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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3173]
· 설교 일자 : 2011년 01월 09일
· 본문 말씀 : 베드로후서 1장 1-3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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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베드로후서 1장 1-3절)
  매일 아침마다 은행에서 이런 전화가 걸어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선생님께서는 아주 큰 선물을 받게 되셨습니다. 어느 부자가 선생님의 계좌로 8만6천4백 원을 매일 예금해 주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드리는 선물이므로 선생님은 원하는 대로 이 돈을 언제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하루 동안 사용하지 못한 금액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겠습니까? 사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기적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8만6천400초를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모두 사용하지 않으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시간은 돈보다 훨씬 값집니다. 돈은 저축이 가능하지만, 시간은 저축이 안 됩니다. 돈은 잃어버리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시간은 잃어버리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돈은 돌아올 수 있고, 재산도 돌아올 수 있으나,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바로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원, 아니 백원, 천원, 만원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값진 것이 1초, 1초 시간입니다. 나에게 허락된 이 제한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입니다.    여러분, 새해의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시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배우는 시간과 배운 것을 실천하는 시간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배우는 시간은 자기 발전, 자기 성장 시간이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시간은 자기실현의 시간입니다. 이 두 가지 시간을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내용이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목적 중의 하나는 성장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회복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회복이라는 것이 일회성이 아닙니다. 지속적이고도 점진적으로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그것을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진정한 성장은 곧 회복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자라가라, 성장하라, 온전케 되라,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는 말씀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시작 부분입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권면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2절과 3절에 “주 예수를 앎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에는 “앎으로”와 연관된 단어가 11번이 나옵니다. 여기서 ‘앎’은 일반적인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가 아닙니다. 학문적이나 이론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헬라어 ‘에피그노시스’입니다. 접두사 ‘에피’가 붙으면 그 의미는 “철저하게 이해하다, 정확하게 안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인격적 지식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충분히 알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함으로 자라는 지식입니다. 한 인격이 대상자인 인격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서 일어나는 완전한 지식을 말합니다. 경험된 지식입니다.
  왜 그렇게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강조했을까요? 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라고 권면하였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어떤 신앙의 삶을 살라고 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은 다른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것보다 당연히 복잡한 일입니다. 단순하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상이 복잡할수록 그것을 아는 일은 더 복잡해집니다. 대상이 나보다 더 크고 높은 차원이면 더 더욱 아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람도 서로를 바르게 알고 이해하고 친밀해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쉽게 서로를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쇼핑을 가면 서로 다투는 일이 잘 일어난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쇼핑하는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자기 기준으로 쇼핑을 하려고 하니까 부딪히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옷을 사려고 할 때에 얼마나 입었다 벗었다를 잘 하는지 모릅니다. 그 옆에 서 있는 남편은 그런 상황에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쇼핑하는 형태가 다르냐 하면, 남자는 옛날부터 사냥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획득했고, 여자는 집에서 나무에 달려있는 과일을 따 먹는 형태로 원하는 것을 획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고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목표물을 발견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때려잡든지, 화살이나 창을 던져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과일 나무에 달려있는 과일을 무조건 따지 않고 이것저것 비교하면서 그 중에 맘에 드는 과일을 따서 먹었습니다. 그러니 쇼핑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남자 조상, 여자는 여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스타일이 그런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복잡한 감정구조와 복잡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보이는 데로, 말하는 데로 받아들였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남성 여러분, 여성들이 쉽게 다 이해가 됩니까? 문화가 다르고, 생활습관이 달라도 서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분, 사람도 쉽게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은 더 더욱 쉽게 다 이해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쉽게 다 알 수 있고,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쉽게 이해가 다 될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향으로 행하실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더 가깝게 친밀하게 알 수 있도록 성자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훨씬 더 가깝게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을 아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여 주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을 통해 성장하라고 권면하기 위해 베드로후서를 썼습니다. 3장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베드로후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신앙이 성장합니다.
