로 될거 같으냐? 네 인생 네 맘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두고 봐라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 두고 봐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라, 하나님앞에서 교만하지 말아라,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라,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고,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자기의 노동으로 얻은 복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여 향유하는 것입니다. 본문 12, 13절 “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니까 범사에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보람을 누리면서 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핵심적인 신앙의 중심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명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살아가므로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인가? 아니면 삶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며 염세적이며 운명론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2010년을 돌아보면서 한 해 동안 감사하며 기쁘게 살았습니까? 긍정적으로 살았습니까? 늘 불안하고 근심 걱정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살지 않고 항상 기쁘게 살려고 했느냐 그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한 해를 돌아보니까 선을 얼마나 행하였습니까? 선을 행하기는 행했습니까? 선을 행하기는 행했는데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행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문 앞에 사도 베드로가 서 있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천국이 좋은 것은 알아서 천국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사도 베드로가 가로막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너는 지옥으로 가야 한다.” 그러더랍니다. 그 사람이 베드로에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세상에 살면서 선을 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왜 날 지옥에 보내려고 합니까?"하고 따져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떤 책을 뒤적뒤적 한참 찾더랍니다. 그러더니 그 사람에게 그 책의 한 곳을 가리키면서 “네가 세상에서 착한 일 한 것이라고는 양정역 계단 내려가면서 걸인한테 500원 준 것 밖에 없다” 그러면서 다른 천사들에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에게 500원을 돌려주고 지옥에 들여보내시오!” 물론 천국은 믿음으로 갑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믿음 안에서 선하게 살았느냐를 보신다 그 말입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선을 행했습니까? 얼마나 선을 행했습니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선하게 살았습니까? 또한 한 해 동안 잘 먹고 열심히 일하면서 즐겁게 살았습니까?
몇 일 남지 않은 2010년도입니다. 후회하고 괴로워하지만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긍정적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 때를 하나님의 인도하심따라 잘 감당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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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6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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