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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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2525]
· 설교 일자 : 2011년 04월 24일
· 본문 말씀 :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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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고린도전서 15장 20-28절)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생명과 부활의 주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고, 부활과 영생의 기쁨을 여러분에게 충만케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최초의 인물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다시 살리신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마르다,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살아나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했지만 영원한 부활 그리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원한 부활로 다시 살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활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살아나신 뒤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인물로는 예수님이 최초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20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의 ‘첫 열매’란 유대인들이 제물로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가지고 가던 수확의 첫 소산물을 가리킵니다.
   본문 21, 22절의 말씀처럼, 사망은 첫째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하나는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는 것, 또 하나는 모든 인류는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둘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과 부활이 예수님의 혼자의 일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심으로 죄와 사망의 지배를 무효화 하셨습니다.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첫째 아담에게서 죽음을 받게 되었지만,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처럼 부활합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부활의 선구자이시며, 동시에 믿는 자들의 궁극적인 부활과 영생을 보장하는 증인이시라는 뜻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은 부활의 모델하우스와 같습니다. 아직 건축되진 않았지만 모델하우스를 보고 그렇게 아파트가 지어질 것을 믿고 아파트를 구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모델 하우스와 실제 아파트와 똑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신령한 몸, 영원한 몸 그대로 우리들도 부활합니다.
  부활절 아침, 하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미 죽은 자를 일으켰으며, 죽은 자로부터 나의 독생자 예수를 일으켰던 것을 기억하라. 나의 아들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다면, 너희들보다도 먼저 죽은 성도들도 내가 다시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나는 너희도 죽음에서 부활시킬 수 있단다. 나는 생명의 주인이고, 부활의 능력의 하나님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면 둘째 열매는 누구이며,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첫 열매가 있으면 그 다음 열매가 있습니다. 첫 열매에 이은 본격적인 추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에게 붙은 자 즉 그분을 믿는 자들이 죽음에서 영생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7절에 부활의 순서에 대해 말씀합니다.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 다음 부활의 열매는 누구일까요? 그 다음 부활할 차례는 누구입니까? 그 다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 다음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확고히 가져야합니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음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과거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오늘 살아 계셔서 주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현재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 주는 대로 주님의 부활하심과 같이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부활하게 될 것임을 믿는 신앙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미래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보고 나도 부활할 것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미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결정됩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은 현재의 삶을 함부로 삽니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막연한 미래가 아닙니다. 어렴풋한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을지도 몰라!” “혹시 부활이 있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의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약속된 사건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부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과 관계된 다른 약속도 약속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며, 어떻게 영원히 살아갈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세의 삶은 영원히 계속될 우리의 삶에 대한 준비 과정이며, 어떻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영광스러운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부활 할 것을 믿는 사람, 즉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학자이며 철학자인 폴 틸리히는 인간은 항상 세 가지 공포, 즉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의미 없음에 대한 두려움, 또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 하나는 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많은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의미 없음에 대한 두려움, 죄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죽음이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이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그렇게 이 땅위에서의 삶을 끝나게 하는 종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죽음은 침울하고 음침하고 무겁고 슬프고 절망적입니다. 죽음 너머를 갔다고 온 사람이 없으니 죽음이 끝인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궁금증을 넘어서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맞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을 미루고 싶고, 피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죽음 이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죽음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 이생이 전부가 아니구나, 이 목숨 끝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허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전환점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나가도록 열리는 문입니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극복되었습니까?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부활이 없는 죽음은 끝을 의미합니다. 부활이 없는 죽음에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해도, 아무리 완벽하게 꾸민다 해도, 아무리 미이라를 만들고 호화로운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해도 무덤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영원이 있을 수 없고,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다시 사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 절망에서 부활이라는 절대 희망으로 출구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부활 신앙을 갖고서 믿음으로 희망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희망을 붙잡고 살고, 믿음으로 희망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날마다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 그리고 이 땅위에서 보여주신 하나님나라의 원리, 하나님 나라의 모습,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배워가며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 신앙 안에서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희망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현재의 상황이 의미가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지고, 행복이 달라집니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쉽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세상을 소망하며 삽니다. 소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가려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탔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교대쯤에서 어떤 아저씨가 가방을 들구 탔습니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아저씨는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손잡이를 양손에 쥐고 가방을 내려놓고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부터 그 아저씨가 한말 그대로 씁니다. “자 여러분 안~녕하쉽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습니다.” “물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 프라스틱머리에 솔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여?” “칫~솔입니다.” “이걸 뭐 할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팔려고 나왔쉽니다.” “한 개에 200원씩 다섯 개 묶여 있습니다, 얼마일까여?” “천~넌입니다. 뒷면 돌려보겠습니다.” “영어 써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여?”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될까여?” “망했쉽~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한 개씩 돌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돌리더군요. 사람들은 너무 황당에서 웃지도 않더군요. 그런데 칫솔을 다 돌리고 나서 아저씨는 다시 말을 했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여?”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연 칫솔이 몇 개나 팔렸는지 궁금했습니다. 잠시 후에 아저씨는 다시 말을 했는데,.. “자 여러분, 얼마 벌었을까요?” “4개 팔아 4천원 벌어쉽-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여? 안 했을까여?” “예. 쉴-망했쉽니다.” “그렇다구 제가 여기서 포기 하겠쉽-니까?” “다음 칸 갑니다!”하면서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가더랍니다. 희망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나라가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 부활하여 영원히 살 세상이 있습니다. 그것에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영원한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이런 희망이 있습니까? 영원한 산 소망이 있습니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연못 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땅 위에 곤충 하나가 유심히 바라보다 물었습니다. “왜 그래? 뭐 잃어버렸냐? 찾아줄까?” 잠자리가 대답합니다. “말은 고맙지만 안 돼. 너는 땅에 사니까. 사실은 연못 속의 내 친구들에게 훨훨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러면 네가 연못에서 나왔단 말이야?” “응, 어제. 순식간에 변하면서 날게 됐지. 이렇게 넓은 하늘이 있는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 “혹시 다시 연못에 가고 싶지는 않냐?” “얘는! 내가 미쳤냐? 그 냄새나는 연못으로 다시 돌아가게. 나는 다만 연못 위에 이러게 드넓은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따름이야. 그런데 알려줄 길이 없어 답답하단 말이야.”
  요즘 어느 건강식품 광고를 보니까 이렇게 하더군요. “산수유! 남자들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이 광고 카피처럼 이렇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부활! 사람들한테 참 좋은 건데, 사람들한테 정말 좋은 건데,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네. 직접 보여줄 수도 없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죽어도 부활하고,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면 산 채로 들림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이 부활신앙은 가장 기쁜 소식 중의 소식입니다.
이 부활신앙을 확고히 가지시기 바랍니다.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소식을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1년 04월 24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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