  예수님을 점점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우리는 먼저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점점 더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첫 단계입니다. 처음 신앙 자세입니다. 만약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겸손해지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잘못 알거나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지식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우쭐거리며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배운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애쓰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많이 안다는 것이 영혼을 위하여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을 학문의 틀 안에 갇히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을 아는 지식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 영혼 깊숙이 있는 갈망을 채우게 합니다. 이와 같이 진정한 삶의 시작도, 구원을 이루는 것도, 신앙의 성장도 오직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이해하고, 경험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신앙이 성장합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생명이 자라납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한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물입니다. 나무가 물을 먹고 자라듯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새생명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먹고 자라납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먹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성장합니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되어 자주 만나고 함께 시간을 갖게 되면 점점 더 알게 됩니다. 점점 더 친밀해집니다.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서 배울 것을 배우게 됩니다. 배우면서 그의 좋은 점을 닮아가게 되지요. 그 단계가 지나면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닮게 되고, 그 사람을 닮아가면서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믿음이 생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자체가 고상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자신을 더욱 고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 인생의 최고의 지식이며, 가장 유익한 진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더 알아감으로 신앙이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야 하는 이유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받아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을 알아가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순진한 신앙인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왜곡하고, 예수님을 이상한 예수님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른 가르침으로 끌고 가는 거짓 영의 궤계를 이기려면 주님을 더욱 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진리가 아닌 유사진리에 현혹되지 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인단을 물리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당시 이단 중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그노시스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영지주의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지식입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저하시켰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경지에 이르려면 특별한 지식, 즉 그노시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고, 영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만이 신의 빛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혼적’인 사람들, 세 번째 계급에 속한 ‘물질적’ 사람들은 완전한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의 물질은 영원히 악한 것이고, 우리 몸도 악하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제한된 소수의 어떤 특정 계급만이 권세를 누리고 인류의 대다수가 구원을 받을 수 없어 파멸에 이른다는 이러한 주장이 영지주의의 가장 큰 잘못된 이론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기독교의 교훈과 위배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어떤 주장까지 하냐면, 가현설이라는 주장입니다. 역사적인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에 불과했고, 그 안에 성자 하나님이 내재하시어 지상에서 활동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하늘로 되돌아가버리셨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그냥 인간 예수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 이단, 세상의 학문으로는 진정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반 학문은 우리들의 지적인 부분을 성장시켜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학문 모두가 우리의 지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학문 중에는 우리의 인생에 정말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문도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학문일 수는 있지만, 그 학문의 발달이 오히려 인류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날의 칼과도 같은 학문도 있습니다.
  여러분, 음식이라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다 우리 몸에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에 유익한 것이라고 해도 그 음식이 상하면 우리 몸에 독이 됩니다. 이와 같이 교회라고 부른다고 해서 다 똑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해서 다 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듭남의 비밀이라고 가르치는 박옥수의 집회를 경계해야 합니다. 누가 가자고 한다고 해서 아무데나 가서 성경공부 하지 마십시오.
  교우 여러분, 거짓 가르침, 무익한 가르침, 독이 되는 가르침을 분별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갓난아기들, 어린 아이들은 음식을 분별할 줄 모릅니다. 입에 달면 그냥 삼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입에 달아도 몸에 좋지 않다고 하면 그것을 거절할 줄 압니다.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여 좋은 영의 양식이 무엇인지, 우리의 영혼을 해치는 독을 독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더욱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거짓 가르침과 이단을 분별할 수 있도록 날마다 예수님을 알아가고, 진리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신앙이 바르게 성장해야 분별력도 생깁니다. 신앙이 성장해야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더욱 확실히 알아감으로 거짓 교훈과 이단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본문 말씀 2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더욱 깊이 경험함으로,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알아갈 때에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고,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골로새서 1장 17절을 보면,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브리서 1장 3절에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우주 만물이 계속 움직이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주 법칙을 유지하는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우주의 물리법칙 하나만 달라져도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력의 법칙을 잠시라도 작동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죽을 것입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조금만 느려지고, 지구가 태양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거나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지 아십니까? 지구는 정확히 23.5도 기울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사계절이 있습니다. 지구가 그렇게 기울지 않으면, 바다의 수증기가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동해 거대한 얼음 대륙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정확히 유지되지 않으면, 밀물이 엄청난 넓이의 육지를 삼킬 것입니다. 대양의 바닥이 몇 십 센티만 더 얕으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산소 간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모든 동식물이 멸종합니다. 지금은 대기와 충돌해도 아무 해를 끼치지 않고 타 버리는 유성들이, 대기의 밀도가 조금만 낮아지면 유성들의 다수가 지구 표면을 끊임없이 폭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능력으로 붙들고 계신 분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예수님을 더욱 알아갈 때,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본문 3절 말씀의 뜻은,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자원들을 갖고 있지 않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우리를 죄에서 보호하고 하나님을 위해 경건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가고, 더 배우고, 경험할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삶과 성장을 위한 능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앙 성장과 능력을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은혜로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은혜로 발견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동안에는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던 것들만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고, 그것만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예수님을 더 더욱 알아갈 때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은혜를 깨달아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은혜가 얼마나 신기하고 구체적인지, 그 은혜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풍성하고 다양한지를 깨달아 경험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만큼 그 가치를 알고 경험하는 만큼 그것이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한 만큼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니까 믿음만큼, 사랑만큼 은혜와 평강이 충만해집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감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성장되기를 바랍니다.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거짓 진리에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더욱 알아감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과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능력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년 01월 09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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